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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火
땡땡땡땡......
불이야! 불 났어요!...
조용하던 시골마을에 난데없는 불종이 울렸다.
사람들이 쇠스랑 물통 낫 같은 것들을 들고 불이 났다는 방향으로 뛴다.
신기하다
신기한 일이다
도시에서는 불자동차가 윙윙거리며 달려오는데 시골마을에서는 종을 치는것부터 사람들이 불난곳으로 몰려드는 모습이 너무도 생소하다.
이곳에 시집을 와서 종대밑에 자리를 잡고 살면서 너무도 무료한 나날들이었는데 영화와 같은 현실이 펼쳐지다니...
마을이 묘하게도 생겼다.
양지쪽을 바라보며 3字 를 뉘어놓은것 같은 모습인데 가운데 산에 종대가 있다.
그 밑에 흙을 파내고 두칸짜리 집이 있다.
신혼살림이라고 그곳에 둥지를 틀고 앉은지 5개월, 따스한 봄바람은 가장 먼져 이곳을 비춰 길가에는 푸릇푸릇 봄나물들이 올라온다.
봄은 출생의 계절이다.
시간이 새 생명의 성장을 알려주고, 이미 불러오는 뱃 속에서는 움직임까지 느껴진다.
신랑은 아침에 논을 갈아 주는 품팔이를 나가고 바쁠것 없는 시간은 어느새 점심때를 넘긴 시간이다
도시같으면 사람들이 지나다녀야 할 길에 아무도 지나는 사람이 없으니 지루한 마음이 점점 쌓여만 간다.
아 ! 지루하다 !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
옆에 말 동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100호가 넘는 큰 마을 인데도 말동무를 찾을 수가 없다.
모두가 아침이면 일을 나가고 집에 남는 사람은 없다.
간혹 앞집 할머니가 집에 계실때도 있지만 함께 놀기에는 그렇고...
옆집 아주머니는 과수원일이 많다고 늘 과수원에서 사시니 집에 가봐야 개짖는 소리만 요란하고...
이 큰 마을에 나랑 놀아줄 사람이 그렇게도 없단 말인가?
일을 마친 신랑은 저녁이면 술이 떡이되어 오자마자 골아 떨어지니 시골로 시집온 내 팔자가 이런 것인가?
남들처럼 시골일을 안다면 과수원의 봉지싸는일도, 밭의 고추심는 일도 할 수있을텐데 아무것도 할 수없는 도시에서 나고 자란탓에 답답하기만 하다.
지루하기만 한 나날이 시계의 바늘 처럼 어김없이 밤과 낮으로 이어진다.
봄의 오후는 나른하다.
할일도 없고, 그렇다고 어떤 사건이 터지는 것도 아닌데 혹시나 하며 문을 열고 집앞에 앉아 늘상 하는대로 나른한 오후를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헐레벌떡 거리며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
그러더니 산쪽으로 올라가 종을 두들긴다.
땡땡땡댕...
박자도 없이 마구 두들겨대는 종소리는 지난번 불종이다.
간혹 " 불이야 !" 하며 두들겨대는데 이내 사람들이 나타난다.
분명 조금 아까 까지도 없었는데 어데서 나타 나는지 수많은 사람들이 종대밑으로 모여든다.
그리곤 동쪽으로 달려간다.
손에는 물통과 갈고리같은 것을 들고 뛰어가는데 덩달아 아이들 까지 함께 달려간다.
지난번에는 서쪽으로 갔었는데 이번에는 동쪽 어데인가 불이난 모양이다.
얼마 후 사람들이 천천히 돌아오는데 얼핏 들으니 아이들이 불장난 하다 남의 집 앞에있는 볏집 쌓아놓은 곳에 불을 붙였다 한다.
재미있다.
도시에 살때는 불이 나면 불자동차가 와서 불을 끄는데 시골에서는 사람들이 불을 끈다.
불이난 곳을 어떻게 들어가 끌가?
궁금하다.
임신한 몸이 아니라면 구경이라도 하고싶은데 몸이 무거우니 달려가 보지도 못하고...
이제는 낮에는 밖에 나가 있기에는 너무덥다.
갈곳도 없고, 하루종일 누워있기에는 너무 지루하다.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낼까?
그렇다!
불끄는 것을 한번 구경해 보자!
언제쯤이 제일 좋을까?
오늘은 신랑이 일이 없는가 보다.
장날이라고 시장을 간다고 하는데 따라가볼까?
아니야! 너무 멀어
한시간은 걸어야 하는데 무거운 몸을 끌고 이 더위에 다녀오면 힘만 들지.
혼자 다녀오라고 해야겠다.
그런데 하루종일 무얼 하고 지내지?
따분한 시골 생활이 싫다.
도시같으면 버스를 타고 시장이라도 한바퀴 돌고오면 기분이라도 좋으련만...
이곳은 시장이 십리란다.
버스도 없고 오로지 걸어야만 하는 길이다.
지루해도 힘든것 보다는 낫지.
신랑에게 필요한것 사오라고 하고 오늘도 늘어지게 잠이나 자자.
해가 서산에 기울면서 신랑이 여늬때와 같이 흔들거리며 돌아왔다.
부탁한 것은 다 사왔나?
마루에 앉자마자 누워 버리는 신랑, 결혼이 이런 것인가?
한켠에 던져놓은 짐보따리를 풀어보니 부탁한 물건은 그런대로 사왔다.
방으로 들어가 누우라는데도 잠시 눕는다면서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무거운 몸으로 신랑을 방으로 눕힐 수는없고...
할수없이 저녁을 준비하면서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별 수가없다.
해가 넘어갔는데도 일어나지를 않는다.
어찌할까?
아차! 왜 그생각을 못했지?
신랑은 불이 났다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한번 실험을 해 봐야겠다.
성냥이 어데있지?
앞집 담장에 불을 한번 붙여봐야겠다.
그리고 신랑을 깨우면 일어날까?
길을 지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담장에 불을 놓아도 다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마침 할머니는 며칠째 집을 비워놓고 절에 가셨다.
불이나면 사람들이 모여들어 불을 끌까?
끌꺼야!
누군가 보고 또 불종을 치겠지.
아니, 신랑이 일어나면 불종을 칠까? 불을 끌까?
일어나기나 할까?
여보! 여보! 일어나봐!
불났어! 불!
" 응! 어디!" 그렇게나 깨워도 안 일아나던 사람이 반응이 빠르다.
앞집에...
저기 봐!
담장에 불이났잖아!
파란 불꽃이 담장을 타고 들어 간다.
나이드신 할머니가 혼자 기거를 하는 집이지만 늘 비워두시기에 언제 이엉을 둘렀는지 기억에도 없는 낡은 담장이었기에 불길은 파랗게 퍼지고 있다.
신랑은 놀라 벌떡 일어나 곧장 종대로 향한다.
그리곤 "불이야!" 를 외쳐대며 땅땅땅... 마구 종을 쳐댄다.
이내 사람들이 연장을 들고 달려들어 곧 불을 꺼 버렸다.
담장위의 볏짚으로 엮어만든 이엉을 걷어내니 불길이 더이상 번지지 않았다.
불이 나니 몰려온 사람들이 웅성대는데 사람 사는곳 같다.
늘 조용한 시골마을이 싫었는데 불을 끄는 시간 만큼은 여늬 도시 못지않게 북적 거리는것이 사람이 사는 동네같다.
왜 이렇게 사람이 사는것 처럼 북적 대면서 살지 못할까?
그게싫다.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고 싶다.
남이 얘기 하는 소리라도 들었으면 좋겠다.
또 다시 코를 골고 잠을 잔다.
아무일이 없는 것처럼 자는 신랑의 모습, 이런 모습을 보기 위해 결혼이라고 해서 이런 시골 마을에 온 걸까?
참으로 신기하다.
술이 취한 잠인데 깨워도 일어나지 않던 사람이 불이 났다고 하니 벌떡 일어나지 않던가?
장날이면 이웃마을의 사람들도 이길을 통과하여 장엘 간다.
대개는 일찍 들어오지만 간혹 큰 소리로 외치는 술취한 사람들이 늦게 지나가기도 한다.
여늬날은 조용하기만 한 길인데 장날만큼은 그래도 간혹 사람들이 지나가니 불이나면 불종을 칠 사람도 나타날것이다.
장날이면 일도 안하고 쉬는 날이니 불종을 쳐 사람들을 모아보자.
5일의 시간은 빨리간다.
이제는 기다리는 것이있다.
오늘 저녁 또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겠지.
성냥 한까치의 능력은 대단하다.
그 많은 사람들을 끌어오는 능력이 있으니...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신랑은 술에취해 잠을 잔다.
조용히 문을 열고 밖에 나가니 불을 놓을 대상이 역시 앞집 담장이 최고다.
낮기도 하고, 가깝기도 하고, 또 사람도 없다.
불이 크게 일지 않게 신랑을 깨우는 시간도 충분하고...
아무도 길에 나타나는 사람이 없다.
저번에 놓은 자리에 또 놓을까?
사람들이 그 자리에 불이 또 나면 무어라고 할까?
여보! 여보! 불났어!
일어나봐!
" 또 어데야! 귀찮게..."
앞집 담장인데 지난번 불났던곳이야!
문을 열더니 급히 또 종대로 향한다.
이내 사람들이 몰려오고 , 불은 삽시간에 꺼진다.
이번에는 사람들이 쉽게 자리를 뜨지 않는다.
" 왜 여기에 불이 자꾸 나는거야! "
" 그걸 어떻게 아나? "
누군가 또 말을 한다.
" 얼마전에 집에 불상을 모셔다 놓았다면서?"
" 그렇다는구만! 집 비우고 절에 다니기가 그렇고 해서 집에 모셔다 놓았다고 하더군."
" 아까 불을 보니 파랗더라고..."
"도깨비불 아냐? "
사람들의 생각과 말은 각각 달랐다.
이곳 저곳에서 나름 대로의 생각들을 말 하다보니 웅성대는 소리에 무슨 소리인지 귀에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그중의 누군가가 " 보초를 서야한다는 소리만 확연하게 들릴 뿐이었다.
젊은이들 중에서 보초를 서기로 한 모양이다.
헌데 시동생이 그중 대장이다.
시동생이 저녁을 일찍 먹고 마루에 걸터앉아 밖을 내다본다.
첫번째 보초를 서는 모양이다.
장날이면 초저녁 부터 집에와서 앉아 있으니 불편하다.
이젠 시간을 바꿔야지.
숨바꼭질 불장난도 재미 있겠다
도시에서는 불이나면 소방차가 오는 시간도 오래걸리고 불끄는 시간도 오래걸린다.
그만큼 피해도 많은데 이곳에서는 불이난 것을 보자마자 불종을 치고 몰려드는 사람들이 불을 끄는 시간은 불과 얼마 안간다.
사람이 상할 염려가 없으니 두려울 것이 없다.
아카시아 꽃이 만발하여 향기가 진동을 한다.
모두 모내기를 하러 들에나가서인지 길에는 너무 한적한 오후다.
옆집에서 아주머니가 고추모종을 한다고 집뒤 밭에서 있는걸 보았다.
불종을 칠 사람도 있으니 시작해 볼까?
이번에는 굴뚝 위에다 한번 놓아보자.
불을 놓고 달려가 알려주면 큰 사건은 안 생길거야!
불났어요!
앞집 굴뚝 에서 불이 났어요!
난데없는 불 소리에 달려나와 불꽃이 이는것을 보고는 이판사판 가릴것 없이 종대에 올라가 무조건 두들긴다.
들에서 일 하던 사람들이 일을 멈추고 뛰어와 또 불을 끈다.
세상에!
소방서 보다 더 빠르게 불을 끄는 사람들,
이제껏 도시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일들을 이들은 해 내고있다.
낮이나 밤이나 불종만 두들기면 모여드는 사람들이 있으니 신기하다.
다음날 집을 비워두고 절에 가 생활하시던 앞집 할머니가 오시더니 대문앞에서 대성 통곡을 하신다.
" 어인 일이오? 어인 일이오? "
" 이날 이때까지 남에게 해끼친일 없고, 남의 것 탐낸일 없는데..."
" ........."
두어시간 정도 한풀이를 하시더니 일어나 다시 나가신다.
오전에 앞집이 시끌하다.
무당이와서 문앞에다 상을 벌려놓고 그 앞에서 춤을 추며 뭐라고 주문을 외워댄다.
간간히 들리는 말로는 무슨 신들에게 용서를 비는듯 보인다.
내가 불을 놓았는데 왜 신들에게 빌까?
답이 무언지 몹씨 궁금하다.
굿이 끝이 났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렇겠지.
무당들의 굿은 미신이니까.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이라고 목사님이 말하셨는데 제깟 무당들이 무얼 알아낸단 말인가?
교회의 목사님 소개로 결혼도 한 몸이다,
불상을 집에다 가져다 놓은것 만으로도 하나님의 미움을 살 충분한 이유가 있는데 무당을 불러 굿까지 하니 이집은 벌을 받을만한 집이다.
나는 하나님을 대신해 벌을 내리는 것이다.
두려움을 느끼게 하여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려야 한다.
내가 뒤에서 보고 있는데 우상을 숭배하다니...
조용하다.
굿이 끝난지 열흘정도 되었나?
집에와서 보초를 서던 청년들도 이제는 지쳤는지 나타나지를 않는다.
지난번 불났을때 누군가 끔직한 얘기를 한사람이 있엇는데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아 다행이었다.
" 불낸 사람은 이곳에서 말을 듣고있고. 이 근방에서 지낸다."
이 얼마나 참혹한 사실인가?
이 말을 사람들이 귀담아 들었다면 나의 행동은 발각이 되었을 텐데 다행히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조심해야 할 일이다.
술이 거나해진 신랑이 집에 들어온다.
일 하는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고 하니 밥 차릴 일은 없고, 달빛이 환한 보름달을 쳐다보면서 또 이상한 기분을 느낀다.
낮에 한가해서 잠을 자둔 덕에 잠이 일찍 올리가 없다.
자리를 펴서 신랑을 자게하고, 밖으로 나오니 눈 앞에 보이는 초가집이 눈에 거슬린다.
아무도 집에 없으면서 집안에는 불상이 있으니 더욱 신경이 쓰인다.
없었으면 좋겠는데...
둥근달이 중천에 떠올라 환한 저녁에 지난번 타다만 굴뚝위가 마음을 또 움직이게한다.
다들 일이 끝나고 집에서 쉴 시간이니...
며칠 안 모여 보았으니 오늘 또 한번
담장밑에 감추어둔 성냥갑에 손이가고 주변을 둘러본다.
아무도 없다.
여보,여보!
앞집에 또 불이야!
빨리 불종쳐!
" 또 불났다고? "
" 어데야? "
" 담장위인데 바람이 불고있어! "
신랑은 부리나케 달려나가 종대위로 올라간다.
그리곤 이내
땡땡땡땡.....
"불이야! 불이야! " 를 목청높게 외쳐댄다.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연장들을 들고와서 이번에는 아예 담장을 거둬낸다.
불길은 이내 잡히고
주변엔 웅성대는 사람들만 왁자지껄한다.
" 아무래도 불상을 모신것이 뭔가 잘못된것 같아! "
" 옛날에도 이집에서 사람이 죽어나갔다지? "
" 그러게나 말이야! "
"저번에 굿까지 했는데 또 불이 나다니..."
" 이집엔 이제 사람살기는 틀린것 같네."
" 그나 저나 국화 어머니는 어데가 계시는거야? "
"적적해서 절에가 계시다고 들었네. "
"사람이 살지를 않으니 다행은 다행이지만 아무래도..."
" 자! 자! 어찌되었거나 불도 껏으니 돌아들 가자구. "
하나 둘 자리를 뜨는데 또다시 적막한 밤에 보름달만 휘엉청 밝다.
불이난 자리가 어수선한게 진짜 도깨비라도 금방 나올것 같다.
문을 닫고 들어가 방안에 누워 곰곰히 생각해본다.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이 문앞에 있으니 싫다.
거기에 싫어하는 불상이 방안에 있으니 더더욱 싫다.
집이 없어졌으면 싶다.
문을 열면 확트인 공간에 들과 앞산이 한눈에 들어왔으면 좋겠다.
이대로 계속하면 집을 헐어버리겠지?
그러지 않아도 지난번에 굿을 하고나서 이장님과 집 허는 문제도 얘기를 했다던데...
몇번만 더 하면 주인이 헐지 않아도 불끄면서 다 헐어질꺼야.
다음에는 굴둑밑에 또 불을 붙이고 한참 후에 알려줘야지.
그러면 많이 타 들어가 집을 헐지 않으면 안될꺼야.
왜 진작 이 생각을 못했지?
어! 벌써 열두시가 넘었네...
자자!
그리고 다음 기회를 기다리자!
6월 한낮의 온도는 덥다.
아카시아 꽃도 다 지고, 간간히 들려오는 개짖는 소리는 조용한 마을의 정적을 깬다.
갑자기 택시가 한대 집앞으로 온다.
그리고 문이 열리더니 앞집 할머니가 내리신다.
아들인듯한 젊은 청년이 뒤따라 내리고, 택시는 떠난다.
집을 둘러보고는
"이러니 집을 부수고 떠나자고 한거란다. "
멍하니 집을 바라보던 청년은 아무말도없이 듣기만 한다.
그리곤 마당쪽으로 가서 삽짝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할머니는 이내 뒤따라 들어가 한동안 나오지를 않는다.
또다시 적막만이 감도는 조용한 오후다.
얼마가 지났는지 할머니가 나오시고, 뒤따라 청년이 나오는데 손에는 커다란 보따리를 들고있다.
무언가를 싸가지고 가나보다.
그리곤 두분이 천천히 동쪽길로 걸어간다.
동서로 나 있는 길에 집앞 쪽으로도 길이 있는 세갈래길에 집이 있으니 사람들의 왕래가 그나마 많다고 하는집이지만 언제나 조용하다.
동쪽 길로 나가면 읍내로 가는 지를길이다.
아마도 아들이 짐을 챙겨 떠나는 모양이다.
이제는 정말 아무도 없는 빈집이다.
곧 헐어야 할 집이니 마음도 한결 가볍다.
오늘밤?
파란 불꽃이 굴뚝쪽 지붕에서 도깨비 불처럼 펄럭인다.
연기가 나오지만 캄캄한 밤인지라 잘 보이지않고, 도깨비불 같은 파란 불꽃만 굴뚝위를 지나 꼭대기 쪽에서도 보인다.
이제 신랑을 깨워야겠다.
여보! 여보! 저기 도깨비 불이야!
파란 불꽃이 여기저기로 옮겨가!
" 또 어데야! "
"귀찮게 자꾸 불이 왜 나는 거야!"
신랑의 투덜 대는 볼멘소리가 예전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오늘 까지만이야! 참아!
그간 답답했던 공간이 집이 헐어지면 시원해지잖아!
겉으론 표현 할수없는 마음을 속으로 중얼 거려본다.
불종이 울리고 사람들은 모여들고 웅성대는 사람들 틈에서 구경하고 있자니 마음이 상쾌하다.
이제 집은 허물어 질 테고 곧 시원한 들을 바라 볼 날이 멀지 않았다.
누가 감히 내 앞을 막을 것인가?
사람도 살지 않으면서 빈집에 불상을 가져다 놓는것부터 나를 괴롭힌 것이기에 하늘을 대신해 벌을 내린것이니 잘못이없다.
아! 이집이 헐리고나면 얼마나 시원할까?
저 앞산이 잘 보일까?
들을 지나 멀리 있는 앞산이 보였으면 좋겠다.
방문을 열면 확트인 공간이라도 바라본다면 답답한 마음이 뻥 뚫릴것 같은 마음이다.
아침해가 뜬다.
여전히 신랑은 일을 하러 들로 나간다.
가난한 집에 시집을 왔으니 품팔이라도 하여 먹여살리겠다고 쉬지도 않고 일을 나가는 신랑이 그나마도 고맙다.
모처럼 잘 다녀오라고 뒤따라 나가 인사를하고 돌아서려는데 간밤의 생각이 나서 유심히 앞을 보니
아뿔사!
내가 왜 그생각을 미처 못했나?
한집이 더 앞을 가로막고 있다는 걸.
그 집도 자손들은 다 나가 살고 할머니 한분이 쓸쓸히 지내시는 집이다.
가끔 할머니들의 놀이방이 되기도 하는집이지만 나의 계획에 차질이 생겨서는 안된다.
저집만 없다면 그야말로 확트인 공간이 될텐데...
잘못하다간 사람이 다칠 수도 있으니 조심은 해야겠다.
사전점검을 철저히 하고 작업에 임해야 할 집이다.
6월의 중순인데 날이 덥기도하다.
비가 오지않아 더운기운이 답답함 마저든다.
이럴때 도시에서 같으면 시원한 음료수라도 마시면 좋은데...
딱히 할일은 없고, 지루한 나날들만 연속되니 살맛이 안난다.
옆집 울타리에 있는 아카시아나무의 꽃은 떨어진지 오래고, 잎이 무성해 그늘을 만들어 주니 그나마 위안이된다.
방에서 나무그늘로, 그늘에서 방으로...
앞집 할머니가 예쁜 옷을 입고 집 앞쪽으로 오신다.
" 안녕하세요? 나들이 가시나봐요? "
" 서울 아들네집에 좀 다녀오려고..." 하시면서 천천히 동쪽길로 걸어가신다.
손에는 작은 보따리를 하나들고, 머리엔 큰 보따리를 이셨다.
며칠은 족히 걸리실 일이다.
기다리던 때가 왔다!
이제는 아무도 없는 빈집이니 불을 놓는다해도 다칠 사람이없다.
시간! 시간!...
가슴을 누군가가 방망이로 두드리는것 같다.
진정해야지!
서둘면 안되!
침칙하게...
이제껏 아무에게도 들킨일이 없는데 서둘다간 일을 그르치게되지.
신랑이 또 몇번은 고생하게 생겼구나!
한번에 확태워버려??? 아니야!
지금껏 도깨비불처럼 속여왔는데 그러면 안되지.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어 놓고 스스로 허물도록 만들어야해.
조금씩 조금씩....
낡은 초가집에서 불이나면 파란 불꽃이 생기는데 사람들은 그걸 도깨비 불이라고하니 재미있다.
헌데 그집은 높아서 키가 닺지않으니 어쩐다?
담장도 높고...
아하! 저쪽 부엌쪽으로가면 낮은 곳이 있어!
첫번째 불은 그곳이야!
세상에 알릴 필요가 있으니 저녁무렵으로 시간을 정하면 되겠군.
아! 오늘은 왜 이리 시간이 안 갈까?
빨리 해가 저물어 사람들이 일터에서 돌아왔으면 좋겠는데...
늦 모내기가 거의 끝나가는때란다.
이제 남은것은 하늘바래기 천수답들인데 비가와야 심는단다.
모내기가 끝나면 일이 거의 없다 하며 한숨을 쉬던 신랑은 오늘도 술이 취해 들어오겠지?
사람들이 일터에서 돌아온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는 사람,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는 사람, 앞쪽에서 와서 동쪽으로 서쪽으로 가는 사람들이 아침과 저녁에는 많다.
새도 둥지를 찾아 돌아온다는데 사람들도 저녁이면 집찾아 이리저리 지나간다.
컴컴해지는데 신랑은 오지 않는다.
얼마나 늦게까지 일을 하기에 이렇게 늦는걸까?
조용한 길에서 발짝 소리가 어지럽게 들린다.
아니나 다를가?
평상시와 같이 고주망태가되어 흔들거리며 걸어온다.
" 여보 나 왔어! "
안 하던 인사도 하고...
좋은 일이 있었는가?
방에 자리를 펴주고 이내 밖으로 나와 버렸다.
오늘따라 술냄새가 왜 그렇게 고약한지...
방문을 반쯤 열어놓고 냄새가 나가도록 창문도 열었다.
기다리던 시간이 되었는데 신랑이 저 정도이니 불종을 칠 수있을까?
불종을 못치면 다 태우는데 어쩌지?
사람도 없는데 다 타면 어때!
시작하자!
여보! 여보! 불났어!
일어나봐!
일어나봐!
다른때는 잘도 일어나더니 오늘은 좀 힘이 드는 모양이다.
여보! 불났어!
" 응! 또 불! "
" 어데야! 이번엔..."
짜증섞인 목소리지만 마지못해 일어나는 신랑에게 건너 앞집이라고 말해주고 불종을 치기를 기다린다.
비틀거리며 일어나 종대앞으로 가서 종대를 올라간다.
땡땡땡땡....
불이야! 불이야!....
종소리와 목소리가 한데 어울려 종소리만 들려온다.
사람들이 달려오고, 불은 삽시간에 진화된다.
여기저기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는데 끼어들 곳이없다.
" 이번엔 또 창수네집인가? "
" 도깨비 불이라 옮겨다니는 모양이네. "
" 마을 굿이라도 해야 하는것 아닌가? "
" 이장! 지서에 알렸는가? "
" 저번 장에 나갈때 지서장에게 말을 해두었지요. "
마을의 어르신이 여간해서는 안 움직이시는 분인데 하도 여러번이니 기이하여 나오셨나보다.
" 창수어머니께 불이 났다고 애기도 하고..."
" 예!"
" 자! 그럼 불도 껏으니 들어들 가!"
모여서 웅성대던 사람들이 하나 둘 돌아가고나니 또다시 적막감이 찾아든다.
참으로 기이한 마을이다.
불이 번져나가기도 전에 불종만 치면 진화가 되니 소방서가 필요하지 않은 마을이다.
소방서에 연락하면 얼마나 걸릴까?
아마도 반은 타 없어질 지도몰라.
읍내에서 와야하니 한시간쯤은 잡아야 할거야.
한시간동안 번지면 절반은 타겠지.
헌데 불을 놓고, 불종을 치는데 10 여분, 끄는데 불과 20분정도면 모두가 해결이 되니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도시같으면 아무도 불을 끄겠다고 달려드는 사람이 없다.
소방서에 연락 하는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불나면 모두가 구경하느라고 정신들이 없는데 이곳은 어린아이들까지 달려들어 불끄는데 한몫을 한다.
낮에는 아무도 없다.
밤 또한 조용하고 어쩌다 개짖는 소리만 가끔 들린다.
이제 시작이다.
저 앞집도 도깨비 불이 번지기 시작했다.
몇번의 경고로 집이 헐릴까?
아! 빨리 확 트인 들과 산을 방안에서 바라보고 싶다.
가슴이 조여들어 답답하다.
며칠 걸리실 거라던 할머니가 내려오셨다.
집안에는 들어가시지도않고 문앞 마다에서 털썩 주저앉아 땅을 치며 통곡을 하신다.
마음이 언짢기는 하다.
하지만 내 마음을 누가 알아주리
이집만 없으면 내 속이 다 후련해질텐데...
어느덧 더위는 칠월로 접어들었다.
이제 시골은 조금 한가한 시간들이 있는가보다.
지나 다니는 사람들도 간혹 있고, 신랑도 이즘은 술도 덜 마신다.
누구네는 참외를 따서 얼마를 벌었다는둥, 고추를 따서 팔았는데 제값을 못받았다는둥, 소문들이 나돈다.
배가 점점 불러온다.
이제는 거동도 불편한데 답답한 방안에서 지내야할 시간들이 많아진다.
빨리 일 처리를 해야하는데 할머니가 전혀 외출할 기미가 보이자 않는다.
일이 없으니 왔다갔다하며 감시를 게을리 하지 않는데도 여간해 기회가 오지 않는다.
이대로 여름을 보내야하는가?
" 할머니 어데 가세요? "
" 밭에 고추좀 따올려고... "
고추를 따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기회다.
집에가서 있다가 다시오자!
여기에서 맴돌다가 일을 저지르면 발각이나니 조금 쉬었다가 하면된다.
밤에는 시간이 없고, 이런 기회를 노려야 일이 될것 같다.
성냥이 어데있지?
지난번 불이난 곳이 아무래도 제일 좋은것 같은데...
먼저번에도 같은 곳을 두번 놓았지 않은가?
설마 그 사이에 누가 집에 와 있을까?
그래도 확인은 해야해!
노인들이라 도망도 제대로 못할테고, 사람이 죽으면 안되!
어째 기분이 영 안좋은데...
" 할머니 안에 계세요? "
" 할머니 안에 계세요? "
" 누구여! "
방문을 열며 바라보는 사람은 하나도 아니고 셋이다.
마을의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 화투를 하고 계셨다.
아뿔싸!
큰일 났다!
밭에 가 계실거로 알고 불을 놓고 확인하러 왔는데 마실까지 오신 할머니가 있다니...
마음속에서 혼란이 왔다.
이를 어쩔 것인가?
빨리 탈출을 시키지 않으면 할머니들이 위험하다.
" 할머니 불타는 냄새가 나서요."
" 왠 불 냄새? "
" 전 불타는 냄새에 눈이 따가운데 안 그래요? "
위급합을 알리기위하여 몸짓으로 눈을 닦는 척하면서 서둘러
" 빨리 나와 보세요."
할머니들이라 동작이 느려 불이난 것을 알릴 틈이 없는 사이에 어데선가 연기를 보고 불종을 두드린다.
땡땡땡땡.......
사람들이 몰려들고, 진화작업을 하는 사이에 할머니들은 그제서야 밖으로 나오신다.
불이 많이 커졌다.
부엌쪽 한칸정도가 완전히 소실될 정도였으니 읍내에서 연기를 본 모양이다.
진화가 끝나고,돌아서려는데 소방차가 들어온다.
그리고 누가 연락을 하였는지 경찰차도 들어왔다.
마지막 잔불작업을 소방차가 물을뿌려 감당하는 사이 경찰은
마을사람들을 모두 모이라고 해놓고, 물었다.
최초로 불을 목격한 사람이 누구인가?
불종을 때린 종복이 아버지가 손을 들고 경찰앞에 서고, 손을 들까 말까 망설이다가 고개만 숙이고 조용히 지켜보았다.
경찰이 " 오늘 이 집에 계시던 할머니들과 종을치신 분만 남고 나머지분들은 돌아가셔서 하시던 일을 하시는데 범인을 잡아야하는데 협조가 필요하니 다른곳에는 가시지말고 마을에 계시도록 하셨으면 좋겠어요."
"자! 자! 이제 돌아들 가시고 , 부르면 오셔야 합니다! "
불을끄던 마을 사람들이 모두 돌아가고, 종복이 아버지와 할머니들만 남아 있다.
불난집에 수사본부를 차린다나 하면서 경찰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한시간쯤 지난후 경찰이 집으로 왔다.
함께 가서 할머니들과 대질 심문을 해야한다는 말을 했다.
방에 앉으라더니 " 왜 이곳에 왔는가고 물었다."
늘 마실을 오던 곳이기에 와 보았다고 핑계를 댔다.
" 그럼 오는길에 불이 난것을 어떻게 알았는가고 물았다."
하도 자주 불이나서 불냄새에 익숙해져 있는데 오는길에 냄새가 나더란 말을 해 주었다.
그리고 할머니들이 불냄새가 어데서 나기는 하는데 방에 계시니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밖으로 나오시라고 했다는 말도 했다.
"이곳에 온 시간이 언제지요? "
두시간이 채 안되는 걸로 알고 있어요.
" 그럼 불이 나기 시작하는 시간아닙니까?"
" 색시가 불을 낸것 아니요?" 하면서 경찰이 버럭 소리쳤다.
깜짝 놀란 마음에 아무말도 더 이상 할 수가 없다.
고개만 숙이고 있었더니 경찰 한분이 " 아무래도 이 색시가 방화혐의가 짙으니 서로 데려가 더 조사를 해야 할 것 같으니 갑시다! "
옆에 계시던 할머니가 울며 " 네가 나와 무슨 웬수를 졌기에..." 하며 내몸을 잡아 때리고 흔든다.
경찰이 말리고 나를 일으켜 세워 수갑을 채우고 차에 태웠다.
파란 불꽃은 마음속에서 타는 불.
보지 못하는 마음속 불꽃을 보고 싶었다,
눈으로 볼 수있는 오래된 볏짚이 타는 파아란 불꽃이 왜 그렇게 아름답게 보였는지...
파아란 불꽃은 나의 희망이요, 욕망이다.
도깨비가 춤을 추는듯 흔들리며 조용히 타오르는 불꽃
검은 초가지붕을 바라보면서 잃어버린 욕망의 상실을 보상 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도
아무도 모르는
내 마음의 원 불은 꺼줄 생각을 하지않고 겉불 놓은 방화범이라고 함께 가잖다.
.....
***
40여년전 실화를 바탕으로한 글입니다.
과거와 현실을 생각해 가며 글을 써 보려고 했으나 미흡하군요.
끝까지 앍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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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소설은 언제 배우셨수? 2월이니 이제 농사 준비해야 되겠네요. 6월7일에 얼굴 한번 보지요.
젊어서 순정소설하나 써서 처녀시절 애엄마에게 보여주어 결혼(?) ...
하도 이사를 많이 하다보니 첫 작품을 분실. ㅎㅎ
현 세태를 생각하다보니 과거 생각이 나서 기억을 떠올리며 한번 또 적어 본거요.
전 같으면 고추씨 넣을때인데 일이 하기 싫어지네요.
근신은 이제 끝났으니 기회되면 한잔 해야지. ㅎㅎ
답글ㅆ기가 안되 이제야 겨우...
물꼬님!
시골생활에 무료함을 느낀 도회지 색시가 방화범이 되다니요?
그것도 실화였다니 믿기지가 않습니다... 그런즉 자고로 사람은 할 일이 있어야만 하는데.
그 색시 출산이나 잘 했는지... ㅎㅎㅎㅎ ^^*
고향을 떠난지가 하도 오래되서 이후 소식은 깜깜.
9번의 방화에 온 동네가 말들이 많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