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꽃 피어나던 부산 2 / 중편소설. 김시화
그녀 몰래 그녀를 지켜보다 민수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묘한 매력에 빠져들어갔다. 커피를 마시는 그녀의 표정은 웃음기가 보일듯 말듯 하였고 눈은 어떤 호기심과 마음속 생각이 같이 흐르는 같은 예쁜 소녀의 눈이었다. 아까 만난 리닛존슨은 민수와 더 가까워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민수는 말을 걸기로 마음을 정했다.
"저기 실례지만 말씀 좀 묻겠는데요?"
그녀는 민수의 말을 못들었는지 계속 커피만 마시고 있었다. 민수는 좀 더 큰소리로 말했다.
"저기요! 실례지만 말씀 좀 묻겠는데요?"
그제서야 그녀는 고개를 돌려 민수를 보았다. 그녀의 앞얼굴은 참 예쁘면서도 개성적이었다. 꼭 민수의 중학교 시절 인기 최고였던 만화영화의 여주인공 캔디 같았다.
"저예? 무슨일인데예?"
그녀는 귀에 넣어져 있었던 이어폰을 빼면서 대답했다. 민수는 그녀가 처음 물었을때 듣지 못한 이유를 알았다. 마이마이를 주머니에 넣고 이어폰으로 듣고 있었는데 민수가 그걸 잘 못본 것이었다.
"제가 좀 전에 부산에 도착했는데 부산지리를 잘 몰라서요. 해운대에 가려면 어떻게 가야하나요?"
민수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는 부산역 바로 전역인 해운대역에서 내려 바다구경을 한참 하다가 뉴질랜드 미인 리닛존슨과 데이트까지 했는데, 해운대라니. 말을 걸면서 머릿속에서 가장 빨리 떠오른 지명이 해운대여서 그렇게 말을 했던 것이다.
"해운대예! 여행 오셨나 보내예?"
"네. 부산은 난생 처음 왔습니다."
그녀는 친절하게 미소지으며 가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감사합니다. 근데 혹시 지금 바쁘시지 않으면 안내좀 부탁해도 될까요?"
"안내예? 안됩니더. 지는 점심시간이라 밥먹꾸 여게 쪼매 커피 마시며 앉아 있는 거라예. 딴 아가씨한테 부탁해 보세예."
그녀는 민수의 속을 안다는 듯이 그렇게 말하고 예쁘게 웃었다.
"아! 그러시군요. 그럼 제가 혼자 해운대 다녀오고 저녁에 부산 시내를 구경하려 하는데, 부산에 아는 사람도 없고 그래서 그때 부담갖지 마시고 편하게 친구처럼 시내 안내좀 해주시면 안될까요?"
민수는 집요하게 재차 만남을 시도했다.
"다른 예쁜 아가씨들도 무지 마나예. 다른데 알아보이소"
"아닙니다. 인상도 참 좋으시고 이렇게 예쁘고 멋진 분은 본적이 없습니다."
"와 이러십니까? 부산에 이쁜 여자들 억수로 많은데예."
"정말입니다. 제일 멋지십니다. 전 대학생이고 절대 나쁜 사람 아니예요.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아이구, 마! 이제 갈 시간인데예. 지는 가보겠어예."
민수는 그녀의 가겠다는 말에 맥이 쭉빠져 말도 못하고 멍해졌다. 그 순간이었다.
"혹시 지가 나올지도 모르니 저녁 6시에서 6시 반 사이에 기다려 보이소."
민수는 그 소리에 힘이 나고 뭔가 희망의 서광이 비치는듯 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민수는 그녀에게 인사를 꾸벅하면서 말했다.
그녀도 활짝 웃으며 손을 살짝 들어 인사하고 부산역 옆에 있는 넓은 거리로 총총히 걸어갔다.
민수는 그녀가 올거라는 묘한 확신이 들었다. 약속시간 까지는 거의 7시간 정도나 남았다. 그는 부산의 다른데를 다녀볼까 생각하다가 그것 보다는 좀 쉬고 몸의 에너지를 비축해 저녁에 그녀를 만나는 것이 좋겠다는 결정을 내리고 부산역 건너편의 500원짜리 싸고 맛있는 보리밥을 사먹고 근처의 만화방에 가서 만화책을 보고 잠도 자고 그러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저녁 5시무렵이 되어서 그녀를 보았던 부산역 벤치를 찾있다. 다행히 자리는 비어있었다. 민수는 긴장되고 두근대는 마음으로 앉아있었다. 시간이 멈춘 것같이 느리게 갔다.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6시가 되어도 오지 않았다. 민수는 긴장했지만 자신의 예감을 믿었다. 그녀가 나타난 것은 6시 25분 경이었다. 그녀가 좀 늦긴 했지만 민수는 행복하기만 했다.
"안녕하세예! 아직도 기다리고 계셨네예. 지가 늦어서 안계실줄 알았어예."
"아닙니다. 전 오실거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고마워예. 지가 오며 생각해보니 여기 계시면 서면을 가려고 했어예. 서면이 부산서 억수로 크고 젊은 사람들이 많아예. 가보실래예?"
"서면! 참 좋을 것 같네요. 가보겠습니다
"절 따라오세예."
그녀는 민수를 데리고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서면은 정말 엄청 크고 젊은 사람들의 거리였다. 보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젊은 사람들이었다.
"저녁 드셨어예?"
"아니요. 아직..."
"저도 아직예. 혹시 만두 좋아하나예?"
"만두요? 네. 좋아해요."
"제가 잘가는 만두집이 있어예. 그럼 일단 요기부터 해예.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카데예."
그녀는 그를 데리고 어떤 골목으로 들어갔다
서면(西面)은 대한민국 부산광역시의 도심으로, 부산진구 부전동을 중심으로 전포동 일대까지 각종 상업시설과 금융기관, 의료기관, 교육기관 등이 밀집해 있는 부산광역시 최대의 번화가라 할 수있다. 부산광역시 도시계획의 2도심 중 하나로, 행정· 업무· 금융· 상업기능의 중추기능을 담당하고 있으며 각종 대중교통 노선과 도로가 이곳을 중심으로 발달돼 있다. 도시철도 1호선과 2호선이 만나는 서면역과 롯데백화점·호텔, 부산 글로벌빌리지가 위치해 있고, 도시철도와 연계된 지하상가, 서면1번가 등에 상업지구가 위치해 있다. 부전역 인근에 위치한 과거 하야리아부대 부지에는 부산시민공원이 개장하였다. 과거 서면에는 부산 롯데월드도 있었다.
그녀를 따라간 골목안의 만두집은 장사가 아주 잘되는 집이었다. 사람들이 줄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 사람들이 너무 많네예. 다른데 가실랍니까?"
"아니요. 기다리죠. 뭐."
그들은 줄을 서서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린 후 마침내 만두맛을 볼 수 있었는데,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그들은 물만두 두그릇과 찐만두 한판을 주문했다.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식사를 끝내고 민수가 계산을 하려 하는데 그녀가 가로막았다.
"여행온 손님인데 지가 낼께예."
민수는 그녀의 마음 씀씀이에 적잖은 감동을 받았다.
"저녁을 사셨으니 제가 맥주 한 잔 살게요."
"맥주예? 지가 주량은 세지 않지만 분위기는 좋아합니더."
그들은 근처에 있는 생맥주집을 찾아서 들어갔다.
생맥주 집에서 그들은 다양한 많은 얘기를 나눴고 민수는 그녀의 이름이 '김미경' 이란 것과 부산역 근처에 있는 민예품 센터에서 근무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자신이 '김민수' 이고 군에 가기 위해 학교를 휴학하고 부산에 여행중이라는 것을 얘기했다. 둘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들처럼 금새 친해졌다. 민수는 부산여자 특유의 감칠맛 나는 사투리와 예쁘고 귀여운 미경에게 점점 늪에 빠져들듯 호감이 강해짐을 느꼈다. 그들은 생맥주가 약간 얼얼한 상태에서 술집을 나왔다. 시간이 저녁 9시 가까이 되었다.
"제 집이 10시가 통근이라예. 지는 이제 가봐야 겠네예."
"통근시간이 좀 빠르네요. 좀 늦게 가시면 안되나요?"
"안됩니더. 근데 그쪽은 어디가서 주무시지예?"
"24시 만화방도 있고 여관도 있고 잘 곳은 많아요.
참 광안리가 좋다는데 내일 저녁에는 광안리 안내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이구! 또. 호호! 안될것은 없지예. 알겠어예. 그리고 이게 지 명함인데 무슨일 있으면 전화 주이소"
그녀는 민수에게 자신의 명함도 주고 그 다음날도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만나기로 하고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민수는 서면에 있는 24시 만화방을 사람들에게 물어서 찾아 들어갔다. 워낙 만화를 좋아했던 민수는 아주 어릴적 꿈이 만화가였을 정도였다. 그런 그에게 24시 만화방은 편안한 아지트였다.
다음날 아침에 민수는 리닛존스와 약속한 호텔에 가서 그녀가 사주는 아침을 먹고 아쉬운 작별을 하였다. 리닛존스는 민수에게 편지하라며 뉴질랜드 웰링턴에 있는 집주소를 적어주었다.
그녀와 헤어진 후 만화방에서 너무 만화책에 빠져 잠을 거의 자지 못한 민수는 부산역으로 가서 미경과 만났던 긴벤치에서 잠속에 빠져 들어갔다. 맑고 햇살이 따뜻한 가을 날씨가 잠자는데 수면제 역활을 하였다.
오후 1시정도에 깨어난 민수는 부산역 맞은 편에 있는 오백원짜리 보리밥 집에서 점심을 먹고 또 다시 근처에 있는 만화방에 가서 미경과의 약속시간을 기다렸다. 다행히 값도 싸고 읽을 만한 만화책이 많았다.
오후 5시 50분쯤 만화방을 나와 약속장소인 부산역 그 긴벤치에 가니 저쪽에서 미경이 손을 흔들며 걸어오고 있었다.
민수는 환한 미소를 지며 같이 손을 흔들며 그녀를 맞았다. 한떨기 장미꽃이 미소지며 걸어서 자신에게 오는 것만 같았다.
"안녕하세예! 오늘 지 기다리느라 욕보셨네예."
"안녕하세요! 아닙니다. 누군가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 좋았습니다. 하하!.
"광안리 가기로 했지예? 가실럽니까?"
"네. 가보고 싶네요."
"지따라 오세예. 버스타야 합니더."
민수는 미경을 따라 버스타는 곳까지 갔다.
버스를 타고 내린 광안리에는 수많은 횟집, 술집, 까페가 있었다. 9월의 광안리 야경은 참으로 독특하고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바다를 보고 건물들을 보면서 걷다가 '밤에 피는 장미'라는 까페로 들어갔다. 둘은 바다가 보이는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남자 사장이 혼자하는 아담한 까페였다. 사장은 그들을 반기며 메뉴판을 가져왔다.
그들이 광안리 까페의 메뉴판을 펼쳤을때 특이한 이름의 칵테일들이 눈에 띄었다. '별이 된 소년의 이야기, 밤에 피는 장미,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민수는 그런 제목의 칵테일을 생전 처음 보았다. 춘천이나 서울에서도 본적이 없었다. 그는 '별이 된 소년의 이야기' 를 시켰고 미경은 '밤에 피는 장미' 를 시켰다. 민수의 칵테일은 전체적으로 어두우면서 밝은 색이 들어가 있었고 미경의 것은 핑크색 화려한 빛깔이었다. 둘다 제목을 떠올리게 할만큼 매치가 잘되었다. 민수는 낭만적인 까페의 분위기와 환상적인 칵테일, 그가 초등학교 다닐때 인기 만화 영화 엿던 '들장미 소녀 캔디' 같은 예쁘고 애교스런 미경에게 점점 빠져 들어갔다.
민수는 미경에게 자신의 고향 얘기와 학교생활, 데모했던 얘기, 집에서 목장을 하고 그래서 자신도 대학을 '축산학과' 에 진학하게 되었는데, 막상 들어가보니 적성에는 잘 맞지 않았다는 얘기들을 하였다. 미경은 민수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고 또 자신에 대한 얘기와 부산에 관한 얘기들을 들려주었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민수가 미경과 데이트 삼매경에 한참 빠져있을때, 미경이 시계를 보더니 이제 집 통금시간이 다되어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마치 무도회가 끝나기전 사라져서 왕자의 애를 태우는 신데렐라 같았다.
"제가 내일 쉬거든예. 같이 경주 안가시겠어예?"
미경은 내일 비번인데 경주여행을 동행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민수는 너무 좋아 환호소리를 낼 뻔했다. 싫을 턱이 있을리 없었다.
"경주여행. 그것 참 좋겠네요. 몇년전 고등학교 수학여행때 가본적은 있는데 참 좋더라구요."
미경은 다음날 경주 여행을 약속하고 민수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집에 들어갔다. 광안리에서 부산역까지는 둘이서 버스를 타고 같이 왔고 부산역에서 미경은 집이 있는 범천2동으로 버스를 갈아탔고 민수는 숙박비를 아끼려 또 다시 24시 만화방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