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들의 저와 같은 논리라면 고려왕권을 정면으로 부정하며 군사혁명을 일으킨 태조 이성계도 조선을 개국한 영웅이 아닌 일개 쿠테타 수괴로서 권력을 찬탈한 역도에 불과할 뿐이며, 궁예를 몰아낸 왕건, 신라에 반기를 든 견훤도 같은 맥락에서 쿠테타의 수괴이며, 역적의 한명일 뿐이다.
박근혜에 대한 처절한 열세에 놓여 부진을 면치 못하는 야권에서 주체사상이나 읊조리던 정신빠진 좌파들이 상식하던 “5.16 쿠테타 론”을 음차하여 연일 시끄럽게 떠들고 있다. 그들은 역사성을 앞세워 “5.16 혁명”을 “5.16 쿠테타”로 역사왜곡에 혈안이 되어 있다. 국민들 눈과 귀를 가리고,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자 국민의 혈세를 빼돌리고 기업에게 갈취를 일삼아 수조원 아니 그 이상의 천문학적인 돈을 적에게 가져다 바치던 “햇볕정책”의 아류들이 언제부터 역사성으로 무장하고 고귀한 철학을 가지고 살았는지 고소를 금할 수 없다.
역사는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생각과 행위의 결과를 판단하는 후세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 일개 정치세력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될 수단이 아니다.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거짓을 일삼은 “햇볕정책”의 결과는 북의 핵무장이라는 민족의 재앙을 불렀고, 저자세 굴욕 대북정책은 “천안함 도발”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져 꽃다운 이 땅의 수십명 젊은이가 바다 속에서 죽어갔던 참상을 불렀다. 그러한 반역에 대한 반성은 얼마큼 하고 있기에 감히 역사성을 앞세워 “5.16혁명”을 쿠테타, 반역으로 왜곡하고 있는가. 역사가 두렵지 않는가 말이다.
박정희 대통령과 철저하게 반대편에 섰던 사상계 장준하는 “5.16군사혁명”을 보고 “4·19 혁명이 입헌 정치와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민주주의 혁명이었다면, 5·16 혁명은 부패와 무능과 무질서와 공산주의의 책동을 타파하고 국가의 진로를 바로 잡으려는 민족주의적 군사혁명이다”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4.19혁명 이후 윤보선 - 장면내각 하에 하루 평균 8번의 시위가 전국적으로 일어났고, 극심한 가난과 배고픔이 민초의 목줄을 죄고 있었으며, 지배층의 부패와 타락은 극에 달해 있었다. 홀홀단신 한강대교를 건넌 혁명가 박정희의 소식을 처음으로 접한 윤보선 대통령의 첫마디는 "올 것이 왔다"였다. 결국 올 것은 올 수 밖에 없다는 당시의 상황을 한마디로 함축했다.
인류역사상 대부분의 군사혁명은 권력투쟁의 하나 였을 뿐이며, 대중을 고통 속에 몰아넣는 독재와 가난으로 이어졌을 뿐이다. 또한 피의 숙청을 통해 정적을 제거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혁명의 대상이었던 윤보선 대통령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았다. 윤보선 대통령은 자유의사를 통해 박정희 대통령과 두 번이나 대선을 치루어 패배했다.
권력찬탈이 목적이었다면 윤보선 대통령은 제거 일순위였으며, 박정희 대통령의 반대편에서 두 번이나 대선을 치루지 못했을 것이다. 아울러 “5.16혁명”은 반만년 내려왔던 숙명과 같은 가난과 패배주의를 일소하고, 대중들에게 민주주의의 향유와 풍요의 선물을 내려준 유일무이한 위대한 혁명이었다.
만약 선거에서 패배하면 박정희 대통령은 승리한 권좌의 일순위 제거대상이 될 것이고 결코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차라리 혁명당시 가졌던 막강한 무력과 힘으로 권좌에 올라 권력을 가지면 그만인 것을 목숨을 걸고 직접선거에 나서야 할 이유가 있었는가 말이다. 그러함에도 박정희 대통령의 진심을 외면하며 역사를 왜곡하며 정치판에 빌붙어야 하겠는가. 아니 그런가 말이다.
역사는 우리의 정신을 후세에 전하는 숭고한 것이다. 역사 앞에 거짓이 있을 수 없다. "5.16 혁명"은 이땅에 기적을 일군 위대한 결단이었다는 것을 대중은 알고 있고, 위대한 혁명이라 부른다. 그러한 위대한 혁명을 일개 정치세력이 권력을 쥐고자 농단할 수단이 아니다. 정치판의 떡고물이나 주어 먹겠다고 역사를 왜곡하는 일부 못된 무리들의 작태는 왜놈의 역사왜곡과 하등 다를게 없어 보인다.
(프런티어타임스 기고논객 정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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