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도항
게들은 모두 각자의 집에 산다.
버스에서 내려서 작은 포구에 들어서자 평화롭고 한적한 느낌이 확 다가왔다. 작은 언덕배기에 올라서자 시원한 바닷길이 눈앞에 펼쳐졌다.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느낌, 여행은 짧은 순간순간에 짜릿한 기분을 맛보기 위해 떠난다.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그것은 마치 병실에 오랜 시간 누워 있는 환자가 창가로 침대를 옮겨가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탄도항에서 누에섬까지는 1.3km, 도보로 약 20분 정도 거리이다. 누에섬에는 전망대가 있고, 그곳에서 눈앞에 보이는 제부도와 해상케이블카, 대부도, 영흥도, 그리고 멀리 당진까지 사이에 크고 작은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침 썰물 시간이라 몇몇 사람들이 앞서 걷는 모습이 보이기에 무작정 따라나섰다.
갯벌은 바닥이 드러났지만, 아직도 곳곳에 작은 물줄기들이 무언가에 쫓기듯 서둘러 쉴 새 없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가끔 외로운 갈매기가 먹이를 찾을 생각도 안 하고 우두커니 서 있다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태고 때부터 갈매기들은 사람을 그다지 경계할 필요가 없는 대상으로 여기며 살아온 것 같다. 갯벌은 돌이나 나무토막 가릴 것 없이 형체를 갖춘 사물에는 다닥다닥 굴 딱지들이 붙어 있었다. 어떤 이들은 굳이 갯벌로 내려가서 손톱만 한 굴을 꺼내 먹는 모습도 보였다.
굴 딱지들은 처음 생명이 잉태된 자리에서 죽을 때까지 제자리에서만 살아야 한다. 바닷물이 빠져나가고, 강렬한 태양 빛에 몸 전체가 드러나도 제 자리에서 두꺼운 껍질을 꽉 닫고는 죽은 듯이 버티고 있다. 그 인내심에는 시간이 지나면 다시 밀려 들어 오는 조수의 운명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하면 게들은 생존방식이 가볍고 분주하다. 지구상에 게들은 4천여 종이 있고 우리나라에는 130여 종이 살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갯벌에서 살아가는 게들은 그중 엽낭게라고 불리는 종인데, 저마다 굴(집)들을 준비하고 물이 빠져나가면 포식자의 눈을 피하고자 잠시 잠깐 먹이 사냥을 하다가 위험을 감지하면 재빨리 굴속에 몸을 숨기고 몽둥이처럼 긴 눈자루를 휘두르면서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그 행동이 얼마나 민첩한지, 갯벌을 걷다 보면 순간순간 마치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이 지휘자의 손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일제히 굴속으로 몸을 숨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갯벌엔 무수한 게들이 몸을 숨기는 굴들이 보이는데 이들은 서로의 충돌 없이 순식간에 각자의 굴을 찾아 움직이는 모습에서 “게도 제 구멍이 아니면 들어가지 않는다”는 속담이 생겨났다.
여행은 목적에 따라서 계획이 다르겠지만, 나같이 단순히 바다를 보기 위한 여행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시간에 쫓기지 말아야 하고, 사람에게 상처받지 말아야 하며, 먹거리에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은 시대를 불문하고, 진리이다.
수원역 2층 환승 정류소 4번에서 탄도항까지 가는 1401-1 좌석버스가 있다. 이 버스는 하루에 총 5회 왕복 운행하며 탄도항을 지나서 인접한 전곡항이 종점이다. 차가 낡아서 덜거덕거리지만 한 시간 남짓이면 목표지점에 도착하기 때문에 이 정도는 각오해야 한다. 탄도항과 전곡항은 도보로 약 15분 정도 거리이며 함께 돌아 볼 수 있다. 전곡항에서는 H-50 마을버스가 제부도까지 운행하는데 이 버스를 이용하면 수원역까지 좀 더 자주 운행되는 1401번 버스(20~40분 간격)를 이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