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밀리언달러 베이비’
사람에 대한 기억은 시기마다 각기 다르다.
책도 어린시절 읽었을 때와 장년기에 읽었을 때의 느낌이 사뭇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청소년시절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서부영화의 총잡이였다.
1미터 90센티가 넘는 장신에 시거를 물고 시니컬한 표정으로 사막을 내달리는 그는 청소년들의 우상이었다.
30, 40대의 장년기의 이스트우드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라는 영화로 각인되었다.
나는 이 영화를 참 좋아한다.
중년기에 찾아올 수 있는 사랑의 감정을 정말 멋지게 표현해서 보고 또 봤다.
그 뒤로도 ‘용서받지 못한 자’라든 가 몇 편의 영화를 통해 감독으로 또는 배우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는 소문을 들었다.
2005년에는 ‘밀리언달러 베이비’라는 영화로 아카데미상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 여우주연, 남우조연상을 휩쓸었다는 소식도 그저 소문으로만 들었다.
그러다가 영화테입을 구입하면서 우연하게 문제의 영화를 구입하게 되었다.
구입한 뒤 영화테입 책장의 맨 앞에 꽂아 두고도 오랫동안 감상하지 못했다.
우선 영화의 러닝타임이 용기를 내지 못하게 막았고, 꼭 ‘은행털이와 아빠와 나’같은 영화제목이 정말 재미있을까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신학기 일정 때문에 잔뜩 치쳐서 집으로 돌아온 날 자리를 펴고 편안한 자세로 비디오테입을 틀었다.
모건 프리먼,
그를 처음 봤던 영화가 무엇인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하도 많은 영화에서 주연과 조연을 맡았던 그인지라 사실 거억나지 않는다고 해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어째든 난 그를 좋아한다.
‘쇼생크 탈출’,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에서의 모습이나 ‘아미스타드’, 그리고 잭 니콜슨과 주연한 ‘버킷 리스트’ 에서의 연기는 놀라운 감동을 주었다.
2009년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정치인 ‘넬슨 만델라’를 연기했다고 한다.
강하고, 힘 있고, 튀는 모습 보다는, 한 발 물러나 사물을 관찰하거나 지친 영혼을 포근하게 감싸는 사려 깊은 연기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영화에서 모건 프리먼은 삐쭉삐쭉 돌출된 고산준령들을 포근히 감싸주는 이른 아침의 구름바다와도 같다.
배우가 영화에 녹아드는 연기를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몸짓으로, 사려 깊은 눈길로, 슬그머니 다가가서 툭 던지는 따뜻한 말 한마디로 영화를 영화답게 만드는 재주.
지나간 경력을 들춰봤더니 그는 벌써 한국나이로 75세나 되었고, 1993년경에 ‘용서받지 못한 자’로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함께 작업한 경력을 갖고 있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와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통해서 두 번째 작업을 한 셈이다.
이 영화에서 모건 프리먼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환상의 짝궁을 이뤘다.
한 발짝 물러나 관조하는 것 같으면서도 항상 친구의 삶의 깊은 곳에 함께 하는 사람,
앞서 달리는 친구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이해하고 감싸주는 속 깊은 사람.
내 곁에도 한 명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드는 정말 좋은 배우.
힐러리 스웽크는 이 영화에서 처음 봤다.
견문이 짧아서인지 조연으로도, 단역으로도 그를 본 기억이 없다.
하지만 그의 연기는 나의 기억과 안목을 앞지르는 강렬한 무엇이었다.
경력이 사람의 능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는 하지만,
문학과 예술에서는 오랜 연단의 기간만으로 훌륭한 배우, 뛰어난 작가가 탄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는 배우.
밀리언달러 베이비에서 나는 그의 연기에 푹 빠졌다.
그는 눈으로 모든 연기를 소화하였다.
조금은 거칠지만 따뜻한 가슴을 가진 여자,
조금 나은 이익과 환경 앞에서도 인간을 버리지 않는 멋진 의리의 여성.
한편의 영화로 이런 배우를 발굴한다는 것은 어쩌면 미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문화적 잠재력일 수 있다.
영화가 개봉한 지 6년이나 지났지만 나는 쭉 그를 지켜볼 것이다.
모건 프리먼의 영화라면 일단 믿어보는 것처럼, 그가 출연한 영화라면 일단 좋은 감정으로 다가가려 할 것이다.
크고 작은 역할을 맡은 단역과 조연배우들의 캐릭터가 살아 있는 점도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다.
내가 좋아하는 스포츠를 소재로 하였고, 차분하고 조금은 느린 드라마 스타일이라는 점도 좋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미래가 없는 암울한 삶을 살던 한 여성이 권투를 통하여 꿈을 찾아 성장해가는 모습은 여느 영화와 다를 것 없었지만, 과정이 자연스럽고 공감을 주었던 점은 영화가 갖는 미덕이다.
어째든 나는 이 영화를 무지 재미있게 봤다.
해피엔딩이 아니어서 청소년들에게는 ‘재미’라는 단어보다는 ‘감동’, ‘슬픔’으로 받아들여졌겠지만 나에게는 큰 감동이었다.
덕분에 개학 초에 쌓인 피로도 말끔히 씻을 수 있었고, 다른 영화를 보고 싶은 용기도 다시 생겼다. (2011.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