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 20회원들 대모산에 올랐다.
즐거웠던 건강산행,
아쉬움을 간직하고, 다음 달
4월 둘째 일요일을 기약하며
수서지하철역으로 내려왔다.
우선 화장실로 들어서서 볼일을 보는데
나는 오늘 따라 볼 일이 왜 이리 긴지?
다른 친구들은 벌써 화장실을 빠져나갔다.
혼자 쓸쓸히 볼 일을 보는데
안개 낀 마을로 기차가 들어오듯이
아련한 전철소리만 화장실을 울렸다.
볼일을 보고 수도꼭지를 틀며 거울을 보는데
“흐흑..흐흑...”
분명 수도꼭지를 틀었는데
100%순수 물소리가 아니었다.
이게 무슨 소리야?
고개를 뒤로 돌려 대변칸 쪽을 바라보았다.
“저 기 요.....”
대변칸 중 하나가 분명 나를 불렀다.
“저기요, 밖에 누....누구......계신 거죠?”
목소리의 성량이나 어투로 보아
분명 여자목소리였다.
내 착각인가? 아니 분명 남자화장실이 맞는데.....
일단은 대답을 한 뒤 상황을 지켜보고자 마음을 먹었다.
“예...왜 그러시죠?”
조심스레 대답하며, 그냥 갈까 생각이 들었다.
“죄송한데요....”
“예....”
“제 말 좀 들어주실 수 있어요?”
“예, 말씀하세요.”
그녀는 잠시 말을 읽다가 흐느끼는 소리를 냈다.
”죄송해요, 제가 오늘 남자친구와 헤어졌거든요.“
“아...네...”
“그래서 울려고 화장실로 뛰어갔는데
여자화장실이 꽉 차있고 줄까지 서 있는 거예요.“
“할 수 없이 이리로 뛰어 왔죠, 마음 놓고 울고 싶은데
공간은 없고, 마침 남자화장실이 비어 있길래.“
“그래요 잘 오셨어요.”
얼떨결에 말하긴 했지만, 내가 이 화장실 주인이라도 되는 양,
방석을 깔고 차대접이라도 하는 모양으로 대답 한 셈이다.
“왜 헤어졌어요?”
그녀의 이야기가 거의 끝마칠 때 쯤 해서
깨달은 게 있다고 한다면
초반에 그저 위안을 주고 싶었던
‘착한사람’으로서의 내가, 운명을 핑계 삼아
여자를 꼬실만한 기회를 갖게 됐다는 것이다.
나는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최대한 급하게
“힘이 되어드릴게요, 언제든 연락하세요,”라는 글을 적고
그 밑에는 그 글자보다 크고 또박또박하게
내 핸드폰 번호를 적어 놓았다.
동시에 써놓은 쪽지를 대변칸 문틈사이로 넣었다.
‘바스락’ 종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종이 집는 소리가 찰바닥하고 들려왔다.
“그럼, 기운내세요.”하고는 재빨리 뛰어 나왔다.
저녁 무렵 은근히 기대를 했던
핸드폰의 메시지신호가 울렸다.
그녀의 문자메시지가 도착하였다,
“오늘 정말 감사했어요,
감사한 마음을 갚아드리고 싶어요.
다음에 꼭 한번 뵐 수 있을까요?“
“그래 '착한사람'이 되자.”
4월 둘째 일요일인 4월 13일엔
그녀를 초대하여 대모산산행을
함께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우리 총무님! 강남구청 청소과에 표창장을 상신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