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2회 모로코 사하라사막 마라톤대회 후기 - 제 6편 (4/12~13, DAY-4~5)

[김용수]

드디어 이 대회의 하이라이트인 롱데이입니다.

3일동안 뛰느라 어느새 체력도 많이 소모가 되었고  발가락, 무릎등 다양한 부상과 설사, 변비등 컨디션 난조등으로 인해 한국팀 천막도 야전병원이 따로 없다.

밥도 먹어야 하는데 이제는 물 끓이기도 귀찮아 그냥 찬물을 그대로 붓고, 30분정도 불려서 대충먹는다.

알파미는 한번 쪄서 건조시킨 가공된 쌀이니 대충 먹어도 문제는 없다.

나의 경우는 저녁식량으로 컵라면 1/2을 준비했는데 이 컵라면 역시 찬물 부어놓고 한 5분있으면 그럭저럭 먹을만하다.

그래도 라면국물이라도 들이키면 살 것 같다.

단,  주위의 부러운 시선을 애써 외면하면서 폭풍흡입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대회 마치면 가장 먼저 하는일이 옷과 양말 벗어서 바로 말리고 간단히 세수하고 팬티만 입고 쉬는 것인데,

어제 오후에 갑자기 돌풍이 한번 텐트를 휩쓸고 가더니 옷가지들을 몽땅 쓸고 가버렸다.

다른 텐트도 사정이 비슷해서 갑자기 대회장이 아수랑장이 되어 각자 제 살림 찾느라고 난리가 난다.

다른건 다행히 다 찾았는데 아무리 봐도 내 양말을 찾을 수 없다.

양말이 없다니....맨발로 뛰어야 하나....기가 막히다...

그냥 신세한탄하면서 고민하고 있는데 유일한 여성참가자인 민보영(총무)씨 양말이 바닥에 뒹굴고 있길래

"이 양말 안 신어?" 라고 물어보니...

"발가락이 퉁퉁 부어서 발가락양말이 안들어가서 못신겠어요" 하는 것이다....ㅋㅋ

가져온 일반 양말을 신고 뛴단다.

"그럼 내가 신고 한국가서 새걸로 사줄께" 하고 맘 바뀔 수도 있기에 후딱 신어버렸다

휴...천만다행...하늘이 도왔나 보다.

이렇게 다행스럽게 레이스를 시작하게 됩니다.

롱데이 86.2KM

제한시간 35H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거리이고 시간이다.

출발시간을 보면 두 그룹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1그룹은 08:15 출발이고, 2그룹은 11:15 출발이다.

2그룹에는 3일동안의 상위성적 150명이 속해있다.

롱데이이니 만큼 3시간 늦게 출발하게 해서 나중에 1그룹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즉, 선두그룹 얼굴을 처음으로 볼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롱데이라고 해서 코스가 쉬울 것으로 생각했는데 지도를 보니 기존 코스와 별반 다를게 없고,

오히려 모든 코스를 경험하게 해 주는 엄청난 코스인 것 같다.

앞으로 갈길이 두렵지만 일단 각각의 CP가 결승점이라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스타트해 본다.

오늘은 뛰는 것은 거의 생략하고 꾸준히 걸어서 중간에 휴식만 하고 수면은 취하지 않고 끝까지 무박으로 가는 전략이다.

힘차게 출발이닷!!!

역시 끝없는 사막 평지가 펼쳐지고, 이 코스는 참으로 지루하기 짝이 없지만 이 구간에서는 최대한 뛰어서

시간을 벌어 놓아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파워워킹과 스틱으로 무장한 서양선수들에게 모래구간에서 여지없이 따라 잡히기 때문이다.

모래언덕은 물론이고, 모래산도 부지런히 넘어야 한다.

각 CP에는 천막이 몇개 없어서 서로 자리 차지하고 쉴려고 난리입니다.

물을 공급받고, 소금 먹었는지 체크받고, 보통 10분~20분정도 휴식을 취하고 행동식을 먹는 소중한 장소이지요.

어느덧 해가 조금씩 넘어가고 어둠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저녁 7시가 되면 의무적으로 지급받은 형광스틱을 배낭에 부착검사 받고, 헤드랜턴을 켜야한다.

저 멀리 보이는 CP4가 무척이나 멀리보이더니 CP4에 도착하니 깜깜한 밤이 된다.

11시간 정도 달려오니 체력도 방전되고 피로가 급 몰려온다.

아직 남은 거리는 많고, 이제부터는 완전히 정신력 싸움이 될 것 같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야간레이스의 시작이다.

나도 어느덧 지천명의 나이지만 과연 내 인생이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곳 멀리 사하라의 이름모를  사막 한가운데 서 있지만 여기에서 무엇을 얻어 갈 수 있을까.

과연 그런 자격이라도 있는 것일까.

밤이 되니 생각도 많고 의문도 많아진다.

가장 큰 의문은...

김용수...넌 지금 여기서 뭐하니?

CP4까지 혼자서 힘들게 도착하니 뜻밖의 한국팀원을 만나게 된다.

나는 지금까지 레이스를 하면서 한국팀과 거의 같이 뛰지를 못했다.

중간에 잠깐 CP에서 만난적이 있지만 레이스 스타일이 맞지 않아 줄곧 혼자 뛰었다.

이 친구(후배)도 초반에 발가락부상으로 제대로 뛰지 못하게 되어 3일차부터는 스틱으로 꾸준히 걸으면서

완주를 목표로 하고 있었는데 롱데이에서 나도 많이 걷다보니 이 친구와 만나게 되었다. 

한밤중에 한국친구를 만나니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았다.

같이 의기투합하여 이제부터는 같이 마지막까지 완주하기로 약속한다.

밥도 먹고 휴식을 취한다. 그냥 땅바닥이다...ㅋㅋ

이제 부터 끝없는 모래언덕을 넘어가는데 비몽사몽이다.

한국에서 올때 딸래미에게 부탁해서 MP3를 사서 노래를 200곡 정도 저장해서 가져왔는데

한밤중에 이어폰 꼽고 잠 깰려고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가고 있으니  한국팀 후배가 남들이 그냥보면 미친사람인 줄 알겠다고 웃고 난리다.

하긴 비몽사몽에 이리저리 비틀거리면서 고성방가를 하고 있었으니 그럴만도 한다.

근데 여긴 다 미친사람들 뿐이어서 부끄러운 것이 없다는 것 또한 메리트일수도.

하지만 여기서 지쳐서 잠이 들거나 하면 아침까지 못 일어날 것 같은 생각에 그냥 만취상태로 끝까지 쉬지 않고

걷다보니 CP6이다.

여기서 내가 가져온 비상식량인 CANU 아메리카노를 꺼내 물 끓여서 사막의 달빛과 함께 한잔씩 나눠마시는데 그 맛을 어떻게 설명할 수가 있을까.

끝없이 가다보니 어느덧 새벽이 다가오고 조금씩 날이 밝아온다.

저 언덕을 오르면 일출을 볼 수 있다고 해서 서둘러 올라서니

저 멀리서 드디어 사하라의 일출이 시작된다. 

그저 장관이라고 할 수 밖에...

왜 이리 집 생각이 그리도 나는지...

이 한 장면을 보려고 밤을 지새우고 온 것인지, 아님 걷다보니 새벽을 맞닥뜨린 건지 알 수는 없다.

아직 골인지점까지는 1시간정도 남아있지만 서두르지 않고 한참을 여기에서 일출과 벅찬 감동을 느껴본다.

드디어 해낸 것인가.

후배와 함께 해가 완전히 뜰때까지 천천히 걸으면 롱데이 소감을 서로 나누어 본다.

뒤이어 오는 후발선수들과 하이파이브하는데 모두들 몸은 엉망진창이지만 얼굴표정 하나만큼은 밝다.

모두가 해냈다는 성취감인 듯 하다.

참으로 지긋지긋한 모래길이었다.

언제 끝날까 싶을 정도로 지독한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코스였다.

끝나고 나니 행복했지만 두번은 하고 싶지 않은 롱데이여....

굿~바이~

[박용설]

롱데이 힘겨운 고통이 완주후엔 성취감에 마취되는듯....ㅋㅋ
읽으면 읽을 수록 "정말 대단한 사하라킴!!!"

[김용수]

롱데이...생각만 해도...상상이 안됩니다...ㅎㅎ

[이성호]

자신과의 싸움에서 얼마나 많은 생각과 롱데이의 고통을 이겨내고 완주하신 용수님의 뚝심에 존경을 표합니다.
백골!^^ 제가 백골부대 출신이라 이렇게 백골로 인사드립니다. 자랑스러운 용수님!짱!!!

[김용수]

백골부대가 사하라에 진출하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박춘화]

가슴이 먹먹 하네요...
"여긴 어디 ? 난 누구? 지금뭘하고 있지? " 밤새중얼중얼.. . 그상황이 충분히 공감이갑니다..대단한 용수님 ~ 그 고통을 다이겨내고 드뎌 득도의 경지에 이르셨군요 ㅎ~~

[김용수]

역시 울트라맨이시라...야간행군에 대해서 잘 아시는 군요....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번은 해보고 싶지만 두번은 하고 싶지 않은 롱데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