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세입자협회 칼럼 8]
- 10월 6일 세계 주거의 날을 맞아 ‘주거와 희망’을 생각한다.
전국세입자협회 운영위원 박동수
UN은 1986년에 10월 첫째 주 월요일을 ‘세계 주거의 날’로 지정했다.
미래의 자녀들을 위해 더 나은 주거환경을 만들고, 주거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만든 것이다. 우리나라도 해 마다 주거단체들을 중심으로 이 날을 기려왔다. 작년에는 ‘머무를 권리’를 주제로 하여 용산재개발 철거문제, 주택임대차계약의 개정을 통한 주거의 안정문제를 제기했다.
주택은 햇볕이 잘 들고 통풍이 좋은 안전한 구조의 튼튼한 주택에서 일정면적이상의 주거공간에 거주하면서, 쾌적한 주변자연환경과 직장과 학교, 병원 등 공공시설의 접근성이 좋은 곳에 위치해야 한다. 그래야 단순한 잠자리가 아닌 안락한 휴식처의 역할을 하고, 출퇴근에 지치지 않고, 어린이 등 가족 구성원은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현재 세계인구 중에 수도와 전기 그리고 하수도 시설이 없는 곳에서 생활하는 도시슬럼과 농촌거주인구가 72억 인구 중에서 약 15억 명이나 된다. 이렇듯 세계 여러 국가에서 주거의 문제가 다양한 형태로 제기되고 있다. 아래는 몇몇 다큐와 책에 언급된 안타까운 사례들이다.
시리아의 A가족은 전쟁을 피해 인근 레바논으로 피난했다. 전쟁피난민이다. 레바논 외곽의 방3칸짜리 방을 임대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피난시설이 없기 때문에 다른 피난민 가족이 이 아파트에 세 들어오면서 이제는 1가족이 방1개씩을 차지하고 있다. 방3칸 아파트에 20여명안팎의 3가족이 뒤엉켜 살고 있다. 빨리 전쟁이 끝나 고향에 돌아가길 바란다. 그러나 전쟁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IS(이슬람국가)세력의 대두와 함께 미군의 공습으로 전쟁이 확대되고 있다. 설령 전쟁이 끝난들, 고향의 집이 제대로 있을 지, 사회의 질서가 회복되어 경제활동과 애들의 학교생활이 가능할지 걱정이 태산이다. 애들은 밖에서 전쟁놀이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A가족은 전쟁난민생활을 끝내고 언제쯤 고향 자기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중국의 B씨는 농민공이다. 가족(부모, 처, 아들)을 고향인 농촌에 두고 떠나 상하이에서 건축 일을 하고 있다. B씨가 머무는 곳은 상하이 외곽 낡은 아파트다. 방마다 독립적인 칸막이 없이 이층 구조로 만들어, 아래층에 몇 명 위층에 몇 명씩 수용하여 수 십 명이 잠을 자는 곳이다. 휴식을 취하고 취사를 하는 집이 아닌, 잠을 자는 곳이다. 임대료를 한 푼이라도 아끼고 저축하여 경제적으로 더 나은 미래, 가족과 함께 할 날을 위해 오늘의 어려움을 참고 있다. 안전사고로 동료가 장애인이 되었다. 보상도 변변하게 받지 못했다. 건강해야 일도 열심히 하는데….제대로 휴식을 취해야 하는데…휴식을 취할 공간이 없다. 언론에는 중국 공산당 최고 지도간부였던 이의 천문학적인 부패혐의가 공개되고 있다. 분노심이 인다. B씨는 건강하게 원하는 돈을 모아 가족과 함께 살 수 있을까?
중국의 C씨 아주머니는 중국본토 출신으로 자녀 교육문제로 홍콩으로 건너와 영주권을 신청 중에 있다. 가족이 함께 왔는데, 남편과 갓난아기, 남자 어린이 이다. 자녀를 위해 ‘홍콩드림’을 꿈꾸는 이주민이다. 거주지는 홍콩의 낡은 소형아파트로 주변환경이 삭막하다. 건축폐자재가 널려 있고, 아파트도 관리가 안되 어 금이 가고 유리창이 깨어지는 등 슬럼화 되어 있다. C씨 아주머니는 우울증이 있는데, 갓난아기를 등에 업고 생활하는 그녀가 위태롭게 보인다. 몇 번이고 아파트에서 몸을 던질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C씨는 홍콩인들로부터 차별 받고 배제되어 있다. 홍콩 인들은 중국본토에 대한 반감을 이 이주자들에게 표출하고 있고, 영주권신청도 계속 미루고 있다. 삭막한 주거환경에서 그리고 낯선 곳에서 차별 받고 배제되면서, 우울증을 겪고 있는 애 엄마의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그녀의 소원이 이루어져 더 나은 주거환경에서 안정적인 영주권자의 삶을 이루길 바라는 마음이다.
미국의 미주리 주 퍼거슨시에 거주하는 D군은 20대의 흑인 청년이다.
최근 백인경찰이 비무장의 흑인청년을 총격하여 사망시켜, 대규모 인종시위가 일어났던 곳이다.
D군이 거주하는 곳은 흑인 거주지역이다. 단층집이 연달아 있는데 거리에 활기가 없고 땅이 질퍽거리는 등 관리가 되어 있지 않아 슬럼가 분위기이다. D군은 마땅한 직업이 없다. 어릴 때 친구들이 마약을 판매하다 하나 둘 감옥에 갔다. 빈곤과 인종 차별 속에서 젊은 그가 양질의 좋은 일자리를 구해, 쾌적한 주거환경이 갖추어진 곳에서 지금 보다 더 나은 미래의 삶을 꾸려 나갈 수 있을까?
한국의 김씨는 50대 말로 고시텔에서 생활 중이다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 생활한지 몇 년이 되었다. 그에게 고시텔은 일시적인 거처가 아닌, 집인 것이다. 가족과는 이미 헤어져 살고 있다. 일용직 노동자인 그는 안정적인 일자리가 없다. 일이 없을 때 같이 낮술을 마셨던 고시텔 동료가 얼마 전 고시텔을 떠나 노숙자가 되었다. 알코올 중독으로 고시텔 월세를 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동료가 노숙자가 되는 것을 보면서도 자꾸 술을 먹게 된다.
김씨에게는 휴식과 문화생활이 없다. 한 평 남짓한 공간은 잠을 잘 수는 있어도 일상적인 휴식공간이 되지 못한다. 술 외에 즐거움을 주는 것이 없다. 그도 젊었을 때 고향을 떠나 열심히 일해 돈을 벌고 안락한 가정을 꾸리기도 했다. 사업실패에 따른 좌절….. 김씨는 육체적인 건강과 정서적인 안정을 위해서도 이 고시텔을 떠나 쾌적한 환경에 거주해야 한다. 김씨가 자력으로 그러한 환경을 만들 수 있을까?
세계주거의 날을 맞아 주거환경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해 본다.
쾌적한 주거환경은 사람에게 휴식을 제공하여 정서적으로 안정시켜주고 건강을 유지하여 미래의 생산활동을 가능하게 해준다.
사람이 건강하게 노동을 하여 생산성을 높이려면, 쾌적한 환경에서 편안한 휴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노동권의 실현을 위해서도 주거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위의 사례에서 보듯, 소득을 향상시킬 질 좋고 안정적인 일자리가 있어야, 쾌적한 주거환경을 누릴 수 있다.
인권은 크게 자유권과 사회권으로 나뉜다.
자유권이 국가의 불법적이고 부당한 행위에 대해 개인의 생명·재산·자유 등을 요구하는 소극적 권리라면, 사회권은 '실질적 평등'과 분배 정의를 핵심 내용으로, 국가에 그 이행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권리이다. ‘주거권’은 대표적인 사회권이다. 따라서 개인의 노력으로 쾌적한 주거환경을 누릴 수 없다면, 정부나 지자체에서 주거권을 인식하고,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환경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고 보장해야 한다.
송파 세 모녀 자살사건 같은 비극이 재연되지 않길 기원하며, 10월 6일 ‘세계주거의 날’의 취지와 그 의미가 많이 알려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