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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성산공원 |
맞추는 산 성산!
그렇게 높지도 낮지도 않은 곳에 있어 오르려는자들은 모두가 오를 수 있는 산 성산! 이렇게 부담 없고 누구에게나
공평한 성산은,타지에서 고향을 그리는 출향인들이나,김제의 세월과
함께 해 온 시민들에겐, 추억과 마음을 묻어둔 곳이라 할 수 있다.
김제시청 뒤편에 김제시의 主山으로 자리 잡고 있는 성산은 해발이
30m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평야지대인 까닭에 전망대에 오른다면
사방 100여리를 관망할 수 있다.이러한 성산의 주위로 김제군 관아와
향교가 사적482호로 지정되어 있고, 지난 4월 24일 개관한 김제
문화예술회관이 자리 잡고 있어 이곳은 성산공원과 더불어 명실공히
김제시의 역사와 문화의 메카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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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미 작 성산공원 독구데기 |
독구데기의 전설과 홍심정 활터
어느 마을에나 전설은 있기 마련이다. 전설은 예로부터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과정에서
다소 과장되거나 기괴한 이야기로 변하게 된다. 특히
생활용수나 농업용수를 얻기 위해 강이나 저수지 근처에
형성된 마을에서는 물과 관련된 사건 사고가 일어나기
마련인데, 그로 인해 저수지와 강가에는 귀신이나 용,
등의 비현실적 존재가 등장하는 전설들이 생겨났다.
우리지역 김제에 있어서는 벽골제의 전설과 성산공원의
독구데기 전설이 그러하다.지금의 성산공원 옆의 홍심정
활터는 예전엔 독구데기라 불리우던 저수지가 있었다.
이 마을의 위치는 바로 옛 김제관아가 위치했던
곳이어서 김제의 중심지로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다. 옛 마을사람들에게 있어서 독구데기는 밝은
낮 동안엔 활기가 넘치고 전망 좋은 저수지였지만 밤에는 그야말로 으스스한 공포의 장소였을 것이다.
암흑속의 저수지에서 울려 퍼지는 수많은 생물들의 소리는 변을 당했다던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해 더더욱 두려움을 자아냈을 것이다. 그러한 공포감이 만들어낸 옛 이야기는 이제 중년이나
노년에 접어든 김제 시민들에겐 이제 자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추억속의 이야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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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심정 활터 |
백제시대의 城址 성산
김제시민에게 있어서 아늑한 휴식처이자 가벼운
산책과 운동을 할 수 있는 성산공원은 백제시대로
추측되는 중요한 성곽(城郭)이었다.
비록 축조연대가 알려져 있진 않지만 主城으로서의
기능을 하였다는 것이 1917년에 편찬된 김제군지에
기록되어 있다.
또 일본의『일본서기』천지기(天智記)에는,백제때의
김제가 피지산(避支山)과 피성(避城)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 피성은 백제의 중앙정부가 궤멸된 이후
백제유민들이 백제의 왕자 부여풍을 중심으로 부흥
운동을 벌였던 한 때의 근거지였던 곳이기도 하다.
나당연합군에 백제가 패망하고 백제의 충신이자 왕족인 복신이 왜국에 가 있던 부여풍 왕자를
모셔와 주류성(부안 우금산성 추정)에 항전하였으나 논과 밭이 멀리 떨어져 있고 토지는 메마른
자갈땅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겨울을 나기에 적합하지 못했다.
662년 12월 백제의 왕 부여풍과 신좌평 복신등이“주류성은 오직 전쟁을 막아낼 장소일뿐 이라며
피성으로 천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천지기,엔 또 김제로 천도해야할 이유로 동남쪽에 깊고
커다란 제방이 지키고 있어 좋은 지역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바로 그 제방이‘벽골제’이다.
이로 본다면 피성은 바로‘성산성지’이며 이것이 입증된다면 그동안 이설이 많았던 주류성의
위치 또한 부안 위금산성이 되는 것이다.
나당연합군의 압박으로 피성에서의 항쟁은 두달 끝에 다시 주류성으로 물러났지만 백제부흥군이
우리지역 김제를“삼한에서 가장 풍요로운 곳”이고, “의식의 근원”이라 높이 평가하며
천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삼국시대의 우리지역 김제가 얼마나 그 위상이 높았는가를 알 수 있다.
첫댓글 피성으로 천도해야할 이유로 동남쪽에 깊고 커다란 제방이 지키고 있어 좋은 지역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바로 그 제방이‘벽골제’이다
위 내용에서 동남쪽의 깊고 커다란 제방이 벽골제라면, 신라 당군의 공격은 북쪽 웅진, 사비에서 내려오는데, 어떤 방어 수단으로 이용가치를 말하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혹, " 배수의 진 "..?
김제가"삼한에서 제일 풍요로운 곳" "의식의 근원" 이다 말한 출처는 어디일까?
삼한에서 제일 풍요로운 곳은 목지국이 자리한 지금의 예당평야 지역으로 보는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