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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신 작가의 고향 강경에 물들다
소설 <소금>
강경은 1990년대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은 고장이다. 충청남도 강경은 1454년(단종 2)에 간행된 <세종실록지리지>에 등장할 만큼 번화했었지만 현대화 개발이 빗겨간 탓에 한산하고 적요하다. 젓갈의 고장으로 유명할 뿐, 변화의 바람이 빗겨간 지방의 소도시다.
그림 1. 강경에서 가장 번화한 대흥로 입구
강경은 서해와 충청도 내륙을 연결하는 길목에 있어 전국의 상인들이 드나들던 강경포구로 유명했다. 조선 말기에는 평양, 대구와 함께 전국 3대 시장으로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 곡식과 물자 수탈의 근거지로 이용되며 근대화가 시작됐고, 충남에서 가장 먼저 전기가 들어왔을 만큼 번화했다.
그림 2. 1960년대 강경포구 사진(강경근대역사관)
하지만 해방 이후 강경은 급속하게 몰락했다. 미곡 반출이 중단되며 상권이 크게 위축됐고, 6·25전쟁으로 시가지 대부분이 파괴됐다. 철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강경포구의 기능은 서서히 마비됐고, 1990년 금강 하구둑의 완공으로 수송과 어업이 금지되면서 강경은 경제발전에서 소외된 채 지금에 이르렀다. 강경포구가 있던 자리는 금강 천변 공원으로 바뀌었다.
그림 3. 옥녀봉, 소금집 이정표
최근 강경에 새로운 명소가 등장했다. 소설가 박범신의 베스트셀러 <소금>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옥녀봉 소금집이다. 소설 <소금>은 작가가 자란 강경을 배경으로 근대화 과정에서 자식에게 삶을 차압 당한 우리네 아버지의 초상을 그린 작품이다. 소설 <소금>에 등장한 돌산 전망대, 금강 천변, 죽림서원, 임이정, 옥녀봉, 갑문 등을 둘러보는 소금길 투어에 나선 독자들도 많다고 한다.
그림 4. 소금집 창문 너머 금강의 너른 벌판
옥녀봉 소금집은 가족을 버리고(?) 가출한 선명우가 자유인으로 살던 보금자리다. 금강과 너른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있어 풍광이 멋진데다, 생산성의 극대화만을 추구하는 삶에 지친 이 시대의 아버지가 자아와 평화를 찾은 공간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상략)…옥녀봉 북동쪽 맨 위에 그 집이 자리 잡고 있었다. 북으로는 배수 펌프장 어둔 지붕 너머로 논산천이 금강 본류와 합쳐지는 정경이 손바닥처럼 내려다보였고, 동쪽으로는 성동면 너른 벌판이 한눈에 들어왔다.
<소금>은 박범신 소설가가 등단한 지 40년 만에 쓴 40번째의 장편소설로, 2011년 고향 논산에 내려와 처음으로 집필한 작품이라고 한다. 작가는 아버지의 초상을 그려내며 강경의 명소를 처연하고 낭만적으로 소개하는 한편, 젓갈에 대한 백과사전과도 같은 지식을 뽐냈다.
그렇기에 <소금>은 아버지의 가출(혹은 죽음)과 가족의 몰락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었지만, 잔잔하고 따뜻하다. 소설을 읽는 내내 고향 강경에 대한 작가의 애정을 느낄 수 있어 마음이 포근해진다. 소설 <소금>이 베스트셀러로 사랑 받는 이유이리라.
그림 5. 박범신 문학비
박범신 소설가는 “강경은 내 문학의 고향이다. 시간이 정체되어 있어 더 매력적인 곳이 바로 강경“이라고 말한다. 박범신 소설가는 1946년 8월 24일 충청남도 논산에서 태어났다. 강경의 몰락이 시작되던 해에 논산에서 태어난 소설가는 중학교 2학년 때 강경 채산동으로 이사온 후 지독한 가난 속에서 성장했다. 이 지난한 체험이 문학의 모태가 됐다고 작가는 말하는데, <소금>에도 그 흔적이 담겨 있다.
박범신 작가는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강경 채산동에서 쓴 단편소설 <여름의 잔해(殘骸)>가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그 후 <겨울의 하늬바람>(1981), <풀잎처럼 눕다>(1986), <침묵의 집>(1999), <은교>(2010) 등 40편이 넘는 작품을 발표하며 청년작가로 사랑 받고 있다.
2011년 오랜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논산에 집필실을 마련한 작가는 와초 박범신 문학제, 문학 기차 등 다양한 문학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에게 강경을 알리고 있다. <소금> 이외에도 <겨울아이>(1976) <시진읍>(1990)< 더러운 책상>(2003) 등에서 이미 강경의 아름다움을 담은 강경의 소설가다.
그림 6. 박범신 문학비 <더러운 책상>의 한 구절
강경을 배경으로 한 <더러운 책상>은 박범신 작가의 젊은 시절을 담은 성장소설로 만해문학상을 받았다. 돌산전망대 아래에는 2011년에 건립된 박범신 문학비가 있는데, 이 시비는 작가가 직접 <더러운 책상>의 일부를 작성해 의미가 깊다. 돌산전망대는 소설 <소금>에서도 언급된다.
그림 7. 돌산 전망대
…(상략)…아, 금강! 백제의 고도 공주부여를 지나온 황톳물이 성동벌판의 끄트머리를 낮은 포복으로 쓸고 내려와 ㄹ자로 휘돌며 이윽고 강경포구를 자애롭게 쓰다듬는다. 강물은 여한이 없다. 질펀한 갈대밭을 좌우로 거느린채 나바우성당 솔숲을 건드릴 듯 흘러가고 말면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 박범신 문학비, <더러운 책상> 일부
소설 <소금>은 치밀하다. 씨줄과 날줄처럼 수없이 교차하는 등장인물들의 인연을 통해 이야기는 깊어진다. 강경을 배경으로 시인인 ‘나’와 연인 시우,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 선명우의 삶이 교차하며 아버지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 인연 안에 강경의 역사가 담겨있다.
그림 8. 돌산전망대에서 바라본 강경 금강 일대
...(상략)… 예로부터 강경은 내륙항으로 유명했다. 드넓은 곡창지대를 끼고 있는 데다가 금강 본류와 서해가 지척에서 맞닿는 위치 때문에 일찍부터 번성했던 강경포였다. ...(중략)… 계룡산, 대둔산에서 발원한 작고 큰 물길들이 흘러와 금강 본류와 만나며 빚어낸 정경도 아름답지만, 옥녀봉과 채운산 사이에 반주그레 자리 잡은 살림터의 지형도 넘침과 모자람이 없이 맞춤하면서 조화로웠다. 하지만 경부선 철로의 개통으로 상권에서 이탈했고 ...(중략)… 해방 이후의 몰락은 가속적이었다. ...(중략)… 세상이 급진적으로 달라질 때도 강경은 그 물결로부터 저만치 밀려나 있었다. ...(중략)… 성공을 꿈꾸는 젊은이들은 가차 없이 고향을 등지고 떠났다.
소설 <소금>은 아버지들의 부재로 시작한다. 이름도 없이 염부1로 등장하는 아버지는 염전에서 소금을 만들다가 과로로 죽는다. 대기업 임원으로 남부러울 것 없이 살던 주인공 선명우는 막내딸 시우의 20살 생일에 느닷없이 사라져 버린다.
법 없이도 살만큼 순박했던 시인 ‘나’의 아버지는 "애 하나 공부 못 시키면 그게 무슨 부모라 할 수 있소?"라는 아내의 신념 때문에 강경을 떠나 술에 절어 어판장 노동자를 전전하다 부두에서 추락사한다.
죽음과 가출로 인한 아버지의 부재는 자식들에게 세상의 고통을 안겨준다. 하지만 아버지의 부재는 아버지에게 ‘빨대’ 꽂은 자식들 때문에 발생한다. 가족을 위해 돈을 버느라 가족과 대화할 시간이 부족했던 아버지... 가족에게 아버지는 그저 돈을 벌어오는 존재일 뿐이다.
...(상략)… 아버지는 그저 아버지일 뿐이었다. 아버지는 사람이다, 라고 누가 말하면 웃음이 날 것 같았다. ...(중략)… "아빠잖아!" 아버지는 환자가 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라고 그녀들은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다.
그 삶에 지쳐 아버지들이 소멸한 것이다. 작가는 선명우의 말을 빌어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부모에게 빨대 꽂지 말고 자립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소설을 통해 주체적인 희망을 보여준다.
...(상략)… 내가 가족을 버렸다고 생각하는 자네 생각에 동의할 마음은 없네.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니지만 나로 인해 그 애들도 인생의 새로운 찬스를 맞은 거라고 생각하네.
새로운 찬스는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오거나 소멸한다. 20살 성년이 된 나이, 아버지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생각하고 집을 나서지만, 아버지라는 빨대를 잃은 자식들은 세상에 나와 어린아이처럼 방황한다.
아버지의 가출 후 어머니마저 죽자 시우의 큰언니는 엄마가 남긴 적금통장을 혼자 독차지하고 동생들과 연락을 끊는다. 과한 소비에 길들여진 작은언니는 아버지 친구와 내연관계를 맺고 금전적인 지원을 받다 우울증에 걸린다. 막내 시우도 처음에는 작은언니와 비슷한 행보를 보이지만, 자본에서 탈출해 연극배우로서 자신의 인생을 찾는다. 그러면서 아버지의 삶을 궁금해 하고, 아버지를 찾아 강경에 내려올 정도로 강해졌다.
그림 9. 옥녀봉
아버지의 새로운 찬스가 완성(?)된 소금집은 옥녀봉에 있다. 옥녀봉은 논산 8경 중 하나다. 강경산 옥녀봉은 옥녀 전설과 아름다운 풍경이 어우러져 지상과 천상의 기운을 다 품고 있다. 아무리 뾰족하게 날이 선 마음도 자연 앞에서는 수그러지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작가는 옥녀봉 자락에 제2의 터전, 소금집을 만들었을 것이다.
…(상략)… 옥녀봉은 높지 않은 암산이지만, 서북으로는 휘돌아가는 강에 발을 대고 동남간으로는 너른 벌판을 사이에 둔 채 계룡의 준령들과 대둔산이 뻗대어 있어 그곳에서 보는 정경은 모난 데 없이 늘 원만하고 풍요로웠다. …(중략)… 논산의 여덟 가지 빼어난 경치 중에 옥녀봉의 명월이 들어 있었다. 목욕하러 내려왔다가 다시 하늘로 가지 못한 옥황상제 딸 옥녀의 전설이 깃든 곳이기도 했다.
그림 10. 소설 <소금> 안내판(좌), 소금집(우)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정이란 이름의 빨대에 꽂혀 살다 가출한 선명우는 옥녀봉 소금집에서 주체적인 삶을 되찾는다. 소금집은 더운 여름날 차비를 아끼려 100리 길을 걷다가 기절한 어린 선명우를 보살펴 준 첫사랑 세희누나가 죽기 전에 머문 곳이다. 이 집에서 명우는 핏줄이 아닌 새로운 가족과 살게 된다. 생명이 소멸하고, 새로운 생명을 거두는 소금집에서는 모든 것이 자연의 순리처럼 자연스럽고 평화롭다.
...(상략)… 큰 딸 신애는 …(중략)… 곱추병이라고도 불리는 구루병환자인 듯 보였다. ...(중략).... 일곱 살 짜리 지애는 ...(중략)… 실명으로 진행되는 선천성 병에 걸렸다는 소문이 돌았다. ...(중략)… 아주 이상한 가족이었다. 청동조각 김을 빼면 정상적인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렇다면 그 집엔 비극적인 어둠이 가득 들어차 있어야 옳을 터였다. 그러나 집 안은 아주 정갈하고 환한 느낌을 주었다.
소금집에 정착한 다음해, 선명우는 어버지의 소금에 관심을 갖는다. 염전에 쓰러져 죽은 아버지를 기억 속에 봉인한 채 20년간 하루도 쉬지 않고, 생산성과 전투를 치렀던 그는 사람을 살리는 소금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림 11. 대형 유람선을 리모델링한 강경젓갈전시관
강경하면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젓갈은 소설 <소금>에서 자세하게 소개되고 있다. 전국 젓갈의 70%를 유통하는 강경에서 주민들은 대부분 젓갈과 관련된 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어 그 의미가 매우 중요하다. 소설에서는 젓갈의 종류와 효능, 담그는 시기, 보관방법 등이 자세하게 나와 있다. 소설만 읽어도 젓갈 박사가 될 정도다. 지루할 수도 있는 젓갈 관련 상식은 어머니와의 추억, 첫 사랑의 애틋함과 버무려져 술술 읽힌다.
또한, 강경 젓갈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강경포구 둑길에 위치한 강경젓갈전시관에 방문하면 된다. 이곳에서는 강경젓갈의 역사와 우리나라 염장음식 문화, 강경의 옛모습들을 사진과 디오라마로 감상할 수 있다.
...(상략)… 앉아서 굶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예전부터 해산물을 취급해온바, 떠나지 않은 강경 사람들에게 남겨진 생존의 끈이 있다면 염장의 전통뿐이었다. ...(중략)… 바로, 젓갈이었다.
곰삭은 젓갈은 <소금>에도 곳곳에 등장한다. 시인의 동창생 덥석부리는 대흥리에서 젓갈 가게를 운영하고 있고, 소금집에서 선명우와 살고 있는 함열댁은 젓갈 가게 점원이다.
소설 <소금>에는 젓갈의 종류와 효능, 담그는 시기, 보관방법 등이 자세하게 나와 있다. 소설만 읽어도 젓갈 박사가 될 정도다. 지루할 수도 있는 젓갈 관련 상식은 어머니와의 추억, 첫 사랑의 애틋함과 버무려져 술술 읽힌다.
그림 12. 조기젓, 황석어젓
...(상략)… 어머니는 조기젓과 황석어젓만은 꼭 직접 담가 먹었다. ...(중략)… 봄에 담그는 젓갈로는 조기젓 꼴뚜기젓이 으뜸이고 초여름엔 조개젓 황석어젓, 한여름엔 오짓어젓이 제철이며, 맛갈나는 가을 젓갈로는 대구모젓과 어리굴젓이 제일이었다.
그림 13. 죽림서원(좌), 임이정(우)
소설 <소금>에 등장하는 강경의 풍경은 자본주의, 생산성 증대에 몰두한 우리가 잊고 사는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강경은 예로부터 양반의 고장으로 예(禮)를 연마하기 위한 서원과 정자가 많다. 본디 예(禮)란 사람을 위한 것이다. 금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나란히 서 있는 팔괘정, 죽림서원, 임이정을 둘러 보며 공부도 개발도 결국 사람을 살리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작가가 생명을 살리는 소금을 꿈꾸었듯이…
…(상략)… 죽림서원은 조광조와 율곡, 우암 등을 제향한 고풍의 서원이었고 팔괘정은 송시열이 건립한 정자였으며 임이정은 사계 김장생(金長生)이 세운 강학 건물이었다. 조선의 예법을 집대성한 김장생 선생에겐 멀고 가까운 곳에서 배우고자 하는 이가 많이 몰려 들었다. 그는 제자들을 위해 이곳 강변에 강학원을 짓고 이름을 임이정이라 했다. 《시경(詩經)》의 “여임심연 여리박빙(如臨深淵 如履薄氷)”에서 유래한 말로 ‘두려워하고 조심하길 깊은 연못에 임하는 것처럼, 또 엷은 얼음을 밟는 것처럼 하라’는 뜻이었다.
그림 14. 옥녀봉 아래 갑문
이미 오래 전에 기능을 상실한 갑문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가치를 알려주고 있다. 갑문은 식량과 물자를 수탈하기 위해 1924년 일제가 설치한 것이다. 갑문으로 금강 수위를 조절해 밀물 때에도 강경포구에 배가 드나들 수 있었다. 하지만 경부선, 호남선 철도가 차례로 개통되면서 서서히 강경포구는 그 기능을 상실했고 갑문의 역할도 끝났다.
...(상략)… 저 끝에 갑문이 있었어. 밀물 때는 물을 들여놓고 썰물 때 문을 닫아 배들이 시가지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도록 만든 거지. 멍청한 인간들이 물길을 막아놓아 지금은 죽은 하천이 됐지만 편안함을 느꼈다면 개발의 바람이 이곳을 비켜갔기 때문일 거야. 낡은 것은 사람 심사를 편안히 하거든.
선명우가 사람을 살리는 소금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동안 자식들은 낡은 갑문을 편하게 받아들일 만큼 성장했다. <소금>에서 선명우는 가족(시우)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 여타의 소설과 사뭇 결말이 다르다.
하지만 모두 평화롭다. 시우는 아버지의 존재를 눈치채고도 그의 부재를 인정하고,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으로 아버지가 되는 것을 두려워했던 시인은 더 이상 아버지라는 단어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시우와 시인은 강경에서 다시, 꿈을 꾼다. 시간이 멈춘 듯 적요한 강경에 물들어 아버지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 자료 출처 -
*서적
「소금」, 박범신, 한겨레 출판, 2013.
*사이트
위키백과 http://ko.wikipedia.org/wiki/박범신
*기사
「청년작가 박범신 “내 문학의 고향은 논산강경」 / 논산포커스(2013-11-17)
http://www.nsf.kr/news/view.asp?msection=5&ssection=38&idx=3162
- 이미지 출처 -
디브러리 소장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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