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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천국의 터치다운과 블로킹>의 줄거리:
미식축구의 터치다운은 축구의 골과 같습니다. 그러나 축구의 골이 나는 과정과 비교해 특별히 다른 것은 블록킹입니다. 골을 지니고 있는 선수를 상대방으로부터 막아주는 블록킹이 없으면 터치다운은 불가능 합니다. 나 자신이 천국을 내것으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천국 스스로가 나에게 현실이 되어줍니다. 그러나 이때 나는 반드시 블록킹은 해야만 합니다.
천국의 터치다운과 블로킹
(막4:26~29)
26.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27.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28.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29.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천국 터치다운과 블로킹>이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천국 터치다운과 블로킹’
여러분 다 아시는 대로 터치다운이라는 것은 미국 사람들을 아주 열광케 하는 스포츠인 미식축구의 용어입니다.
터치다운은 축구에서 골인과 같은 것이지요.
이 미식축구라고 하는 경기가 생기게 된 게 미국의 초창기 개척시대 때에, 인디언들과 싸워서 인디언들이 살고 있는 땅을 야금야금 먹어 들어가던 그 장면을 연상하면서 만든 스포츠가 바로 미식축구라고 합니다, 땅따먹기이지요.
그래서 공을 가진 자가 상대방 진영에 골라인이 있지 않습니까? 그 골라인 End zone이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끝 영역 끝부분이지요.
그 End zone 으로 들어가면 축구의 골인과 같이 터치다운이라고 해서 점수를 인정하게 되는 그런 게임입니다.
이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자세한 룰은 우리가 말할 필요도 없고 제가 또 잘 알지도 못합니다마는, 공격하는 팀이 공을 가지게 될 때에, 앞에 이 오펜스 라인을 이제 형성하게 됩니다.
11명이 한 팀인데 7명이 앞 라인에 서 있습니다.
5명은 수그리고 있고 그리고 5명 양쪽 끝에 있는 2명은 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5명 가운데 있는 센터가 공을 잡아가지고 스냅을 해 줍니다.
다리 사이로 공을 뒤로 빼 줍니다.
그러면 그 공을 받는 사람이 쿼터백이에요.
그 쿼터백이 공을 잡아 가지고 공을 누구한테 줄지를 잘 살펴서 작전을 세운 대로 공을 패스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 공을 잡은 자가 막~ 뛰어가잖아요, 그렇죠? 막 뛰어가서 end zone 으로 들어가면 터치다운이 되는 겁니다.
모든 경기가 작전이 필요합니다마는 특별히 이 미식축구가 머리싸움이라고도 하는데, 이 작전을 짤 때에 작전은 언제나 쿼터백이 공을 누구에게 전달하느냐? 공을 멀리 전달해서 와이드 리시버라 그래요, 공을 패스한 공을 붙잡으면서 앞으로 전진 할 것인가, 아니면 손으로 전달해 줘서 그 사람이 공을 잡고 막~ 뛰면서 산을 넘고 강 건너 가듯이 앞으로 전진 할 것인가, 이 공격작전이 중요한데, 이 작전을 세울 때 반드시 따라오는 작전이 뭐냐 하면 블로킹입니다.
쿼터백이 공을 잡았을 때 공을 공급해 주기 전에, 상대방은 이미 공급해 주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벌떼처럼 쿼터백으로 달려듭니다.
이때, 같은 선수가 이 쿼터백을 보호해주는 블로킹을 하게 되요, 지켜주는 겁니다.
충분히 잘 면밀하게 따져서 공을 적당한 데 배급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블록을 쳐요, 담을 싸서 보호해 줍니다.
또 이 블로킹은 쿼터백에게만 주어지는 게 아니라, 공을 잡고 뛰는 러닝 백, 공을 잡고 막~ 뛸 때 상대방 수비수들이 그 공 잡은 사람들에게 또 벌떼같이 몰려들지 않습니까?
그때 같이 뛰면서 옆에서 등치 큰 사람들이, 상대방의 수비수들을 쾅쾅 밀치면서 공 잡은 자기선수를 보호해 주면서 앞으로 앞으로 전진 해 가는 것이에요.
이 모습을 가만히 연상하면,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신 ‘씨가 저절로 나서 자란다!’
‘땅에 뿌려진 씨가 농부는 언제 그것이 자라고 언제 그것이 그렇게 이삭이 패게 되고 열매를 맺혀지게 되는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땅 스스로가 씨에서 싹이 나게 하고 이삭이 자라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는 과정이 이루어진다’라고 비유를 주신 이 천국의 모습이 또 하나의 비유! 우리가 알 수 있는 미식축구 게임에서의 그 모양을 보면, 도대체 어떻게 천국이 내 것이 되는가 하는 것을 잘 알 수가 있다는 얘깁니다.
여러분, 천국은 미식축구에서 터치다운과 같습니다.
미식축구가 땅 따먹기라 그랬잖아요?
마찬가지로 천국이 내 마음의 end zone까지 정복해 들어가는 것이 이게 바로 천국 확장의 과정입니다.
우리는 자꾸 이 비유를 생각하면서, 교회가 숫자적으로 많아진 것, 초대교회가 예루살렘교회에 머물러 있다가 안디옥으로 퍼져나가고 유럽전역이 기독교 나라들로 가득 차게 된 것, 이것을 말하는 거 이거 아니에요.
이것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냥 한 사람 한 사람 개별적으로 천국이 온전히 받아들여지게 되면, 외향적인 그러한 팽창은 그냥 주어지게 되요.
그리고 우리가 관심할 일이 아니에요, 근본적이고 우선적으로 관심할 일이 아닙니다.
숫자가 많아지면 뭐해요? 각 개인에게서 천국이 제대로 제 것이 되고 있지 않는데.
그래서 오늘 이 본문 말씀은 천국이 우리 마음의 end zone까지 확장되어가는 천국의 땅따먹기가 이루어지는 것인데, 우리 마음에 마지막 한 조각까지 완전히 다 정복하게 되는 일을 천국 스스로가 해 나간다는 겁니다, 천국 스스로가.
씨의 생명력을 농부가 좌우할 수 없습니다.
땅에 묻힌 씨는 땅의 양분을 빨아들이면서 싹이 나고 이삭이 패고 열매가 맺혀지는데, 그것은 씨 자체가 갖고 있는 생명력에서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이겁니다.
마찬가지로, 천국이 내 마음을 점령해 들어가서 내 마음을 완전히 천국화해 버리고 정복하는 것은 천국자체의 힘에 의해서 진행되는 것이지, 내가 ‘천국, 천국!’ 한다고 내 마음이 천국에 의해 점령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천국이 나의 천국으로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동안에 실제 현실이 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천국 자체의 힘에 의해서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천국이 내 마음을 점령한다! 이것은 사실과 현실에 대해서 우리가 얘기하고 있는 바를 기억하면 좋습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가.
사실과 현실이 여러분 어떻게 구분이 되는지 아시죠?
사실은 실제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사실입니다.
근데 현실은, 실제하고 있는 모든 게 다 나의 현실이 되는 건 아니에요.
어저께인가요?
뉴스에 보니까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오클랜드라고 하는 시에 오이코스라고 하는 고등학교가 있는데 그 고등학교에서 또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졌어요.
이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졌다고 하는 것을 그냥 뉴스로 스쳐 지나가면서 봤습니다.
‘아이고 또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났구만!’ 하고 끝났어요.
근데 나중에 뉴스를 보니까 그 총기난사 사건의 용의자가 한국계의 미국인 학생이라는 거예요.
어! 깜짝 놀라지요.
그냥 총기난사 사건을 보도 받을 때와 그 용의자가 한국계 미국인이라고 하는 게 조금 달라집니다.
느낌이 다른 거예요, 이게 바로 현실이 돼 가는 거예요.
총기난사 사건이라는 실제의 사실이 나에게 현실이 되어가는 과정입니다.
‘한국계래, 한국계래 어~ 한국계 사람이야? 그럼 한국교포의 아들이겠는데?’ 많이 가까워 졌어요, 현실이 돼 갑니다.
그런데 그 용의자 이름이 밝혀졌습니다. 뭐 고… 무슨 무슨 씨라 그러는데, ‘어? 뭐, 뭐라고? 아무개라고? 어, 내 사촌인데!’ 이러면 완전히 현실이 되는 거예요.
그리고 또 이 용의자와 관계없더라도, 이 오클랜드 오이코스 고등학교에 내 자녀가 유학을 가있다! 이거는 그냥 사실로 넘어갈 수가 없는 거지요, 완전히 나의 삶의 현실이 되어버립니다.
현실이 된다고 하는 것이 무엇이에요? 내 마음이 주어진다는 거예요, 내 마음이.
마음이 쏠려버리는 것이고, 마음을 빼앗겨 버리는 이게 바로 현실입니다.
어떤 사실에 내 마음이 빼앗겨 질 때 그 사실이 내 마음을 빼앗는 사실이 그게 바로 내 삶의 현실이라는 것이에요.
그러므로 천국이 내 마음을 정복한다는 것은, 언어 속에서만 들려지는 천국, 손으로 만져질 수도 없고, 눈으로 볼 수도 없고, 귀로 확인할 수도 없습니다.
단지 언어를 통해서만 전달이 되고 있는 이 천국이 실제의 현실이 되려면 그 천국이 내 마음을 빼앗아가야 된다는 거예요.
총기난사 사건의 일어난 그 고등학교에 내 자식이 유학 가 있으므로, 그 총기난사 사건이 내 마음을 빼앗아 버리듯이 천국이 내 마음을 빼앗아 가버리는 것, 그래서 말 안에서만 전달되고 있는 이 4차원의 실제가 나의 삶의 현실이 되어 버리는 것, 이게 바로 기독교 신앙의 완성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천국이, 내 마음의 end zone까지 끝까지, 내 마음의 마지막 한 부분까지 싹 먹어버리는 것, 터치다운이 일어나는 것, 이게 바로 기독교 신앙의 궁극적인 목표라는 거예요.
천국의 터치다운, 내 마음의 마지막 부분까지, end zone까지를 다~ 정복해 버린 상태.
그래서 내 마음이 천국에 빼앗겼다는 것은,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고 냄새도 안 나는 천국이지만, 그 말씀 속에서만 전달되고 있는 천국이, 내 삶의 제1현실이 되어 버렸을 때, 이게 바로 기독교 신앙의 완성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자! 이렇게 천국이 내 마음의 마지막 end zone까지를 먹어서 터치다운을 했을 때, 일어나는 일이 뭡니까? 여러분.
베드로를 보면 우리가 천국의 터치다운이 내 마음에서 일어날 때에, 여러분 꼭 그걸 기억하세요, 터치다운이 뭐냐?
End zone을 정복한 겁니다, end zone까지 들어간 겁니다.
자! 내 마음을 그렇게 터치다운을 했을 때에 일어나는 일, 베드로의 변화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 사건이 일어났을 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저주합니다, 죽을까 봐 두려워서, 망할까 봐 두려워서.
그리고 주님이 부활하셔서 만났을 때, 주님과 사랑의 관계를 확인합니다.
그리고 승천하시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오시면서, 베드로의 마음을 이 천국이 승천하신 주님, 스승님 되시는 예수님께서 올라가신 그 천국이 성령이 임하시게 되면서, 완전히 베드로의 마음을 다 정복해 버렸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무서워서 잠그고 있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서 설교를 하게 됩니다.
감옥에 갇혔을 때에, 죽을까 봐 두려워서 예수님을 저주까지 했던 그 베드로가 내일 아침에 목 베임을 당한다는 그 사실 앞에서 잠을 잡니다, 내일 아침에 목이 잘라진다는 이 어마어마하고 엄청나고 무시무시한 사건이 베드로의 잠을 방해하지 못합니다.
깊~은 숙면을 방해하지 못하는 요소가 되어 버립니다.
왜냐 하면 베드로는 자기의 육체의 목이 잘리는, 내일 아침에 목이 잘린다는 그 정해진 사실보다 앞서서, 말씀을 통해서만 전달되어진 천국을 현실로 느끼고 있기 때문에, 목 베이는 사실보다도 더 앞선 현실로 느끼고 있기 때문에, 천국의 현실 앞에서 천국의 현실 속에서 잠을 잘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또 초대교회의 유무상통!
돈이 어떤 것입니까? 피보다 귀한 것이에요.
피 팔아서 공부하는 학생도 저는 봤어요, 피 뽑아서.
돈이라는 게 그렇게 중요한 겁니다, 그런데 유무상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천국이라는 현실이 내 마음의 end zone까지 다 장악해 버렸습니다.
천국의 실제가 내 마음의 end zone을 장악하면서, 내 마음의 첫 번째 현실이 천국이 되었을 때에, 내 주머니를 열어놓고 있는 대로, 없는 사람들 필요한 대로 갖고 가라는 그러한 마음가짐이 생기게 됩니다.
있을 수 없는 얘기잖아요, 천국이 정복했기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이렇게 천국이 내 마음을 정복하는 것은, 씨가 씨 안에 있는 생명력에 의해서 싹이 나고 이삭이 패고 열매를 맺는 것처럼, 천국 스스로의 힘으로 된다 이겁니다.
그럼 이상하잖아요.
왜 내 마음은 그렇게 정복되지 않고 있을까?
앞에서 예수님께서 가시밭을 얘기하고, 돌밭을 얘기하고, 길가 밭을 말씀하셨습니다.
또 씨 자체의 생명력에 의해서 싹이 나고 이삭이 나고 열매가 맺는 것을 농부는 알지 못하지마는, 단지 차후에 항상 일이 일어난 뒤에 발견할 뿐이지마는, 농부가 해 주는 일이 있다는 겁니다.
돌을 치워주고, 가시를 다 베어서 없애주고, 잡초를 뽑아주고 하잖아요?
그 일은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야 우리가 인격자로서 볼 수 있는 신앙심이지요.
그게 뭐냐 하면 바로 블로킹이라는 겁니다.
천국이 내 마음의 end zone까지를 정복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천국의 터치다운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쿼터백을 보호하고, 런닝백을 보호하고, 와이드 리시버를(멀리서 공을 잡을 수 있는 사람) 블로킹을 통해 보호하듯이, 상대방 수비수들로부터 블로킹을 해 줘야 한다는 거예요.
블로킹을 어떻게 한다는 겁니까?
자!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사업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내 마음을 뺏어갑니다, 내 마음을 뺏어가는 게 상대방 수비수들이라는 거예요.
공 잡은 자에게 벌떼같이 몰려 들어가지고 마음을 그 공을 뺏고 그 사람을 전진하지 못하도록 하게 하는 것처럼, 이 세상에서 하루에도 계속해서 수십 가지 수백 가지의 사건과 만남과 무슨 일들이 일어나는데, 이 모든 사실들이 실재하는 이 사실들이 다~ 상대방 적수들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내 마음을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실들로부터 블록을 시켜줘야 돼요.
방어를 해 줘야 돼요. 내 마음이 뺏겨버리면 그게 현실이 되어 버리니까.
천국이 내 마음을 정복해서 현실이 되기까지는 천국 스스로의 힘으로 내 마음으로 정복해 들어갈 것이지마는, 문제는 내 마음이 천국보다 먼저 이 세상의 사실들에 뺏겨 버려서 이 세상의 사실들이 나의 현실이 되어 버리면, 천국은 기회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자~ 미식축구에서 런닝백이 공을 가졌다 합시다.
쿼터백에게 공을 패스 받아 가지고 뛰어 갑니다.
자, 뛰어서 터치다운을 하는 사람, 이 사람 스스로의 힘으로 하는 겁니다.
그러나 같은 동료들이, 공격하는 동료들이 주변에 수비수들을 블로킹을 해 주지 않으면 뛰어 갈 수가 없습니다.
뛰는 것은 스스로 뛰지마는, 블로킹을 해 주지 않으면 막혀버려요.
마찬가지에요. 천국이 내 마음을 정복해서 end zone까지 뛰는 것은, 천국 힘으로 뜁니다.
그건 내 가 천국 천국 한다고 해서, 내 마음이 천국에 의해서 장악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천국 스스로가 뛰지마는, 내 의지와 내 뜻과 힘은,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랬는데 그 뜻과 힘은 뭘 하는 겁니까? 이 세상의 사실들이 내 마음을 뺏어서 내 마음으로 하여금 이 세상의 사실을 현실로 느끼게끔 만들려고 합니다.
자식의 문제, 사업의 문제, 건강의 문제 이런 것들을, 이런 사실들을.
그래서 그 사실들로부터 마음을 블록 시켜 주는 거예요.
사실이 일어나서 내 마음을 뺏어가려고 할 때 얼른 블록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블록을 합니까?
바로 십자가로 블록을 하는 겁니다.
십자가를 먼저 기억하면서 내가 죽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실들에 대해 나는 죽은 자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같이 죽은 자다, 오직 하나님을 향해서만 살아야 될 자이다, 나는 죽은 자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십자가를 기억해 내면서 주님과 함께 죽은 자임을 고백함을 통하여 내 마음을 뺏어가려고 하는 모든 사실들에 대해서 내 마음을 블록 시켜 줍니다.
그 사실들을 블록 시켜서 마음으로 오는 걸 차단시켜 주면, 그렇게 하루 지나고 이틀 지나고 한 달 지나고 일 년 지나는 동안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점차적으로 천국이 눈에 보이고 확인 되어질 수 있는 이 세상의 사실들 보다, 더 앞선 현실로 느껴지기 시작하는 게 됩니다.
내 자식이 지금 문제가 생겼습니다, 대학을 떨어지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보다, 자식에게 일어난 사실보다 천국이 먼저 사실로 느껴지게 되면서 먼저 현실로 느껴지게 되고, 내 마음이 천국에 먼저 들어가게 되면서, 천국에서 느끼는 그 평강과 기쁨과 감사의 마음으로 자식의 문제를 바라보게 될 때에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는 거예요.
대학에 떨어졌는데도 천국의 빛 아래서 볼 때, 그것이 왜 그렇게 됐어야만 됐고, 왜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었고,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은혜였던 것인가를 알 수 있게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기가 막힌 겁니다.
천국 스스로가 내 마음을 정복해 들어가요.
나는 뭐하면 되느냐? 단지 블로킹만 해주면 된다는 거예요.
내 마음이 세상에 빼앗겨지면 그 세상의 사실들이 현실이 돼버리니까, 그렇게 돼버리는 게 죄악입니다.
마음을 빼앗기는 게 이게 죄악이에요.
이게 그리고 영적으로 더러워지는 거예요.
하나님께로 가야 되는데, 이 세상 마귀가 사실들을 통해서 계속해서 내 마음을 빼앗아가려고 합니다, 일어나는 사실들.
일어나는 사실들 그 자체가 죄악이 아니에요, 그거 자체가 잘 못된 게 아닙니다.
그런데 내가 마음을 뺏기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 사실도 악한 사실이 되어 버려요, 내 마음이 붙어 버리면.
자! 천국 터치다운과 블로킹
천국은 스스로의 힘으로 end zone까지 뛰어 갈 겁니다.
내 마음의 마지막 한 조각까지 다 정복을 해 들어가서 내 마음으로 하여금 천국을 이 세상의 눈에 보이고 만져지고 느낄 수 있는 그 어떤 사실보다도 먼저 앞선 현실로 천국을 실제로 느끼게 해 줄 겁니다, 성령의 역사가 가미되면서.
내가 할 일은 뭐냐?
단지 주님의 십자가에서 내가 이 세상에 대해 죽었다는 사도 바울의 고백을 내 고백으로 삼고, 내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 사건과 사실들 앞에서 죽은 자임을 고백하면서, 내 마음이 그 사실들에게 확 1차적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우선적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블로킹만 해 주면 됩니다.
그렇게 블로킹만 해주는 사이에, 나도 모르게 점차적으로 확고하게 만져지지도 느껴질 수도 없는 이 천국이, 이상할 정도로 확고한 현실로 자리를 잡게 되고, 내일 아침에 목 베임을 당하는 사실이 정해져 있다 하더라도 내 수면을 방해할 수 없는 그런 사람들로 바뀌어 가게 될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실들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천국의 조명이 쫘~악 비치는 가운데 바라볼 때에,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세상을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주님께서 이 짧은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강력하게 전달해 주고 계시는 것이지요.
오늘도 우리는 뭐 하는 겁니까?
블로킹만 하면서 살아가는 겁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그러면서 그곳에서 천국이 점점 첫 번째 현실이 되어가고, 그 첫 번째 현실인 천국의 빛 아래서 직장생활을 하고 가정생활을 하고 학교생활을 해 나가는, 그런 천국의 자녀의 모습들이 스스로에게서 확인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천국은 천국 스스로의 힘으로 내 마음의 마지막 end zone까지를 정복하는 터치다운을 이룰 것입니다.
우리는 뜻과 힘을 다해서 단지 이 세상 사실들이 내 마음을 뺏어가려 할 때에, 그 사실에 대해 블로킹만을 하게 해 주시고 그러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우리 주님을 기억해서, 그 주님을 마음속으로 꼭~ 끼어 안으므로 주님과 함께 죽은 자임을 잊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