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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20:1-13) 복사기 인생의 영광
1. 포도주는 거만하게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이에 미혹되는 자마다 지혜가 없느니라
2. 왕의 진노는 사자의 부르짖음 같으니 그를 노하게 하는 것은 자기의 생명을 해하는 것이니라
3. 다툼을 멀리 하는 것이 사람에게 영광이거늘 미련한 자마다 다툼을 일으키느니라
4. 게으른 자는 가을에 밭 갈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거둘 때에는 구걸할지라도 얻지 못하리라
5. 사람의 마음에 있는 모략은 깊은 물 같으니라 그럴지라도 명철한 사람은 그것을 길어 내느니라
6. 많은 사람이 각기 자기의 인자함을 자랑하나니 충성된 자를 누가 만날 수 있으랴
7. 온전하게 행하는 자가 의인이라 그의 후손에게 복이 있느니라
8. 심판 자리에 앉은 왕은 그의 눈으로 모든 악을 흩어지게 하느니라
9. 내가 내 마음을 정하게 하였다 내 죄를 깨끗하게 하였다 할자가 누구냐
10. 한결같지 않은 저울 추와 한결같지 않은 되는 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느니라
11. 비록 아이라도 자기의 동작으로 자기 품행이 청결한 여부와 정직한 여부를 나타내느니라
12. 듣는 귀와 보는 눈은 다 여호와께서 지으신 것이니라
13. 너는 잠자기를 좋아하지 말라 네가 빈궁하게 될까 두려우니라 네 눈을 뜨라 그리하면 양식이 족하리라
오늘 함께 읽은 말씀중심으로 <복사기 인생의 영광>이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1942년 미국에서 체스터 칼슨이라고 하는 젊은이가 그동안 연구해 오고 또 성공적인 실험단계를 거친 하나의 기계를 발명해서 특허를 얻게 됩니다. 그 특허를 상품화하기 위해서 20여개의 회사를 접촉하고 찾아다녀 봅니다마는 다 거절을 합니다. 그러다가 47년에 지금의 제록스 회사의 전신인 조그만 할로이드 컴퍼니라고 하는 뉴욕에 있는 회사가 제휴를 허락해서, 첫 번째로 만들어 낸 제품의 이름이 바로 제록스A입니다. 뭔지 아시겠지요? 체스터 칼슨이 발명한 이 기계는 복사기입니다.
이 할로이드 컴퍼니와 체스터 칼슨 청년이 돈 방석에 앉게 되는데, 칼슨의 경우 평생 동안 로열티를 받은 것이 1억5천 만 달러에 달했다고 합니다. 어마어마하지요. 그리고 이 분이 돌아가실 때에는 1억 달러를 사회단체에 기증을 하고 돌아가셨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체스터 칼슨 복사기를 발명하신 분입니다. 1938년에 실험에 성공한 이후 9년 만에 제품이 상품화 되는데, 그동안 계속 거절당하고 특허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투자할 투자자를 찾지 못해서 헤매던 그런 시절이 있다가 드디어 오늘의 복사기를 탄생시키게 됩니다.
‘복사기 인생의 영광이다.’라는 말은 도대체 어떤 인생을 말하는 것일까?
여러분! 오늘 3절에 보면 “다툼을 멀리 하는 것이 사람의 영광이거늘 미련한 자마다 다툼을 일으키느니라”라는 말이 나옵니다.
'다툼을 멀리 하는 것이 사람에게 영광이다.'
어떻게 다툼을 멀리해서 영광이 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 들지 않아요? 사실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은 다투어서 이기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 아이들이 어느 학교를 지원해야 될지 고민할 시절인 것 같아요. 입시, 다투는 겁니다. 자리는 정해져 있어요. 자리다툼이지요. 입시다툼이요. 자리다툼이요. 또 메달다툼입니다. 김연아 선수가 그랑프리 대회 나가서 1등을 했다.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그 세계신기록이라는 게 뭡니까? 다투어서 어떤 경쟁자도 내지 못한 성적을 냈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다툼을 뺀다고 하면 인생은 내용이 없어요. 내용도 없고 재미도 없고 다툼이 없고 경쟁이 없는데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경쟁이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맞습니다마는 다툼이 없으면 안 되지요.
예를 들어서 '다툼을 멀리 하는 것이 사람에게 영광이거늘'라고 하는 이 말을 김연아 선수에게 갖다 주고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있게 될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그 메달다툼을 멀리해라.’라고 얘기했다고 합시다. 김연아 선수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밴쿠버 올림픽에 나가서 피겨스케이팅 분야에서 메달을 다투어서 따야 되잖아요. 김연아 선수가 만약에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다툼을 멀리하는 것이 영광이라는 잠언20:3절의 말씀을 깊이깊이 받아들여 감명을 받았기 때문에, 동계올림픽의 메달다툼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했다면 사람들은 그럴 거예요. 잠언 20:3절을 칼로 도려내라. 우리의 김연아 선수로 하여금 동계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하도록 그 다툼의 현장에 가지 못하도록 한, 잠언 20:3절 같은 구절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없어지기를 바란다고 아마 인터넷의 네티즌들이 이럴 겁니다. 도대체 다툼을 멀리하고 무슨 영광이 있겠습니까? 경쟁에 이기지 않고 무슨 영광이 주어지겠습니까? 경쟁하는 것이 스트레스가 심하면 그냥 경쟁을 안 할 수 있지만 그게 무슨 영광이 있겠습니까? 경쟁을 안 하는 것뿐이고 스트레스 해소되는 것뿐이지요. 그러나 거기에도 스트레스가 있어요. 경쟁을 안 해도 내 인생은 이래도 되는 것인가? 이런 스트레스가 있을 수가 있지요.
지혜를 논하고 있는 이 잠언에서 '다툼을 멀리 하는 것이 영광'이라고 하는 이 말씀 속에는 바로 이런 뜻이 들어 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다 다툼에서 이김으로 영광을 얻으려고 합니다. 삶의 성취감을 얻으려고 합니다. ‘내가 과연 이런 사람이구나!’라는 자기 자신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살 수가 없으니까요. 뭔 재미로 삽니까? 그런 성취감도 자기 자신의 어떤 확인, 자기 자신이 사람들 앞에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마음 없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겠습니까?
그런데 지혜를 추구하고 있는 잠언의 얘기로는 그렇게 해서 영광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면 영광은 어디에 있느냐? 내가 다툼에서 A와 B라는 라이벌들을 이겨야 영광이 주어지는 게 아니고, 내 영광은 하나님께 있는 겁니다. 예를 들어 김연아 선수 얘기가 나왔으니까 아사다 마오와 무슨 다른 나라의 경쟁선수와 겨루어서 이기는데 영광이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김연아라고 하는 한 사람의 인생의 그림을 그려 놓은 것이 있는데 그 그림이 이루어질 때 영광이 되는 겁니다.
'영광'이라는 게 뭐지요? 빛이 비추는 것이에요. 하늘에서 그려진 그림이 이 땅에서 실현되며 빛이 비추어질 때 그것이 영광입니다. 이 땅에서 보일 때 이 땅에서 실현될 때 그것이 나타날 때 영광이라는 거예요. 마치 청사진이 현실로 옮겨져서 하나의 빌딩이 눈앞에 나타나고 빌딩이 세워진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의 계획이 이 땅에서 내 인생의 그림이 실현될 때에 그게 영광이라는 겁니다. 누구와 이겨서 다툼에서 승리를 해야 영광이 아니라는 겁니다.
여러분! '나'라고 하는 이 인간은 복사기입니다. 내가 사는 이 땅은 A4 용지입니다. 복사되어져야할 백지 A4 용지와 같아요. 무엇이 복사되어져야 됩니까? 복사원본이 뭐예요? 하나님이 그리고 계시는 내 인생의 그림이 바로 원본입니다. 그러므로 몸과 마음을 갖고 있는 나는 이 땅에 살고 있는 동안에 이 세상이라는 A4 용지위에 원본 되시는, 하나님의 나를 향한 계획과 나를 향한 그림을 내 몸과 내 마음으로 복사해 내는 것이에요. 그게 바로 우리 인생의 내용이 되어야 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라이프스타일이 되어야 하고 우리의 영광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겁니다.
내가 하늘에 있는 하나님께서 그려 놓으신 원본을 이 땅이라고 하는 A4 용지에 내 몸과 마음으로 복사를 해 내는 과정 중에,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참여해야 되는 일이 일어나면 하나님께서 계획하셨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지, 다툼에서 이기려고 동계올림픽에 참여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하나님의 원본을 이 땅에 복사해 내는 과정 중에, 어떤 라이벌 회사보다도 더 탁월하게 상품을 개발해서 돈을 많이 벌게 되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어서 하는 것이지 옆의 회사와 경쟁을 해서 내가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나만의 길을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원본을 이 땅에 복사해 내기 위한 복사기로서는 나만 가능해요. 내가 특허를 내야 내 인생의 원본은 이 땅에 복사가 되는 겁니다. 내게 특허가 주어져 있는 거예요. 내 인생의 원본은 나만이 복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어령씨 말대로 우리 인간은 벽돌이 아니에요. 금메달 하나를 놓고 수천수만의 전 세계의 피겨스케이트를 타는 모든 사람들이 다 그 하나를 놓고 다툼을 함으로써 이김으로 사람들에게 영광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내 길을 가게 돼 있는 겁니다. 하나의 메달을 놓고 모두가 같은 마음을 갖고 ‘나도 메달 따야지. 나도 메달 따야지.’라는 벽돌들의 부딪힘이 아니라 나는 돌멩이에요.
전 세계의 돌멩이는 하나도 같은 모양의 돌멩이가 없습니다. 이어령씨의 말에 의하면. 맞잖아요.
돌멩이는 같은 모양의 돌멩이가 하나도 없습니다. 벽돌은 다 똑같아요. 그 속을 들여다보면 ‘나도 금메달 따고 싶어. 나도 금메달 따고 싶어.’ 그러나 돌멩이로서의 인간 속을 들여다보면 나만의 길이 있는 겁니다. 그리고 내가 일등이에요. 내가 일등이라고요. 내 인생을 걸어가는 데 있어서 내가 일등입니다. 내가 일등일 수밖에 없는 길이 내게 준비가 돼 있기 때문에 그것을 찾아내는 겁니다. 그게 바로 지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포도주는 거만하게 하는 것이고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이에 미혹되는 자마다 지혜가 없느니라.”라는 말이 나옵니다.
포도주와 독주가 결국 나를 잃게 만드는 겁니다. 이 포도주와 독주를 다른 것으로 바꿔 봐요.
포도주 대신에 돈을 집어넣어 볼까요? 돈은 거만하게 하는 것이요. 재물은 떠들게 하는 것이라. 재물에 취해요. 돈에 취해요. 예를 들어 내 미모는 나를 거만하게 하는 것이고, 내 미모의 아름다움이 나를 떠들게 하는 것입니다. 아무데나 들이대게 하는 것입니다. “삼가지 않는 미모는 돼지 코에 금 고리” 라는 얘기가 있었잖아요. 취하게 하는 거예요. 내 실력은 나를 거만하게 하는 것이요. 나를 다 잃어버리게 합니다.
왜 거만하게 합니까? 다툼에서 이겼거든요. 내 실력이 다른 사람보다 낫다는 게 증명이 되었거든요. 내가 다른 사람 다 못하는 박사학위를 받았거든요. 다른 사람 일 년 매출이 10억인데 나는 15억을 벌었거든요. 다툼에서 이겼으니까 거만합니다. 다툼이 스트레스를 주지만 이긴 자에게는 거만함을 줍니다. 그리고 취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미혹되게 만들어 버립니다. 나를 잃어버리는 거예요.
나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되는 줄 아십니까? 2절에 “왕의 진노는 사자의 부르짖음 같으니 그를 노하게 하는 것은 자기의 생명을 해하게 하는 것이라”
'생명을 해하게 하는 것' 뭘 말합니까? 왕이 생명을 해하는 게 아니에요. 이미 내 생명은 하나님이 나를 그려 놓으신 그림대로 될 때 생명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나를 잃어버렸어요. 하나님의 원본, 하나님께 있는 내 인생의 원본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내가 나를 그려내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 왕의 진노가 임할 수밖에 없지요.
왕은 하나님 아니십니까? 왕은 통치자입니다. 누가 세상을 통치합니까? 누가 내 인생살이의 영역을 통치하십니까? 하나님이 통치하시지요. 하나님이 왕이시죠. 왜 왕을 진노하게 합니까? 왕이 그려 놓은 원본을 무시하니까. 다툼에서 영광을 얻으려하니까.
목사님들도 그래요. 옆에 교회보다 내 교회가 많아야 된다고 합니다. 그래야 내 마음이 행복하고 편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다른 교회로 간 교인을 일곱 번, 여덟 번, 아홉 번씩 전화해서 오라고 난리를 치는 겁니다. 왜 거기서 행복을 찾으려고 그래요? 교인 하나 더 와서 뭐가 달라진다고. 그 의미가 없거든요. 교인 하나 다른 교회로 가면 난리가 납니다. 좀 내버려 둬요. 문선명에게 가는 게 아니면 내버려 둬요. 괜찮아요. 아니 장로교 있다 성결교에 가면 어떻고, 성결교에 있다 감리교로 가면 좀 어때요. 좀 은혜 받겠다는데 내버려 두면 안돼요? 꼭 내 안에 둬야 돼요? '불량식품을 먹는다. 기웃거린다. 떠돌이다.'라고 하면서. 교회 안에 있으면 되잖아요. 내 지교회로서 내 교회가 교회입니까? 전 세계의 공교회, 캐톨릭 처치 구교라는 뜻이 아니라, 공교회 하나의 교회라는 뜻에서 그 교회 안에 있으면 되지. 뭘 그렇게 그냥 내 것이 돼야 된다고 야단들입니까? 편하게 해요. 그래야 나에게 들어오는 사람도 떳떳하게 받지. 나에게서 가는 사람 다 붙잡은 다음에 오는 사람은 왜 받습니까?
여러분! 경쟁에 있는 것 아니에요. 그저 나는 목사를 하건 교수를 하건 장사를 하건 서울역 앞에서 노점상을 하건 내 인생의 원본이 있고, 나는 뭐하는 사람이냐? 복사해 내면 되는 사람이에요.
본문 4, 13절에 게으름에 대한 얘기가 자꾸 나오는데 이 잠언에서 나오는 게으름은 무조건 몸을 많이 움직이는 부지런함의 반대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왜 게을러요? 움직일 수 있는 마음의 동기가 충분하지 않은 겁니다. 마음에 뭘 하려고 하는 힘이 안 생기는 거예요. 왜 안 생기겠습니까? 내 인생의 원본을 복사해 내지 않는데 무슨 삶의 동기와 의욕이 생기겠습니까?
아이들에게 그렇게 얘기 합니다. ‘너, 서울대학 들어가기 위해 공부해.’라고 하면 그게 동기가 되겠습니까? 서울대학 천만 개를 모아놔도 그 아이의 생명보다 귀하지 않은데, 서울대학 보다 천만 배 귀한 아이가 서울대학 들어가겠다고 공부한다는 동기가 애한테 먹혀 들어가겠습니까?
나는 의심스러운 게 서울대 들어가겠다고 열심히 공부하는 그 동기에 먹히는 아이가 얼마나 작은 아이인지 의심스러워요. 아무리 공부하라고 해도 ‘서울대 들어가라, 서울대 들어가라.’라고 해도 공부가 안 되는 아이가 진짜 사람입니다. 서울대 천만 개 보다 그 아이의 생명이 더 귀해요. 그런데 천만분의 일도 안 되는 서울대 들어가겠다고 공부 열심히 하는 애가 제정신 입니까? 부모와 같이 이 세상에 먹힌 아이지요. 하나님의 원본에 서울대 들어가는 게 있으면, 그걸 복사해서 서울대에 들어갈 지언정, 세상 사람들이 서울대 좋다고 입시다툼에서 이기려고 서울대를 들어가려고 한다면, 영적으로 보자면 쪼다 되는 거예요. 왕 쪼다 되는 겁니다.
아니 어떻게 피아노를 치는데 그 피아노 자체에 의미를 두고 열심히 할 수가 있겠습니까? 난 그게 이상해요. 피아노가 뭔데? 88개의 건반위에서 손가락을 놀린다는 것에 목숨을 건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원본에 그게 있으면 하나님을 얻기 위해서라도 그걸 복사해 내는 것이지요. 피아니스트가 되는 겁니다. 우린 복사기에요.
그런데 복사가 안 되지요. 왜 안 될까요?
여러분! 이미 그림이 그려져 있는 파지위에 복사를 하면 복사되어진 내용이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안 보여요. 이미 글씨가 쓰여 있는데 그 위에 하나님의 원본을 복사하려고 하면 보입니까? 안 보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이 땅에 깨끗한 복사를 해 낼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 마음에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계획과 다툼에서 이기고자 하는 모든 마음 ‘나는 이걸 이루어야 돼. 나는 이걸 성취해야 돼. 나는 여기 들어가야 돼. 나는 삼성에 취직해야 돼. 나는 LG에 취직해야 돼. 나는 결혼해야 돼. 저 아가씨가 얼굴이 예뻐서 경쟁자가 많은데 내가 사랑다툼에서 이겨야 돼. 자리다툼에서 이겨야 돼.’라고 하는 마음이 죽어야 마음이 깨끗해져서 하늘의 원본이 복사되어질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마음과 우리 몸을 통해서 이 땅에 하늘의 원본이 복사되려면 주님의 십자가로 우리 복사기 자체가 제대로 거듭나야 돼요.
오직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이 땅에 대한 모든 다툼에서 승리하고자 하는 마음들이 다 죽어 버리고 오직 하나님이 갖고 계신 원본만이 이 땅에 복사되기를 원하는 그런 마음이 될 때라야 내 인생은 이제 시작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원본을 갖고 계세요. 우리 아이들이 성적이 너무 안 나왔어요. 그럼 이제 어떻게 할래요? 벌써 다툼에서 졌는데요. 그러나 다툼에서 진 게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다툼의 인생을 살았다면 앞으로부터는 다툼을 멀리하세요. 다툼을 멀리하고 하나님께서 세워놓으신 원본을 복사해 내는 것에 온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는 겁니다. 그냥 내 인생은 내 것으로 보존되어 있어요. 그 인생길을 실현시키는 데는 나만이 특허가 가능합니다. 내 인생에 대해서는 나만이 특허가 가능한 거예요. 내가 아니면 복사해 낼 자가 없는 겁니다. 그것을 놔두고 왜 다투려고 합니까? 다투어서 내 인생을 따로 만들려고 합니까? 하나님의 인생의 원본이 있는데.
다툼을 생각하면 지금 저는 카메라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요. 교인을 많이 모아야 된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면 저는 실패자에요. 소위말해서 루저입니다. 요즘 인터넷상에 루저라는 말들이 많이 돌더라고요. '미수다'라는 프로그램에서 남자의 키가 180cm가 안되면 루저래요. 난 그런 말을 하는 여자들이 좀 의심스러워요. 무슨 소릴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나폴레옹도 키가 작고 박정희대통령 봐요. 욕도 많이 얻어먹었지만 하신 일도 얼마나 많아요. 키 큰 대통령 우리나라에도 있잖아요? 그 분은 뭐하셨게? (하하) 하여간 재미있어요. 뭘 그걸 가지고 미수다 한 프로그램 때문에 또 고발을 한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손해배상을. 그건 또 뭐야? 루저라고 했으면 그냥 농담으로 듣고 말일이지. 하여간 세상은 그래요. 왜 루저라고 그래요? 키도 경쟁이라는 거예요. 키 다툼에서 졌다는 겁니다. 맞지요. 키 크기를 원하고 있으니까.
내가 160cm으로 태어나도 155cm로 태어나도 그래도 키 크기를 원하지 않고, 155cm인 내가 하나님 원본이 있어서 내게서 복사를 해내기를 마음먹으면 왜 루저가 되겠습니까? 그런데 키 크기를 원하니까 루저가 되는 것이지요. 세상 사람들이 키 크기를 원한다고 나도 원하는 거예요. 경쟁에 끼어들었어요. 그러니까 루저가 되지. 그 프로그램을 하는 여자의 말도 맞아요. 원하지 않느냐 이거야? 11명 고소한 사람들, 당신들이 키 크기를 원한 적이 없느냐 이거야? 원한 것이 있으니까 루저이지. 키가 안 크니까. 키 크기를 왜 원해요? 생긴 대로 살면 되지. 내 인생은 하나님이 그리신 원본이 따로 있는데. 왜 키 크기를 원하느냐는 겁니다.
저는 그래요. 내가 얼굴 작아지기를 한 번도 바라 본 적이 없어요. 얼굴 큰 대로 내 인생은 내 것이니까. 뭐라고 그러지 말아요. 나는 3등신이에요. 그냥 생긴 대로 살면 되는 것이지. 뭘 왜 그래요? 내 것은 내 것이고 이 3등신으로 이루어 내야 할 내 원본은 나 밖에는 복사를 못합니다. 8등신이 온다고 아니, 이병헌씨가 온다고 내 인생을 복사해 내겠습니까? 아무리 잘 생겨도 소용없어요. 소용없지요. 여러분의 인생은 여러분만이 복사해 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만 특허를 허락하셨어요. 하나님이 특허청이라면 여러분에게만 허락하셨어요. 여러분의 인생을 복사해 내는 것은.
그러므로 영광은 다툼에서 이기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뭐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계획한 그 원본을 이 땅이라는 A4 용지에 내 몸과 마음을 다해서 복사해 내는 것에 영광이 있습니다. 그 복사해 내는 것을 깔끔하게 복사해 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잖아요.
그러므로 주님의 십자가 붙잡고 다투어서 이기고 싶어 하는 모든 마음이 다 죽은 것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원본만을 사모하고 하나님만을 사랑해 버리세요.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이 나를 위해 갖고 계신 원본이 내 마음에 저절로 비쳐질 것이에요. 저절로 비쳐지면 그대로 움직이면 복사가 되는 것이지요. 복사기가 쓱-쓱-복사해 내잖아요. 뭐 왔다 갔다 하면서 복사가 되는 것 아닙니까? 우리 마음에 그대로 투영돼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현실이라고 하는 A4 용지에 그 원본대로 나타날 것 아닙니까? 다툼에서 영광이 주어지는 게 아니라, 나만의 인생에 대해 원본을 갖고 계신 하나님을 사랑할 때 주님의 십자가로 모든 사랑의 대상을 마음에서 다 죽이고 하나님만을 사랑할 때 나를 위해 갖고 계신 그 인생의 원본들이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내 마음을 통하여 이 세상에 복사되어 나타날 그때라야만 참 영광과 참 행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복사기의 인생으로 오늘을 사시면서 영광으로 가득한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뭘 얻겠다고 살아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뭘 이겨야 되는 거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인생의 루저, 다툼에서 이기기를 원했기에 루저가 되는 것입니다. 다투어서 이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길을 걸어가야 우리는 우리의 생을 이기는 생으로 이끌 수가 있습니다. 아버지하나님! 주님의 십자가 붙잡고 복사기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가지고 계시는 그 원본을 그대로 복사해 내는 복사기들이 되어 복사기의 영광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