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비열전 11-1
제11대 중종(이역)의 여자들
첫째 단경왕후 신씨!
둘째 장경왕후 윤씨!
셋째 문정왕후 윤씨!
후궁
1. 경빈 박씨!
2. 희빈 홍씨!
3. 창빈 안씨!
.
..
9. 숙원 김씨!
중종은 부인 12명,
자녀 20명(9남 11녀)를 두었다.
참 많기도 많다!
아버지 성종처럼 부인도 많고 자녀도 많다.
이를 우리는 父傳子傳(부전자전)이라고 한다.
중종은 성종과 정현왕후 사이에 난 진성대군이다.
이복형인 연산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
이를 우리는 중종반정이라고 한다.
반정의 주역 박원종, 성희안, 유순정의 시대였고
중종은 최초 이들의 바지사장 아니 바지군주였다.
바지왕도 바지사장도 뭐 특별히 할 일이 많았을까?
그저 서류에 도장만 찍을 뿐이다.
그리고 시간이 많으니 뭐 하겠는가?
공부(경연) 열심히 하고
그 스트레스를 여자로 푸는 수밖에
그러니 부인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첫째부인 단경왕후 신씨!
연산군 처남 신수근의 딸이다.
신수근의 아버지는 연산군의 장인
신숭선의 아들이니 처남이다.
신씨는 연산군 5년(1499년) 13살에
12살의 진성대군(중종)과 결혼했다.
1506년 9월 4일!
반정으로 연산군이 쫓겨나고
진성대군이 왕에 오르자 왕비가 된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왕비가 된 지 7일 만에 궁궐에서 쫓겨나
인왕산 아래서 20세부터 71세까지 살았다.
인왕산 치마바위의 주인공이 되셨다.
신씨 아버지 신수근은 반정에 반대했다.
여동생이 연산군 부인이기 때문이다.
반정의 주역 성희안과 박원종 유순종 등이
쿠데타 성공 후 그만 뒀겠는가?
당연히 Out 시키지...
그래서 왕후 신씨는 남편이
왕이 되었어도 왕비가 될 수 없었다.
자고로 여자와 땅은 임자를 잘 만나야 된다고 했다.
중종이 바지왕만 아니어도 어떻게 해보겠는데 우짜겠는가? 그냥 아웃됐다.
그래도 6년간 살을 부비며 살아왔는데
역적의 딸이라고 어찌 내칠 수가 있는가?
그간 쌓아온 정(?)이 있지.!
반정세력들은 그녀의 아버지
신수근의 복수를 우려하여,
''왕비가 죄인의 딸이므로
왕비로서 부적격하옵니다!'' 하자,
''조강지처를 어찌 내친단 말이오?''
하믄서 중종은 손사레를 쳤다고 한다.
그러나 우짤 도리가 없었다.
실권은 중종에게 없었다.
바지사장처럼... 그래서 신씨는
왕비에서 강등되어 평민으로 전락,
인왕산 자락에서 그 긴긴 날과 밤을 홀로 지낸다.
혹시 중종이 옛날 그 애틋한 정을 생각하여
다시 궁으로 불러 줄 것을 기대하며 입고 있던
분홍치마를 벗어 바위에 펼쳐 놓았다고 한다.
중종도 신씨가 그리울 때는누각에 올라
인왕산 치마바위를 쳐다보았다고 한다.
군사용어로 시호통신을 한 것이다.
치마바위 전설이다. ㅠㅠ
Don't forget me!
Forget - me - not(물망초)처럼...
그렇게 기다리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50년을 홀로 보내고 가셨다.
중종나리!
신씨가 나간 후에 새로 후궁으로 장경왕후
윤씨를 맞이하고 신씨를 까마득히 잊어버린다.
인왕산 쪽으로 쳐다볼 시간이 별로 없었다.
''Out of sight out of mind.''
눈에서 멀어지면 맘도 멀어진다!
왜냐하면?
새로운 후궁들 아홉이나 돌보시느라고..
단경왕후 신씨!
자식이라도 하나 있었다면
외롭지라도 않았을 터인데 아쉽다.
둘째부인 장경왕후 윤씨!
성종 22년(1491년) 7월에 파평 윤씨
윤여필과 어머니 순천 박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8세 때 어미를 여의고
이모인 월산대군 부인에게서 자랐다.
외삼촌은 당연히 반정의 주역인 박원종이다.
단경왕후가 아웃 되자마자
16살에 후궁으로 입궐한다.
그리고 중종 즉위 2년 8개월 만에 중전이 된다.
그로부터 8년 후 원자(인종)을 낳고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효혜공주와 피붙이 인종을 남겨두고...
참 그놈의 산후병!
그니께 운동 열심히 해야 했었는데...
어의란 분들!
예방의학을 잘 몰랐던 모양이다.
산후병으로 그 많은 왕비들이 갔으면
왕비들에게 운동 열심히 시켰어야지!
운동장에 집합시켜 뺑뺑이도 돌리고..
논산 훈련소처럼 선착순도 시키고..
요새 많이 다니는 등산도 시켰어야지!
그래야 흠~흠~
하체가 튼튼해지는데...^^
의사, 의원하면 화타가 생각난다.
조조의 주치의였고 중국 최고의 명의였던
'화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저에게는 두 형님이 계십니다.
첫째는 초일류의 의사로서 섭생을 통하여
애초부터 병이 생기지 않도록 하셨고,
둘째는 병이 커지기 전에 조기에
이를 치료하는 일류 의사였습니다.
세째인 저는 큰 병을 수술하는 등 병이
이미 커진 것을 치료하는 삼류 의사입니다"
우리는 화타가 최고라고 생각하는데..
그는 다르게 생각하네요.
누구 말이 더 타당할까?
편집자는 화타가 맞다고 생각한다.
예방이 치료보다 낫다.
문정왕후 윤씨는 다음에...((((((((
내일 또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