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19:1-22, 부정한 자를 위한 정결의식, 18.12.12, 박홍섭 목사
민수기 19장은 아주 특별한 붉은 암송아지 규례입니다. 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명령하시는 법의 율례를 이제 이르노니”라고 하면서 온전하고 흠 없고 아직 멍에를 메지 아니한 붉은 암송아지를 끌어오라“고 하면서 19장이 시작됩니다. 이 특별한 규례는 9절 말씀처럼 부정을 씻는 속죄제에 해당되는 규례인데 성경에서 여기밖에 나오지 않는 아주 특별한 속죄제입니다.
무엇을 위한 속죄제입니까? 11절에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칠 일을 부정하다고 했습니다. 14절에는 시체가 있는 장막에 들어갔거나 그 장막에 있을 때도 역시 칠 일 동안 부정하다고 합니다. 16절에는 누구든지 들에서 칼에 죽은 자나 시체나 사람의 뼈나 무덤을 만질 경우에도 칠 일 동안 부정해진다고 합니다. 세 경우 모두 죽음과 연관된 부정이니 시체로 인한 부정을 정결하게 하는 속죄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17-19절을 보십시오. “그 부정한 자를 위하여 죄를 깨끗하게 하려고 불사른 재를 가져다가 흐르는 물과 함께 그릇에 담고 정결한 자가 우슬초를 가져다가 그 물을 찍어 장막과 그 모든 기구와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뿌리고 또 뼈나 죽임을 당한 자나 시체나 무덤을 만진 자에게 뿌리되 그 정결한 자가 셋째 날과 일곱 째 날에 그 부정한 자에게 뿌려서 일곱째 날에 그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그는 자기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라 저녁이면 정결하리라.”
먼저 하나님은 흠 없이 온전하고 멍에를 메어본 일이 없는 붉은 암송아지를 진영 밖으로 끌고 가서 제사장 엘르아살의 목전에서 죽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피를 손가락에 찍어서 회막 앞을 향하여 일곱 번 뿌리고 그 암소를 불사르되 가죽과 고기와 피와 똥까지 불에 살라 태우라고 하십니다. 그 때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 실을 함께 태워 재를 만듭니다. 재를 만든 다음 그 재를 보관해놓고 필요한 만큼 깨끗한 물에 섞어서 부정한 자들을 정결케 하는 정화수로 사용하라고 하십니다.
이 과정에서 특이한 두 가지가 발견됩니다. 하나는 보통 죄를 씻는 희생제사가 수송아지로 드리도록 되어 있는 반면 지금 이것은 붉은 암송아지로 드립니다. 그리고 제물을 성막 안에서 잡지 않고 진영 밖에서 잡습니다. 이 두 가지를 보건데 이 속죄제는 레위기에서 나온 희생제사와 다른 아주 특별한 제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레위기에서 말씀하지 않은 특별한 속죄의 제사, 성경에서 오직 여기서만 나오는 민19장의 규례를 주시고 있을까요? 지금까지 문맥의 흐름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민11장부터 시작된 광야 행군은 철저하게 불신과 불평의 연속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 행진에서 쏟아내는 불평과 원망은 연속적으로 상승하는데 14장의 가데스 정탐사건은 11장부터 시작된 불평의 정점입니다. 14장까지를 보면 한 줄기의 빛도 보이지 않는 완전한 실패입니다. 그러나 15장은 이렇게 반복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언약을 갱신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조치가 이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6장으로 가면 이스라엘은 그전보다 더 크게 하나님을 불신하고 원망하는 고라와 다단의 사건이 터집니다. 11장에 출애굽 할 때 섞여 나온 무리들로부터 시작된 불평과 원망과 불신이 이제 지도자들 급에서도 나타난 것입니다. 이 사건은 구약 역사에서 가장 부정한 사건으로 만 사천 명이 죽습니다. 온 진영이 시체로 가득합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정결 법에서 시체는 만지지도 말고 보지도 말아야 할 부정의 원인인데 시체로 진영이 넘쳐났으니 이를 어떻게 합니까?
진영을 정결케 하려면 속죄제를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레위기에서 규정해주신 속죄의 방법으로 이 많은 부정을 한꺼번에 다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도대체 몇 마리의 짐승을 잡아야 하며 얼마만큼의 씻어야 할 물이 있어야 이 부정을 다 정결케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은 부정을 정결케 해야 하는 비상 상황인 동시에 민15장의 언약갱신보다 더 강력한 갱신이 요구되는 때입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은 먼저 17-18장에서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통해 그의 대제사장 직을 확정해주십니다. 백성들은 물론이고 모세까지도 하나님의 용서와 진영의 정결은 제사장 아론의 중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인 19장에 오면 너무나 특별한 붉은 암송아지의 속죄제를 규정해주십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가장 강력한 반역으로 인해 부정해진 진영의 부정을 정결케 하는 동시에 이들의 강력한 반역에도 불구하고 다시 믿음의 여정을 가능케 하는 아주 강력하고 새로운 하나님의 언약갱신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보는 붉은 암송아지 속죄제는 레16장의 대 속죄일 아사셀 속죄제와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강력하게 예표 하는 너무나 독특하고 새로운 규례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진영에는 일반적인 속죄제로는 도저히 정결케 할 수 없는 너무나 많은 시체들이 있고 그로 인한 부정이 완연해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큰 부정을 모세도 아니고 아론이 아니고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맡겨 주도하게 하십니다(3절). 그것도 진영 밖으로 제물을 끌고 가서 죽이게 하심으로 미래의 제사장, 장차 오실 영원한 대 제사장을 통해 아주 특별한 속죄가 성취됨을 암시해주십니다.
하나님은 엄청난 제물들이 죽어서 흘릴 피보다 이 붉은 암송아지 한 마리가 흘리는 피와 그가 제단 위에서 불태워져서 남긴 재가 더 큰 정결의 효력을 발휘해서 온 진영의 부정을 정결케 하는 방도가 되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 붉은 암송아지가 진영 밖에서 피 흘리고 죽고 불태워져 남긴 재는 이때만 아니라 잘 보관해서 언제든지 이스라엘 자손 회중의 부정을 정결케 하는 속죄의 용도로 사용되게 하십니다(9절). 하나님은 이런 은혜의 규례를 마련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거부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힌 것으로 회중 가운데서 끊어짐을 당할 것이라고 분명하게 경고하십니다(20절).
하나님의 백성들은 구원 이후에도 끊임없이 일상에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부정과 죄로 오염됩니다. 어떤 때는 민16장의 고라와 다단의 반역처럼 죽어 마땅한 큰 죄에 오염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우리들을 위하여 너무나도 특별한 은혜를 마련해주셨습니다. 바로 붉은 암송아지처럼 영문 밖으로 끌려가서 피 흘리시고 십자가에 달려 우리를 위한 재가 되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용서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가 자신의 부정을 인정하고 용서를 빌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사망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죄를 자백할 수 있고 회개할 수 있음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요. 이 은혜의 수단을 무시하고 하나님 앞에 아무도 설 수 없다는 것을 다시 유념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이 가르치는 또 하나 특별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모든 제사장이 제의를 집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정결케 하고 정결한 곳으로 가야 합니다. 오늘 붉은 암송아지 제사의 경우 부정한 진영 밖으로 나가기 때문에 다시 부정해집니다. 7절에 보면 “제사장은 자기의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은 후에 진영으로 들어갈 것이라. 그는 저녁까지 부정하리라”고 했죠. 8절과 9절을 보면 송아지를 불사른 자도 저녁까지 부정하다고 했고, 암송아지 재를 거둔 자도 저녁까지 부정하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나중에 이 재를 정결한 물에 타서 부정한 자를 정결케 한 자들도 저녁까지 부정하다고 한 것입니다. 21절이죠. “이는 그들의 영구한 율례니라. 정결하게 하는 물을 뿌린 자는 자기의 옷을 빨 것이며 정결하게 하는 물을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생각해보십시오. 제사장이 여러 정결의식을 거쳐 정결한 붉은 암송아지 재를 탄 정화수로 부정한 자들을 정결케 하는데 그 과정 때문에 자신이 부정해진다고 하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제사장이 부정한 자에게 정화수를 뿌린 다음 다시 자신의 옷을 빨고 진영 밖에서 저녁까지 기다렸다가 정결하게 되면 다시 진영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레16:23-24절을 보면 제사장이 정결한 세마포 옷을 입고 자신을 정결케 한 후 가장 정결한 지성소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 거룩한 지성소에서 나올 때는 정결한 세마포를 벗어 거기 두고 거룩한 곳에서 물로 몸을 씻고 나와 자기의 옛 옷을 다시 입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부정해집니다. 가장 정결한 상태에서 가장 거룩한 지성소로 들어갔는데 왜 부정해졌습니까? 역설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옷을 입은 제사장이 그 옷을 그냥 입고 밖으로 나가 스스로 백성을 거룩하게 하는 것을 부정하다고 하셨습니다. 정결한 곳으로부터 절대적인 거룩의 영역으로 진입하는 순간부터 곧 부정해집니다. 똑같습니다. 제사장이 부정을 씻는 거룩한 정화수의 영역으로 진입하는 순간 부정해집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거룩한 하나님의 자리에 자기가 서 있을 수 없도록 하신 것입니다. 지성소에 들어가서 그 옷이 거룩한 채로 나와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서서 사람들을 거룩하게 하면 그 자체가 부정입니다. 붉은 암송아지 재와 정화수를 들고 내가 사람들을 정결하게 하는 통로가 되는 그 자리에 쓰는 순간, 자신이 하나님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큰 영광인 동시에 너무나 위험한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자리에 있는 제사장이 그날 저녁까지 부정하다고 하십니다. 정화수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붉은 암송아지의 특별한 재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뿌리는 자는 부정하다고 하십니다. 얼른 다시 내려놓고 자신을 정결케 한 후 저녁까지 기다리면서 내가 죄인임을, 그저 하나님의 은혜로 이 자리에 서 있는 도구요 무익한 종일 뿐 임을 고백하고 뼈에 새기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멀리하여 죄를 짓는 것만 부정이 아닙니다. 내가 지성소에 머물러 하나님 행세를 하는 것도 부정입니다. 어쩌면 더 큰 부정입니다. 이단들은 꼭 교주가 있습니다. 다 하나님 행세를 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자신이 능력자인 것처럼 신령한 자인 것처럼 행세하는 그런 지도자가 있다면, 그 공동체는 나와야 합니다. 교주가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우리의 중보자는 영문 밖으로 끌려가 우리의 죄를 위해 피 흘리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붉은 암 송아지, 백향목, 우슬초, 홍실,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암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외에 우리를 정결케 하는 분은 없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큰 죄와 반역과 불신으로 인한 부정을 너무나 특별한 붉은 암송아지 속죄제를 통해 정결케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일상에서 부정해질 때마다 그 재와 정화수로 다시 깨끗케 하고 하나님 앞으로 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광야 백성들에게 주신 이 은혜가 오늘 신약백성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더 큰 은혜로 허락되어 있습니다. 이 은혜를 가벼이 여기지 않고 늘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또 하나는 은혜의 통로로 사용될 때마다 하나님 자리에 설 수 있는 우리의 교만함을 경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모든 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지 우리가 만들어낸 것 아닙니다. 늘 교만이 없는지 살펴서 겸손한 자에게 임하는 은혜 가운데 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