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최씨 문화유산. 제3부 국가지정문화재. 1. 국보. 국보 제47호,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
전주최씨가 만들었거나, 가지고 있거나, 배향되었거나, 밀접한 상관을 가진 문화재.
하동 쌍계사 대웅전 앞에 서 있는 이 비석은 신라시대 비석으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비문 전체가 완전하게 해독된 매우 소중한 고고학 자료이다.
당시에 살았던 사람이 직접 돌이나 쇠붙이에 새겨 놓은 금석문(金石文)은 후세 사람이 베껴 적어서 전해오는 문헌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은 신뢰도를 가진 매우 중요한 고고학 자료이다.
진감선사(眞鑑禪師) 혜소(慧昭, 774~850)는 전주최씨 최창원(崔昌元)의 아들이다.
선사의 법휘는 혜소요 속성은 최씨이다. 그 선대는 한족이며 중국 산동성 명문가 출신으로 수나라가 요동을 칠 때 예맥에서 많은 사람이 죽었고 뜻을 굽혀 그곳 백성이 된 사람이 있었다. 당나라에 이르러 우리나라를 네 개 군으로 나눌 때 지금의 전주 금마 사람이 되었다. <진감선사대공탑비문>
진감선사대공탑비문은 경주최씨의 시조 최치원(崔致遠)이 지었다.
서기 32년 봄에 육부의 이름을 고치고 각각 성을 하사하였다. 양산부는 양부로 고치고 그 성을 이씨로 하였으며 고허부는 사량부로 고치고 그 성을 최씨로 하였으며 대수부는 점량부로 고치고 그 성을 손씨로 하였으며 간진부는 본피부로 고치고 그 성을 정씨로 하였으며 가리부는 한비부로 고치고 그 성을 배씨로 하였으며 명활부는 습비부로 고치고 그 성을 설씨로 하였다. <삼국사기 유리이사금>
이 기록은 오랜 동안 한국인의 성씨가 발생한 배경으로 인식되어 왔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 하지만 해방 후에 발견된 6세기까지 신라비석에서 성씨는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 사성(賜姓) : 임금이 성씨를 만들어서 내려 주는 일.
* 사량부(沙梁部) : 신라시대 경주 6부의 하나. 사량부에서 경주최씨가 나왔다.
국보 제242호, 울진 봉평리 신라비에는,
524년 1월 15일 훼부 모즉지 매금왕.
이라고 적혀 있는데 훼부는 양부이고 모즉은 법흥왕의 이름이고 지는 “님”처럼 이름 뒤에 붙는 존칭어이고 매금은 신라왕을 호칭하는 말이다.
* 양부(梁部) : 신라시대 경주 6부의 하나. 신라 왕실을 포함한 지배세력.
만약 <삼국사기> 사성기록이 사실이라면 양부가 이씨 성을 받았다고 했으므로 법흥왕은 김씨가 아니라 이씨가 되어버린다.
사성한지 500년 세월이 흐른 후에 세운 비석에 성씨 대신 아직도 부가 적혀 있다는 것은 사성이 사실이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이다.
또 전주최씨의 뿌리에 관해서도, 문성공계 두 번째 대동보 <건륭보 최씨본원>에 도
운부군옥에 이르기를, 강태공 후손이 나라를 사양하고, 최읍에서 살면서, 성을 최씨라고 했는데, 후손이 청하에서 살고, 박릉에서 살면서, 유명한 성씨가 되었다고 한다. 고운 최치원이 지은, 혜소 스님 비문에 이르기를, 최씨의 선조는 본래 한나라에서 벼슬 하던 사람이다. 대대로 산동에서 살다가, 수나라 양제가 고구려를 정벌할 때, 많은 사람이 죽고 또 포로가 되어, 고구려 예맥 땅에서 살아 우리 백성이 되었다. 당나라가 우리나라를 네 개의 주로 나눌 때, 전주 금마 사람이 되었다. 지금 전주나 금마로 본관을 사용하는 사람은, 모두 그들의 후손이라고 한다. 혜소는 속성이 최씨이다. 예맥은 지금의 춘천, 강릉 등지이다. <건륭보 최씨본원>
* 건륭보(乾隆譜) : 1743년(영조 19) 전주 정수사에서 간행한 문성공계 전주최씨 2 번째 대동보.
운부군옥은 원나라 음시부가 만든 인류 최초 백과사전이다.
제나라 강태공 후손이 임금 자리를 사양하고 최읍에서 살았는데 그리하여 성이 만들어졌고 후손이 청하에 살고 박릉에서 살면서 유명한 성씨가 되었다. <운부군옥>
成請老於崔崔杼許之二相弗聴曰崔宗邑不可. <사기 제태공세가 경공 원년(BC547)>
최성이 “최읍에서 늙어 죽게 해 달라”고 청하자 최저는 그것을 허락했으나 두 사람이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서 “최읍은 최씨 종가가 있는 읍이라서 안 됩니다.” 라고 말했다.
사마천이 지은 사기에도 기원전 6세기에 최읍이 고대 중국 최씨의 종가가 있는 곳으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서 최읍에서 최씨가 발생했다는 것은 사실인 것으로 생각되지만 음시부보다 2500년이나 이전에 살았다고 전해오는 전설상 인물 강태공 후손이라는 주장을 그대로 믿기에는 근거가 없다.
중국 청하최씨(淸河崔氏)는 사해대성(四海大姓)으로 불렸다.
중국의 청하최씨는 이른바 사해대성으로 당나라 때만 헤아려도 재상을 29명이나 배출한 이른바 북방 호족의 우두머리이다.
중국 최씨들은, 산동성 장구시 황화향 토성촌이, 최읍이 있었던 자리라고 하면서, 성역화하고 있다.
계자(季子)는 강태공의 뒤를 이어 제나라 제후가 된 정공(丁公)의 적장자이다.
* 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 : 농업과 의약(醫藥)의 신(神)이라는 전설상 인물.
그들은 제나라 2대 제후, 정공의 적장자 계자가, 바로 임금 자리를 사양한, 최씨의 조상이라고 말한다. 또 그들은 강태공의 선조는 염제 신농씨이고, 강태공 후손에서, 28개 성씨가 나왔다고 하지만, 3천년도 더 지난, 옛날 전설을 어찌 사실이라고 믿을 수 있겠는가?
첫댓글 감사하게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건강하십시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