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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개구리가 뭐 길래?
“강 선생! 아침 일찍 나왔네. 벌써 두 개 동의 교실 문을 다 열어놓았구먼. 부지런하기도 하지. 어젯밤 금요일이라 늦게까지 택시일도 바빴을 텐데.”
“교장 선생님도 일찍 오셔서 두 개 동 모든 교실 문 열어 고정해 두셨네요.”
뉴질랜드 토요 한국학교. 수업 전, 남자 선생님이 주로 교실 문 여는 일을 했다. 백발이 성성한 교장 선생님이 앞서고 민재가 뒤따라 교무실로 행했다.
단층짜리 네 개동 20개 교실을 빌려 쓰고 있었다. 각 동마다 시건 장치로 잠가두고 가서 교실을 사용할 때는 알람 번호로 풀고 열쇠로 열었다.
오클랜드에 한국 교민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터라, 오클랜드 북쪽 글렌필드 초등학교를 빌려 뉴질랜드 한국학교로 운영하고 있었다.
20여 명의 선생님들이 모인 가운데 교무회의가 열렸다. 교장 선생님이 한국학교 운동회 건을 이야기했다. 경험 많은 교무주임이 주관하기로 했다.
이어서 당부사항을 알렸다. 빌려 쓰는 학교라 한국학교 측에 컴플레인이 많았다. 기존 학교에서 쓰는 게시물이나 기물을 손상해 나온 문제였다.
이것은 관리 주임인 민재가 맡아서 처리하고 재발 방지책을 세워 실행해 나갔다. 민재가 이에 대한 방지책을 제시했다.
먼저 민재가 견본으로 만든 1B5 노트를 선생님 당 한 권씩 나누어 주었다. 지난주 집에서 민재가 손수 만든 거였다.
“그동안 각 교실별로 발생된 문제들을 현지 학교(글렌필드 초등학교)에서 수합해 한국학교 측에 통보해왔는데요.
피드백이 여러 단계를 거치고 좀 복잡했어요. 지금부터는 현지 학교 대 한국학교가 아니라, 사용하는 학급 교실 선생님 간의 소통 노트를 만들어봤어요.
일명 커뮤니케이션 노트라 부를게요. 제가 한 달간 미리 실험적으로 적용해 봤어요. 효과가 좋습니다. 그 교실 문제 개선 이력이 이어져 서로 조심해요.
한국학교 담임이 내용을 써서 현지 학교 담임 탁자에 두고 가면, 현지 학교 담임이 그 내용 뒤에 이어서 커뮤니케이션 피드백 사항을 써서 소통해요.
노트 맨 앞장에는 현지 학교 교실 번호. 이 교실을 빌려 쓰는 한국학교 학년 반. 담임선생 이름. 전화번호를 써 둬요.
다음 장부터는 노트 위에서 아래로 몇 칸을 나눠서 줄을 그어요. 그 칸에 날짜, 소제목, 상세 내용을 쓰는 거예요.
지난달, 문제 됐다가 개선한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한국학교에서 알림]
2002년 o5월 oo일. 토. 게시물 손상. 저희 반 아이들의 부주의로 뒤 게시판에 그림이 찢어짐. 테이프와 풀로 붙여 다시 게시해두었음. 앞으로 주의하도록 지도함. 손상한 아이가 사과 내용을 기록. 담임 사인.
[현지 학교에서 알림]
2002년 05월 oo일. 월. 수고 많았음. 아이들 간에 그럴 수 있음. 손상한 아이 사과 내용에 미안한 느낌. 담임선생님 노력과 성의에 감사함. 담임 사인.
민재의 설명에 교장 선생님과 교감, 교무 주임과 모든 분들이 감동하는 분위기였다. 저런 방법이 다 있었네. 정말 커뮤니케이션 노트 맞네. 어쩜!
***
뉴질랜드 한국학교. 뜻있는 오클랜드 교민들이 힘을 모아서 토요 한국학교를 세웠다. 꿈나무 어린 아이들을 위해 현지 초등학교를 빌려서 운영했다.
택시 손님으로 태웠던 교장 선생님과의 인연으로 민재도 한국학교 교사가 되었다. 민재가 관리 주임 역을 맡았다.
금요일 밤은 바빠 보통 새벽 한두 시까지 운전했다. 민재가 토요일 아침 8시까지 학교에 나왔다.
네 개 동으로 나누어진 20여 개의 교실 문을 모두 여느라 바삐 뛰어다녔다. 4학년을 맡아 20여 명 아이들을 데리고 수업하는 학교일이 즐거웠다.
한국학교 수업 후, 교실 문을 잠갔다. 집에 돌아와 오후 늦게 다시 택시를 몰았다. 택시 운전하며 접하는 뉴질랜드 생활 이야기가 좋은 교육 소재였다.
암기 주입식 교육은 피했다. 자기 의사를 소신 있게 발표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뭘 보면 생각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 즐겁게 나누도록 했다.
한글로 매일 일기 쓰는 습관이 아이들에게 좋은 변화를 가져왔다. 발표와 칭찬 그리고 공감 속에 한국어 표현력이 향상되었다. 은서가 발표한 일기다.
“저녁 무렵 아빠랑 바닷가에 산책하러 나갔다.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문득 두고 온 한국, 우리나라가 생각났다.
영어를 모르고 왔던 내가 뉴질랜드에서 영어를 쓰는 학교에 잘 다니고 있다. 토요일에는 한국학교에서 우리말과 역사를 배우고 있다.
영어와 한국어를 잘 쓰고 말하고 있다. 즐겁다. 내 소망도 여물어가고 있다. 이것은 꿈이 아니다.”
은서와 같은 초등학교 4학년 무렵, 민재 꿈은 섬마을 선생이었다. 늦게나마 그 작은 꿈이 이루어졌다. 뉴질랜드 섬나라 한국학교 선생이 되었다.
고맙기도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담임선생님이 기억났다. 공부에 흥미를 붙인 것이 담임선생님 지도 덕분이었다. 교감 선생님은 역사관을 심어주었다.
담임선생님 수업은 재미있어 좋았다. 야심 찬 꿈도 키우도록 격려해주었다. 교감 선생님의 중국 삼국지 이야기는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했다.
듣는 아이들 눈동자도 사로잡았지만, 신들린 듯 말씀하는 선생님 표정이 좋았다.
민재도 그런 선생님처럼 되고 싶었다. 꿈이 현실이 되었다. 이것은 꿈이 아니다. 은서의 이야기에 민재가 울컥했다. 민재가 아이들로부터 배웠다.
***
특별 행사가 있는 날이었다. 아침 일찍, 교실 문을 열고 수업 준비를 서둘러야 했다. 민재와 교장 선생님이 다른 때보다 일찍 나와 교실 문을 열었다.
어느 교실 앞에 이르렀다. 문을 열려는데, 문 위아래 모서리 부분에 나무 각목을 대고 못이 박혀 있었다. 문에 붙은 경고문에 그만 소스라치게 놀랐다.
‘교실 안에 있는 물건에 손대지 말 것. 이 교실은 사용할 수 없음.’
그 교실에서 공부해야 할 아이들이 발을 동동거렸다. 아이들을 밖에 세워두고 다른 빈 교실을 찾아보았다. 당시 한 학년 당 두 반으로 운영했다.
달리 사용할 만한 교실이 없었다. 결국 같은 학년끼리 합반을 시켰다. 자리도 모자라고 콩나물 교실처럼 옹색하지만 별수가 없었다.
아침 교무회의를 하고 있는데, 현지 학교 여선생이 느닷없이 들어와 호통을 쳤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도대체 어떻게 아이들 교육하는 겁니까? 우리 학급 내 어항 속에 있는 개구리 한 마리를 죽였더군요. 세 마리를 교육용으로 키우고 있었는데요. 정말!”
지난주 한국학교 학생들이 한 마리를 꺼내서 갖고 놀다 죽였다는 거였다. 한국학교 선생들이 어안이 벙벙한 채 아무 말을 못 했다.
교장 선생님이 일어서려다 충격으로 몸을 주춤했다. 민재가 옆에서 재빠르게 부축했다. 해당 반 여선생도 주눅이 든 채, 고개를 조아렸다.
민재가 일어나 현지 학교 여 선생에게 정중하게 머리를 숙였다.
“제가 관리 주임인데요. 관리 못 한 제가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각별히 주의 지도하겠습니다. 이 사항은 문화적 충격입니다.”
“아니? 무슨 소리 하는 거요? 문화적 충격이라니요?”
“고정하십시오. 다시 사과드립니다. 한국에서야 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에 가면 지천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올챙이입니다. 개구리가 아주 흔해서요.
뉴질랜드에 와서 개구리를 못 보던 아이들이 그만 한국 생각이 난 모양입니다. 미리 살펴서 주의를 줘야 했는데, 미처 못 헤아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참. 별소릴 다 듣는군요. 그딴 변명 더는 듣고 싶지 않아요. 살려 내세요!”
현지 학교 여 선생이 화를 누그러뜨리지 못한 표정으로 씩씩대다가 문을 확 닫고 나가버렸다. 교무실 분위기가 얼음 창고처럼 싸하고 차가웠다.
‘개구리가 뭐 길래?’
올챙이와 개구리. 올챙이는 뒷다리가 먼저 생기고 앞다리가 이어 생긴다.
꼬리가 점차 없어져 개구리 모양이 된다. 이런 과정을 이곳에선 쉽게 볼 수가 없다. 뉴질랜드 땅은 유황 성분이 많아 개구리가 잘 살지 못한다.
개구리 구경은 물론 올챙이 구경도 쉬운 일이 아니다. 초등학교마다 교육부에서 새끼 올챙이를 받아다 키우며 커가는 모습을 관찰하였다.
관찰 일지를 쓰는데 한 마리를 죽여 버렸으니 화가 날 만도 했다. 올챙이가 개구리로 변해가는 과정을 신기하게 관찰하는 아이들이 어떠했을까?
동심에 큰 상처가 된 것을 생각하면 뭐라고 사과할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 교실을 못 쓰게 각목으로 못 박은 것도 이해가 안 됐다.
현지 학교에서는 생명존중을 아이들에게 교육하고 있었다. 한국학교에서는 생명을 경시한 듯한 면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엄중한 항의를 한 것이다.
***
20여 명의 교사가 300 여명 학생들을 위해 토요일마다 한국어와 한국사 그리고 한국문화를 가르쳤다.
최근, 한국 학교 기념행사에 뉴질랜드 주요 인사가 참석했다. 교육부 장관, 소수민족 장관, 오클랜드 시장, 한인회 임원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우리 애국가보다 뉴질랜드 국가를 더 쉽게 잘 부르는 아이들의 적응력을 지켜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이중 문화 속에서 두 배로 노력하고 있는 아이들이 기특해 보였다. 한편으로 우리 말, 우리 노래를 잃어가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다.
아이들은 영어의 벽을 넘어 뉴질랜드 사회에 당당히 홀로서기를 잘하고 있다. 이런 아이들이야말로 이곳 뉴질랜드에서도 꿈나무들이다.
올챙이가 어항 속에서 일정 기간 지나면 개구리가 된다. 우리 자체의 배움터가 필요할 것 같다. 은서의 일기처럼 바라는 일이 현실로 되었으면 좋겠다.
***
아이들과 흥미진진한 수업에 민재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오늘 수업에서는 타이타닉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을 한 마디씩 발표하는 자리였다.
지난주, 과제로 집에 가서 타이타닉 영화를 보고 오라고 일렀다.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TV나 비디오를 통해 볼 수 있었다. 참신한 생각에 놀랐다.
-남자 주인공 잭과 여자 주인공 로즈가 자유를 택한 게 인상적이었어요.
-타이타닉이 침몰할 때, 구조 우선순위에 감동되었어요. 제가 사는 곳 동네가 버켄헤드인데요. 버켄헤드 정신을 다시 생각했어요. 노약자를 우선하는 정신.
-침몰한 배에서 차가운 얼음물에 빠져, 나무 토막 위에 로즈를 올리고 그 나무를 잡고 죽어가는 잭의 희생에 눈물 났어요.
-배는 반 토막 나서 바다에 침몰하고. 배를 탈출하는 가운데. 악사들이 마지막까지 남아서 마음을 진정시키게 연주하는 마음에 울컥했어요.
-저도 그 악사들 연주와 떨리는 바이올린 줄이 제 가슴을 뭉클하게 했어요.
민재가 수업을 마치고, 교실을 돌아다니며 문단속을 마치고 열쇠로 문을 잠갔다. 마지막 문을 잠그고 가려고 교무실로 갔다.
몇몇 선생님들이 퇴근을 안 하고 앉아 있었다. 교장 선생님, 교감 선생님, 교무 주임 선생님까지. 침통한 분위기였다. 교장 선생님이 민재를 두고 말했다.
“관리 주임 강 선생도 와서 앉으세요. 아침 교무 회의 때 이야기 못 한 것, 수업 끝나고 이야기할 수 밖에 없는 일이 발생했어요. 참 난감하네요.”
민재가 화들짝 놀라 엉거주춤 의자에 앉았다. 교감 선생님이 조용히 말했다.
“현지 학교에서 한국학교에 빌려주고 받는 학교 임대료를 세 배로 올린다는 통보가 왔어요. 지금 한국학교 운영 자금으로는 불가능해요.”
교무 주임 선생님이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운을 뗐다.
“현지 학교를 더 이상 한국 학교에 빌려주지 않겠다는 우회적 거절이지요. 기한이 딱 두 달밖에 안 남았는데요. 렌트 집도 아니고 학교라서. 참.”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민재도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남의 나라에서 내 집 없는 서러움도 크지만, 우리 학교 없어 겪는 고통도 예상외로 심각하군요. 어쩌겠습니까. 다른 곳 찾아 알아봐야지요.”
교장 선생님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힘없이 염려 섞인 이야기를 했다.
“임대료도 맞아야 하지만, 학교 위치도 중요해요. 학부모들이 아이들 픽업하는데 너무 멀어도 곤란해요. 다들 한번 찾아봅시다. 오늘은 이만 마칩시다.” *
22화 끝(5,643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