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24일 새벽 4시경.
오늘은 정든 산촌의 언니집을 떠나는 날이다.
미쳐 카메라에 담지못한 집안 사진을 찍고서 -언니가 바리바리 싸 준 짐 때문에- 2대의 차를 이용해 어둠기가 서린 산 아래 집을 빠져나왔다.
언니 집 앞에 사는 개구장이 사촌 五十嵐 勝則(Igarashi Katsunori)이 무척 아쉬운지 이른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2층 창을 빼꼼히 열며 수면기가 있는 얼굴로 잘 가라며 손을 흔든다.
이별은 슬프다. 3일동안에 불과하지만 그동안 정이 들었는지 아내와 내 눈에 눈물이 맺힌다. 앞으로 언제 또 올지는 알 수 없으나 다시 언니집에 방문한다면 제일 먼저 보고싶은 사람이 사촌일 것이다.
어제밤 9시경에는 카메라 메모리 용량이 걱정되어 그동안 열심히 찍은 사진자료들을 언니집에 있는 노트북에다 옮겨서 저장했었다. 그 담당은 한창 사춘기의 귀엽고 예쁘게 생긴 중3년생인 아내 친구 채림씨 딸이 맡았다.
문제가 생겼다. 전기 전압이 효율적인 220V인 한국과 다르게 일본 가정의 전압은 안정적인 110V란 것을 미쳐 모르고 온 탓에 끝이 납짝한 플러그를 챙기지 못한 것.
나는 임시변통으로 플러그에다 전선을 연결해서 간신히 카메라를 작동했다. 내친김에 밧데리 충전도 확실히 했다.
우리들이 오고 가는 길을 지도상의 직선거리로 정리해 보면,
동경(토오쿄오) ->약 200km-> 군산(코리야마) -> 80km -> 남향촌(언니집).
태평양 -> 50 km ->군산(코리야마) -> 80km ->남향촌(언니집)-> 60km ->Nasushiobara 신간선역.
앞서는 형부 차를 뒤따르는 오늘 가는 길은 어둡고 깊은 밤에 우리가 처음에 왔었던 길과 거의 같은 계곡길 같았으나 알고보면 90도 다른 길이다. 언니는 경제적인 길을 택한 것.
미끼가 사는 코리야마에서 서쪽 산악지방 쪽으로 왔다가 가는 남쪽 길은 나스시오바라(那須鹽原/나수염원/Nasushiobara) 역으로 가는 길이다.
차창 밖 도로변의 숲에 둘러싸인 전통가옥들이 연이어 보이는 수려하고 풍성한 일본 북부 산천은 내 눈을 유혹하고도 충분히 남음이 있었다. 추억을 오래 간직하고싶어 연신 셔터를 누른다.
그렇게 한참동안을 골이 깊은 산천을 빠져나오니 드넓은 벌판이 나온다. 네거리에 있는 깔끔한 편의점에 들러 김밥과 오뎅 등으로 간단한 아침을 먹고서 나는 밖으로 나와 주변풍경을 돌아보며 사진을 찍었다.
산업화된 공업도시와는 거리가 먼 내륙지방의 산천이면 당연히 전통적인 가옥들이 많이 보여야 하건만 건물들이 거의 서양풍이다.
일찌기 서양문믈을 받아서인지 이곳 지방의 촌락은 의외로 거의 서양풍에 가까워 간판이 일어로 안 써져 있다면 유럽의 한 도시에 온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Nasushiobara 신간선역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6시 30분.
수일동안 외지에 주차하게 될 귀업게 생긴 미니 토요타 언니차 앞에서 사진을 찍고서 각자 짐들을 들고서 역사로 들어갔다.
지방 소도시의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승객은 우리 뿐이다. 토오쿄오 우에노(上野)역까지의 신간선 요금은 5,040엔.
내가 주변촬영을 하는 동안 "쌔액!"하고 열차 한대가 바람처럼 지나간다.
"빠르기가 번개같은 신간센이네~~!" 하며 우스꽝스런 표정을 짓던 일본 코메디 프로가 갑자기 생각난다.
그 신간선 열차를 찍으려는데...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왔다가 사라지는 바람에 나는 두대를 놓히고 말았다.
우리를 태울 열차가 나타나 잽싸게 촬영하고서 또 잽싸게 큰 가방을 챙겨들고 가족들 뒤를 따라 열차에 올랐다.
아침식사시간이라 간단한 차내식을 시켜먹는 동안 그 모습을 찍는 나를 보며 아내가 밥이나 편하게 먹으라며 역정을 낸다.
식후에 가족들은 곤하게 잠을 자기에 바쁘지만, 여행에 있어서만큼 호기심이 충천해 있는 나는 구경하기와 사진 찍기에 마냥 바쁘기만 하다.
모내기가 되어 있는 무논 사이로 밀과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는 가도 가도 끝없는 대평원....
화산으로 이뤄진 나라라서 국토 전반에 걸쳐 높은 산들이 많은 나라인 줄로만 여겼는데, 이토록 산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고 기름진 평야가 일본에 있는 줄은 정말이지 꿈에도 몰랐다.
한국의 호남평야가 넓다고는 하지만 섬나라 일본땅에 비하면 궁색할 정도.....
드넓은 농촌을 지나 도시, 도시를 지나 또 벌판... 벌판 한가운데 자리한 방풍림을 두른 농촌, 그리고 여지없이 나타나는... 언니가 사는 남향촌 뒷산에 있던 가족묘원과 똑같은 납골당식 공동묘지.
열차가 달리는 좌측 풍경만 구경하는 게 너무 아쉽다. 내 맘같아서는 기관사가 있는 기관실에서 일본풍경을 송두리째 구경하고 싶었다.
총알같이 달리는 우리를 태운 신간선(평균속도 270kmh)은 1시간여만에 우에노(上野)역에 도착했다.
이 역은 바로 우리들이 4일 전에 많은 짐을 싸들고 나리타 공항에서 코리야마로 가기 위해 경유했던 곳.
사람들로 번잡한 역 뒷편에 있는 키누야(Kinuya)호텔로 가서 예약된 방에다 짐들을 두고 예정대로 서둘러 시내관광길에 오른다.
*** 이곳은 한국인 3세가 운영하는 곳이란다. 글을 쓰는 도중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다가 이런 사실도 알게 되었다.***
첫댓글 잘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