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은 인간 이성을 계시된 진리의 수단으로 보고 신학 전체를 체계적으로 논술하는 의무를 지니지만 세계관은 실용성을 지닌다. 목적지의 크기와 방향이 실제와 다르면, 때때로 뱃길을 가다가 항해도를 수정해야 하듯이 세계관도 조금씩 수정이 필요하다.
세계관은 인생의 승리하는 방정식을 제시하는 완벽한 것이 아니라, 수정이 필요한 항해도의 기능을 한다. 실제로 남극 대륙(Antatctica)과 그린란드(Greenland)의 땅이 펼쳐진 지도에서 실제보다 더 크게 보이는 것처럼, 항해도를 실제와 하나도 오차없이 그릴 수 없다. 이런 면에서 신학과 차별이 있다.
독일의 자동차 회사들은 신차를 출고할 때 수년동안 시행착오와 심사숙고를 거친 후 완벽하다는 판단이 나올 때 시장에 내어 놓지만, 영국의 자동차는 신차를 먼저 출고하고 실용성을 테스트하면서 완벽한 모델로 진화된다고 한다.
완벽한 시스템은 완벽한 결과를 요구하나 세계관은 시행착오를 거쳐 완성되어 가는 실용성이 있다. 항해도가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마냥 따라가면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마찬가지로 세계관은 정확할 수 없으며, 수시로 교정을 해야 할 대상이다. 경험과 지식에는 한계로 말미암는 지도를 교정하듯이, 하나님의 초월적 기준으로 세계관을 수정해야 한다.
참된 믿음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환경과 상황을 보는 관점에 왜곡이 생길 수 있다. 필요할 때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과감하게 자신의 관점의 수정을 해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내 스스로 가지는 주관적인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항상 하나님의 기준인 성경에서 답을 찾게 된다. 성경은 믿는 자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제시된 유익한 하나님의 말씀이나, 세계관은 성경을 삶에 민감하게 적용하여 현세의 다양한 사건과 사고를 분별케 하는 기능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