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4장의 비유에 대한 묵상
예수께서 바닷가에서 무리에게 들려주신 비유는 다음과 같다:
1.
씨 뿌리는 자가 씨를 뿌릴 때, 네 가지 종류의 땅에 떨어졌다. 그 땅에서는 각각 그 씨가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세 가지 땅이요, 한 가지의 땅에서는 좋은 열매를 많이 맺었다.
2.
여기서 씨는 말씀이요, 땅은 사람들의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아니, 말씀을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믿는 마음이냐 완악한 마음이냐를 의미할 것이다.
3.
그리고 이렇게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는 완악한 자들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다. 그러나 믿는 자들에게는 별도로 설명해 주신다.
4.
21~25절: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감추어두려고 함이 아니라 등경 위에 두어 모든 사람에게 비추려 함이다. 내가 말씀을 전하는 것도 등불과 같아서 모든 사람에게 그들의 심령 상태를 비추려 함이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감추지 않고 드러낼 것이요, 숨기지 않고 나타낼 것이다. 당당하게 말할 것이다. 그러므로 듣는 태도를 주의하라. 그렇게 들으면 그렇게 될 것이다.
5.
26~29절: 땅에 씨를 뿌렸는데, 밤낮 자고 깨는 동안에 그 씨가 자라나지만, 그 사람은 어떻게 그 씨가 자라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씨는 싹을 내고 이삭을 내고 곡식이 충만해진다. 그리고 추수 때가 되면 낫을 댄다. 여기서 말하는 씨앗은 말씀이다. 무슨 말씀이든지 처음에 땅에 떨어지면 그것은 싹을 내고 결실을 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처음에 뿌려진 그 씨앗이 어떤 씨앗인지를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어, ‘효복음’으로 일가(一家)를 이룬 인천의 최성규 목사를 보면 그에게 뿌려진 처음의 생각은 아주 작은 씨앗이었을 것이다. 물론 ‘오중복음 삼박자축복’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수많은 사상들이 결실을 하여 추수 때의 낫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 비유를 듣고 있는 유대인들도 추수의 낫을 통해서 곳간에 들일 알곡이 될지, 아니면 불에 태워질 가라지가 될지는 사실 그들의 마음에 처음에 씨가 떨어질 때 결정된 것이다. 그러므로 주의해야 한다. 무엇을 듣는가? (막
4:24).
6.
30~32절: 이것은 역시 같은 이야기다. 겨자씨 한 알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것은 처음에는 땅 위의 모든 씨앗보다 작지만 자라나서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깃들일 만큼 자라난다. 여기서도 겨자씨는 말씀이다. 그것은 처음에는 아주 작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 말씀은 자라나서 거대한 사상을 이루고 그 사상에 깃들인 사람들을 감당할 수 있는 거대한 가지를 가진 큰 나무가 된다. 이런 나무로는 ‘효복음,’ ‘오중복음,’ 그리고 현재 커다란 교회와 수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있는 이단들 무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 시작은 아주 작은 생각 또는 말씀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자라고 또 자라서 수많은 사람이 깃들일 만큼 자라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깃들어 있는 곳이 어떤 나무인지가 중요하며, 그렇게 되기 위해서 처음에 어떤 씨앗을 품었는지 중요하다.
7.
그러므로 사람이 무엇을 듣는가가 중요하다(24절). 그가 들은 것(말씀)은 그것으로 기준이 생기게 되고 모든 것을 그 기준에 의해 판단하게 된다.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신 것은 그런 이유다. 적은 것이지만 그것을 분별하지 못하면 그 생각이 자라나 기준이 되고 가치관이 되어 그 생각이 만들어내는 결실을 하게 될 것이다. 말씀은 행동의 씨앗이다. 지금 주님은 등불을 가져와 사람들의 생각 속에 감추인 것을 드러내신다. 예수께서는 세상에 오셔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참 빛이시다(요
1:9). 그리고 그 생각은 행동을 낳게 되고 그리고 추수 때가 되면 각 사람이 행한 대로 낫을 대는 추수를 할 것이다.
8.
그러므로 마가복음 4장의 비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말씀의 씨앗을 받는 사람들의 태도가 중요하다.
②
주님은 빛으로 각 사람의 마음을 비추신다. 그리고 판단하신다.
③
사람이 무엇을 듣는지 주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들은 것(말씀)은 반드시 자라나고 판단근거가 되고 가치관이 되기 때문이다. 그 가치관은 반드시 심판의 추수 때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판단을 받게 될 것이다.
④
그러므로, 처음에 씨앗을 어떤 것을 심었는가가 중요하다. 즉, 한번 씨가 땅에 떨어지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라고 자라나서 그 생각이나 사상이 결실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실은 알곡과 가라지로 각각 갈라지는 추수 때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유대인들이 예수께 하는 반응을 볼 때는 그들은 가라지임에 틀림없다.
⑤
이와 마찬가지로, 겨자씨와 같은 작은 씨앗(말씀)이 땅에 떨어지면 큰 나무로 자라나 공중의 새들이 깃들이게 된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도 자라날 것이요, 그렇게 나쁜 씨앗들도 자라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발람의 교훈이나 니골라당의 교훈을 받아 들인 버가모교회도 나올 것이다.
l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계시록
2:14~15).
⑥
그러므로, 마가복음 4장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주님의 진리를 대하는 사람의 태도가 중요하며, 그 태도는 처음에 어떤 말씀을 받아들였는지가 결정한다. 그것이 어떻게 자라났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자라나면 판단이 생겨 그 판단으로 진리를 거스르게 된다.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은 지금 사람들이 왜 자신의 말씀과 가르침을 배척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씨앗을 받지 않고 세상의 가르침이나 발람의 가르침을 받아 완악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듣고 있는지를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바른 말씀(씨앗)도 분명히 이렇게 자라나 공중의 새들이 깃들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공중의
새’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둘 다 사용되었다.
l 시편 104:
12 (긍정적인 의미-하나님의 복을 받아) 공중의 새들도 그 가에서 깃들이며 나뭇가지 사이에서 지저귀는도다
l 에스겔 32:4
(부정적인 의미-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내가 너를 뭍에 버리며 들에 던져 공중의
새들이 네 위에 앉게 할 것임이여 온 땅의 짐승이 너를 먹어 배부르게 하리로다
l 사무엘상
17:44
(부정적인 의미) 그 블레셋 사람이 또 다윗에게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살을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하는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