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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로의 초대(2250.2024.5.19)
엡5:28-33
할렐루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임재하셔서 우리 예배를 받으십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삶의 현장에서 상처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와 치유함을 받으시고 질병과 싸우는 중이라면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서 치료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쳐나는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중에 13일-16일까지 삼남연회 청장년과 주관으로 백두산 통일기도회에 28명이 참석하여 은혜중에 잘 다녀왔습니다. 첫날 북파로 올라가려고 했는데 많은 눈이 내리고 강풍으로 인하여 입산금지령이 내려져 주차창 까지 갔다가 올라가지 못하고 뒤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영상으로 보는관에 들어가서 영상으로 보았습니다. 다음날 서파로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눈이 많이오고 길이 미끄러워서 입삼근지령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금강협곡에 가서 구경을 하고 돌아와 커피숍에서 있다가 저녁을 먹고 40분정도 달려서 야경구경을 하게 만든 계곡에 가서 야경을 구경하고 왔습니다. 셋째날 아침에 일찍이 두만강을 가지 않고 북파로 다시 올라가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바람이 잔잔해지고 오전10시30분 되면 길이 열린다는 정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전 7시 출발하여 장백폭포를 먼저 보았습니다. 얼마나 추운지 눈과 얼름 그래도 올라가서 보고는 천지를 보로 갔습니다. 눈이 다 치워져 있었고 하연눈덮인 천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카톡방에 올려드렸는데 보셨으면 보았다고 답장도 하시고 하면 좋은데 안보셨는지 ㅎㅎㅎ잘 다녀왔습니다.
이번에는 목사로서 중국으로 거쳐가야 하니까 비자를 내려고 하니까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여러번 다녀왔지만 이번에는 비자를 내는데 종교활동 금지에 대한 각서를 쓰기도 했습니다. 백두산에서 아니 중국에서그 어떤 행위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갔던 중국교회에 가서 예배드리려고 했는데 그것도 안된다고 하여 차 안에서 수요예배를 드렸습니다. 서파로 걸어 올라가려고 했는데 아쉽게도 갈 수가 없습니다만 마지막날 북파로 가서 볼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여러분이 기도해주셔서 행복하게 잘 다녀왔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도 행복하십니까? 여러분 가정이 평안 하십니까?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아름다운 가정을 잘 만들어 가시면 그 속에서 아름다운 천국을 누리며 살 것입니다. 오월은 여러가지 날이 많이 있습니다. 5월은 유독 특별한 날들이 많이 있습니다. 5일 어린이날, 8일 어버이날, 그리고 15일 스승의 날, 또 19일은 성년의 날, 그리고 21일은 부부의 날, 27일은 권농의 날등이 있습니다. 이렇듯 오월은 행복하고도 신나는 날이 많이 들어있는 달입니다. 어린이설교, 어버이날 설교 오늘은 여러분의 가정을 행복으로 초대하고자 해서 아내와 아버지와 자녀와 고부간의 갈등등을 설교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가정의 달에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듣고 행복해지셔서 5월의 신록과 푸르름 처럼 활기찬 생애가 상주감리교회와 여러분의 가정과 여러분의 삶 속에 충만하게 넘쳐나기를 축원합니다.
1.아내를 향한 말씀을 주십니다.
여자에게 주는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여자에게 보다는 아내에게 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제가 남편보다 아내를 향한 말씀을 먼저 전하는 것은 성경 엡 5:20-23, 벧전 3:1-7, 골3:18-21 세 부분 모두가 공통적으로 ‘아내들이여 자기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고 먼저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가정화목과 행복을 위하여 아내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고 힘들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가정이 행복하고 화목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만약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가정의 행복과 화목을 원하신다면 이 한마디를 꼭 지켜 행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가정이 행복해질 것입니다.
‘아내들이여! 어떤 경우에도 남편을 하늘처럼 받들면 안됩니다, 남편은 하늘이 아닙니다’ 어떤 분은 갑자기 목사님이 잘나가다가 저게 무슨 말이냐? 고 질문할지 모르겠습니다. ‘옛날에 시부모님들은 며느리에게 남편을 하늘처럼 떠받들고 살아야 하느니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시작됐습니다.
여러분, 남편을 가리키는 한자의 지아비 ‘부(夫)’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십니까? 하늘 ‘천(天)’위에 점( ' )하나를 더 찍어놓은 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남편은 하늘같은 존재가 아니라 하늘보다 더 높은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아내는 남편을 하늘처럼 받들어야 할 존재가 아니라 하늘 이상으로 받들어야 합니다. 남자들은 이 사실을 믿습니까?(아멘)
성경 역시 남자의 머리됨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즉 여자가 남자에게 이름을 부여한 것이 아니라 남자가 여자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하와에게 이름을 부여할 때 하와는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물론 남자와 여자에게는 어떤 차이도 존재하지 않지만 역할에 차이가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 중에서도 하나님이 남자를 머리로 세우셨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아내들이 남편 머리 꼭대기 위에서 모든 면을 쥐고 흔들고 있기 때문에 가정이 파괴되어 가고 있습니다.
사탄은 바로 이 헤드십을 끊임없이 공격해 왔습니다. 총신대학의 권성수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탄은 바로 이 헤드쉽을 공격하는 것으로 가정파괴를 시작했다’ 실제로 남성들이 가지는 권위의 끝없는 추락이 가정파괴의 한 단면이 되고 있음을 여러분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더욱이 IMF이후 고개 숙인 남자의 이야기들은 우리 사회를 비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옛날 아버지들은 아이들 아침 잠을 깨우는 목소리에도 그 힘이 넘쳐났습니다. ‘야, 일어나, 임마, 아니 빨리 일어나라니까 뭐하고 있어, 어서 일어나 세수하고 밥 먹고 학교에 가야지’ 그러나 요새는 그렇게 못한다고 합니다. 이런데요 ‘야! 니 엄마가 빨리 일어나란다. 늦으면 밥은 커녕 국물도 없단다’ 그러면 자녀들도 꼼짝없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말은 안들어도 어머니 말은 듣는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내들이여 가정회복을 원하십니까? 가정의 화목과 평화를 원하십니까?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가장 먼저 잃어버린 가정의 헤드십 즉 가장의 권위를 남편에게 되돌려 주십시오. 제가 오늘 상주감리교 성도여러분에게 부탁합니다. 자녀들에게 주는 용돈을 아버지가 주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빠가 주어야 합니다. 비록 남편은 집에서 놀고 아내가 돈을 벌어오는 가정이라 할지라도 절대로 아이들의 용돈을 아빠가 주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렇게 실천하고 있는 아내들은 한번 손들어 보십시오.. 감사합니다.. 손든 가정에 하나님의 가호(家戶)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결혼식 때 신부들이 왜! 흰 면사포를 쓰는지 아십니까? ‘순결’을 상징 한다고요....아닙니다. 이유는 이것입니다. ‘이제 내게는 머리가 없습니다. 오직 남편만이 나의 머리입니다’하는 고백의 상징적 표현이 바로 면사포를 쓰는 이유입니다.
어떤 장로님이 IMF를 맞아 사업에 실패하여 본의 아니게 많은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믿음마저 흔들리게 되어 하나님과 교회, 그리고 아내와 자식들까지 볼 면목이 없어졌습니다. 하루는 괴로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밤늦게까지 거리를 거닐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아주 이대로 집을 나가버릴까, 아니면 그만 죽어버릴까’하는 생각으로 여러 시간을 방황하다가 새벽녘에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집에 와보니 그 늦은 시간에도 집 안팎에 불이 환하게 켜 있었습니다. 자는 줄로만 알았던 아내 역시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다소곳하게 남편을 맞아주었습니다.
남편이 들어서자 아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당신에게 꼭 드릴 말씀이 있어요, 여보!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당신을 보고 손가락질해도 나는 당신의 진실을 믿습니다. 비록 부도가 나서 많은 빚을 졌지만 당신의 진실은 부도나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믿습니다. 당신은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닐뿐더러 나는 당신이 다시 일어난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그 옛날 욥이 다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일어난 것처럼 당신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언젠가는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변함 없이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의 당신을 가장 뜨겁게 사랑합니다. 그리고 오늘까지 변함 없이 살아온 당신을 존경합니다’
이런 아내의 사랑과 위로에 견뎌낼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무뚝뚝한 사나이의 눈에서도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장로님에겐 그런 아내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세상에 천사가 따로 없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아내 앞에 거듭 고개를 숙여가며 절을 합니다. 그리고는 부부가 함께 손을 잡고 같이 웁니다. 이것이 실로 아내들의 진정한 매력입니다. 간혹 아내의 매력이 외모나 살림솜씨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내의 진정한 매력은 ‘선한 마음’에서 나옵니다.
요즘 남자들이 배가 고프거나 당장에 먹고살게 없어서 고통을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위를 쳐다보아도, 아래를 보아도, 좌우 어디를 둘러보아도 내가 믿을 수 있는 인격적인 대상이 없으면 기댈 수 있는 품이 없기에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남편의 고통을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은 아내밖에 없습니다. 바로 이런 역할을 잘하는 여인이 현숙한 여인입니다.(잠31:10) 그동안 여러분은 남편으로부터 보호받고 아낌 받는 것만을 기대하고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스스로가 남편을 돕고 남편을 아껴주지 않는다면 어느 땐가 남편의 사랑도 바닥날지 모릅니다. 이제라도 서로 아껴주십시오. 서로 돕고 서로 위하고 서로 양보해주십시오. 그런 다음에는 칭찬과 격려의 보약을 하루에 3첩씩 드리십시오. 이것이 성경의 원리이고 그래야만 그 가정이 건강해지고 행복해집니다. 결국은 자신이 행복하다고 고백하기에 자신의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라도 남편에게 친찬과 격려의 말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할수 있는 아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아버지를 향한 말씀입니다.
어떤 부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남편은요, 내가 설거지나 청소 좀 도와달라고 말하면 톡톡 쏩니다. 내가 꼭 그런 것까지 해야돼? 하면서 화를 냅니다. 그러면서 신문 갖다달라 물 가지고 오라 심지어 양말에서 구두까지 닦아놓으라고 합니다. 여자는 뭐 남편 종 인줄 아나봐요, 정말이지 여자로 태어난 것이 한스러울 때가 있어요’아버지들은 아내들의 이 같은 하소연을 귀담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남편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벧전3:7절‘아내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하였습니다. 굳이 남자와 여자를 비교한다면 남자는 놋그릇이요 여자는 질그릇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깨지고 망가지기 쉬운 것이 여자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여자는 작은 충격이나 자극에도 쉽게 상처를 입어서 남편의 작은 말 한마디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감동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상주감리교회에서 신앙생활 하시는 남편 여러분! 아내는 남편의 사랑을 먹고사는 존재입니다. 아내에게 사랑을 부어주지 않으면 ‘아주 깨어지기 쉬운 그릇’이 되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를 귀히 여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남편과 아내의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행동으로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랑은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진실함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삶에 떠나지 않아야 합니다. 사랑은 말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 받기 원하는 사람이 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필요한 것을 행동으로 채워주어야 합니다. 사도 야고보는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면서 행동으로 그러한 사랑이 표현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약2:16‘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 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했습니다.
예수님은 봉사의 모범을 보여주신 분이십니다. 샌들을 신고 다니는 히브리 문화에서 그들의 발을 씻어 준다는 것은 하인들이나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본을 보이시려고 친히 대야에 물을 떠다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그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요13:3-7) 부부간에도 이러한 섬김의 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배우자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대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해 줄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귀찮고 싫은 것’은 배우자도 마찬가지로 ‘귀찮고 싫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자가 원하는 그것을 통해서 사랑 받기를 원한다면 기꺼이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백 마디 말보다 조그마한 사랑의 행함에 의해 더욱 큰 감동을 받게 됩니다. ‘사랑한다’는 수십 번의 말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의 필요를 알아서 그저 섬겨주었을 때 받게 되는 사랑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나의 조건을 따지지 않고 그저 상대방에게 주파수를 맞추어 그대로 행해 주는 것입니다. 물론 상대방의 조건도 계산하지 않는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여러분 남편이 쉽게 아내를 사랑으로 섬길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이 있을까요? 남편들이 어디 한번 답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설거지, 청소. 이불 개기, 쌀 씻어주기, 아기보기, 우유 타기, 빨래하기’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잘 아시면서 왜 집에서는 안 하십니까? 잘 하고 계시다고요? 그런데 내 귀에 들리는 이야기는 ‘라면도 끓여주어야만 먹는다’는 소리만 들리면 큰일입니다.
제가 사실은 아내가 전에 수술을 하고 병원에 누워 있을 때 성도들에게 부담이 되니까 알리지 말고 토요일에 조용히 퇴원하면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면서 병원에 누워있는데 제가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것은 아내의 일이 쉬운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때 집에서 ‘설거지, 방 청소, 밥하기’ 그리고 병원으로 가서 돌보기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아프지마--당신없이 못살아--오래오래 살아야돼라고 부탁을 합니다. 이런 일들은 감당하면서 아내가 내게 해주는 사랑의 고마움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맨 날 집에서 놀고 먹는 것이 아니구나! 더군다나 여자의 일이라는 것이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해도 해도 한 표가 안나는 것이 여자 일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내들이여 그렇습니까? (유머 : 아멘한 성도님들만 하나님 도와 주세요!)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렇게 하고 나니까? 왜 그렇게 내가 쫀 스럽고 불쌍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내의 모르는 아픔을 어려움을 이해하였다는 것에 대하여 깊은 감사의 기쁨이 흘러나왔습니다. 그 날 이후 아내를 대하는 내 모습이 달라진 것은 물론이고 아내 역시 저를 대하는 모습이 전혀 달라졌습니다. 이것이 사랑하는 부부의 모습이며 아내를 사랑함으로 내게 돌아오는 축복이요 평강입니다.
내 사랑하는 자와 함께 같이 있어서 함께 웃을 수 있고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한일 아닙니까? 서로에게 순결한 마음으로 평생을 같이 걷는 그 길이 참으로 행복한 일이 아닐까요? 기쁠 때 함께 찬양하고 슬플 때는 함께 기도하고 서로 위로하며 감싸주는 것이 바로 ‘부부’아닌가요? 진정 변치 않는 사랑으로 주님 만날 그 날까지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이 땅에서 천국의 기쁨을 누리고 사는 것이 바로 우리의 결혼 생활이 아닙니까? 참으로 사랑하고 살아도 모자라는 세상입니다. 부부간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되어 살아야 하는 것, 서로 생각하는 것부터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까지 하나가 되는 것, 그래서 얼굴까지 닮아 가는 부부가 되는 것입니다.
아!~ 순간 순간이 이렇게 아쉬울진대 어찌 갈등하고 반목하며 포기하면서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부부들이여, 서로 사랑합시다. 말로만 사랑하지 말고 마음으로 사랑합시다 행동으로 사랑합시다. 마음으로 읽어주며, 서로를 이해하며 진실한 마음으로 감싸주면서 ‘내 사랑하는 자여’고백을 합시다. 손을 마주 잡으며 ‘내 어여쁜 자여, 내 순결한 자여’라고 사랑을 전해줍시다.
3.자녀를 향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버지로부터 축복을 받는 것을 최대의 복으로 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축복해주시기를 원하노라’며 축복할 때 자녀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어떤 힘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이 자녀에게 축복할 때 자녀들은 생명의 근원으로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과 기도에 맞추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축복은 하나님께로의 초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축복은 그 자체가 자녀의 삶에 대한 가치부여가 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축복을 받는 순간 자녀들은 ‘나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치 있고 사랑 받는 존재로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이러한 존재 확인이야말로 자녀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좋은 도구가 됩니다.
또한 축복에는 육체적인 접촉이 수반됩니다. 야곱이 요셉을 축복할 때 한 것처럼 손을 머리에 얹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껴안을 수도 있습니다. 이때 아버지와 자녀 사이에 스킨십이 일어나게 됩니다. 손에는 우리 몸에 있는 감각 기관 전체의 3분의 2 이상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손가락 하나에 8천 개 정도의 감각기가 달려 있어서 가장 긴밀하고 정서적인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나아가 아버지의 축복은 자녀들의 성공을 위한 가장 확실한 안전장치가 되어 줍니다. 아버지의 축복 속에 담긴 긍정적인 미래상이 자녀들의 머릿속에 고스란히 기억되었다가 훗날 자녀들의 삶 속에서 값진 에너지로 활용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자녀교육 전문가인 ‘데이브 시몬즈’박사가 추천하는 자녀 교육법 다섯 가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첫째: 자녀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사랑을 고백해주십시오. 둘째: 자녀를 행동 여하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인정해주십시오. 셋째: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십시오. 넷째: 자녀에 대한 사랑을 행동으로 증명해주십시오. 마지막 다섯째로 자녀의 학습에 능동적으로 참여해 주십시오. 이렇게 금방은 표가 안 나지만 서서히 좋은 결과 행복의 결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부자지간에 모녀지간에 이런 아름다운 모습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4.고부간에 대한 말씀입니다.
마지막으로 고부간에 대한 사랑의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왜 이브가 그렇게 오래 살 수 있었는지 아십니까? 학자들이 이에 대하여 많은 연구가 있었습니다. 환경학자들은 오염되지 않은 환경 탓이라고 했고 인류학자들은 종족번식을 위해서는 오래 살 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역사학자들의 해석은 조금 달랐습니다. 역사학자들은 본래 역사적 인물들은 수명이 긴 법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것 하나 명확한 해답이 되질 못했습니다. 그러다 모든 사람들이 수긍할 만한 답을 하나 찾아냈습니다.
이브가 그처럼 오래 살 수 있었던 것은 그녀에게 ‘시어머니’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었습니다. 이 해석에는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비록 우스갯소리이긴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고부 갈등과 세대 갈등의 현주소를 풍자한 이야기가 분명합니다. 그래서 고부갈등은 요단강을 건너가야만 해결된다는 말도 나온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말 매력 있는 아내는 껄끄러운 시부모님과의 관계를 지혜롭게 풀어 가는 아내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고부갈등을 해결하며 시부모님과 남편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요?
첫째: 시부모님에 대한 편견을 극복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지만 서로 등을 돌리고 편견을 갖게 하는 것은 사탄이 주는 생각입니다. 혹 마음 속에 시부모님에 대한 편견이 있다면 그것부터 기도로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둘째: 시부모님을 나의 친정 부모로 알고 모시도록 하십시오. 말은 쉽지만 실제로는 대단히 어려운 일일 겁니다. 하지만 정말 남편을 사랑한다면 그런 남편을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시부모님도 친정 부모님처럼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 시부모님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시부모님을 이해하려면 시부모님께 질문을 많이 해야 합니다. 특히 어머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십시오. 어머님의 가치관이 어떤 것인지, 습관이 무엇인지 또 어머님이 자란 문화가 어떤 문화였는지 등을 자주 질문하십시오. 고부 갈등도 알고 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시댁의 문화와 친정의 문화 사이에서 일어나는 문화 갈등이기 때문입니다. 넷째: 남편의 어머니를 심리적으로 떠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남편들은 몇 십 년 동안 어머니 품안에서, 어머니에게 의존해서 자라온 사람입니다. 몇 십 년 동안 익숙해진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는 데도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한 법입니다.
다섯째: 시부모님과의 대화 기술을 발전시키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비단 언어만이 대화가 아닙니다. 비 언어, 즉 몸으로 부딪히는 것이 서로를 얼마나 가깝게 해 주는지 모릅니다. 때론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함께 목욕을 가서 등도 밀어주고 안마도 해 주고 하면, 그 스킨십을 통해서 친해지는 것입니다. 이런 작은 실천을 여러분은 실천을 여러분은 시작만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노력에 대한 열매를 완성해 주실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시댁식구들을 쳐다보기도 싫다, ‘시’짜 들어가는 ‘시금치’조차 싫다라고 한다면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고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시’짜 때문에 남편과 싸우며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어느 그리스도인 며느리의 고백을 소개하겠습니다. ‘우리들의 어머님, 나의 어머님 시어머님, 사람들은 당신을 시어머니로 부르라고 하지만, 나는 당신을 어머니라고 부르겠습니다. 나의 사람인 남편의 생명을 시작해주셨고, 그이에게 처음 기도와 찬양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어머니는 그이에게 처음으로 미소를 가르쳐주셨고, 그이에게 친절과 정직을 처음 가르쳐주셨습니다. 그이가 피곤하여 잠들었을 때 그이는 당신의 팔 안에서 안식을 청했으며, 그이가 넘어졌을 때 그이는 당신의 손안에서 다시 일어나 걸을 수가 있었고 당신은 그이가 자랄 수 있도록 언제나 그이 곁에 머물러 주셨으며, 당신은 그이가 위를 쳐다보고 살 수 있도록 무릎을 꿇으셨습니다. 그이가 내 사랑하는 남자가 될 수 있도록 도우신 당신의 사랑에 나는 누구보다도 빚진 자이오니 이제 나는 그이와 함께 당신을 영원히 이렇게 부르겠습니다. 우리들의 어머님’
지난 2월에 튀르키예에 강력한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구조팀은 폐허가 된 곳에서 생존자를 찾고 있었습니다. 건축물이 붕괴된 곳에서 젊은 여성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성은 몸을 웅크린 채 죽어 있었습니다. 워낙 많은 사람이 잔해 속에 깔려 있었기 때문에 구조팀은 이미 죽은 사람에게 시간을 허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미 죽은 젊은 여성은 잔해 속에 그냥 두고 다른 생존자를 찾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구조대원 중 한 사람이 아무래도 이 여성의 자세가 이상하다 생각했습니다. 무거운 건축물 잔해 속에서 몸을 구부리고 있는 이 여성의 자세가 이상해서 다시 이 여성의 시신을 자세히 보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이 여성의 구부린 자세 속에는 갓난아기가 생존해 있었던 것입니다. 구조팀이 급하게 잔해물을 치우고 이 여성 품 안에서 잠이 들어 있던 3개월 된 갓난아기를 발견하고 구조했습니다. 이 어머니는 집이 무너지는 급박한 순간에도 자기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 아이를 품에 안았습니다. 무거운 잔해가 온몸을 덮치고 짓눌러도 이 엄마는 그 무거운 잔해물을 온몸으로 지탱하여 품 안에 있는 아이가 다치지 못하게 막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아이를 보호하며 정작 엄마는 고통 속에서 죽었습니다.
어머니는 위대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은 어머니입니다. 어머니가 강해야 자녀도 강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정이 행복해야 자녀가 행복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가정이 행복하면 세상에서 힘들고 어려워도 얼마든지 치유되고 회복될 수 있습니다. 가정이 행복하지 못하면 세상에서 힘들고 어려워도 그것을 치유하고 회복할 곳이 없게 됩니다. 그래서 행복하지 못한 가정에서 사는 사람은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님들의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사랑과 은총과 복이 있는 가정이 되어서 행복한 가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온 가족이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고 함께 해서 행복한 가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행복한 가정이 되기 위해서 온 가족이 축복하는 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서로 축복하는 가족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과거에는 부모가 자식에게 몹쓸 말을 참 많이 했습니다. ‘망할놈’, ‘썩을놈’, ‘나가 뒈져라’ 이런 말을 쉽게 함부로 내뱉었습니다. 아무리 애교 섞인 말이라도 이런 말을 자기 자녀에게 쉽게 한다는 것은 참으로 끔찍한 일입니다.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좋은 가구, 좋은 음식, 좋은 옷, 좋은 침대를 갖추는 것보다 훨씬 더 좋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축복의 말입니다.
야곱이 열두 아들을 일일이 축복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야곱이 열두 아들을 축복해 준 그대로 그 후손들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훗날 야곱의 열두 아들이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됩니다. 그런데 훗날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살펴보면, 놀랍게도 야곱이 열두 아들에게 축복한 내용이 어쩌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열두 아들과 열두 지파 모두를 이 시간에 확인해 드릴 수는 없지만, 한 아들과 그 후손들이 어떻게 야곱의 축복이 그대로 이루어졌는지 소개하겠습니다.
야곱은 넷째 아들 유다에게 이렇게 축복했습니다. 창49:10절‘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이 축복 그대로 유다의 후손인 유다지파에서 다윗이 태어났고, 다윗의 후손들이 계속 왕조를 이어갑니다. 그리고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유다의 후손으로 오셨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여러분 가정과 자녀가 행복하고 성공하기를 원한다면 더 많은 축복의 말을 하십시오. 그리고 행복한 가정이 되기를 원한다면 가정 안에 축복의 말을 많이 선포하십시오.
야곱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이렇게 축복할 수 있었고, 야곱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이 축복이 그대로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모든 부모에게 이런 축복의 권한을 하나님께서 주셨고, 모든 부모가 믿음으로 이렇게 축복하면 하나님께서 그 축복이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그 축복의 권한을 아끼지 말고 자녀와 자손에게 쏟으시기 바랍니다. 부모에게 축복의 권한이 있다는 것은 반대로 부모가 자녀에게 저주의 말을 하는 것도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므로 절대 자녀와 가정 안에 저주의 말을 일체 입밖에도 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도 믿음 안에서 가족 공동체입니다. 교회에서도 저주의 말은 일체 사라지고, 오직 축복의 말이 넘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교회도 행복한 가족 공동체가 될 수 있고, 부흥하는 교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교회,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가장 이상적인 교회는 건물 안에 있는 교회도 아니요, 땅이 넓은 아름다운 동산 위에, 세워진 교회도 아니며, 조직이 잘 되어있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큰 교회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진정한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가 된 저와 여러분의 집이, 에덴동산이 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가정 제단, 곧 주님의 몸 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찾으시는 가장 이상적인 교회는, 바로 저와 여러분의 가정입니다. 그러므로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과 저의 가정이, 주님이 거하시는 몸 된 교회가 되고, 우리가 섬기는 교회가 하나님이 세우신 아름다운 가정이 되어지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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