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초우문학기행
-- 부여 신동엽 문학관을 다녀와서
임광훈
생전 들어본 적도 없던 병명 메르스, 나라를 통째로 들었다 놨다 했던 그 메르스 사태가 없었더라면 언제나 그랬듯 6월 6일에 떠났어야 할 문학기행은 3개월이나 뒤로 미뤄져 여름과 가을이 교차하는 9월에서야 떠날 수 있었다. 오전 8시 가천대학교에서 출발...... 평소 10시 출근에 맞춰서 길들여진 나에게 성남까지 8시 도착은 참으로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가까스로 8시 5분쯤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버스 2대에 초우 가족 분들이 출발 신호만을 기다리며 설레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축제분위기가 가득했다. 문복희 교수님의 기도로 드디어 버스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른 아침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오신 많은 분들을 위해 따끈한 백설기 콩떡과 음료 등 많은 먹거리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우리의 목적지는 신동엽 문학관이다. 참으로 유명한 이름이긴 하지만 열에 아홉 이상이 개그맨을 먼저 떠올릴 만한 그 이름 신동엽. 그런데 그의 작품 가운데 대표작이라 할 만한 ‘껍데기는 가라’는 누구라도 제목은 들어서 알 만한 익숙한 작품이기도 하다.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고 외치는 그 소리의 의미는 무엇이며 어떤 작품을 썼고 어떻게 살았던 시인이기에 문학관으로 그를 기억해야 할까? 시인 신동엽에 대한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미리 예습조차 하지 못하고 달려온 내가 참으로 작아지는 순간이었다.
부여라는 지명에 가까워졌고 12시가 가까울 무렵 드디어 문학관에 도착했다. 부여라는 지명도 역사책에서나 익숙했을 뿐 실제로 그 땅을 밟는 것은 처음인지라 한걸음 한걸음이 조심스러웠다. 버스에서 내린 초우가족들의 발걸음이 하나 둘 모여서 좁은 골목길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곧이어 옛 기와로 빙 둘러진 낮은 담벼락이 눈에 들어왔고 ‘시인 신동엽 생가’의 소개가 적힌 게시판이 보였다. 1959년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하며 작품 활동이 시작되었고 [껍데기는 가라], [금강],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등의 대표작 등을 통해 민족문제와 역사의식을 일깨웠던 민족시인이라는 소개가 이어졌다.
문학관은 생각보다 아담한 크기였다. 빛바랜 노란색 페인트가 포근한 느낌을 주는 네모 반듯한 박스 형태의 건물 안쪽에는 젊은 시절 그의 흑백사진이 커다란 현수막으로 벽 한 면을 채우고 있었고,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시를 하늘에 수놓은 듯 하늘 높이 솟은 철기둥에 손글씨가 조각이 되어있었다. 시인의 호흡이 가까이에서 느껴지는 듯한 멋진 광경이었다.
곧이어 문학관의 문화해설사분이 등장했고, 드디어 그토록 궁금했던 시인 신동엽의 정체가 낱낱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박물관 안에는 그가 썼던 책들뿐만 아니라 직접 원고지에 썼던 친필 원고들, 그가 입었던 옷을 비롯해 정말 다양한 자료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겨우 40의 나이, 한참 젊었을 꽃다운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난 열정적이었던 예술가는 그렇게 남겨진 흔적을 통해서 여전히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교감하고 있었다.
시인 신동엽에 서서히 젖어들 때 즈음 우리는 발걸음을 옮겨 식당으로 향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어딘들 점심식사를 거르고 즐길 수 있겠는가! 1시가 가까워져서야 우리는 식당에 도착했다. 삼삼오오 모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푸짐한 갈비탕 한 그릇씩 맛나게 비울 수 있었다. 부른 배를 통통 튕기며 식당을 나서려는 찰나 흐렸던 하늘은 드디어 빗방울을 하나 둘씩 아낌없이 투척하기 시작했다. 얼굴을 손으로 간신히 가린 채 버스를 찾아서 뛰어갔다. 비록 잠시 빗줄기에 옷을 적시긴 했지만 차창에 맺혔다가 흐르는 빗방울들을 바라보며 상쾌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버스는 빙글 돌아 국립부여박물관으로 향했다. 여전히 빗방울은 바닥을 두드리고 있었지만 차안에서 뽑아든 우산 아이템이 있었기에 의기양양하게 발걸음을 내딛었다. 박물관 안쪽은 동그랗게 원을 이루고 있었고 그 중심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둥근모양의 커다란 돌덩이가 놓여있었다. 속이 비어진 그릇 형태였을 꺼라고 추측만 해본다. 이곳에서도 잠시 박물관과 부여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고, 곧이어 문학기행의 백미인 백일장이 시작되었다.
아리따운 4명의 여학생들의 손에 들려나온 주제는 집, 강아지, 우산 이렇게 세가지였다. 그리고 문복희 교수님의 설명이 이어졌다. 단순한 집이 아니라 집과 관련된 또 다른 소재와 결합해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나갈 것을 말씀해 주셨고, 주어진 시간은 약 30분 가량이었다. 그 시간동안 박물관 구경도 해야 했고, 시도 완성해야 했는데 마음이 앞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글을 쓰기 위해 자리를 잡고 앉는 분들도 계셨고 유유히 박물관 안으로 이동하는 분들도 많았다. 박물관 안에서 뭐니뭐니해도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백제금동대향로였다.
투명한 유리상자 안에서 밝은 조명을 받으며 그 자태를 뽐내는 위용은 그야말로 위풍당당이었다. 섬세함과 화려함이 그 어떤 문화의 조각 작품과도 견주어 뒤지지 않을 멋스러움으로 충만했다. 잠시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다가 시간을 확인하고는 급히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구석진 의자를 찾아 구부정하게 걸터앉은 나는 우산을 선택했다. 비가 내린 날씨 탓도 있었겠지만 유난히 내 기억 속에는 비, 그리고 우산과 관련된 많은 추억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머릿속에 수많은 단어들을 돌리고 돌려가며 문장들을 조합해갔다. 뜬구름 잡는 문구들이 거슬렸지만 시간은 넉넉지 못했고, 손에 잡힐 듯한 문장들을 그냥 잡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짧은 작문의 시간이 지나고 원고를 제출하기 위해 건물 밖으로 나섰다. 건물 옆으로 테이블 두 개를 연결해 심사본부가 차려져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완성된 작품을 손에 들고 나타나는 수많은 작가 분들의 걸음걸음이 이어졌고, 심사위원 분들의 예리한 눈빛은 불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심사위원으로는 백승언 시인님, 신태진 시인님, 문복희 교수님께서 수고해주셨다. 다행히도 그 시간에는 비가 잦아들었고, 여유롭게 옹기종기 모여서 담소를 나누는 초우가족들의 모습이 참으로 행복한 표정들이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시상식에 앞서 문복희 교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미 등단한 시인 분들은 수상에서 제외된다는 설명을 해주셨고 누군가의 얼굴에는 미소가,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아쉬움이 가득할 순간이기도 했다. 드디어 수상자가 한명씩 소개가 되고 모두의 축하 박수와 함께 한명씩 상장수여가 진행되었다. 이름이 호명되고 앞에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환희가 가득했고, 박수를 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부러움과 함께 끊임없는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대상은 가천시창작반의 지영호 선생님의 차지였다. 문복희 교수님의 안내에 따라 ‘백제의 집’이라는 제목의 시를 낭독하는 목소리에는 역사의 숨결을 노래하는 진지함과 부드러움이 함께 녹아있었다.
시상식을 마치고 우리는 궁남지로 이동했다. 궁남지는 궁의 남쪽에 있는 연못이라는 이름으로, 백제 무왕때 만들어진 왕궁의 정원이었다고 한다. 커다란 연못 한가운데 커다란 기와지붕의 정자로 보이는 건축물이 있었고, 그 주변으로는 커다란 연꽃과 수련들로 가득했다. 멋진 자연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조용히 생각에 잠기기도 하면서 한적한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너무 여유를 만끽한 탓이었을까? 약속된 시간이 지나자 이미 모여있는 초우문학 회원들의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초우가족 모여라!”
몇 차례 반복되는 그 소리를 들으며 발걸음을 뛰다시피 하며 옮겨야 했다.
버스에 오르며 그렇게 제5회 초우문학기행은 저물어가고 있었다. 서울에 도착할 무렵 하늘은 검게 물들었고 회원 분들의 모습 속에도 이른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였던 피곤함이 묻어났지만 짧은 시간 함께 했던 동지들과의 아쉬운 작별은 모두들 그리 쉽지만은 않아보였다. 무사히 긴 여정을 마무리했다는 뿌듯함에 서로 악수를 나누고 등 두들기며 그렇게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첫댓글 우와, 하나도 안 빠뜨리고 잘 정리했네요~~
사랑하는 임광훈
문학기행문 훌륭합니다.
수고가 많았어요...
그날보다 더 감동이네... 역시 글빨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