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상 vs 화엄교학 vs 화엄경사상 - 기무라 기요타카 교수의 견해 1. 화엄사상 : 화엄경에 기초하여 화엄경을 근거로 형성된 사상 일반을 총칭 2. 화엄교학 : 중국 한국 일본의 화엄종 사람들이 만들어낸 체계적인 화엄사상 지칭 3. 화엄경 사상 : 화엄경에 설해진 사상을 직접적으로 표현 한것 *普賢 註 : 저는 개인적으로 3번의 입장입니다. 우리나라 화엄 강의는 주로 2번 입장에서 하는데 저는 그게 늘 못마땅 했어요. 화엄종이 화엄교학을 뚜렷하게 정립한 건 맞지만 그게 화엄경이 말하는 전부는 아니거든요? 화엄은 화엄교학이 말하지 못하는 화엄만의 세계가 분명 있습니다. 그걸 알아야 한다고 봐요. 화엄종이 세운 화엄교학에만 붙잡혀 있으면 화엄경 자체가 우리에게 알려주려는 더 큰 세계는 못 봅니다. 화엄교학은 어디까지나 화엄종 사람들의 견해 일 뿐입니다. 이통현 장자 같은 분은 화엄교학이 知的으로만 검토 이해되어 수행이 소홀한 걸 개탄해서 스스로 80화엄을 연구하여 신화엄경론 완성
첫댓글현재 우리나라 화엄강의를 들어보면 거의 화엄교학입니다. 화엄경을 직접 읽고 거기서 무언가 한 소식 얻어서 강의하시는 분은 거의 아니 계신 듯. (다만 최근 불광출판사에서 '인문학으로 본 화엄경'이란 책을 발간했는데, 그 저자이신 박보람교수께서는 경전을 직접 보시고 거기서 느낀 소식을 바탕으로 화엄교학을 하시는 듯합니다.)
화엄교학은 어렵습니다. 내용이 대단하기는 해도 그냥 현학적 이론에 가까워요. 우리같은 범부는 별 도움이 안 됩니다. 저는 해주스님의 화엄학 강의를 보면 어려워서 따라가지를 못해요. 더구나 거기 나오는 한문, 한자를 이해를 못해요. 저같이 20세기에 태어난 사람들은 당나라 현수 법장 당시의 한문 언어는 이해 불가능입니다.
반면 화엄경은 쉬워요! 정말 너무나 쉬워요! 제가 그냥 술술 읽어나갈 정도입니다. 한글 대장경보다 읽기가 훨씬 쉬워요.
어떻게 1500년 전에 번역된 경전 한문이 1500년 후의 한글 세대인 제게 그렇게 쉽게 읽히는지!
흔히 불교에서 신구의 삼업을 얘기하는데, 사실 구업 심업(의업)은 행을 유발하지 않으면 이웃들에게 큰 문제는 별로 안 됩니다. 그냥 계획(?) 수준에서 끝나는 거죠. 그러나 행은 달라요. 행이 나오는 순간 세상 자체가 달라집니다. 이번에 신림동 지하철 등 칼부림 사건 보세요. 칼부림 예고는 경찰이 미리 손을 쓸 수도 있고 또 계획으로 끝나지만, 행으로 옮기는 순간 난리가 납니다.
그래서 한 사회의 질서가 유지되려면, 또 도덕 윤리가 유지되려면 가장 급선무가 행을 먼저 제압하는 것이고, 그 행을 제압하는 것이 사회에서는 법이니 규칙 또는 규율이라면, 종교에서는 戒입니다. 계는 생각과 말도 있지만 무엇보다 행을 규제하기 위해 나온 것이지요. 행은 그렇게 바로 이웃들을 해칠 수 있어요
행원에서 行은 신구의 삼업 중 身에 해당하는 것이고, 願은 口와 意에 해당하는 겁니다. 행원을 한다는 것은 신구의 삼업을 청정하게 한다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그래서 보현행원의 예경제불은 맨 처음이 아이보현행원력고로 심신신해와 여대목전으로 실이청정 신어의업으로 이 세상 모든 부처님 처소에 나아가고 이 한 몸으로 이 세상 모든 부처님을 예경한다는 말이 나오는 겁니다. 시작이 청정한 신구의인데, 행원이 바로 청정 신구의이지요.
하지만 기존 화엄은 바라밀행과 관법을 화엄수행으로 본 거 같아요. 십바라밀 때문인 듯한데, 이것도 제가 누누히 말씀드리지만 십바라밀은 십지품이 중심이 되어 설해지긴 하지만 화엄경 전체에 나오는 수행법은 아닙니다. 일부(명법품 십행 십지 및 입법계품 일부)에서만 나와요. 그러니 십바라밀을 화엄 수행의 핵심으로 잡기에는 제가 볼 때는 무리입니다.
또한 십바라밀 중 후반 4개는 좀 억지스런 면이 있어요. 그래서 십바라밀을 화엄 수행의 주요 방법으로 보는 관점은 저는 동의하고 싶지 않습니다.
한편 보현행원은 화엄경 거의 전부에 걸쳐 나옵니다. 다만 무엇이 보현행원인지, 보현행원품에서와 같은 구체적 항목은 안 나와요. 그냥 보현행원이요, 일체의 보살행을 총칭하는 듯한 느낌을 대권 화엄경에서는 받아요. 그러니 법장이나 청량징관 심지어 규봉 종밀까지 이 부분에 대한 연구가 별로 없었던 걸로 보입니다.
첫댓글 현재 우리나라 화엄강의를 들어보면 거의 화엄교학입니다.
화엄경을 직접 읽고 거기서 무언가 한 소식 얻어서 강의하시는 분은 거의 아니 계신 듯.
(다만 최근 불광출판사에서 '인문학으로 본 화엄경'이란 책을 발간했는데, 그 저자이신 박보람교수께서는 경전을 직접 보시고 거기서 느낀 소식을 바탕으로 화엄교학을 하시는 듯합니다.)
더구나 보현행원을 '실천'하시면서 화엄교학보다는 화엄경을 읽는 분은 정말 전무!이신 듯
화엄교학은 어렵습니다. 내용이 대단하기는 해도 그냥 현학적 이론에 가까워요. 우리같은 범부는 별 도움이 안 됩니다.
저는 해주스님의 화엄학 강의를 보면 어려워서 따라가지를 못해요.
더구나 거기 나오는 한문, 한자를 이해를 못해요.
저같이 20세기에 태어난 사람들은 당나라 현수 법장 당시의 한문 언어는 이해 불가능입니다.
반면 화엄경은 쉬워요! 정말 너무나 쉬워요!
제가 그냥 술술 읽어나갈 정도입니다.
한글 대장경보다 읽기가 훨씬 쉬워요.
어떻게 1500년 전에 번역된 경전 한문이 1500년 후의 한글 세대인 제게 그렇게 쉽게 읽히는지!
화엄경을 읽다보면 화엄경이 전하고자 하는 그 간절한 가르침이 읽는 사람의 가슴에 울려나옵니다.
종을 치면 종소리가 나오듯, 화엄경을 읽으면 우리 일심 안에 본래 있던 소식들이 경을 통해 밖으로 현현하게 돼요.
그래서 제가 화엄경을 좋아합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行이 제일 중요합니다.
흔히 불교에서 신구의 삼업을 얘기하는데, 사실 구업 심업(의업)은 행을 유발하지 않으면 이웃들에게 큰 문제는 별로 안 됩니다.
그냥 계획(?) 수준에서 끝나는 거죠.
그러나 행은 달라요.
행이 나오는 순간 세상 자체가 달라집니다.
이번에 신림동 지하철 등 칼부림 사건 보세요.
칼부림 예고는 경찰이 미리 손을 쓸 수도 있고 또 계획으로 끝나지만, 행으로 옮기는 순간 난리가 납니다.
그래서 한 사회의 질서가 유지되려면, 또 도덕 윤리가 유지되려면 가장 급선무가 행을 먼저 제압하는 것이고,
그 행을 제압하는 것이 사회에서는 법이니 규칙 또는 규율이라면, 종교에서는 戒입니다.
계는 생각과 말도 있지만 무엇보다 행을 규제하기 위해 나온 것이지요.
행은 그렇게 바로 이웃들을 해칠 수 있어요
행원에서 行은 신구의 삼업 중 身에 해당하는 것이고, 願은 口와 意에 해당하는 겁니다.
행원을 한다는 것은 신구의 삼업을 청정하게 한다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그래서 보현행원의 예경제불은 맨 처음이 아이보현행원력고로 심신신해와 여대목전으로 실이청정 신어의업으로 이 세상 모든 부처님 처소에 나아가고 이 한 몸으로 이 세상 모든 부처님을 예경한다는 말이 나오는 겁니다.
시작이 청정한 신구의인데, 행원이 바로 청정 신구의이지요.
제가 수없이 강조하는 것이지만, 화엄경은 보현행원을 실천하면서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 화엄을 진정으로 알수 있어요.
이통현장자가 기존 화엄교학에 제일 안타까워했던 것이 바로 그 점이라 하지요. 실천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통현장자는 화엄경 중에 입법계품을 정종분으로 봅니다.
정종분이란 불교 경전의 핵심 본론을 이야기하는데,
그 많은 品중에 입법계품을 정종분을 본 것입니다.
왜냐? 입법계품이 실천, 그것도 보현행원의 실천, 이거든요?
하지만 기존 화엄은 바라밀행과 관법을 화엄수행으로 본 거 같아요.
십바라밀 때문인 듯한데, 이것도 제가 누누히 말씀드리지만 십바라밀은 십지품이 중심이 되어 설해지긴 하지만 화엄경 전체에 나오는 수행법은 아닙니다.
일부(명법품 십행 십지 및 입법계품 일부)에서만 나와요.
그러니 십바라밀을 화엄 수행의 핵심으로 잡기에는 제가 볼 때는 무리입니다.
또한 십바라밀 중 후반 4개는 좀 억지스런 면이 있어요.
그래서 십바라밀을 화엄 수행의 주요 방법으로 보는 관점은 저는 동의하고 싶지 않습니다.
한편 보현행원은 화엄경 거의 전부에 걸쳐 나옵니다.
다만 무엇이 보현행원인지, 보현행원품에서와 같은 구체적 항목은 안 나와요.
그냥 보현행원이요, 일체의 보살행을 총칭하는 듯한 느낌을 대권 화엄경에서는 받아요.
그러니 법장이나 청량징관 심지어 규봉 종밀까지 이 부분에 대한 연구가 별로 없었던 걸로 보입니다.
고맙습니다._()()()_
화엄교학이 꼭 필요하긴 하지만 이미 화엄교학이 체계화 된 지금 우리같은 범부에겐 교학을 공부하는건 별 이익이 없을 겁니다 왜냐? 교학 그게 바로 화엄에서 그렇게 경계하는 일념이요 망상 이거든요?
그니까 우리같은 범부들은 교학보다 화엄경 자체를 읽는게 중요합니다 읽고 무슨 뜻이든 알든말든 그냥 넘어가면 됩니다
그리고 체계적으로 읽어나갈 필요도 없어요 아무 곳이나 펼쳐 읽으면 됩니다 그러면 어느 곳에서나 일중다 다즉일의 화엄 세계가 펼쳐집니다
행원에서 行은 신구의 삼업 중 身에 해당하는 것이고, 願은 口와 意에 해당하는 겁니다.
행원을 한다는 것은 신구의 삼업을 청정하게 한다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이제껏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한 부분인데 과연 그렇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나무마하반야바라밀..._()()()_
고맙습니다.
늦게 보았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10가지
또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이유 10가지
그리고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열가지 이유가 왜 진실인가 그 이유 열가지 vice versa ...
이렇게 이유를 설명하고 끝없이 말을 물고 늘어지는 게 화엄교학
사랑하는 마음은
당신이 나를 사랑함은
그냥 딱 보면 아는데
당신의 오늘 아침 숨소리 한번 들어도 아는데
왠 말이 그리 필요한지
이건 화엄경 사상
그 말 한번 눈빛 하나가 보현행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