08월 상순(10수)
하루시조213
08 01
꽃같이 고운님을
무명씨(無名氏) 지음
꽃같이 고운님을 열매같이 맺어 두고
가지가지(柯枝柯枝) 뻗은 정(情)을 혼백(魂魄)인들 잊을소나
행여나 모진 광풍(狂風)에 낙엽(落葉)될까
님과의 이별을 걱정하는 내용입니다. 혼백이라는 말이 나오는 걸 보니 자기가 죽게 되었음을 알고 부른 노래일까요.
초장의 직유와 열거, 중장의 반어 등 표현 기교가 돋보입니다. 한자 표기가 더해져 길어보이지만 음수율은 정확히 지켜졌습니다.
자신의 사랑에 대한 집착과 조바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꽃 열매 낙엽 등 나무의 한해살이에 등장하는 단어들은 곧 인생살이일 터이니 절실함이 묻어나네요.
종장의 끝구 3자가 생랴된 것은 시조창의 실제의 생략이 반영된 것으로, ‘하노라’ 정도로 보면 될 것입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214
08 02
이별 설운 줄을
무명씨(無名氏) 지음
이별(離別) 설운 줄을 직녀(織女)야 아느니라
오작교변(烏鵲橋邊)에 여의노라 우는 눈물
인간(人間)에 궂은 비 되어 님 못 가게 하노라
하늘엔 은하수(銀河水), 일년에 단 하루 그 강에 놓이는 다리 이름이 오작교(烏鵲橋).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그리나니, 사내는 견우(牽牛)요 처자는 직녀(織女)인데, 까마귀와 까치가 자라의 도움을 받아 지어내는 섭다리 같은 임시 가설교.
다 아는 이야기가 있다는 건 우리 민족에게 큰 축복입니다. 지구촌 어디에 있거나 음력 칠월칠일, 칠석날 저녁에 비가 오시면 견우와 직녀의 이별 눈물이려니 할진대 다른 민족은 접근 불가의 경지일 테니까요.
초장 후반절의 ‘직녀야 아느니라’에서 ‘야’가 재미있습니다. ‘라야’로 새기면 진정한 아픔의 주인공이 느껴지니까요. 그리고 종장 후반절에 참 묘미가 있습니다. 하늘의 전설이야 그러려니 하지만 인간사 누리는 작가에게는 ‘비를 핑계하여 님을 잡아둔다’는 것입니다. 비 오시는 여름밤의 사랑 이야기, 상상 만해도 즐겁습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215
08 03
정성으로 노를 꼬아
무명씨(無名氏) 지음
정성(精誠)으로 노를 꼬아 벽공(碧空)에 치부비어
요지일월(瑤池日月)을 굽이굽이 매어 두고
부모(父母)님 천만세전(千萬世前)이야 놓을 줄이 있으랴
노 - 실, 삼, 종이 따위를 가늘게 비비거나 꼬아 만든 줄. 노끈.
치 - ‘위로 향하게’ 또는 ‘위로 올려’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부비다 – 비비다. 어떤 물건이나 재료를 두 손바닥 사이에 놓고 움직여서 뭉치거나 꼬이는 상태가 되게 하다.
요지일월(瑤池日月) - 아름다운 못과 해와 달.
새끼를 꼬듯 노를 꼬았길래 뭔 일인가 했더니만, 해와 달을 묶어 둔답니다. 그러고는 부모님 연세가 오래 되도록 해와 달을 묶어 두겠답니다. 세월을 돌게하는 게 해와 달이러니, 이 둘을 묶어둔다면야 부모님 연세가 더할 이유가 없다는 말입니다. 지극한 효성의 노래를 아주 기발한 비유로 노래했습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216
08 04
조그만 실배암이
무명씨(無名氏) 지음
조그만 실배암이 용(龍)의 초리 땀뿍이 물고
고봉준령(高峰峻嶺)을 넘단 말이 있어이다
왼 놈이 왼 말 하여도 님이 짐작 하시소
초리 - 어떤 물체의 가늘고 뾰족한 끝부분.
담뿍이 – 담뿍. 넘칠 정도로 가득하거나 소복한 모양.
고봉준령(高峰峻嶺) - 높이 솟은 산봉우리와 험준한 산마루.
말 같지도 않은 말에 흔들리지 마십시오. 실뱀이니 용의 초리를 물었을 것 같으면야 볼이 미어지도록 꽉 물어야겠지요. 그렇지만 그런 상황은 만들어지기가 애초부터 어불성설(語不成說)이요 언어도단(言語道斷)입니다. 똑똑한 님이시어 현혹(眩惑)되지도 않으시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어디 세상일이 꼭 그리 믿음처럼 굴러가던가요. 삼인성호(三人成虎)라고 미리 짠 녀석들 셋이면 흔들릴 수도 있겠습니다. 가짜뉴스가 국가적 골칫거리가 된 요즘, 읊어볼 가치가 있습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217
08 05
종남산 누에머리 끝에
무명씨(無名氏) 지음
종남산(終南山) 누에머리 끝에 밤중마치 흉히 우는 부엉아
장안(長安) 백만가(百萬家)에 뉘 집을 향(向)하여 부엉부엉 우노
평생(平生)에 얄밉고 잣미운 님을 다 잡아 가려 하노라
종남산(終南山) - [종-남산]으로 읽어, 남산의 끄트머리.
장안(長安) - 수도라는 뜻으로, ‘서울’을 이르는 말.
얄밉다 - 말이나 행동이 약빠르고 밉다.
부엉이가 웁니다, 부엉부엉. 밤중에, 흉하게 들린답니다.예전에는 서울의 남산에서도 밤이면 부엉이가 울었군요. 지금도 남산을 멀리서 보면 누에처럼 보입니다. 잠두봉(蠶頭峯)이라고도 합니다. 중장에서 작자는 부엉이에게 왜 그리 우느냐고 묻습니다. 누구네 집을 향하여 우느냐고 말입니다. 답은 부엉이의 말을 빌어다 받아냅니다. 미운님들을 다 잡아가려 운다는 것입니다. 장안의 백만이나 되는 집들 중에 미운님들이 얼마나 될까요. ‘부엉’ 한 번 울면 한 미운님이라고 할까요. 자신의 님에 대한 원망을 일반화시키는 노력이 가상합니다. 그렇다고 장안 백만가의 여인네들이 다 어느 한 남정네의 ‘미운님’이라고 말하면 좀 곤란합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218
08 06
지당에 비 뿌리고
무명씨(無名氏) 지음
지당(池塘)에 비 뿌리고 양류(楊柳)에 내 끼인 제
짝 잃은 갈매기는 오명가명 하는고야
어떻다 우리 왕손(王孫)은 귀불귀(歸不歸) 하는고
지당(池塘) - 넓고 오목하게 팬 땅에 물이 괴어 있는 곳. 늪보다 작다.=못.
양류(楊柳) - 버드나뭇과 버드나무속의 식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
내 - 물건이 탈 때에 일어나는 부옇고 매운 기운.
제 - ‘적에’가 줄어든 말. 그 동작이 진행되거나 그 상태가 나타나 있는 때, 또는 지나간 어떤 때.
오명가명 – 오면가면, 오면서 가면서.
왕손(王孫) - 임금의 손자 또는 후손.
귀불귀(歸不歸) - [귀-불귀]로 읽어, 돌아온다 못 돌아온다, 설왕설래(說往說來).
새로운 계절이 시작되었건만 조정은 끌려간 왕손들 걱정으로 새롭거나 활기차지 못하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작자 역시 조정의 녹을 먹는 입장에서 적이 걱정이 된다는 말이겠지요. 충신의 의리를 읊었으니 실명(失名)이 된 연유가 짐작이 안 됩니다. 사용한 어휘가 오늘날에는 별도 풀이가 필요한 것들도 많습니다. 지당과 양류는 한자어로 비슷한 단어를 겹붙여서 ‘통칭(統稱)’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219
08 07
지벽명산경 좋은 데
무명씨(無名氏) 지음
지벽명산경(地僻名山景) 좋은 데 초려삼간(草廬三間) 지어 두고
삼척금(三尺琴) 일배주(一杯酒)로 번오(繁誤)를 잊었으니
백구(白鷗)도 한옹(閑翁)을 위하여 오락가락 하더라
지벽명산경(地僻名山景) - 후미진 땅 이름난 산의 경치.
초려삼간(草廬三間) - 초가집 세 칸짜리. 아주 단촐한 살림집.
삼척금(三尺琴) - 세 자짜리 거문고. 소박한 악기.
일배주(一杯酒) - 한 잔의 술.
번오(繁誤) - 번거롭고 그릇됨. 여러 가지 잘못됨.
백구(白鷗) - 갈매기.
한옹(閑翁) - 한가한 늙은이.
스스로 한가한 노인네임을 알고, 이리저리 인생 노년을 위하여 준비를 마쳤더니, 기특하게도 하얀 갈매기들이 오락가락하면서 친구 생겼다고 환영의 춤사위를 펼쳐보이는군요. 먹물깨나 든 노인네라 사용할 줄 아는 언어가 한자투성이인 게 조금 거슬리긴 해도 갈매기 끌어다가 오락가락 제 심사를 대신 나타낸 점에 눈길이 갑니다. 한자어 해석이 요즘 세대들에게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서 상세히 풀었습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220
08 08
창 밖에 초록색 풍경 걸고
무명씨(無名氏) 지음
창(窓) 밖에 초록색(草綠色) 풍경(風磬) 걸고 풍경(風磬) 아래 공작미(孔雀尾)로 발을 다니
바람 불 적마다 흩날려서 이애는 소리도 좋거니와
밤중만 잠결에 들어보니 원종성(遠鍾聲)인 듯하여라
공작미(孔雀尾) - 공작의 꽁지.
이애다 – 울리다.
밤중만 – 한밤중에.
원종성(遠鍾聲) - 먼 데서 들리는 종소리.
풍경을 부연에 달아 법당의 부처님 심심하지 않게 하고, 요사에 든 곤한 신도들 잠자리도 편케 하고. 절집에 가면 제일 신기한 게 이 풍경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 나오는 공작미 달린 자리는 요즘 편편한 물고기 조각 일색입니다. 공작의 꽁지털은 길고 가벼원서 바람을 더욱 잘 타겠지요.
이은상 님의 ‘성불사의 밤’ 시조 작품과도 연결될 성싶은 작품이라 되뇌어보곤 합니다. 건축의 일우(一隅)에도 여유(餘裕)가 흘러 넘쳤던 옛사람의 아취(雅趣)가 담긴 작품입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221
08 09
책 덮고 창을 여니
무명씨(無名氏) 지음
책(冊) 덮고 창(窓)을 여니 강상(江上)에 백구(白鷗)떼라
구복(口腹)을 위하여 저다지 굽니는다
일신(一身)만 주릴 양이면굽닐 줄이 있으랴
강상(江上) - 강물의 위. 또는 강변(江邊).
구복(口腹) - 먹고 살기 위하여 채우는 입과 배.
굽니는다 – 굽니는가. 굽니다 – 움직이다, 오고가단.
일신(一身) - 자기 한 몸.
‘굽니다’는 말, 옛말이라 적확한 표현이 어렵습니다. 온몸을 움직여 먹이활동을 한다는 말로 풀어봅니다. 책을 읽다 잠깐 쉬며 창밖의 갈매기떼를 바라보는 선비의 선한 눈매가 다가옵니다. 오직 자기 한 몸 주릴 줄만 안다면야 이리 뛰고 저리 날지 않을 수가 있다는 자각입니다. 한 번 더 읽으니, 저 혼자의 구복을 위하는 게 아니고, 까야 될 알 곧 먹여 살려야 할 식구 때문에 저리 바삐 굽니는 것이리 생각하는 것도 같습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222
08 10
천리 천리 아녀
무명씨(無名氏) 지음
천리(千里) 천리(千里) 아녀 지척(咫尺)이 천리(千里)로다
보면 지척(咫尺)이요 못 보면 천리(千里)로다
지척(咫尺)이 천리(千里)만 못하니 그를 슬허하노라.
지척(咫尺) - 아주 가까운 거리.
슬허하다 – 슬퍼하다.
아주 유명한 속담 ‘지척이 천리라’ 한 문장을 가지고 3장6구의 시조 한 수를 지었습니다. 핵심은 중장입니다. 보면 지척이고, 안 보면 천리, 다 알 것 같은데 막상 당하는 입장에서는 사무치는 설명입니다. 바로 곁에 두고도 못 보는 상태, 교통과 통신의 발달에 힘입어 멀리 있어도 샅샅이 살필 수도 있거니와, 가까이 두고도 상대가 숨으러든다면 얼마든지 익명(匿名)의 도시를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첫댓글 순우리말 어휘이긴 한데 의미를 잘 모르겠는 시어들을 만나면 안타깝습니다. 다시 풀어주어야 접근이 가능하지요. 여기 자료들은 그런 점에서 유익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