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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이름-여호와 이레(제21일. 2026.4.5. 주일)
창22:1-14 *찬송:161장
하나님의 이름은 여러분의 귀에 가장 익숙한 ‘여호와 이레’입니다. 여호와 이레는 무슨 뜻입니까? ‘여호와께서 준비하심’입니다. ‘하나님이 보신다’입니다. ‘준비하시는 하나님, 보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말을 바꾸면 하나님은 보시고, 예비하시고,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누구나 크고 작은 위기들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위기의 대부분은 우리 자신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찾아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예측할 수 없는 방법으로 찾아오는 이런 인생의 위기들은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위기를 만났을 때 어떻게 반응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위기라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을 아주 힘들고 곤고하며 절망스럽게 할 수 있지만 반면에 새롭게 도약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모리아산의 사건(창22:1-14절)을 통하여 오랜 세월동안 참고 기다리시면서 아브라함의 신앙을 성장 시켜오시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KO펀치를 날리고 승리하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 모습은 주인의 말을 듣지 않고 제 마음대로 고집 부리며 도망가던 당나귀가 주인의 손에 끌려 말없이 가는 것과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참으로 오랜 세월동안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앙을 갖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이삭을 낳기까지 25년과 브엘세바에서 이삭을 낳고도 37년이라는 세월을 허비합니다. 그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것이 ‘모리아 산으로 가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입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아들, 자신의 생명보다 더 사랑하는 아들,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서 지금 번제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엄청난 시험입니다. 이 말을 지금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에게 명령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가장 사랑하는 그것을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도대체 ‘모리아산으로 가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기에 아브라함이 그토록 오랜 세월을 떠나지 못하던 브엘세바의 삶을 정리하고 헤브론으로 돌아갔을까요?
본문에 나오는 아브라함은 자신의 생애에서 이보다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런 시절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동방의 거부였습니다. 수많은 양떼들을 거느린, 팔레스타인 인근에서는 가장 강력한 부자였습니다. 창14:14절에 의하면 양떼와 소떼를 거느린 목동의 수만도 최소한 318명이 넘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100세에 그토록 소원하던 아들을 얻었습니다.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아브라함의 생애에서 이때보다 더 행복했던 때가 있었을까요? 하나님께서 기업을 이을 아들을 주셨으니 그 아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대견해 보였겠습니까?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아브라함은 자신이 살아오면서 지금보다 더 행복했던 때는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때를 보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아브라함에게도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창21장에서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이 이삭이 번제에 쓸 장작을 지고 갈 정도로 자랐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실 때가 언제였는가 하면, 18장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입니다. 이삭이 태어나기 열 달 전입니다. 창18:10절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모리아산의 사건은 창21:33절 말씀 후에 주어진 사건입니다. 창21:33절에는 어떤 것이 있었습니까? 4월1일 특새 때 말씀 드렸는데 아브라함이 브엘세바가 좋아서 그곳에 에셀 나무를 심고 평생 그곳에서 복을 누리며 살겠다고 하나님께 복을 내려 주시기를 찬양하고 예배한 곳이었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은 그 응답으로 모리아 산으로 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모세가 창세기를 통하여 우리에게 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브엘세바에 머무르지 말고 떠나라’그래서 아브라함이 헤브론으로 돌아 갑니다. 그래서 헤브론이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의 믿음의 고향이 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하나님이 십 몇년만에, 아브라함 앞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얻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약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도 한두 달이 아니고, 일이 년이 아닙니다. 무려 십 몇 년입니다. 그때도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잘만 살아가고 있었던 아브라함입니다. 이삭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사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손자뻘에 해당합니다. 100살 차이가 나는데, 누가 아들이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니 얼마나 사랑스러웠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이삭 보는 재미로 살았습니다. 아주 입이 귀에 걸려 있었습니다. 이 장면을 하나님이 물끄러미 보고 계셨습니다. 그러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이 너무 잘되어서 하나님을 잊고 살면 하나님이 부르십니다.물론 부르신 목적이 있습니다. 1절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아브라함을 테스트할 목적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부르심에 아브라함은 즉각 응답했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언제부터인가 하나님께 덜 집중하며 살았습니다. 이삭이 태어나고는 거의 그래 왔었던거 같습니다. 그런데 덜컥 하나님이 찾아오셨으니 얼마나 놀랬겠습니까? 그리고 그 다음에 이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은 아브라함의 심장을 멈추게 할 정도였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능력으로 낳은 자식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낳은 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아들인데도 그는 하나님께 감사할 줄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기쁨을 거두어 가실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에게 준 아들을 돌려주라’고 하십니다. 이삭을 거두어 가시고자 하는 것은 아브라함을 통한 구속사의 계보를 중단하시겠다는 의미도 됩니다. 아브라함과의 모든 교제를 단절하시겠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참으로 두려운 요구인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어떤 사람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이삭을 바치면 다시 언약을 이어갈 아들을 주실 것을 믿고 믿음으로 드렸다고 합니다. 예배를 회복하라는 말씀입니다.
2절‘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왜 이러한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그렇게 사랑하라는 명령입니다. 구약전체의 핵심은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베드로사도가 예수님의 배반하고 자기 길로 가버렸을 때 예수님은 그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이렇게 묻습니다. 요21:14절‘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세 번이나 물으십니다. 이것이 가장 강력한 하나님의 요구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이런 질문앞에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정말 여러분은 이 세상 그누구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십니까?
창17:17절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긴 밀당이 이어진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그랬으니 이삭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존재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전부였습니다. 이삭이 아브라함의 마음을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안에는 하나님이 거할 자리조차 없어졌습니다. 이러면 문제가 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사람은 하나님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이유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자리는 다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다는 말은 하나님 자리를 다른 어떤 것으로도 채워서는 안 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삶에 시험을 통하여 간섭하셨습니다. 그것도 크고 어려운 시험입니다. 일생에 한 번 있을까 하는 인생 시험을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마지막으로 주신 시험은 네 사랑하는 아들, 독자를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자기보다 더 중요한 존재입니다. 내가 죽어도 내 아들만은 포기할 수 없다고 주장할 정도로 그에게 아들을 너무나 중요한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그 아들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을 나보다 더 신뢰하지 않으면 이 시험은 통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나보다 더 신뢰하는 것이 바로 진짜 믿음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순종이 바로 믿음입니다. 3절‘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번뇌에 휩싸였지만 아브라함은 지체하지 않고 순종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이삭과 함께 번제에 사용할 나무를 쪼개어 하나님이 말씀하신 장소로 떠났습니다.
브엘세바에서 에셀나무를 심고 찬양하고 예배했던 아브라함이 이후에 잊은 것이 있는데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을 잊고 삽니다. 이전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때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의 교제의 의미로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브엘세바에서는 아들을 낳고도 제단을 쌓지 못하였고, 아들이 젖을 떼는 날 사람들을 초청하여 성대한 잔치를 베풀면서도 하나님께는 제사를 드리지 못합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신앙이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들도 무엇 때문에 예배를 못드리거나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그런 아브라함에게 제사를 요구하십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모리아산의 사건은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그 어떤 두려움과 중요한 것이 아브라함에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오랜 세월 동안 떠나지 못한 브엘세바의 삶을 정리하고 헤브론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아브라함의 삶을 살펴보면 놀라운 것을 발견합니다. 이제 그는 오직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기 위하여 살아갑니다. 이것이 모리아산의 사건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으로 올라가서 찬양과 예배를 드리려고 합니다.
14절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아브라함은 그 땅을 특별한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쓸 것을 미리 아시고 준비하셨다가 때를 따라 공급해주시는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마6:32절‘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빌4:19절‘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으면 시험이 옵니다. 예배를 잘 드리시면 풍성한대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여호와 이레’라는 하나님의 이름은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준비하시는 역사를 체험하였던 모리아산을 향하여 불렀던 이름입니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신다’는 이 말을 들으면서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들도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호와 이레’라는 하나님의 이름과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일들에서 우리의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 주시는 분으로 믿습니다.
당장 보기에는 약속이 하나도 이루어지는 것 같지 않지만 결국 약속은 지켜지고 하나님은 승리하십니다. 역사의 마지막 날, 하나님은 승리하십니다. 그것을 가리켜 부활신앙이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믿음이 생겼습니다. 모든 악한 권세와 죽음의 권세와 질병과 절망과 좌절을 꺾으시고 영광가운데 승리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기 시작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예수님께서 요11:25-26절‘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말하자 마르다는 태도를 바꾸어 요11:27절‘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참된 믿음이란 그리스도를 바라볼 뿐 만 아니라 부활의 신앙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오늘 부활절을 맞이하여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주감리교회에서 특새에 참여한 저와 여러분들의 인생속에 인생의 주인으로 받아들이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리려고 모리아산에 올라간 것처럼 우리 자신을 기쁘게 드리기로 결단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여호와이레 하나님이 약속한 자유가, 여호와이레 하나님이 약속한 새로운 인생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여호와 이레의 놀랍고 새로운 인생이 열리는 상주감리교회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