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14일 본당 신부님, 수녀님을 비롯하여 교리교사, 영세자들 22명이 연풍성지를 다녀왔다. 연풍은 경상도와 충청도를 잇는 신앙의 길목이며 교차로라서 신앙선조들과 순교자들의 보금자리로 통한다. 한국 천주교 역사는 1791년 윤지충의 첫 순교자로부터 1866년 대량학살 사건이었던 병인 박해까지 죽음을 각오한 신앙이었다. 죽음과 맞써 신앙을 지켰던 모습들은 성인들의 묘와 생가터, 기록물 등이 전국 167곳의 성지에 역사적 아픔으로 남아 있다. 천주교에서는 이런 곳들을 꾸준히 개발하고 조성하여 많은 신자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청주교구에는 현재 7곳의 성지가 있다. 각본당에서 야외행사를 하거나 기도하러 갈 때 주로 성지를 가게 된다. 성지를 다니면서 기도하고 선조들의 신앙과 모범적인 삶의 자세와 정신을 배우려는 것이다.
그중에 연풍성지는 1963년 천주교회가 연풍공소의 예배소로 사용하기 위해 조선시대 향청 건물을 구입한 곳이다. 전에 헌병 주재소, 경찰지서 등으로 사용된 곳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논과 집터 등을 정리하면서 박해 때 죄인들을 죽이는 도구로 사용된 형구돌이 3개가 발견 되었다. 형구돌에는 구멍이 뚫려 있는데 목에 밧줄을 걸고 반대편 구멍에서 이를 잡아 당겨 죽이는 잔혹한 교수형 형구라고 한다. 연풍 성지의 순교성인중 황석두 루카 성인은 1866년 충남 갈매못 성지에서 순교한 분이다. 고향인 연풍에 1982년 유해가 이장됐고 입상과 묘가 성지안에 있다. 황석두 루카 탄생200주년을 기념해서 2014년 9월에 연풍성당을 새로 지어 봉헌식을 가졌다. 본건물 외에 소성당과 넓은 잔디밭, 황성두 루카 성인상과 성모상을 마련하여 순례객을 맞고 있으며, 왼쪽에는 순교 현양비를 세웠으며 문앞에는 처형석을 유물로 전시하고 있다. 안내도 방향에 따라 좌측부터 걸으면 대성당, 순교터, 십자가의 길, 순레센터, 황석두 루카 성인묘, 향청 다섯 성인상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연풍성지에 도착하니 10시쯤 되었다. 우리는 먼저 야외 대형 십자가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옆에서는 야외 미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잠시 후에 강서 본당 신자들이 목에 푸른색 손수건을 두르고 성당에 도착했다. 많은 분들이 오고 있었기에 시간적인 여유는 있었지만 앞줄과 두 번째 줄에 먼저 자리를 잡았다. 그 옆과 뒤로 다른 신자들이 속속 앉기 시작했다. 미사를 드릴 때 비가 올까 봐 살짝 불안했지만 이내 날은 괜찮아졌다. 성지 주임신부님께서도 500여 명 신자들과 야외미사를 해야 해서 무척이나 날씨에 민감하셨던 같다. 그 부담감을 미사 시작하면서 말씀하셨다. 강서 본당은 200여 명의 신자가 야외행사를 하려고 방문했다고 한다. 세 분의 주례로 한 시간 정도 미사를 드렸다. 연풍성지 신부님께서 강론 말씀과 연풍성지 소개와 안내 그리고 신자들에게 성지 후원을 부탁하셨다.
미사가 끝나고 점심식사를 위해 야외식탁이 마련된 곳으로 이동했다. 날씨가 그다지 춥지는 않았지만 음식은 좀 썰렁해 보였다. 그래도 우리 본당 식구들끼리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식사 후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차가 준비되는 동안 본당 신자들과 신부님, 수녀님까지 모두 자리에 앉았다. 우리는 40분의 여유 시간을 갖고 차와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이후에 카페 앞쪽에 마련된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함께 바쳤다. 그러고 나서 현양비에 대한 설명을 신부님께서 해 주셨다. 이동하는 중에 형구돌을 봤는데 당시 신앙을 지키려고 참사를 당했던 선조들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황석두 루카 성인의 묘역도 참배하였다. 본당 신부님께서 이곳 성지에서 각자 30분 정도 자유시간을 가져 보라고 말씀하셨다. 특히 마음이 닿는 곳에 홀로 머물면서 자신을 들여다 보고, 성지에서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해 보라고 당부하셨다.그리고 소성당으로 들어가 영세자들과 교리교사들이 함께
신앙생활과 성지순례에 대해 생각나눔을 했다. 그런 시간을 통해 다른 분들의 신앙생활 모습과 생각등을 엿볼 수 있어 좋은 시간을 보냈다. 꼭 필요한 시간이었고 도움이 되었다.
제3관문은 시간이 없어 취소했다. 대신 최양업 신부님이 사목을 위해 걸어서 문경새재를 넘나들었는데 그러다 과로로 돌아가신 장소를 갔다. 최양업 신부님은 우리나라 두 번째 사제로 9만 리 길을 걸으며 사목하셨다. 과로에 장티푸스, 위열병으로 40세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던 장소이다. 올해 9월 최초 한국 성인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성상이 바티칸 베드로 성당에 설치되었다. 갓을 쓰고 도포를 두른 아시아 출신이 베드로 대성전에 세워진 건 교회 역사상 최초라고 한다. 그래서 김대건 신부님의 성상이 있는 나바위 성지도 재조명이 되고 있다. 최양업 신부님은 아직 시성이 되지 않아 각 교구와 본당에서 꾸준히 기도중이다. 신앙을 위해 애쓴 신부님의 사랑과 노고가 빛나서 시성이 되길 기도해 본다. 그곳에 잠시 내려 기도문을 바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시 차에 타서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고, 본당에 도착해서 신부님 강복을 받고 헤어졌다. 오늘 다녀온 순례의 여정이 앞으로의 신앙생활에 작은 디딤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선조들이 목숨 걸고 지켜온 신앙의 정신과 성지 순례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잘 이어 가길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