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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19암자종주 순례길
◈ 산행코스 : 통도사주차장06:13)→관음암06:30)→보문암(06:53)→무량암(06:57)→보현암(07:13)→축서암(07:20)→
축서암사거리(07:37)→취서산장(08:28)→독수리바위(09:10)→영축산09:19)→천정삼거리(10:00)→1,060봉 (추모비)(10:10)→숨은재(10:30)→은수샘(10:50)→백운암(11:24)→비로암(12:16)→극락암(12:42)→반야암 (12:59)→금수암(13:33)→ 서축암(13:42)→자장암(14:07)→사명암15:04)→백련암(16:25)→옥련암(15:45)
→장경각(16:12)→서운암(16:34)→수도암(16:48)→안양암(17:00)→취운암(17:15)→보타암(17:32)→통도사 (17:43)→영축산문(18:20)→통도사주차장(18:22)
◈ 산 행 지
▶ 들머리 : (통도사주차장)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17-56
▶ 날머리 : (통도사주차장)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17-56
◈ 산행거리
▶ 전체거리 : 24.61Km : (12시간 08분(휴식 1시간 11분 포함))
▶ 전체거리 : 24.61Km : (12시간 08분(휴식 1시간 11분 포함))
◈ 산행일자 : 2021年 05月 19日 水
◈ 날 씨 : 맑고 화장한 날씨 다소 무더운 날씨였지만 숲길은 시원했음
◈ 누 구 랑 : 지과 지인2명 포함 총 4명
◈ 교통편
▶가는길 : 자가용(창원→통도사주차장) : 05시출발 → 장유팔판마을경유(05시30분) → 통도사주차장) 06시 10분 도착
▶오는길 : 자가용(통도사주차장→창원) : 18시20분출발 → 저녁식사(천성산가는길(055-374-6522)) 후 19시 출발 →
창원 20시 도착
◈ 산행트랙 :
◈ 산행지도 :
◈ 산행후기 :
☞ 부처님 오신날 보통 지리산 7암자를 자주 갔는데 이번에는 지인들과 같이 통도사 19암자를 만나러 갔다.
부산에 있는 명산클럽에서도 진행을 했지만 우리와 가는 코스가 달라 우리들만 산행 하기로 함.
통도사(通度寺)는 우리나라 삼보사찰(三寶寺刹 : 佛寶·法寶·僧寶로 일컬이지는 사찰) 가운데 하나인 불보(佛寶) 사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이다. 2018년 1월에 양산시 기념물 제289호로 지정되었으며, 같은 해 6월에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통도사는 646년(선덕여왕 15)에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다. 산 이름을 영축산이라 한 것은 산의 모양이 인도의 영축산과 모양이 매우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하나, 그 옛 이름은 축서산(鷲棲山)이었다.
절 이름을 통도사라 한 까닭은
① 전국의 모든 승려는 금강계단에서 득도한다는 뜻
② 만법을 통달하여 일체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
③ 산형이 인도의 영축산과 통한다는 뜻 등이 있다.
창건주 자장율사가 643년에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가지고 온 불사리와 가사(袈裟), 그리고 대장경 400여 함(函)을 봉안하고 창건함으로써 초창 당시부터 매우 중요한 사찰로 부각되었다. 특히 불사리와 가사뿐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대장경을 봉안한 사찰이기 때문이다.
자장율사는 계단(戒壇)을 쌓고 사방에서 오는 사람들을 맞아 득도시켰다. 이에 통도사는 신라 불교의 계율 근본도량(根本道場)이 되었다.
창건 당시에는 금강계단이라고 불려진 계단을 중심으로 몇몇 법당이 존재하였으며 그 뒤 고려 초에는 사세가 더욱 확장되어 절을 중심으로 사지석표(四至石標), 즉 국장생석표(國長生石標)를 둘 만큼 대규모로 증축되었다. 특히 현존하는 중요 석조물이 고려 초기 선종대에 조성되었으므로, 가람의 정비는 이때 중점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추정할 수 있다. 그 밖에 현존하는 목조건물들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에 건립되었다.
☞ 관음암(1)
통도사 울타리 밖에 있는 조용하고 아늑한 관음기도 도량으로, 30여년전 태응스님께서 창건하였다. 원래 대처승의 가족들이 모여 살던 사하촌 이었으나 신도들과 함께 집과 주변의 논밭을 매입하여 현재의 암자를 조성하였다고 한다. 대웅전인 자광전(慈光殿) 앞에는 석등과 돌난간을 두른 5층 사리석탑이 세워져 있는데, 석탑에는 미얀마에서 온 부처의 진신사리가 안치되어 있다.
☞ 관음암을 나와서 좌측 도로를 따라서 진행하여 2번째 암자 보문암으로 향한다~
☞ 보문암(2)
보문암은 길에서 보면 마치 옛날 양반 대갓집을 연상케 하듯 우뚝 솟아 있다. 입구에는 연꽃 연못이 있고 건물은 한 동이다. 보문암은 개인 법당으로 경남 의령이 속가인 덕봉스님이 1992년 창건하였다.
통도사 직할 암자에 포함되지 않지만, 산문 밖 암자로서 관음암,보문암,무량암,축서암이 있다.
월하스님이 쓴 "보문암" 현판이 걸려있다. 무량암과 보문암은 지산마을로 가는 길 왼쪽 "이 뭐꼬"라는 음식점 바로 뒤 갈림길에서 아래쪽으로 가면 흰색 컨테이너 뒷편 기와집이 보문암이고, 갈림길 조금 위쪽으로 가면 무량암이다.
☞ 무량암(3)
무량암도 통도사 직할 암자가 아니다. 가정집처럼 생겼는데, 법당 현판 글씨는 월하스님 글씨로 무량수전이다. 무량수전은 아미타부처님을 주불로 모시는 법당을 말한다.
무량암 입구에 도착하니 늙으신 노스님께 코로나땜에 나라가 망하게 생겼다면서 문을 열어 주시지는 않아 가볍게 인사만 하고
보현암을 향해 간다.
☞ 보현암
현대식 건물로 이루어진 암자와 뒤쪽에는 기존 암자가 있다.
19암자에 포함이 안되어 있지만 둘렸다가 간다.
☞ 축서암(4)
통도사의 울타리 밖에 있는 4곳의 암자(관음암, 보문암, 축서암, 무량암) 중 하나이다. 통도사에서 북서쪽으로 3㎞ 떨어진 지점에 있다. 1711년(숙종 37) 창건하였으며, 지금의 건물은 1863년(철종 14) 중수한 것이라고 하나 정확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사찰 명은 영축산의 옛 이름이 '축서산'이어서 옛 산이름을 회상하여 붙인 것으로 추정된다. 절은 남향으로 세워져 햇볕이 잘 들고 주위가 평평하여 편안한 느낌을 준다. 선화가(禪畵家)로 유명한 수안(秀眼)스님께서 주석하셨으며, 현재는 산중원로이신 초우스님께서 주석하고 계신다.
☞ 축서암을 나와서 등산로를 따라서 영축산으로 향한다. 임도길이 나와도 샛길을 이용하여 취서산장까지 바로 치고 올라 간다.
☞ 취서산장에 도착하니 아직 주인장께서 문을 열기 전이다.
오늘 부처님 오신날인데 암자를 돌면 자연스럽게끼니가 해결되는데 장사가 될란가~~~??
조망과 뷰가 너무 좋다~
☞ 방기마을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잔행하여 독수리바위로 향한다~
☞ 독수리바위에서 오늘 뷰가 너무 좋아서 빠른 진행이 안됨. 시간도 많은디 천천히 둘러보면서~~
☞ 영축산
* 경관이 수려한 영남알프스, 영축산 * 가지산도립공원 구역 내에 있는 해발 1,059m인 영축산은 경관이 수려하여 영남알프스라 불리며 일명 취서산이기도 하다. 이 산은 가지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줄기가 능동산에 이르러 두 줄기로 갈라진다. 남서진하는 줄기는 밀양의 천황산에서 제약산으로 이어지고, 동쪽으로 내려와 배내고개를 건너서 남진하는 줄기는 간월산, 신불산을 지난다. 특히 영축산의 첫머리과 연결된 광활한 능선은 억새밭의 천국을 이루고 있다. 산 아래 뻗어있는 계곡은 통도사 주변 암자와 연결되어 있어 산책하기 좋은 코스이기도 하다. 영축산 통도사는 양산8경의 제 1경이다. 그밖의 8경으로는 천성산, 내원사계곡, 홍룡 폭포, 배내골, 천태산, 오봉산 임경대, 대운산 탑골휴양림 등이 있다. * 불교 화엄경과 관련 있는 영축산의 명칭 유래 * 영축산은 석가모니가 화엄경을 설법한 고대 인도의 마가다국에 있던 산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자 표기는 '영축산(靈鷲山)'과 '취서산(鷲栖山)' 두 가지로 표기되지만 이에 대한 한글 표기는 영축산·영취산·축서산·취서산 등으로 표기되어 있어 혼동을 불러 일으켰다. 이 같은 현상은 한자 '취 또는 축(鷲)' 자에 대한 한글 표기의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일반 옥편에서는 '독수리 취'라고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축'으로 발음하는 것이 보편적이다.그리고 '취 또는 축' 자가 원래 '축'으로 표기되었다는 근거는 1463년(세조 9)에 간경도감에서 간행된 『법화경언해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산 이름 혼동의 원인은 불교에서 유래된 '축(鷲)' 자를 일반인들이 접하기 쉬운 한자사전의 표기 '취'로 읽기 시작하면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혼동을 피하기 위해 2001년 1월 9일 양산시 지명위원회에서 영축산으로 확정되었다.
☞ 천정삼거리~
근처에 천정약수터가 있고 비로암으로 하산도 가능함 우리는 직진하여 숨은재로~~~
☞ 1,060봉
고 김성국 추모비가 있음
☞ 숨은재~
은수샘을 갈려면 여기서 갈림길로 하산하면 되고 함박등을 들려서 백운암으로 바로 갈려면 함박등 방향으로~~~
우린 은수샘을 먼저 갈거라서 능선을 따라 하산~~
☞ 은수샘~
수량도 풍부하고 물맛도 최고다~~
☞ 은수샘에서 내려오면 사거리가 나오는데 그곳에서 백운암을 갈려면 직진하듯이 올라가야 하는데 멋모르고 좌측으로 내려가는 바람에 잠깐 알바를 하여 진행함~~
☞ 알바 후에 다시 찾은 등산로~~
☞ 백운암(5)
892년(신라 진성여왕 6) 조일(朝日)스님께서 창건했으며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1810년(조선 순조 10) 침허(沈虛)스님께서 중창하고, 1970년대에 경봉(鏡峰)스님께서 후원하여 사세를 크게 확장하였다. 통도사의 여러 암자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여 예로부터 수도처로 유명했으며, 특히 만공(滿空, 1871∼1946)스님께서 이곳에서 깨달음을 얻는 등 여러 고승스님들의 일화가 전한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법당과 산신각·요사채 등이 있으나 유물은 특별한 것이 없다. 저녁 무렵의 아름다운 경치와 절의 북소리는 예로부터 통도팔경 중 하나로 유명하다. 또 금수(金水)라는 약수가 잘 알려져 있다.
☞ 비로암(6)
극락암에서 북쪽으로 약 500m 떨어진 곳에 자리한 암자로 1345년(고려 충목왕 원년) 영숙대사(靈淑大師)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 후 1578년(선조 11) 태흠대사(太欽大師)가 중건하였고 다시 근래 원명화상(圓明和尙)이 중수를 하였다. 암자에서 서북쪽으로 약 500m 떨어진 곳에는 통도사8경 가운데 하나인 비로폭포가 있다.
☞ 극락암(7)
통도사에서 서북쪽으로 1.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극락암은 근현대의 고승인 경봉(鏡峰) 스님이 주석하셨던 곳으로 유명하다. 1344년(고려 충혜왕 복위 5)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며 창건주는 알 수 없다. 그 뒤 1758년(영조 34) 지홍대사(智弘大師)가 중건하였으며 1968년 이후 가람 전체를 경봉스님이 중건ㆍ중수하였다. 선방인 호국선원(護國禪院) 앞에는 영월루(暎月樓)가 있고 연수당(延壽堂)ㆍ수세전(壽世殿)ㆍ독성각(獨聖閣)과 함께 33조사(祖師)의 영정을 봉안한 조사당(祖師堂)이 있다. 경봉스님의 거처였던 아담한 삼소굴(三笑窟)과 함께 암자로서는 매우 큰 규모이다. 그리고 암자 입구에 있는 ‘극락영지(極樂影池)’는 영취산의 봉우리가 비치는 연못으로 유명하며, 연못을 가로질러 놓여있는 홍교(虹橋)와의 조화가 아름답다.
☞ 반야암(8)
백운암으로 오르는 길 오른쪽으로 난 골짜기 끝에 자리잡고 있다. 1999년 승려 지안이 창건하였다. 울창한 산림에 둘러싸여 있어 경관이 수려하다. 경내에는 법당인 반야보전(般若寶殿), 청향정(淸香亭), 세진정(洗塵亭)이 들어서 있다. 반야보전 현판은 지안스님께서 썼으며 내부에는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지장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다.
☞ 금수암(9)
세심교를 지나 자장암으로 가는 길에 있다. 수행도량이어서 보통 때는 철문으로 닫혀 있으며 인적이 없어 조용하다. 철문을 지나 다리를 건너면 사찰 입구가 나온다. 정갈한 경내에는 법당과 팔각정자, 석탑, 석등 등이 배치되어 있고 마당은 아름다운 조경수들과 잔디로 장식되어 있다. 법당은 5칸 규모의 건물로서 내부에는 비로자나불이 봉안되어 있고 법당 앞에는 다양한 석물이 세워져 있다. 팔각정자는 유리문으로 둘러져 있어 안에 있으면 금수암 경내 전체를 살펴볼 수 있다.
☞ 서축암(10)
자장암으로부터 150m 정도 떨어진 길목에 자리 잡고 있다. 1996년 수련화보살과 월하스님, 원행스님께서 정성을 모아 창건하였다. 경내에는 인법당((因法堂:법당을 따로 두지 않고 스님께서 거처하시는 방에 불상을 모시는 절) 형식의 대웅전과 요사채 등이 있다. 대웅전 앞에는 부처의 사리를 봉안한 것으로 유명한 다보탑과 석등이 세워져 있으며 마당에는 잔디가 깔려 있다.
☞ 자장암(11)
자장암은 통도사의 창건주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수도하던 곳이다. 창건연대는 미상이나 회봉대사(檜峰大師)에 의하여 중창되었다고 하며, 1963년 용복화상(龍福和尙)이 중수하였다. 법당은 암벽을 의지하여 서향하였고 그 옆에는 1896년에 조각된 약 4m의 거대한 마애불(磨崖佛)이 있다. 법당 뒤쪽 암벽에는 석간수(石間水)가 나오는데 자장율사가 손가락으로 바위에 구멍을 뚫어 금개구리를 살게 하였다는 소위 금와공(金蛙孔)이 있어 유명하다.
이능화(李能和)의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 하권(下卷) ‘승유어급변화금와(僧遺魚及變化金蛙)’ 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축서산 통도사의 자장암 곁의 커다란 암벽에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만한 구멍이 있는데 그 속에 작은 개구리가 있다. 몸은 청색이고 입은 금색인데 어떤 때는 벌이되기도 하여 그 변화하는 것을 헤아릴 수 없다. 여름철에 바위가 과열되면 뜨겁기가 솥과 같으나 그 위를 자유로이 뛰어다닌다. 사승(寺僧)이 이를 일러 금개구리라 하더라.
그런데 이 금개구리는 도무지 산문(山門) 밖을 나가지 아니한다고 하므로 한때 어떤 관리가 그 말을 믿지 아니하고 그 개구리를 잡아 함 속에 넣어 단단히 닫고서 손으로 움켜쥐고 돌아가다가 도중에 열어보니 없어졌다. 세간에 전하기를 그 개구리는 자장율사의 신통(神通)으로 자라게 한 것이라 말한다.”
▲ 금와보살 자장암 뒤 바위 구멍이 금와보살이 평생을 사는 금와공이다, 보이나요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 변화금와에 말하기를 축서산 통도사의 자장암 곁의 커다란 암벽에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만한 구멍이 있는데 그 속에 작은 개구리가 있다. 몸은 청색이고 입은 금색인데 어떤 때는 벌이되기도 하여 그 변화하는 것을 헤아릴 수 없다. 여름철에 바위가 과열되면 뜨겁기가 솥과 같으나 그 위를 뛰어 다닌다. 절의 스님이 이를 일러 금개구리라 하더라. 그런데 이 금개구리는 도무지 산문 밖으로 나가지 아니한다고 하므로 한 때 어떤 관리가 그 말을 믿지 못하고 개구리를 잡아 함속에 넣어 단단히 닫고서 손으로 움켜쥐고 돌아가다가 도중에 열어보니 없어졌다. 세상에 전하기를 그 개구리는 자장율사의 신통으로 자라게 한 것이라라고 하였다.
☞ 사명암(12)
서운암에서 서쪽으로 약 4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암자로 사명대사(泗溟大師)가 이곳에 모옥(茅屋)을 짓고 수도하면서 통도사의 금강계단을 수호한 곳이라고 한다. 1573년(선조 6)에 사명대사(泗溟大師)를 흠모(欽慕)한 이기(爾奇)ㆍ신백(信白) 두 스님이 암자를 지었다고 한다. 이후 혜각스님과 동원스님이 거주 하면서 현재의 가람을 갖추게 되었다.
☞ 백련암(백련정사)(13)
사명암에서 남쪽 숲 속으로 약 5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암자로 주위에는 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창건은 1374년(공민왕 23) 월화대사(月華大師)에 의해 이룩되었고, 1634년(인조 12) 현암대사(懸岩大師)가 중건하였다. 법당의 현판은 백련사(白蓮舍)라고 하였으며 대한제국 말기에는 남방의 선찰(禪刹)로서 유명하였던 곳이다.
법당과 광명전, 영월루,장경각 안심당 등이 자리하고 있다.
또한 1863년 조성된 백련암 석가모니후불탱,1864년 백련암 신중탱,1889년 백련암 지장시왕탱 등이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성보박물관으로 이운 보관 중이다. 최근에 원산스님이 거주 하면서 현재의 도량으로 변모 시켰다.
☞ 옥련암(14)
백련암에서 동쪽으로 나지막한 언덕 위 약 5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암자이다. 1374년(공민왕 23)에 쌍옥대사(雙玉大師)가 창건하였으며, 1857년(철종 8)에 호곡(虎谷)ㆍ청진(淸眞) 두 대사가 중건하였다. 사찰 내에 전하는 이야기로 옛날 이 옥련암에 ‘장군수(將軍水)’라는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이 장군수를 매일 마시는 옥련암 스님들은 힘이 굉장히 세어서 큰절의 스님들이 당하지를 못했다. 하루는 큰절의 스님들이 가만히 의논하여 몰래 장군수 우물을 메우고 그 물길을 딴 곳으로 돌렸다. 그 후부터는 옥련암에는 힘센 스님들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 옥련암은 법당을 비롯하여 무량수전과 요사가 자리하고 있으며, 대부분 현대에 조성되었다.
☞ 서운암 장경각
장경각은 불교의 불경이나 불경을 새긴 목판을 봉안하고 있는 전각을 말한다.
해인사에 있는 고려 팔만대장경 1,000년의 문화유산이 통도사 서운암을 중창한 성파 큰스님의 노력끝에 `16만 도자대장경`으로 재탄생되었다.도자로 만든 세계 최초의 대장경이다. 도자대장경은 통도사 서운암의 성파 큰스님이 남북통일을 염원하고 민족문화를 대대로 보존하자.`는 취지로 1991년부터 불사(佛事)를 시작하여 2000년까지 10년에 걸쳐 대역사를 완성했다.성파 큰스님과 제자, 기술자가 혼신의 힘을 다한 도자대장경은 16만 1,500여장의 도자판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각의 도자판은 가로 52㎝, 세로 26㎝, 두께 1.5㎝로 하나의 무게가 4㎏이다."
이곳 서운암 장격각은 고려대장경을 원형 그대로 도자기판에 조성한 십육만 도자대장경이
봉안되어 있어 인류의 평화와 남북 통일의 염원을 담고 있다.
☞ 서운암(15)
서운암은 수도암에서 들판을 내려와서 남쪽으로 약 4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암자이다. 1346년(고려 충목왕 2) 충현대사(沖絢大師)가 창건하였으며, 1859년(철종 10) 남봉대사(南逢大師)가 중건하였다. 근래에는 성파(性坡) 스님이 다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염불암(念佛庵)(국제템플스테이관) 입구
갈길이 바빠 그냥 통과 함
☞ 수도암(16)
수도암은 취운암에서 남서쪽으로 200m 떨어진 곳에 자리한 조그마한 암자이다.
고려 공민왕 21년(1372) 이관대사가 창건하고 그 후 정신대사가 중건하였다고 전한다.
현대에 조성된 인법당과 산식각, 요사가 자리하고 있다
☞ 안양암(17)
안양암은 통도사8경 가운데 하나인 안양동대(安養東臺)에 위치한 암자이다. 1295년(고려 충렬왕 21) 찬인대사(贊仁大師)에 의하여 창건되었으며, 1865년(고종 2) 우담대사(雨潭大師)가 중창하였다. 그 후 현대에 와서 1968년 우송화상(友松和尙)이 중수하였다. 안양(安養)은 곧 극락세계를 뜻하므로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하는 암자이다.
☞ 취운암(18)
취운암은 보타암에서 2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암자로 통도사의 대웅전을 짓고 남은 돈으로 건립하였다고 한다. 1650년(효종 1) 우운대사(友雲大師)가 처음 창건하였고, 1795년(정조 19)에 낙운대사(洛雲大師)가 중건하였다. 그 후 1969년 태일화상(泰日和尙)이 다시 중수하였다. 근래까지만 해도 취운암 법당 뒤쪽에는 역대 고승들의 부도가 즐비하게 서 있었으나, 지금은 통도사 부도전으로 모두 이전되었다. 최근에는 보살선원을 세워서 일반 신도들이 참선수행을 하고 있다.
☞ 보타암(19)
경상남도 양산군 하북면 영축산에 있는 절. 통도사에 딸린 암자. 1927년 재덕 · 호전 두 비구니가 창건. 1935년 정운 · 호전 두 비구니가 증축함. 통도사에서 유일한 비구니 암자로서 깨끗하게 잘 가꾸어져 있고, 화단에는 예쁜 꽃들이 피어나고 있다.
☞ 통도사
해동의 이름난 명승지, 영축산 통도사는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15년(646)에 대국통 자장스님에 의하여 창건된 국내 제일 대가람(大伽藍)이다. 영축산이란 부처님 당시 마가다국 왕사성의 동쪽에 있던 산의 이름이다. 이 산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법화경(法華經)』을 설한 곳으로 유명하며 수행자와 독수리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었기 때문에 영축산이라 불렸다. 그래서 이 산의 모양이 불법을 직접 설하신 인도 영축산과 통한다(此山之形 通於印度靈鷲山形) 해서 통도사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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