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메테우스 신화의 땅 카즈베키를 가다
남태식(예술마당 솔 경북지회장)
눈 씻고 보고 또 봐도 만년설은 없었다.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서 몇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이었지만, 여행이란 것이 으레 그렇듯이 가는 길에 여기저기 쉬엄쉬엄 둘러보고 요기도 하면서 카즈베키산에 도착하니 늦은 오후였다. 카즈베키산은 러시아와 조지아의 국경이다. 인간에게 불을 전해준 죄로 산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형벌을 받았다는 그리스 프로메테우스 신화의 원형 전설이 전해지는 산이기도 하다. 카즈베키산은 만년설의 휴화산이라고 알려져 있고 몇 달 전에 산을 올랐던 산악인들이 올린 사진에서도 분명히 설산이었는데, 얼음산이나 빙하봉, 만년설산이라는 뜻을 가진 산 이름이 무색하게도 눈은 없었다. 한여름이어서일까. 기후 온난화의 영향일까. 아니라면 그 만년이 다 지나간 걸까. 트레킹 코스로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희곡 「코카서스의 백묵원」의 무대였던, 지금은 카즈베키 마을이라고도 불리는 주타 마을에서 걸어서 올라오는 이들이 드문드문 눈에 뜨였으나, 우리는 8인승의 산악택시를 타고 산을 올랐다. 산 중턱에는 ‘성스럽다’는 뜻을 가진 ‘츠민다’와 ‘삼위일체’의 ‘사메바’로 이름 지어진 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 교회(성 삼위일체 대성당)가 자리를 잡고 있다. 거대한 산맥으로 둘러싸인 언덕에 오롯이 자리를 잡고 앉은 성당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인생 컷이라도 되는가. 일행 중 유일하게 카메라를 챙겨온 이는 이 성당을 배경으로 한 사진을 찍기 위해서 카메라를 챙겨 왔다고 했다. 언덕에 자리를 잡은 성당은 공사 중인 데다가 원경의 사진을 찍기가 어려웠는데, 하산하다 말고 단체 사진을 찍기 위해 잠시 머물렀던, 중턱으로 올라오자마자 있는 평지의 오른편 주차장 입구에서 좋은 사진을 얻었다. 나중에 들으니 이곳이 포토존이란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니 벽면에 그려진 프레스코화와 성화를 여럿 볼 수 있었는데 밖에서 보기보다 성당 내부는 작았다. 그러나 성당은 카즈베키산의 전망대와 같아서 성당 주위를 돌면서 둘러보는 산의 풍광은 말 그대로 일품이었다.
아르메니아를 여행할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한국의 주요 여행지에 사찰이 많듯이 조지아의 주요 여행지에는 성당과 수도원이 많았다. 트빌리시에서도 여러 곳의 성당을 들렀지만 이후 이틀 동안의 여행 중에도 꽤 여러 곳의 성당과 수도원을 둘러보았다. 전쟁 시 요새로 쓰기 위해 성당 주위를 성벽으로 둘러싼 성당도 있었고 성벽으로 둘러싼 요새 안에 나중에 지어졌다는 성당도 있었다. 전쟁이 잦아서였을까. 한 번 시작된 전쟁이 오래 계속되어서였을까. 카즈베키산 가는 길의 진발리 호숫가 비탈길에 자리를 잡은 이나우리 요새 안의 성당은 요새 안에 나중에 지어진 성당이라고 했다. 협소한 공간에 들이밀 듯이 성당을 지어서일까, 성당과 성벽 사이의 공간이 조금 좁았다. 입구에서 오른편으로 호숫가 쪽을 돌아 뒤편으로 들어섰는데 여러 번 와 본 경험이 있는 안내자가 좁은 통로를 올라가는 계단길이 포토존이란다. 그 말 듣고 올라가다 말고 아래로 내려와 다시 올라가면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 성벽에는 가파르기는 해도 사람들이 올라갈 수 있도록 되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성벽을 오르내렸다. 성벽에 올라서면 아마 한눈에 호수를 볼 수도 있어 좋은 구경이 될 수 있겠구나 싶었지만 나는 성벽에 올라가는 대신에 오르내리는 사람들과 성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성당 안에는 조지아 성당임을 확신할 수밖에 없도록 역시나 프레스코화에 성화가 가득했다.
카즈베키 산으로 가기 전날에는 즈바리 수도원과 스베티츠호벨리 성당을 들렀다. 즈바리 수도원은 산 정상에 있었는데 절벽 아래 맞은 편에 위치한 트빌리시로 수도를 옮기기 전 조지아의 옛 왕국 이베리아 왕국의 수도였던 므츠헤타시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므츠헤타시는 두 개의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형성되어 있었는데 두 강은 아라그비강과 쿠라강으로 이 강이 이곳에서도 트빌리시에서도 쿠라강이라는 같은 이름으로도 불리기도 하는 트빌리시 수도의 므츠바리강으로 흘러간다. 삶이 단순해서일까. 내가 길치이어서일까. 다니면서 같은 이름의 다른 지점을 여럿 만나면서 많이 헷갈렸는데 한국에서의 코카서스 여행객이 많이 늘어나기는 했어도 여전히 빈약한 정보는 여행 내내 아쉬웠다. 즈바리 수도원은 일명 성스러운 십자가상 교회라고도 불린다는데 강 건너 언덕에 세워져 있어서 1996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므츠헤타시 어느 곳에서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중세에는 입구를 돌로 쌓고 성벽을 세워서 요새화하기도 했다는데 그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 므츠헤타시 어느 곳에서나 즈바리 수도원을 볼 수 있듯이 즈바리 수도원에서 므츠헤타시를 건너다보는 탁 트인 전망도 무척 좋았다. 높은 산이나 언덕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일까, 즈바리 수도원 역시 트빌리시의 메테히 성당이나 카즈베키산의 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 교회처럼 여행객에게는 전망대로 안성맞춤이었다.
므츠헤타 시에 자리를 잡은 ‘둥근 기둥’의 ‘스베티’와 ‘생명을 주는’이나 ‘사람을 살리는’의 ‘츠호벨리’로 지어진 ‘생명을 주는 기둥’이라는 뜻의 스베티츠호벨리 성당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성당으로 주위를 성벽으로 둘러싸 요새화한 성당이다. 성당은 11세기 초에 지어졌지만 터에 얽힌 전설은 4세기 초반까지 거슬러 올라가 초기 기독교 전설이 전해지며,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입었던 옷(성의)과 십자가의 진품 조각, 사도 안드레의 발등뼈 등이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산 위를 바라보니 멀리 먼저 들렀던 즈바리 수도원이 보였다. 스베티츠호벨리 성당과 즈바리 수도원은 6명의 수도사가 관리하고 있단다. 스베티츠호벨리 성당에서 즈바리 수도원까지 걸어서 다니며 함께 관리하고 있다는데 문득 보기에도 즈바리 수도원은 성당에서 너무 멀게 보여서 번갈아서 하기는 하겠지만 관리에 힘을 쏟느라 수도는 언제 할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혹 산행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즈바리 수도원까지 오르내리는 일이 수행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는데 낮에는 농사를 지으면서 밤에 수행하는 한국의 모 사찰의 수행자들이 문득 떠올랐다. 이나우리 요새의 성벽은 나중에 지어진 성당이 중앙에 자리를 잡으면서 답답한 느낌이 있었는데 스베티츠호벨리 성당은 평지에 있어서일까, 넒은 마당을 두고 성벽을 쌓아서 확 트인 공간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스베티츠호벨리 성당은 여러 날 동안 둘러본 성당 중에는 규모가 가장 큰 성당이었고, 성당 내부가 다른 성당에서보다 밝아서이기도 해서 다른 성당에서는 지나치듯 본 성화들과 프레스코화를 조금 더 자세하게 보았다. 다른 성당에서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촬영이 가능하다고 했으나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아 촬영이 금지된 다른 성당에서처럼 사진을 찍지는 않았다. 남겨야 했을까. 카톨릭 신자인 함께 간 일행이 성당 내부를 돌면서 반복하는 의례 행위를 처음으로 목격하면서 어쩌면 여기에서의 사진이 나중에라도 중요한 역할을 하겠구나 하고 싶기도 했으나 끝내 찍지 않고 밖으로 나와서 둘러보다가 스타츠호벨리 성당과 즈바리 수도원을 한 컷에 담는 사진 찍기에 열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