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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철학의 여러 단계들(1912),
브륑슈비크(1869-1944), P. 592.
제1부 구성의 시대 Période de constitution 01
제1권 산술학 Arithmétique. 03
제1장 인종지학과 초기 수의 조작들 L’ethnographie et ... 7
제2장 이집트 셈칙(셈법), Le calcul égyptien 26
제3장 셈법 과 피타고라스학자들 L’arithmétisme et Pythagoriciens 33-42
제2권 기하학 Géométrie 43
제4장 플라톤학자들의 수학주의 Le mathématisme des platoniciens 43
단원 A, 플라톤 문제의 지위 Section A. La position du problème platonicien 43
단원 B 플라톤주의 방법 La méthode platonicienne 49
단원 C. 형이상학의 뮈편과 뉘편 Les livres M et N de Metaphysique 61
제5장 형식논리학의 탄생. La naissance de la logique fomelle 71
제6장 유클리드 기하학 La Géométrie euclidienne 84
제7장 분석 기하학 La Géométrie analytique 99
단원 A. 페르마 Fermat 100
단원 B. 데카르트의 보편수학과 물리학 La mathématique universelle de Descartes et la Physique 105
단원 C. 1637년의 기하학 - La Géométrie de 1637 - 113
제8장 데카르트학자들의 수학적 철학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des cartésiens 124
단원 A. 데카르트주의의 문제들 Les problemes du cartésienisme 124
단원 B. 말브랑쉬의 수학적 철학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de Malebrache 130
단원 C. 스피노자의 수학적 철학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de Spinoza 130
제3권 미분 분석 Analyse infinitésimale 153
제9장 미분계산의 발견 La découverte du calcul infinitésimal 153
단원 A. 고대 L’antiquité 153
단원 B. 나눌 수 없는 것들의 기하학과 라이프니츠의 연산법. 163
단원 C. 페르마로부터 뉴턴으로. De Fermat à Newton 177
제10장 라이프니츠의 수학 철학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de Leibniz 197-229.
단원 A. 토대 Le fondement 197
[1절] 문제의 제기: 논리학과 수학 Position du problème: Logique et mathématique 198.
[2절] 대수론과 분석론 L’algèbre et l’analyse 205
[3절] 지적인 역동론 Le dynamisme intellectuel 208
단원 B. 적용들 Les applications 211
[4절] 무한 과 길이[너비] l’infini et l’etendue 211
[5절] 무한소 계산과 기하학 Le calcul infinitésimal et la géométrie 213
[6절] 무한소 계산과 [정]역학 Le calcul infinitésimal et la mécanique 215
[[단원 C. “자연배후학”의 새로운 정초: 운동과 연속성의 사유: 심리학적 단위(l’unité).]]
[7절] 실체 La substance 219
[8절] 단자 La monade 222
[9절] 단자론 La monadologie 225
제11장 수학의 이상성과 형이상학의 실재론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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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라이프니츠의 수학 철학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de Leibniz 197.
[단원 C. “자연배후학”의 새로운 시도: 운동과 연속성의 사유 219]
7절, 실체 La substance 219
§128. [라이프니츠의 실체들: 자를 수 없고 분간불가능성인 내부의 힘(에너지)을 구성하는 실체. - 라이프니체의 실체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항목들이 아니라, 오히려 단위들인데, 분할가능하지 않은 영혼들과 점들이다 ]
앞서 나온 진술이 매우 간략할지라도, 힘에 대한 라이프니츠의 용어가 역학 안에 바깥으로부터, 무매개적 직관에 의해서든 또는 내부 노력과 유비에 의해서든,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을 충분하다. 이 용어는 마치 물체의 낙하에 관한 갈릴레이의 경험들 중의 요청(requisit)처럼 과학의 지평 위에서 태어났다. (220)
그러나 만일 이런 용어가 형이상학적 기원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 용어는 적어도 라이프니츠의 사유 속에 형이상학적 범위(une portée, 사정거리) 안에 있다. 전체적 힘과 주어진 점에서 운동의 속도 사이의, 그리고 속도 자체와 가속도 사이의 연관에 대한 독창적인 개념작업은, 실체(la substance)가 그것의 우발사건들을 지탱하는 연관에서 원형(prototype)으로 쓰인다. (220)
이러한 고려에서 볼더(1643–1709)와 교신의 중요한 구절에 관한 러셀(1872-1970)의 논평은 일종의 결정적 실험(experimentum crucis)을 제공한다. 확실히 러셀은, 실체들의 구별에 내속적 토대를 부여하는 것이 라이프니츠 철학의 본질이었다고 매우 잘 보았다. 두 실체들에서 술어들은 동일한 술어들일 것이고, 이 실체들은 서로 혼동되어 있다. 이것이 “분간불가능한 것들의 동일성”의 학설 자체이다. 그러나 동시에 마치 러셀은 스콜라 논리학의 틀 속에 라이프니츠의 형이상학을 가두었던 것처럼, 그는 실체들이 그것들의 술어들의 합[합산]으로 귀착될 수 없을 것이라고 거기에 반대되는 주장을 찾기를 원했다. 그는 이런 지지위에 1704년 1월 21일의 볼더에게 보낸 편지로부터 끌어낸 원문(텍스트)을 인용한다. “Substantiae non tota sint quae contineant partes formliter, sed res totales quae partiales continent eminentaer.” [실체들은 부분들을 형식적으로 포함하는 전체가 아니라, 부분들을 탁월하게 포함하는 전체적 사물들이다] (220)
이리하여 왜냐하면 그 철학자가 실체의 근본적 개념작업에 관하여 대략적으로 모순되게 말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 만일 주어와 술어의 연관이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의 모델을 따라서만이 해석될 수 있을 뿐이라면. 결국 이런 논리학으로부터 중간은 없다. 전체가 형식적으로(formellement) 그것의 부분들의 합이 아니라는 찰나로부터, 전체는 그것의 부분들과 존재론적으로 다른 것이다. 속성들 뒤에 기저(un substratum, 기체)가, 즉 속성들과 연관하여 초월적 형이상학적 실재성이라는 앞잡이가 있다. 그러면, 전체와 부분들 사이에서 탁월성(의 연관, 즉 수학적 초월성의 연관은 형이상학적 내재성의 학설과 양립할 수 없지 않다. 무한 계열, 즉 전체 사물[실체]는 계속적인 항들의 각각 보다 또는 항들의 규정된 양보다 더(plus) 많다. 그 계열이 그 자체적으로 다른 사물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기를 원치 않는 것이다. 이때에 실체는 유일한 법칙이 될 수 있고, 이 법칙으로부터 술어의 다곱성[다양성]이 도래한다. 그리고 이것이 라이프니츠가 볼더에에 보낸 동일한 편지에 표현하여 주장한 것이다. 여기서 러셀은 편지에서 분간불가능성들의 동일성의 학설과 모순이라는 것을 적발하면서 이것[주장한 것]을 파악했다고 믿었다: “Legem quamdam esse persistentem quae involvat futuros ejus quod ut idem concipimus status, id ipsum est quod substantiam eadem constituere dico.” [우리가 동일할 것처럼 생각했던 것의 미래 상태를 포함하는 영속적인 어떤 법칙은 정확하게 실체를 구성하는 것이다.] (221)
§129. [라이프니츠의 실체들: 점들, 영혼과 같다. 영혼은 단위이자 다곱성(다양성)이다. 마치 원의 중심과 같다.]
라이프니츠를 실체에 대한 그의 한정[정의]된 용어로 인도해야만 했던 사유의 진화는 미분소 계산의 기술 적 개념작을 중심측으로 삼는다. 그의 제일철학에서 라이프니츠는 카발리에리의 불가분적인 것들에 직접적으로 지지받고 있다. 이 불가분적인 것들은 공간 속에서 있을 수 없다. 최소치(un minimum) 너비의 관념은 모순을 함축하고 있다. “너비의 어떠한 끄나풀[쪼가리]도 그것에서 들어 올릴 수 없는 그것이 비너비(inétendu)이다. 따라서 물체의, 공간의, 운동의, 시간의, 시작(말하자면 점, 노력, 즉 코나투스, 순간)은 불합리한 것 어떤 것이 아니고, 또는 증명해야만 할 비너비이다.” 그런데 이런 점 그리고 이런 노력, 즉 공간에 그리고 운동에 연관하여 무한소 질서의 요소들은, 또한 정신적 요소들이다. 라이프니츠가 1709년에 쓰기를, “여러 해 전에, 나의 철학이 아직 성숙하기에 이르지 않았을 때, 나는 점들 속에 영혼들을 거주하게 했다.” (221)
라이프니츠의 차후의 철학에서 사람들은 단위로부터 무한으로 가가지 않는다. 사람들은 점 또는 불가분적인 노력의 도움으로 공간 또는 운동을 조성하지 않는다. 반대로 완전한 해결에 결코 이르지 않고서도 불가분성의 과정이 출발한 것은, 공간과 운동이 주어진 그대로, 공간과 운동으로부터이다. 1715년 8월 5일 라이프니츠는 아주 의미있는 문장들을 썼다. “내가 단위(l’unité)가 더 이상 분해할(résoluable) 수 없다는 것을 말했을 때, 부분들의 용어가 단위보다 더 단순한 경우에 그 단위가 부분들을 가질 수 있으리라고 나는 이해한다. 단위가 나누어질(divisible) 수 있으나, 단위가 분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단위의 부분들인 분수들은 보다 덜 단순한 용어들을 가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단위보다 덜 단순한) 완전수들은 항상 분수들의 용어들 속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점에 관해서 그리고 단위에 관해서 수학적으로 철학했던 여러 학자들은, 용어들로 분해와 부분들로 분할 사이에 구별함이, 뒤죽박죽이 되었다. 부분들이 항상 전체보다 더 작다고 하더라도, 부분들이 항상 전제보다 더 단순한 것이 아니다.” (222)
만일 정신적인 것이 물질적인 것의 단일성(l’unité, 단위)이라면, 따라서 그것은 구성적 요소라는 한에서 더 이상 [물질적인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은 너비의 내부에 전체임에도 불구하고 그것[구성적 요소]을 보존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전체적 원리인 한에서 인데, 너비 현상들의 다곱성[다양성]은 전체적 원리부터 파생한다. 영혼들 속에서 단일성과 다곱성을 화해하기를 허용한다는 것, 그것은 양의 기하학적 연관이 아니며, 그것은 “작동하는 원초적 힘이며 … 마치 수들 속에서 그것[계열. la suite]의 자연[본연]처럼, 변화들의 이어지는 법칙이다.” (222)
8절, 단자 La monade222
[모나드와 원자의 차이를 찾아내고, 모나드를 원자의 기본 단위로 보았다.]
[모나드, 실체, 사물(res), 단위(l’unité) 등은 언어 논리상으로 주어라는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주어의 자리는 공간상 자리이다. 라이프니츠의 알고리듬의 두 항목 사이의 전건의 자리는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에서 앞선 자리라는 의미이다. 그 앞선 자리의 기원 또는 원인에 대한 탐구의 시초일 것이다.]
§130. [라이프니츠의 단자: 영혼의 단위. 혼은 지각, 인상, 기억을 지니고 있으며, 그 단위는 점과 같으며, 비유하자면 원 또는 도형의 중심과 같아서, 점의 퍼짐은 빛과 같이 다양하게 펼져진다(너비를 갖는다).]
무한소 계산의 직접적 적용은 실체의 자연[본연]을 침투하게 허락했다. 무한소 계산의 유비는 실체의 형상들의 진보와 잡다함을 따르는 수단을 제공할 것이고, 또한 물질-모나드(la monade-matière,물질단자)에서 생명-모나드(la monade-vie,생명단자)와 정신-모나트(la monade-esprit,정신단자)로 이행하는 수단을 제공할 것이다. (222)
라이프니츠가 초기 젊은 시절의 개념작업에서 그 자신이 보고한 사유에 따르면, “영혼 또는 정신은 마치 원자가 행하는 것처럼, 자기 방향만 간직할 뿐만 아니라, 또한 방향 변화의 법칙 또는 곡률들의 법칙을, 즉 원자가 행할 수 없는 것을 간직한다.” 이러한 주목에 의해서, 처음에 연속성의 법칙을 낭패이게 하는 것으로 나타났던 경우들이 해결된다. “마치 기하학의 선처럼, 구별된 점들이 있고, 사람들은 이것을 꼭지점들, 변곡점들, 역방향 또는 다른 방향의 점들이라 부른다. 그리고 또한 마치 이런 점들을 무한대로 갖는 선들이 있는 것처럼, 이렇게 동물의 생명 속에서 또는 개인 속에서 특별한 변화의 시간들을 생각해야 한다. 이 시간들은 일반적 규칙 안에 있지 않은 채 있다. 마찬가지로 곡선 안에서 구별된 점들은 그것의 일반적 자연에 의해서 또는 그것의 방정식에 의해 규정될 수 있다.” (223)
이 평행론의 섬세함과 엄격함이, 일찍이 의식과 사유로 이루어졌던, 가장 미묘한 또 가장 깊은 분석으로 인도한다. 무엇보다 먼저 무한의 계산은, 미분의 형식 하에서든 또는 감소하는 항들에 속하는 무한 계열의 형식 하에서든, 무의식의 역설적 용어에게 철학에서 시민권을 수여한다. 이것에 동화하는데, 무의식이 그의 방법에 특수성에 반대하는 한, 심리학은 200여년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무의식은 오늘날 정신적 삶의 개념작업을 지배한다. 의심할바 없이, 이런 용어는 이미 17세기에 알려졌다. 이 용어는 데카르트에게 본질적이다. 그리고 파리에 체류하기에 바로 앞서서부터, 라이프니츠는 ‘영혼은 항상 생각한다(l’âme pense toujours)’는 유명한 논제를 증명하는 데 집착[집중]했었다. 이 논제로부터 말브랑쉬와 스피노자 둘 다 영감을 받았다. 그러나 마치 영혼이 자기로부터 나온 “혼동된 감정”처럼 또는 마치 첫째 종류의의 인식에서(connaissance du premier genre) “부적합한 의식”처럼, 이 용어들은 아직은 추상적이고 도식적인 국면을 갖는다. 반면에 “작은[미세] 지각작용들”에 대한 라이프니츠 이론은 새로운 수학의 또한 역학의 유비에 맞추어서, 기대치 않은 정확성과 확장(une extension, 외연)을 얻는다. 중요한 것은, 수많은 무한소 인상들이라는 것이고, 즉 한정된 상태를 구성하기 위하여 모이는 인상들이라는 것이고, 또는 의식적 반성과 분명한 직각[통각]작용의 중심으로부터 감각들과 추억들의 희미함과 혼동 속에서 이 뿌리들을 (또는 잃어버릴[사라질] 운명에 처한) 이어 가는 배열된 계열이라는 것이며, 의식적 삶의 매 찰나는 단순한 겉보기에도 불구하고 무한한 요소들의 합계작업(la sommation)이다. (223)
이 합(cette somme, 합계)은 다음 차례로 새로운 합의 요소이다. 마찬가지로 그 [역학적] 운동이, 힘의 한 표출이 힘의 다른 표출로 이행하게 하는, 미분화 작동으로 귀착하는 것이 듯이, 마찬가지로 의식적 삶의 운동은 새로운 상태로 경향성(une tendance)을 포함한다. 운동이 계열 속에 한 항목이다. 그 계열의 통일성(l’unité, 단위, 정체성)은 의식적 삶의 과정을 형성한다. “Et cum Monades nihil aliud sint quam repraesentationes phaenomenorum cum transitu ad nova phaenomena, pater in iis ob repraesentationem esse perceptionem, ob transitum esse appetitionem.” [왜냐하면 모나드들이 새로운 현상들을 향한 이전하는 현상들의 재현들일 뿐이다. 재현작용 때문에 모나드들에는 지각작용이 있고, 변이(이행) 때문에 (거기에는) 욕구작용(l’appétit)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131. [단자, 즉 실체의 표출 역량은 혼이다. 혼은 원에서 중심의 점과 같은 것이다.]
결국 무한소 계산의 유비는 형이상학적 분석을 훨씬 더 멀리 밀고 나가기를, 그리고 재현작용 그 자체를 근거[이유] 있도록 허락할 것이다. “재현작용은 표상되어야만 하는 것에 자연적 연관을 갖는다.” 심지어 라이프니츠가 영혼을 마치 하나의 점(un point)처럼 정의할 때, 그는 거기서 하나의 요소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중심(un centre)을 보았다. 그 중심에서 보편적 작용의 모든 빛살들이 협력하고 있었다. 용어는 한정적 철학[정의하는 철학] 속에서 정확하게 된다. 이 철학에서, 단위는 무한한 항목들의 합계가 될 수 있는데, 만일 이 항목들이, 이 단위에 연관하여 무한히 작은 것들일 경우이거나 또는 무한히 감소하는 계열에서 배열되는 경우이다. 다수의 혼동된 인상들은 의식적 지각작용의 통일성(단위) 속에 집적된다. “실체는, 그것이 전체를 표현하는 한에서 무하한 너비로 되어 있으며, 그리고 실체는 다소 완전한 그것의 표현 방식에 의해 제한된다.” (224)
라이프니츠의 가장 독창적인 특성, 즉 카시러가 이것을 잘 지적했듯이, 인류의 사유에 이룬 그의 공헌, 그것은 확장됨이 없이도 깊이 있고 불가분적인 의식이 그 사유에서 재현작용의 우주에 동등한 가치로 나타난다. “각 영혼은 정확하게 우주 전체를 재현한다.” 그러나 그 영혼은 “유한하게 무한성을 재현한다.” 그런데 영혼은 합(계)이며, 여기서 보편적 요소들의 전체성이 들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합은 한 부분이다. 즉 파르스 토탈리스(pars totalis)[부분 속에 전체] (225)
9절, 단자론 La monadologie 225
§132. [특이성의 실체로, 얼 속에서 혼을 지닌 인물(아라한)이 있다. 아라한이 불성을 드러내는 전체를 완수할 때 ‘부타’라 부를 것이다. 라이프니츠 사유에서 1696년쯤에 발현하기 시작하여, 1702년쯤에서야 정초하고 1710년에 변신론으로서 체계를 갖추었던 것 같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재현하는 단위와 제현된 다수 사이의 연관의 개념작업은 실체들의 소통에 대한 일반적 문제의 해결을 함축하고 있다. “실체들은 결코 홀로 있지 않고, 동반도 없다. 왜냐하면 달리 말하자면, 단위들은 기능없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고, 그리고 재현할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225)
어떻게 다른 모나드들은 서로 서로 재현하는가? 의심할 바 없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대답할 수 있다. “결과들(les effets)의 일치를 만드는 것은 공통 원인(la cause)의 표현이다.” 라이프니츠가 고등 수학에 입문하던 초기 동안에 얻었던 중요한 초기 결과, 그것은 1674년[스물여덟]에 원의 산술적 사각형화(la quadrature arithmétique)를 허락하는 무한 계열의 발견이었다. “원의 반지름은 단위이기 때문에, 주어진 호 BDE로부터 절반인 BD의 접선 BC는 b라고 불리고, 호의 크기는
b/1 – b3/3 + b5/5 – b7/7 + b9/9, 등등이 될 것이다. 그런데 호들이 발견되었고, 공간들을 재발견하는 것은 쉽다. 그런데 이 정리의 파생명제는, 직경과 그것의 정방형은 1이기에, 그 원은
1- 1/3 + 1/5 – 1/7 + 1/9 – 1/11, 등이다.” (225)
그리고 이런 정식을 라이프니츠는, 메르카토르(Mercator, 1620-1687)가 1670년에 출판했던 포물선의 사각형화((la quadrature de l’hyperbolique)에 결부시킨다. 라이프니츠가 나중에[1710년 11월] 후고니(Hugoni, s.d.)에게 편지 쓰기를, “라이프니츠는 원에서 포물선 위에 행해진 발견에 응답했던 것을 발견했다.” 그 정식이 원과 포물선의 “경이로운 조화”를 드러내는 한에서, 계열의 학설은 공간적 관계들의 분석적 해결을 제공한다. (225)
그런데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철학적 반성의 초기에 라이프니츠는 주목하기를, 마치 원근법의 놀이들(les jeux de la perspective, 각도, 투영의 놀이들)이 우리가 스스로를 동일한 실재성으로 만드는 잡다한 재현작업들을 예시하도록 허락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Uti enim eadem civitas aliam sui faciem offert, si a turri in media urbe despicias (in Grund gelegt), quod perinde est ac so essentiam ipsam intueare; aliter apparet, ao extrinsecus accedas, quod perinde est ac si corporis qualitates percipias; et ut ipse civitatis externus aspectus variat, prout a latere orientali aut occidentali dis-accedis, ita similiter pro varietate organorum variant qualitates.” [만일 사람들이 도시의 탑 위에서 바라보았다면, 왜냐하면 마찬가지로 동일한 도시가 다른 모습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동일한 본질을 관조하는 경우에 동일한 것에 귀착하는 것과 같다. 만일 위부에서 접근하면 그것은 달리 나타날 것이고, 사람들이 물체적 성질을 지각했다면 동일한 것에 귀착한다. 사람들이 동쪽 또는 서쪽으로 접근함에 따라 도시의 외적 국면이 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질들도 기관들의 변화에 따라 변한다.] (226)
모나드들은 이런 의미[방향]에서 서로들과 서로들을 표현한다. “[각자] 서로 서로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 사이에 일정한 연관이 그리고 규칙적인 연관이 있다. 이리하여 원급법적 투영은 그것의 실측도면(son géométral)을 표현한다.” 그런데 마치 기하학의 질서처럼 형이상학적 질서 속에서 항 대 항의 상응은 조화의 근원(la source de l’harmonie)에 있을 것이다. “동일한 영혼 속에서 동시에 함께 발견되는 지각작용들은 구별될 수 없는 작은 감정들의 진실로 무한한 다자(une multitude)를, - 후속(la suite 이어짐)이 다자를 전개해야 하는데 - 감싸고 있어서, 시간과 더불어 결과로 나와야만 하는 것으로부터 무한한 변이에 대해 놀라지 않아야 한다. 이런 모든 것은 영혼의 재현적[표상적] 자연의 귀결일 뿐이다. 그 영혼은 일어나는 것을 표현해야만 하고 그리고 마찬가지로 신체 속에서 또한 모든 다른 것에서도 어떤 방식으로든 일어날 것을 표현해야만 한다. [그리고 또한 모든 것은] 세계의 모든 부분들의 연결 또는 상응의 귀결일 뿐이다.” (226)
§133. [단자들(실체들)의 “자연배후학”의 성격(원인): 혼 전체를 지니고 지속하는 부분. 모나드들은 갇혀 있지만 (전체)계열들 안에서 위치에 따라 변계수(coefficient variable, 변수-계수)의 권능을 갖는데, 이것이 혼이다.]
수학과 형이상학의 평행론이 아직도 더욱 밀접한 것으로 나타난다. 만일 실체들의 자연과 소통에 대한 새로운 체계, 1690-1703)[출판 1900]의 출판에 앞선 몇 해 동안에, 사람들이 라이프니츠의 작업들에 연관지운다면 말이다. 1692년과 1694년 라이프니츠는 학자들의 논총(1682년 창간) 속에 두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여기서 그는 기하학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두 용어들을, 즉 곡선좌표계(les coordonnées curvilignes), 둘러싸는 선들(les lignes enveloppes, 포락선, 包絡線)을 도입했다. [인용하자면,] de Linea ex lineis numero infinitis ordinatim ductis inter se concurrentibus formata, easque omnes tangente, ac de novo in ea re Analysis infinitorum usu; et la Nova calculi dofferentialis applicatio et usus, ad multiplicem linearum constructionem, ex data tangentium conditione. [서로서로 잘려질 수 있는 주어진 방식으로 또한 이 모든 선들에 접하는 방식으로 이끌어진 선들의 무한한 수에 의해 형성된 선으로부터, 마찬가지로 무한들의 분석에서 사물로 가는 새로운 용법으로부터[1692년글]; 접선들의 주어진 조건으로부터 선[곡선]들의 다수(多數) 구축을 위하여 미분 계산의 새로운 적용과 용법[1694년글].] (227)
라이프니츠는 데자르그(Desargues, 1591-1661)의 작업들을 불러오면서 시작한다. 데카르트의 직각 좌표들을 근거로 지지받는 대신에, 데자르그는 직선들의 [기울기에서] 수렴(la convergence)과 발산(la divergence)의 고찰로부터 출발한다. 평행하는 직선들이 무한에서 협력점을 갖는다고 가정하면, 평행론을 수렴의 틀 속에 다시 들어가게 한다. 비슷한 일반화(semblable généralisation)의 모델에서, 선들 사이에서 자리[위치]의 무한한 관계들을 생각하는 것이 가능하다. 자리 관계들은 계산의 새로운 체계에 의해 해석되기를 허용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선들의 각각과 정해진 기하학적 요소 사이에 상응하는 법칙이 있는 경우라면 허용할 수 있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반사곡면이미지(des caustiques de réflexion)는 사람들이 선들의 체계를, 소위말해서 수렴하는 다발을 구성하지 않으나 그럼에도 규칙적인 체계를 구성하는 선들의 체계를, 형성할 수 있다고 암시한다. 말하자면, 라이프니츠에 의해 사용된 표현에 따르면, 매우 가까이 이웃하는 두 선들이 있다. 이것들은 무한히 조금 다르거나 또는 무한소 거리를 갖거나 인데, 이것들은 수렴하고 또한 수렴점이 할당될 수 있다. 모든 수렴점들의 질서는, 이웃하는 선들의 모든 수렴점들의 공통 장소[자리]인 수렴선들을 생겨나게 한다. 그리고 이 질서는 머는 직선들의 접선이라는 주목할 만한 특별성을 제공한다. 이 직선들의 상호 교차들이 그 질서를 구성한다. (227)
기하학적 관계들의 서술은 어떤 용이함으로 무한소 계산이 관계들의 분석적 해석작업을 제공할 것인지를 제시한다. 접선의 한 점으로부터 이웃하는 무한소의 점으로 이행은 세분화(différenciation)에 상응한다. 계열의 두 선들을 표현하는 방정식들을 비표하면서, 우리는 방정식들의 상계수들(les coefficients constants)과 변계수들(les coefficients variables) 사이에 분리할 수 있다. 전자들은 선들의 일반적 조건들에 상응하는 차이 있을 수 없는 매개변수(les paramètres indifférentiables)를 구성한다. 후자는 특별한 선으로부터 이웃하는 선으로 이행을 허락하는 차이 있을 수 없는 요소들(les éléments indifférentiables)을 구성한다. (227)
직선의 계보의 관찰에서 끌어낸 방법은 곡선의 계보로 넓혀질 수 있다. 라이프츠는 1694년의 논문에서 그것에 대한 적용을 정확하게 한다. 그는 곡선들의 계열법칙(la loi de série)을 부여하는 방정식을 “초기(1차) 방정식”이라 불렀고, 그 방정식은 공통 자연[본연]을 설명한다. 그는 전자 이외에 “보조적 방정식(l‘équation accessoires)”을 형성할 것을 가르친다. 후자 방정식은 변계수들의 상호 의존을 번역하고, 그리고 곡선에서 곡선으로 이행할 수단을 부여한다(transitum de curva in curvam). 예를 들어 (x-b)2 + y2 = ab 라는 방정식은 어떤 원의 방정식이며, 여기에서 b는 변하는 매개변수이다. 이 방정식은 b2 = (a + 2x) b – x2 – y2 형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b에 따른 세분화는 b = x + a/2 라는 관계로 인도한다. 원의 방정식 속에 도입된 이런 관계는 y = a (x + a/4), 말하자면 원들 계열의 포함[포괄]은 포물선이다. (228)
수학적 발명들의 성공은 라이프니츠의 형이상학의 발명을 밝혀준다. 한 곡성의 특별한 방정식과 계보의 일반 방정식 사이의 관계는, 더욱 정확힌 방식으로 말하자면, 특별한 모나드와 모나드들의 일반 체계 사이의 관계와 같다. 라이프니츠는 벨(Bayle, 1647–1706)의 반대들에 응답으로 쓴 논평들의 결론에서 이 체계를 인정했다. 이 결론에서 그는 자신의 형이상학적 사변의 발전 전체를 요약했다. “사람들이 각 모나드, 영혼, 정신이 특별한[개별적] 법칙을 받아들인다고 말할 때, 그것은 우주를 규칙적이게 하는 일반법칙의 변이일 뿐이라는 것을 보태야만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도시를 바라보는 관점들의 차이들에 따라서 동일한 도시가 달리 나타나는 것과 같다는 것도 보태야만 한다. … 세계는 그 자신 속에 무한한 변이성을 이미 가졌기에, 그리고 무한히 다른 재현작업들에 의해 잡다하게 되어있고 또 잡다하게 표현되는 대로 변하였기에, 세계는 재현작업들의 무한한 무한성을 받아들인다.” (228)
따라서 “계열의 법칙들”의 수학적 관념으로부터 진행하는 철학적 개념작업은 절대적으로 일반적 범위로부터 나온다. 결국 이 개념작업은, 우주의 창조작업을 진행하는 신 속에서, 기하학적 원리를 발견하기 위하여 열려있다. 법칙의 통일성(단위)에 따라서 계열의 항목들이 진행하며, 그 통일성은 질서를 드러낸다. 이 통일성으로부터 진행하는 항들의 무한성은 풍부함을 드러낸다. (228)
무한한 조합작업들의 무한성을 라이프니츠는 “신의 지혜”에 부여한다. 그 무한성은 우주이고, 그 우주의 “배열되어 있는 진행”은 연속성의 법칙에 기하학만큼 정확하게 만족한다. 라이프니츠는 모페르뛰(Maupertuis, 1698-1759)와 논쟁의 과정에(1752년) 대하여 쾨니히(König, 1712-1757)에 의해 출판했던 편지 속에서 쓰기를, “따라서 좋은[상당한] 이유들이 있다고 [다음과 같은 사실을] 믿기 때문에 나는 생각한다: 즉, 다음 사실들이란, 존재들의 모든 다른 계층들이(toutes les différentes classes des êtres), 동일 곡선의 그 만큼 많은 배열들 있는 것처럼, 신의 관념들 속에만 있다는 것이다. 존재자들 계층들의 모임이 우주를 형성한다고 하고, 신은 본질적 등급을 판명하게 알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곡선 배열들의 통합은, 사람이 둘 사이의 그것들과 다른 하나를 자리하게[위치 시키] 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그러한 것이 무질서과 불완전을 표시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들은 동물에 속하고, 동물들은 식물들에 속하며, 식물들은 이제 화석들에 속하며, 화석들은 이번에는 물체들에 속하며, 물체들은 감관과 상상작용이 우리에게 마치 완전하게 죽은 것처럼 또한 비형상[비형태]인 것처럼 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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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4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 Ἀριστοτέλης, 전384-322),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제자. 형이상학(La Métaphysique, τὰ μετὰ τὰ φυσικ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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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4 갈릴레이(Galilée, it. Galileo Galilei, 1564-1642) 피사(Pisa)에서 태어나, 피렌쩨의 아르세트리(Arcetri)동네에서 세상을 떴다. 이탈리아 수학자, 기하학자, 천문학자.
1591 데자르그(Girard Desargues, 1591-1661), 프랑스 기하학자, 건축가.
1598 카발리에리(Bonaventura Francesco Cavalieri, lat. Cavalerius, 1598-1647) 수학자, 기하학자, 천문학자, 피사와 볼로냐 대학 교수. 갈릴레이의 제자이자 서신교환으로 학문적 동료. 제수아트파(Les Jésuates, ou Pauvres Jésuates) 수도사였다.
1619 올덴부르크(Henry Oldenburg, 1619경-1677) 독일 태생 영국활동 외교관, 스피노자 비난(종교 검열을 피하기 위해)
1620 메르카토르(Nicolas Mercator deu. Niklaus Kauffman, Nicolaus Mercator, 1620-1687), 독일 수학자. 말년에 베르사이유 성의 연못들 건설에 참여하였다. Logarithmotechnia, 1668.
1630 소피아(Electress Sophia of Hanover, 1630-1714), 하노버 선제후 에르네스트 아우구스트의 배우자. 그녀는 하노버 궁정의 사서로 일하던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의 친구이자 숭배자가 되었습니다.
1632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7)[마흔다섯], 세파라드 유대인 공동체에서 온 포르투갈 출신 네델란드 철학자.
1638 말브랑쉬(Nicolas Malebranche, 1638-1715)(루이 14세와 같은 해 태어나고 뜨다), 프랑스 신학자, 오라트와르 신부, 철학자. Entretien d'un philosophe chrétien et d'un philosophe chinois sur l'existence et la nature de Dieu (1708)
1643 볼더(Burchard de Volder, 1643–1709), 네덜란드 철학자, 수학자, 물리학자, 천문학자. 의학박사, 레이드 대학 학장, 라이프니츠 서신교환.
1646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 독일 철학자, 수학자, 논리학자, 외교관, 역사가, 사서. 문헌학자. Nouveaux Essais sur l'entendement humain, 1704(1765 출판)는 로크의 Essai sur l'entendement humain, 1689)에 대한 반박문이다.
1647 벨(Pierre Bayle, 1647–1706), 프랑스 철학자, 작가, 사전편찬자.
1655 토마지우스(Christian Thomasius, 1655-1728), 독일 법률가, 철학자.
1668 보세스(Barthélemy Des Bosses, Bartholomäus des Bosses 1668–1738), 오스트리아 출신 철학자. 벨기에 제수이트. 라이프니츠 말년에 편지교환
1678 레몽(Pierre Rémond de Montmort, 1678-1719), 프랑스 수학자.
1698 모페르뛰(Pierre Louis Moreau de Maupertuis, 1698-1759), 프랑스 철학자, 수학자, 물리학자, 박물학자. 뉴턴이론 영국 밖으로 확산에 기여.
1712 쾨니히(Johann Samuel König, Kœnig, 1712-1757), 독일 수학자. 쟝 베르누이(Jean Bernoulli) 제자. 목사, 교수.
1809 그라우어/구르하우어(Georg Emanuel Guhrauer, Gottschalk Eduard Guhrauer, 1809–1854), 독일 문학사가, 라이프니츠 연구가, G. W. v. Leibniz, eine Biographie (Breslau 1842, 2 Bde.; Nachträge 1846).
1826 푸세 드 까레이(Louis-Alexandre Foucher de Careil, 1826-1891), 프랑스 작가, 외교관, 정치가. Réfutation inédite de Spinoza par Leibniz, Paris, 1854. Nouvelles lettres et opuscules inédits de Leibniz, précédés d'une introduction, Paris, 1857.
1827 보데만(Eduard Bodemann, 1827–1906), 독일 교육자, 사서, 역사가, 편집인. Der Briefwechsel des Gottfried Wilhelm Leibniz in der Königlichen Öffentlichen Bibliothek zu Hannover, 1895. [보데만은 라이프니츠 필사본의 카탈로그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 카탈로그 중에 후고니(Charles Hugony, s.d.)와 편지 교환(1710년 11월)이 있는데, 변신론에 관한 토론이 있다고 한다.]
1829 칸토어(Moritz Benedikt Cantor, 1829–1920), 독일 수학 사학가. 하이델베르크 대학 교수.
1856 안깽(Arthur Hannequin, 1856-1905) 프랑스 철학자.
1868 꾸뛰라(Louis Couturat, 1868-1914) 프랑스 철학자. 논리학자, 수학자. La Logique de Leibniz : d'après des documents inédits, Paris, Félix Alcan, 1901
1870 레스티엔/레티엔(Henri Lestienne, 1870–1915), 프랑스 신부.
1872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 영국 철학자, 수학자, 논리학자.
1874 카시러(Ernst Cassirer, 1874-1945), 스웨덴 출신 유태계 독일 철학자, 나토릅, 코헨과 같은 마르부르크학파. Das Erkenntnisproblem in der Philosophie und Wissenschaft der neueren Zeit, 2권, 1906, 1907.
1884 레(Jean Joseph Ray, 1884-1943), 프랑스 법학자, 철학자, 사회학자, 외교관. [공동 번역으로 Jean Ray et Renée Ray인데 후자의 레는 찾을 수 없다. - 전자의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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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들의 논총(Acta Eruditorum): 1682년 라이프니츠가 창간한 과학 학술지. 1782년까지 발간되었다.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발간되었으며 월간지였다. 멘케(Otto Mencke, 1644-1707)와 라이프니츠가 창간했다. 멘케는 라이프치히 대학 도덕 정치학 교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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