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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유착 박리수술
사 53:1-12(6)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심장유착 박리수술’이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합니다.
여러분, 유착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게 뭐가 있습니까?
유착은 쉽게 말하면 엉겨 붙는 겁니다. 서로 분리 되어 있어야 될 조직 면이 엉겨 붙어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사회적으로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게 정경유착이 있지요. 그리고 생리적인 차원에서는 자궁유착이라는 말이 제일 흔하게 듣는 말 같아요. 나팔관 유착이라든지 아니면 복막염이나 늑막염 이런 염증이 발생했을 때 그 염증이 낫는 과정 중에서 이 복막이나 늑막이 붙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서로 분리되어 있어야 되는데 붙는 거 이게 유착이라는 거지요.
또 화상을 입었을 때 손에 화상을 입어서 두 손가락은 가까이 있지만 분리되어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손가락의 조직이 첫째 마디까지 붙어버린다. 이게 유착입니다.
사실은 저도 지난겨울에 눈이 많이 왔을 때 신발 굽이 바깥 쪽으로 많이 닳은 그런 시발을 신고 나가서 걷다가 정말 대여섯 번을 눈길에 넘어진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른 쪽 어깨 쪽으로 땅을 짚으면서 넘어졌는데 제가 이래봬도 육중하지 않습니까? 대여섯 번 그러고나서 한 이주일이 지났을 때부터 어깨가 아파요.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살 움직여 활동하다가 병원에 갔더니 정형외과 선생님이 넘어질 때 어깨로 짚으면서 근육에 손상이 갔는데 그 손상간 근육이 회복이 되는 과정에서 어깨를 움직여 주는 근육이 네 개가 있다고 하는데 옆에 근육들과 유착이 일어났다고 하는 거예요. 상처가 나서 아무는 과정 중에서 엉겨붙어버린 겁니다. 그래서 어떤 각도는 움직이기가 힘든 상태가 있어요.
그래서 이러한 유착이 일어나면 예를 들어 자궁이 속에 뭐가 들어 있지 않는 한 이렇게 동그란게 겹쳐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다가도 아이가 들어서면 이게 이렇게 벌어지면서 자궁 내면이 확장이 되어야 되는데 어떤 이유에서든지 자궁 내면이 붙어버린 겁니다. 그러니까 자궁 벽의 면적이 좁아져서 아기가 생기지 않아요. 그럴 때 어떻게 합니까? 이 붙어 있는 상태를 동그란 주머니 같은 게 서로 붙어 있는 상태를 붙어 있어도 엉겨 붙지는 말았어야 되지요. 붙어 있기 보다 분리되어 있는 상태에서 서로 닿아 있는 거지요. 딯아 있어야만 되는 것인데 이게 엉겨 붙어 버립니다. 그러면 수술을 해서 이걸 찢어내야 됩니다. 그것을 유착 박리수술이라고 말해요.
그러니까 어깨라든지 복막이라든지 늑막같은 것이 붙어 있을 때 그것을 칼로 아니면 바늘을 통해서 박리수술 떼어내는 수술을 해야 된다는 거지요. 그렇지 않으면 어깨 같은 것도 저는 열중 쉬어 자세를 할 때 제일 아팠는데 선생님이 말씀하신 게 움직이면서 아픈 부분이 있지 않습니까? 그 아픈 것을 참고 왼쪽 손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을 기준으로 해가지고 거기까지 도달하기 위해서 왼쪽 손이 등에 댈 수 있게 그만큼 오른 손이 갈 수 있도록 매일같이 조금씩 조금씩 아픔을 참고 찢어내야 된다는 거예요. 박리를 해야 된다는 거지요.
주님의 십자가 사건은 바로 우리의 심장유착을 박리해주는 수술 칼과도 같은 것입니다. 떼어내는 거예요. 손가락 두 개가 인접해있습니다마는 두 개가 붙어서 있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어쩔 수 없이 우리의 심장 우리의 마음이 가족과 가까이 있고 내가 하는 기업 사업과 가까이 있고 내 몸과 마음이 가까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신경을 쓰고 돌보면서 우리가 살아갑니다. 그러는 중에 우리 마음 우리 심장이 나도 모르게 예를 들면 내 자식과 유착이 일어납니다. 내 배우자와 유착이 일어납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유착이 일어나고 형제 간에 유착이 일어납니다. 또 나가서 기업을 하는 사람 사업을 하는 사람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은 마음이 그 작장생활에 유착이 일어납니다. 마음이 가까이 있어야 하지만 유착이 되어선 안 돼요. 엉겨 붙어버려서는 안 되는 겁니다. 손가락이 가까이 있지만 두 손가락이 엉겨 붙어버리면 안 되는 것처럼 이 세상을 살면서 마음이 가까이 있는 것들과 유착이 일어난 이 상태가 바로 죄악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상태가 되는 겁니까? 내가 자식과 마음이 유착이 일어나서 자식이 내 마음에 살이 되어버리는 거예요.
이게 왜 죄입니까? 자식보다 더 가까이에 있는 하나님을 지나쳐 버린 거예요. 하나님이 먼저 와 닿아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와 닿아 있는 상태에서 자식에게 나아가는 것이 정상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마음에서 자식이 먼저 유착이 일어납니다. 하나님보다 먼저 자식이 있고 그래서 자식의 문제와 내 마음이 통해버려요. 자식이 문제가 되면 내 마음이 괴롭고 자식이 잘 되면 내 마음이 기쁩니다.
이렇게 자식과 유착이 되어 버린 상태에서 하나님께로 나옵니다. 이게 죄라는 거예요. 믿지 않는 사람 얘기할 필요 없구요 믿는 사람들 얘기하더라도 마치 두 손가락이 떨어져 있어야 되는데 붙은 상태에서 타자를 치러 나오는 것처럼 자식과 마음이 붙어버린 상태에서 하나님께 나와요. 하나님과 먼저 만나서 하나님과 유착이 아니라 연합된 상태에서 하나님은 창조주시고 나는 피조물이고, 하나님은 주권자시고 나는 그 주권자의 종이라는 올바른 하나님과의 앞선 연합이 있고 하나님과 함께 자식에게로 나가고 하나님과 함께 배우자에게로 나가고 하나님과 함께 기업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사업이 내 마음에 먼저 내 살이 되어 유착이 되어 버리고 그리고 내 자식이 유착이 되고 내 건강이 하나님보다 먼저 앞서서 유착이 되는 이런 상태에서 비정상적으로 두 조직이 엉겨 붙은 상태에서 하나님께로 나아와서 우리는 기도한다고 그러고 예배한다고 그러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유착된 상태를 예배를 통하여 말씀을 통하여 박리수술을 하는 교회를 쉽게 찾아보기가 힘이 들어요. 자식이 잘 된다고 얘기하고, 네 몸이 건강할 거라고 얘기하고, 하는 사업이 잘 될거라고 얘기하지, 지금 사업에 매여있는 마음 유착되어 있는 마음이 박리수술을 통하여 떼어져 나와야 되고 사업보다도 먼저 하나님을 만나야 된다, 사업은 완전히 내 일이 아닌 것처럼 잊어버려야 된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자식은 내 자식이 아닌 것처럼 완전히 남의 일인 것처럼 잊어버려야 된다, 마음에서 박리수술을 해서 떼어내 버려야 되고 하나님을 먼저 만나야 된다는 이런 얘기가 쉽게 들리지 않는다는 거예요.
오늘 본문은 주님의 십자가 사건을 예언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건이 뭡니까? 바로 박리수술을 하는 거예요.
여러분 이상하지 않아요? 왜 우리의 구원이 주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주님의 몸을 오늘 본문에 나오듯이 찢기고 상하고 찔리고 채찍에 맞아가면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겁니까? 이상하지 않아요?
주님의 십자가 사건의 의미가 두 가지가 있어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오늘 본문과 연관돼서 크게 두 가지가 있어요.
첫 번째는 죄악의 값을 치러주는 겁니다.
우리가 받아야 될 멸망와 징계를 주님이 대신 받으신 겁니다. 죄악의 값을 치루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 평화하는 것이에요.
오늘 본문 5절에 보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허물이라는 게 배반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먼저 만나야 되는데 그래서 하나님과 연합해야 되는데 하나님보다 앞서서 내가 내 자식과 유착을 해버린다 이겁니다. 내 사업과 유착을 해버린다, 내 재물과 유착을 해버린다 이게 허물이고 죄악이라는 것이에요.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평화를 누린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죄값을 주님의 십자가에서 치러주시는 이유는 내가 깨끗함을 받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깨끗해짐으로서 하나님께 나아가서 하나님이 나를 껴안을 수 있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는 겁니다. 하나님을 갖는데 목적이 있는 거예요. 주님의 십자가의 구원의 역사가 내가 깨끗하게 되어서 내가 천국 간다는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거룩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에 내 죄의 속함의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 죄값을 속해 주셔도 나의 상태는 여전히 유착 상태에 있다는 거예요. 내 마음은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께 드려야 됩니다.
그런데 이 세상을 살다보니까 이 세상 것들과 유착이 되어 버렸잖아요? 그래서 그 유착된 상태에서 산 모든 게 다 죄예요.
자식이 내 마음에 살이 되었어요. 내 재물이 내 마음에 살이 되었어요. 나의 건강이 내 마음에 살이 되었어요. 그런 상태에서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면서 믿는다고 살았어요. 이 모든 게 죄입니다. 그 모든 죄값을 주님의 십자가로 치러주십니다. 그런데 여전히 나는 유착된 상태에 있어요. 죄의 값은 치렀지마는 내 마음의 상태는 유착된 상태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징계와 예수님이 창에 찔리시고 채찍에 맞으신 일이 죄의 값을 속해줄 뿐만 아니라 또 하나의 역할을 한다는 겁니다.
무슨 역할을 합니까? 찢어내는 박리수술의 역할을 해준다는 거예요.
왜 주님의 몸이 찢겨야 됩니까? 채찍에 맞아서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머리를 가시 면류관으로 찔리고 못 박히고 창에 찔리는 왜 몸에 그러한 아픔이 가해져아만 됩니까? 박리를 해내는 겁니다.
여러분, 지금 제 어깨가 아까 말씀 드린대로 정상적인 왼손이 움직이는 모든 각도의 그 정도만큼 도달하려면 어떤 각도에서는 괜찮아요. 근데 열중 쉬어 자세라든지 옷을 입을 때 불편합니다. 이러한 각도에서 정상적으로 돌아오려면 그 근육을 의사선생님 말로 찢어내야 된다고 그랬어요. 유착된 상태의 근육을 찢어내야만 정상으로 돌아온다 그러니까 매일같이 찢어내라..
주님이 그 몸이 찢기신 이유를 알려면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몸과 내 마음일 일치시키면 됩니다. 십자가에 달려 찢기신 몸이 곧 내 마음이다 라고 생각하면 돼요. 그러면 왜 내 마음인 주님의 몸이 찢겨야 되는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욥. 욥이 자식을 잃습니다. 그러면 그 자식들을 다 잃어버릴 때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마음이 아파요. 왜 아픕니까? 마음이 찢어집니다. 왜 찢어집니까? 그 자식들과 마음이 유착되어 있었기 때문에. 마음에 살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식을 잃는다는 것은 마음을 찢어내는 것이에요.
또 내 재물이 없어지고 내 재물에 손해가 갈 때에 3억을 증권에 투자를 했는데 3억을 다 날렸습니다. 그러면 왜 마음이 찢어집니까? 그 재물에 마음이 붙어 있어서 마음에 살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마음에 하나님만이 들어와 계셔야 될 텐데 다른 것들이 붙어서 마음에 살이 된 상태가 바로 죄인의 상태라는 거예요. 이걸 찢어내야 됩니다. 자식을 찢어내야 되고 내 건강을 찢어내야 됩니다.
근데 건강에 대해서 유착되어 있지 않습니까? 욥이 몸에 악창이 나고 병이 걸리잖아요. 마음이 찢어져요. 왜 찢어져요? 건강을 사랑하고 있었으니까. 붙어 있었으니까. 그래서 욥에게서 다 찢어냅니다. 다 찢어냈을 때 마음 하나 덩그렇게 남아서 상처투성이에 피가 줄줄 흘러요. 이 두 손가락이 엉겨 붙어 있어도 떼어져 있지 않으면 뗄 때 피가 나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내 마음이 유착되어져 있던 내가 마음으로 사랑하던 모든 것들을 다 찢어낼 때 피가 흐른다는 거예요. 그 피가 흐르는 상태에서 욥은 그 아픔 가운데 하나님만을 찾습니다. 그래서 욥이 의인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자식들을 잃어버렸을 때 그 아내는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을 배반하고 가버립니다.
이제부터 복음이에요. 잘 들으세요.
주님의 십자가가 바로 욥이 느끼는 그 아픔을 느끼지 않고도 내 마음에 유착되어져 있는 모든 것들을 다 떼어내는 능력이 있다는 거예요.
욥처럼 자식을 찢어내는 아픔, 재물들을 찢어내는 아픔, 건강을 찢어내는 아픔, 아내와 사회적인 모든 인간관계를 다 찢어내는 아픔 이런 아픔이 없이도 주님의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 주님의 몸이 내 마음이다 라고 일치시키며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실제로 자식이 없어지고 죽고 찢어져 나가는 일이 없이도 내 마음이 자식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온다는 얘기입니다.
이게 바로 십자가의 역사예요. 그래서 주님이 대신 우리 몸이 우리 마음이 느껴야 될 그 아픔을 대신 느끼시면서 십자가에서 그 몸이 찢기시고 창에 찔리시고 했다는 거예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허물이 뭐라구요? 마음이 유착된 거. 하나님 이외의 것에 마음이 달라붙어버려서 그것들이 내 마음에 살이 되어버린 거.
그것을 떼어내려니까 주님께서 찔리시고 상하시고 채찍에 맞으시면서 살점이 떨어져 나갔던 거예요. 내 마음의 살들을 찢어내시고 떨어져 나가게 하시려고 주님의 몸이 찢겨져 나가신 거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은 바로 주님의 몸이 나의 마음이다. 그러면 주님의 몸이 왜 찢겼느냐 왜 찔렸느냐 왜 상해야만 됐느냐? 내 마음이 지금 하나님 이외의 것들에 대해서 유착되어서 내 마음에 살이 되어버린 상태다. 이 상태는 바로 죄요 허물이요 멸망이다. 그러므로 이걸 박리해내야 되는데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기도할 때 박리가 된다.
그럼 한번 박리하면 되지 한번 떼어내면 되지 왜 날마다 죽고 날마다 상번제를 드리느냐?
의사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구요. 이 어깨 근육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움직이지 않으면 떨어져 있던 것들도 저절로 붙는데요. 그리고 내가 아픈 부분을 참고 근육을 찢어 냈다 할지라도 그것이 며칠 지나고 움직이지 않으면 또 다시 붙는다는 거예요.
마찬가지에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동안에는 우리 마음에서 주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내 재물에 대해서 내가 박리했다 할지라도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지 않으면 또 다시 유착이 되어버린다는 겁니다. 또 다시 하나님보다 먼저 그것들을 좋아하게 되고 그것들이 붙은 기형적인 상태에서 하나님께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교인들의 모습을 가만히 보면 정상적으로 예쁜 하트의 마음으로 나와서 그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게 아니라, 한쪽 구석에는 시기라는 살이 붙어있고 한쪽 구석에는 재물이라는 살이 붙어있고 한쪽 구석에는 기업이라는 살이 붙어있고 한쪽에는 취미 하다못해 골프라든지 낚시라든지 이런 살이 붙어있고 그래서 이 마음의 모양이 꼭 돼지새끼 다섯 마리를 한꺼번에 붙은 아주 이상한 모양이 되어서 하나님 앞에 나오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서는 자기가 유착되어 있는 상태의 대상들을 향하여 잘 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그럼 박리된 상태에서 어떻게 산다구요 여러분?
이 세상에 살고 있어요. 가까이 있습니다. 손가락 열 개가 다 가까이 있지마는 서로 분리되어 있어야 제대로 손가락이 되는 것처럼 자식과 함께 살지만 자식과 마음이 분리되어 있어야 돼요.
나는 내 마음은 누구와 연합되어 있습니까? 하나님과 연합되어야 합니다. 자식의 일이 내 일이 아닌 것처럼 그럴 때 자식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나를 토애서 이루어지는 거예요. 사업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이 나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거예요.
내가 마음에 사업을 유착시켜버리면 사업도 망하고 나도 망해요. 내가 자식에게 유착시키면 자식도 망하고 부모도 망해요. 배우자끼리 서로 유착되어 버리면 배우자 서로 다 망해버립니다. 다 마음에서 격리되어야 되고 제일 먼저 하나님과 유착이 아닌 연합이 되어야 합니다.
유착은 예를 들어 정경유착이다 그러면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기업인은 기업인대로 경제인은 경제인대로 자기 소신껏 삶을 살고 행동을 함으로서 정치는 정치대로 발전하고 또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이래야 되는 것인데, 협력관계가 아니라 유착이 일어난다는 것은 서로의 사적인 이권을 위해 단합이 이루어진다는 거예요. 이게 유착상태입니다. 이게 죄악의 상태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가까이 살고 있고 가까이 접하고 있는 모든 이 세상 것들은 올바른 협력관계요 올바른 연합관계가 되어야 하는 거지 유착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올바른 연합이 이루어지려면 먼저 하나님과 연합하라 이겁니다. 하나님과 연합할 때는 하나님은 하나님의 역할을 인간은 인간의 역할과 신분에 충실할 때 제대로 된 연합이 일어나는 거예요.
인간은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은 주권자이시고 인간은 종입니다. 그 신분과 위치에 충실할 때 연합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세상 것들과 유착이 일어나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을 종으로 부리려고 해요. 그냥 종이라고 부르기 뭐하니까 종님이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하나님께 존댓말 쓰면서 하나님을 부리려고 하는 일이 생기는 거예요. 왜? 내가 먼저 유착한 내 자식과 내 기업과 내 재물과 내 인생의 성공과 형통을 위해서 먼저 유착되었으니까 거기서 나오는 필요를 따라서 하나님을 찾을 수 밖에 없는 거지요.
이 세상에 살면서 마음이 이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유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잘 원활하게 움직이는 거. 예를 들어 임신을 잘 하려면 모든 유착된 상태에서 다 벗어나서 가까이 있고 다 있지만 그것들이 다 분리되어 있는 상태에서 원활하게 움직일 때에 자궁에 수정이 잘 되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인간의 마음이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인접하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유착이 되지 않고 분리되어 있어서 원활하게 움직이는 상태, 아브라함이었다 이겁니다.
아브라함은 고향 친척 본토 아비 집을 떠납니다. 사실 고향 친척 본토 아비 집이 온전하고 안전된 상태에 있다는 것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습니까? 왜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겠다고 하시면서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가장 원하고 있는 복 중의 복인 본토 친척 아비 집이라는 안정된 장소를 떠나게 하시는 겁니까? 떠나는 게 뭐예요? 벌써 박리가 일어나는 겁니다.
그리고 아내도 버리게 됩니다. 바로에게 보내버리게 됩니다. 마음에서 아내도 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자식도 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조카 롯과 자기 기업인 땅을 고를 때도 롯에게 먼저 고르라고 합니다. 내 땅 내 기업도 마음에서 박리된 상태로 찢어내 버립니다.
아브라함이 평생동안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어요. 그냥 인접하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모든 대상들을 가까이 두도록 허락하신 모든 대상들에게 유착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찢어내고 끊임없이 끊어낸 것 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내를 내보내서 마음에서 버렸을 때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이 그 아내를 지켜주십니다.
이삭을 마음에서 떼어내서 제물로 바쳤을 때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께서 그 이삭을 지켜주시고 살려주십니다.
아브라함이 자기의 자손이 뭇별처럼 많아지기를 바란 적이 없어요. 자기에게서 나오는 핏줄이 이어지기를 바라지 않고 거기서 자기 후손에 대해서 마음에서 찢어내 버립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네 후손이 뭇별처럼 많아지라라 하나님께서 맡아주십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뭐하는 겁니까? 내가 내 마음에 살이 되도록 그것이 없으면 찢어지고 그것이 잘못되면 내 마음이 아프고 감정이입이 될 만큼 내 마음에 살이 되어버린 하나님 이외의 모든 대상들을 다 찢어내는 역할 박리수술의 역할을 해줍니다.
그래서 주님의 몸이 내 마음이 아파야 될 그 찢어지는 아픔 대신에 찢기시고 찔리시고 상하시고 살점이 떨어지도록 채찍에 맞으신 거였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주님의 십가가를 바라보며 주님의 찢기신 그 몸이 바로 내 마음이다. 그러면 무엇으로부터 내 마음이 박리되어야 되느냐?
자식을 볼 때, 내 재물을 볼 때, 내 건강을 볼 때, 내 사업을 볼 때, 내 인생의 미래를 볼 때 내 마음에 살이 되도록 살갑고 사랑스러운 모든 대상들을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박리해내고 찢어내야만 된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제일 먼저 하나님과 연합을 해야 됩니다. 하나님과 연합된 상태에서 하나님과 파트너되고 하나님과 한 쌍이 된 상태에서 이제 자식에게로 가고 사업장으로 가고 내 인생을 바라보고 내 건강에 대해서 하나님과 짝이 된 상태에서 하나님과 함께 의논해가면서 필요한 일들을 해나가는 거예요.
주님의 십자가가 이렇게 심장 유착의 상태를 박리 수술을 통해서 온전히 마음 전체가 다 하나님께로만 드려지도록 해주는 수술 칼과도 같은 것이에요.
아픔이 없이 내 마음에 유착된 모든 것이 다 떼어져 나가게 하세요.
이걸 모르고 미련을 떨면 하나님이 어떻게 하십니까?
사업을 찢어내십니다. 자식을 찢어내십니다. 끝까지 자식을 껴안고 있고 내 사업과 내 재물을 껴안고 있고 내 인생을 내 스스로 내 마음이 껴안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떼어낼 생각은 안 하고 붙잡고 있으면 그리고 날마다 와서 기도한다는 것은 유착된 상태가 잘못된 것임을 까맣게 모른 채로 그 유착된 것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상태가 지속될 것이면 언젠가 주님께서 나를 사려내야 되니까 자식을 내 마음에서 피가 나도록 찢어낼 것이고 그러지 않고 내버려둔다는 것은 곧바로 멸망으로 직행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아프지 않고 찢어내는 길이 주님의 십자가의 길이요 그래서 복음이라는 겁니다.
주님의 십자가로 심장을 박리해내고 내 심장을 온전히 하나님께 다 드릴 수 있는 복된 주의 백성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믿기 전의 상태는 말할 것도 없고, 믿는다고 하며 신앙인으로 살고 있는 상태에서도 내 심장은 이 세상의 모든 것들에 유착되어서 그것들이 내 마음에 살이 된 채로 이상한 기형적인 디룩 돼지의 모습으로 살아가며 하나님을 믿는다 하였습니다.
이제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 내 예쁜 마음만의 모양이 나타날 만큼 유착되어 있는 모든 것들이 다 떨어져 나가는 복음의 역사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쁜 마음이 고스란히 되찾아져서 그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며 하나님과 먼저 연합하여 이 세상을 살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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