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18:17-19:24,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 24.6.12, 박홍섭 목사
골리앗을 죽이고 이스라엘의 영웅으로 등장한 다윗을 본 사울은 시기심에 다윗을 죽이려 합니다. 18장부터 계속 이런 사울의 시도가 이어집니다. 처음에는 첫째 딸 메랍을 준다는 모략으로 전쟁터에 내보내 다윗을 제거하려 하지만 실패하고 오히려 다른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하게 됩니다(18:20). 이번에는 블레셋 군사의 표피 100개를 가지고 오면 미갈을 주겠다고 다시 술수를 쓰지만, 다윗이 블레셋 군사의 표피 200개를 가지고 와서 꼼짝없이 미갈을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다윗은 사울의 사위가 됩니다.
다윗이 자신의 사위가 되었음에도 사울의 두려움은 더욱 커져만 가고 그는 평생 다윗의 대적이 됩니다(18:28-29). 책략으로 다윗을 죽이려 한 시도가 모두 허사로 돌아가자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의 시도는 더욱 노골적이 됩니다. 19:1a을 보십시오. “사울의 그의 아들 요나단과 그의 모든 신하에게 다윗을 죽이라 말하였더니” 아예 대놓고 요나단과 신하에게 다윗을 죽이라고 명합니다. 이때 요나단이 다윗을 변호하고 나섭니다. 다윗이 왕께 득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왕을 위하여 선한 일을 심히 많이 행하였으며, 생명을 아끼지 않고 블레셋을 물리쳤는데 왜 그를 죽여 무죄한 피를 흘리려 하냐고 설득합니다. 요나단의 말에 사울은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그를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합니다(19:1-7).
그러나 악령이 든 사울은 다윗이 수금을 탈 때 창을 던져 직접 죽이려 합니다. 다윗이 피하여 자신의 집으로 도망가자 전령을 보내어 아침에 죽이라고 명합니다. 미갈이 다윗을 창에서 달아 내려 피신시켰는데도 사울은 멈추지 않습니다(19:8-17). 이런 사울을 피하여 다윗은 사무엘이 있는 라마로 가고 사무엘은 다윗을 데리고 나욧으로 갑니다. 여기 나욧은 지명이 아니라 사무엘이 제자들을 수용키 위해 세운 일종의 숙소 이름입니다. 그 소식을 들은 사울은 거기까지 군사를 보내 다윗을 죽이려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이 보낸 군사들에게 성령이 임하게 하여 그들의 살해를 막자 사울은 세 번이나 전령을 보냅니다. 똑같이 하나님께서 그들의 목적을 좌절시키자 사울은 직접 라마의 나욧으로 다윗을 잡으러 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울의 시도를 무산시킵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사울에게도 하나님의 영을 임하게 하셔서 그의 옷을 벗겨버리고 사무엘 앞에서 예언, 곧 하나님의 뜻을 말하게 하셨으며 하루 종일 벌거벗은 몸으로 누워있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왕권을 벗겨버림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왕을 세우기도 하시지만, 왕을 폐하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성령을 통하여 사울의 입으로 직접 하나님의 뜻을 예언하게 하시고 왕의 신분과 지위를 상징하는 그의 옷을 다 벗겨버림으로 장차 그의 모든 왕권이 다 상실될 것을 다시 예고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울이 다윗을 향해 갖는 이 큰 두려움을 이해하시겠습니까? 그로 인해 끊임없이 다윗을 죽이려 합니다. 그는 왕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두렵습니다. 무엇 때문에 두렵습니까?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시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이 두렵지 않습니다. 사랑스러워야 합니다. 사울이 다윗을 두려워했다는 사실은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인 다윗을 죽여서라도 자신의 왕권을 지키려 했고 그 결과는 이렇게 광기에 빠져버렸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사람인 다윗은 여전히 충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블레셋과 싸웠고 사울에게 죽을 위기를 겪으면서도 사울의 영혼을 위하여 그 옆에서 수금을 타고 노래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19:9).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주시는 용기와 지혜와 능력으로 맡겨진 모든 일을 최선을 다해 감당했습니다. 그 결과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유익을 누렸고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그랬다면 좀 형통하면 안 됩니까? 왜 이렇게 계속 힘들어야 합니까? 그는 앞으로도 계속 힘들어집니다. 그런 역사가 사무엘하 5장 5절까지 이어집니다.
기브아에서 헤렛 수풀에 이르기까지 3년을 도망 다니고(19:18-22:23). 그일라에서 십 황무지까지(23:1-26:25) 또 3년의 도피 생활을 합니다. 이스라엘 안에서 도망갈 때가 없자 블레셋으로 망명하여 4년의 기간을 보냅니다(27:1-12). 이처럼 하나님께서 택하여 세우신 다윗의 왕위 등극은 화려하고 순탄하지 않습니다. 이미 기름 부음을 받았지만, 여전히 약하고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도망자의 현실을 근 10년 동안 보냅니다. 하나님은 이미 왕복을 벗기신 사울에게 계속 왕권을 허락하시어 그 권력으로 다윗을 추격하고 핍박하게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윗의 도피 생활은 사울과의 권력 투쟁에서 패배한 결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실패하였거나 계획에 차질이 생겨서도 아닙니다. 여기에는 신정 왕국의 합당한 왕으로 다윗을 연단하시려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있습니다. 아무런 훈련의 과정 없이 한순간 이스라엘의 왕위에 올랐던 사울은 자신의 힘으로 무엇이든 하려 하였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이 사울을 통해 이스라엘이 원했던 왕의 모습을 보이셨다면, 다윗을 통해서는 하나님이 원하는 왕은 이스라엘이 원한 사울과는 달라야 함을 보이고 싶었습니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은 근 10년에 걸친 고난을 통해 하나님만 의지하는 다윗으로 연단하십니다.
성도의 별명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주님과 함께 이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다스리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 사명을 감당하려면 연단이 필요하고 실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때로 막막하고 답답한 현실을 허락하십니다. 억울하고 화가 나는 상황도 만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상황을 통해 다윗이 사울과 맞서 싸우지 않고 하나님께 피해 하나님만 의지했듯이 우리도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연단하십니다. 그리고 그 기간에 같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아둘람 굴에 피신하여 있을 때 갓 선지자와 대제사장 아비아달을 비롯해 다윗의 3대 명장과 30인의 용사들을 다 만나게 하셨습니다. 지금 다윗은 그 터널을 지나고 있으며 그 훈련과 연단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도 성도의 인생을 해석하는 이런 시각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건과 시간을 통해 하나님께 피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어떻습니까? 그렇게 하고 계십니까? 혹 하나님께 피하지 않고 사람을 이기려 하지 않습니까? 환경만 극복하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다윗이 그랬던 것처럼 사울을 이기려 하지 말고 하나님께 피하는 훈련이 중요합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의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했던 라마 라욧으로 피하였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이 허락된 교회에 자신을 의탁해야 합니다. 아니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한 라마의 나욧이 되어서 모든 성도의 피난처가 되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런 성도와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