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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문학 등단작 1981~1985까지
1985.
*겨울호(45호)
*기다림 / 丘英珠 (구영주)
감꽃이 이울자 목에 걸고 나선 고향
넘치는 옛 뜨락을 아끼며 기르듯이
골 깊은 그리움들을 아겨두고 보는건가.
차가운 하늘 속에 담아두는 까치밥
주홍으로 남은 가을 일렁이는 하늘 가에
멧새가 다시 찾아와도 반가움은 그대로.
무릎까지 출렁이는 그리움의 머리까락
하늘을 적시고 바다로 밀려드네
까치가 날 찾아오면 그 소식만 간직하리.
*바람 / 성덕제
1
思念의 일그러짐
부딛치는 세월에는
空洞에 低邊으로
沈澱하는 아픈 목숨
알알이
뜯겨 버려라
핏망울로 뿌려져라.
2
초동이 實存임을
實在로서 현현 할 때
우주석 흔들림이
아픈 思惟 다시되고
편린(片鱗)의
목숨으로서
가슴 가득 서러워라.
3
고요의 뒤안 가득
서걱이는 아픔 두고
길길이 치뛰던
背律의 한낮이면
흩뿌린
哲理도 거둬
始原으로 回歸되고.
*종소리 / 廉東槿
하늘이 내려놓는
금쪽 같은 말씀들이
밤이슬 물빛에 씻은
목청 맑은 가락으로
그 모두 새떼가 되어
온 누리를 덮는다
응달에서 몸살 앓는
물푸레의 잔가지 위에
빈 가슴 쓸어내리는
외로 선 꽃대궁에
사쁜히 나래 접으면
눈살 아린 빛이 되네
바람에 귀를 맑힌
별빛으로 꽃잎으로
소망의 세상을 따라
무늬 고운 수를 뜨는
지천을 흔들어 재우는
먼 메아리로 숨이 닳네.
*울릉도 / 김민한
뭍을 향해 가다
지쳐버린 외토리로
수평 끝 자락을 잡고
상금도 출렁이면
만 이랑
메아리 치는 정
촛대 바위 맴돌고.
도동항 열어 놓고
손짓하는 깃발이며
알봉 들녘 속이 빈 돌에
마음 실어 뜨고 싶다
너와집
추녀 끝마다
새로 이는 실바람.
넘나드는 안개 구름
태하동에 짐을 풀고
불야성 핏빛 바다
밤을 낚는 海心이며
후박엿
속맛 사랑을
나그네야 품어라.
*푸념 / 김기철
-화실에서-
무심한 세월 곁을
청산처럼 살자 하네
꽃물 묻은 캔바스에
긴 한숨이 나래 펴면
꿈인 냥
접어둔 사연
혼자 펴고 삽니다.
뜬 구름 지나가듯
표적없이 살라하네
화폭에 눈물자욱
다사로운 정만 남아
시린 맘
뜨거운 열기로
혼자 울며 삽니다.
85. *가을호(44호)
*동해바다 / 이종원
大淸빛 트인바다 소슬이는 바람 소리
한방울 그리움은 햇머리를 갊아 흘러
의젓히 하는 돌장승 無孔笛(적) 을 듣느니.
始原 그 胎 자리사 소용돌이 치는 寂滅(적멸)
저 한 점 흰 구름과 흔적 없이 가는 이 길
오늘은 새로운 날이 거듭 새어라.
가느니 가는 세월 다시 오니 오는 세월
絶頂을 올리고야 파득이는 깃발이여
曠劫(광겁)을 여기에 열어 사랑 가득 채우리.
*思鄕歌 / 이태영
버린지 오랜지라
잊을 법도 하다마는
타양살이 정에 주려
마음 마냥 고플 때면
불현듯 그리워 지는
정만 남은 백제 서울.
서러운 꿈길 마다
찾아가는 고향산천
봄이면 앵산(櫻山)이요
가을이면 山城이라
한여름 찌는 더위는
곰나루에 식혔느니.
산수 좋은 계룡산에
마곡사에 갑사 서껀
어며님 훈김 서린
내 마음의 둥지라니
흙내음 구수한 날에
그 산하에 묻히리라.
*바다 심정 / 김시현
생각은 덤으로 자라 한마음 흔들리고
바램은 물방을 처럼 떴다 감는 눈시울
수평선 머나먼 길을 다시 밟는 아픔일레
이승에 젖은 눈빛 아리 아리 샘솟는 정
무시로 둥등 뜨는 낮달에 실려 간다
한번쯤 네 뒤척이면 몸 사리는 부나비떼.
85. *여름호(43호)
*溪流/ 이봉학
더듬는 사행(蛇行)길에
세상을 잪어보고
초엽(草葉) 뜬 물 속으로
아련히 잠긴 하늘
여울에 내 마음 행궈
세월 타래 풀고 있다.
현가증 나는 벼랑 아래
다소고이 뛰어 내려
배꽃이 같이 흩날리어
햇살 받아 스러지고
골 씻는 메아리 소리
밤낮으로 이어가고
핏발선 돌개 바람
봉마다 떨군 흔적
몽매도 소망이사
시름없는 긴 생애
차라리 물바람 타고
둥지 찾아 가리라.
*개나리 소견/ 신웅순
가다림 파종 되어
울음을 갈아놓고
외려 한이 그리워
밀려올린 새벽 하늘
한 겨울
햇살이 더워
혼을 쏟는 모습이다.
싸락눈 그 너머로
아침은 또 다가와
응어리져 터지려나
어둠 다해 피는 갈망
여껴움
다하고 나면
타 오른다 환희가.
*바람/ 김복근
사방 꾸짖고 나무라는 소리에
벼랑을 거슬러 산하를 헤메돌다
갈숲을 찾아온 사연
실꾸리로 감기는데.
하늘을 우러러
가슴마저 풀어 헤친
청상의 한을 모아
백매(白梅) 하나 피워 놓고
떠도는 유랑의 마음
나비되어 날고 있다.
*早春斷想/ 추양자
입덧 난 삶의 한 때
나른 해진 하품이여.
상치 숙갓 이쁜 쌈으로
시름마저 싸서 들면
꿈 하나 날리지 못해
아지랭이로 타는 나비.
숱한 밤 뒤척이다
놓쳐버린 미련이여
떠난 사람 시큼한 정
항아리로 깊이 묻고
바구니 담아 온 기쁨
풋김치를 담근다.
그리움 파릇파릇
버무리는 손길에
새 옷 산뜻 갈아 입고
다가 앉은 봄날이여
백목련
벙그는 사이
실비 젖는 한나절.
*서동 이후/ 강인순
*본지 창간 25주년 기념 전국 시조 현상모집 금상 수상작*
슬픈 역사들은
반추하는 해빙(解氷)의 들판
들꽃 씨 눈 틔우며
사랑은 시작되고
그토록 뜨겁던 노래
별빛으로 빛난다.
서동(薯童).떠나간 뒤
모든 것은 몸짓부터
내 천한 몸둥이로
애증을 연출한다.
우리는 善花公主는
매일처럼 꽃이되고.
이제 때묻은 골목
순정은 방황의 끝
물기 짙은 꽃잎 하나
바람에 떨고 잇고
이 밤도 우리의 薯童
인연 하나 줍고 있다.
*에리송 해변에서/ 김민정
*본지 창간 25주년 기념 전국 시조 현상 모집 근상 수상작*
돌 구르는 밤의 저쪽
퍼덕이는 검은 비늘
등솔기며 머릿결에
청청히 내린 별빛
저마다 아픈 보석으로
이 한 밤을 대낀다.
낙지뢰 한 접시에
먼 바다가 살아오고
맥주 한 잔이면
적막도 넘치느니
물새는 벼랑에 자고
漁火燈이 떨고 있다.
당신의 말씀 이후
살이 붙고 피가 돌아
삭망의 별빛 속에
드러나는 능선이며
때로는 샛별 하나쯤
띄울 줄도 아는 바다.
가슴 속을 두드리며
깨어나는 말씀들이
맷돌에 갈린듯이
내 사랑에 앙금지면
바다도 고운 사랑 앞에
설레이며 누웠다.
*예송리=보길도에 있는 마을 이름.
85. *봄 호(42호)
*어떤 점보(粘報) / 서태종
해도 달도 뜨는 그 대추(待秋)의 변경을
곤장 저 죄임 오면 잠결의 웬 몽두(蒙頭)씌우나
이 아침 눈 코 다 멀어 사자(寫字)인 줄 몰랐네.
한 열번 우러러 볼 뜸질 속의 그 밤중인가
채용해 남은 은전(銀錢) 닥달 속의 그 삭풍(朔風)인가
내 죽은 몇 가을 뒤에 가슴 앓을 사랑이여.
*청기와/ 염금련
못 견딜 바람들만 살 맑힌 넋이 되고
먼 구름 손짓 하며 뒤트는 빛이 되어
수북히 스미고 쌓여 고령토(高嶺土)로 삭았으리.
저저(這這)이 시끄러워 멀리 나는 생시여서
눈을 안으로 돌려 푸른 내일 캤을 도공(陶工)
새벽별 아련히 받아 영험(靈驗)으로 안았을일.
솔내음 가만 닿는 저 비청(秘靑) 틈틈마다.
오롯이 탑돌이 할 가쁜 숨결 새어나고
그아래 만자창(卍字窓)에는 장끼소리 부딪히네.
만근(萬斤)쇠북 시름 어느 강에 실렸느냐.
꽃비늘 갑자기 일어 그만 눈 감겨 지네
천년이 한 골씩 내리는 영원이여 꾸이여.
*국립 묘지에서/ 홍우선
진다홍 뜨거운 사랑 이제 여기 돌비 하나
절절한 네 아픔을 뻐꾸기가 자꾸 울고
한송이 풀꽃이 피듯 묻어나느 하얀 적요.
그 옛날 다순 숨결 진혼곡에 실려오면
어리고 순한 눈매 고향 하늘 눈이 부셔
내 산천 어머니 품속 절로 자란 비망록.
이름없는 군번에도 나비 하나 찾아들어
잃어버린 꿈을 주워 다독이는 손길일레
발원의 깊은 바다에 고여 앉는 그 음성.
빗발치던 포화 소리 귓결에 새삼 이는데
노송은 침묵 지켜 낙화만 흩날리고
삼십년 세월도 잊은 대답없는 메아리여.
*조가비/ 박영식
희죽이 알몸 누인
모래톱에 나 앉아
팽팽한 수평선에
낮달 한장 행궈 널고
물소리
바람소리에
가슴 비운 항아리.
연인들 발자취에
서각 사각 귀 열린 밤
열두 이랑 등굽마다
그리움 새겨 보고
못 가는
고향 하늘 쯤
별로 떠서 빛나네.
물새가 물어다 준
안개푸는 뱃고동이
해조음에 잘게 썰려
꽃잎으로 널린 아침
물가에 발 담근 나는
피리 부는 조약돌.
1984.
*겨울호(41호)
*설화초 / 허성욱
-박권농에게-
해묵은 그 가난을
쟁기로 갈던 사람
술 한 병 에너지로
만덕고개 넘어가면
무소유 허허론 삶에
위안을 얻었다는
도둑을 아들 삼는
그대 훈훈한 정은
西川 강물 위에
돛폭처럼 뱃길 열고
한 그루 미루나무로
우둑하니 서 있다.
*안개2 / 정병포
여백이 모자라는
내 생각 비인 뜰에
화선지 모다 펼쳐
백목련 그려 내어
곷잎은 물수건으로
밤빛을 닦아낸다.
그리움에 몸살 앓는
꽃숨결 향긋함이
허공에 매단 붓대
은분(銀粉)을 묻혀 놓고
고요론 어둠 깨치며
비백(飛白)을 긋습니다.
*겨울 詩行 抄 / 윤일광
1.裸木
죄이는 하늘의 무게를 버티다 못해
모두다 비워 놓고 숨 죽여 울다 보면
이승과 저승의 차인 잎새한장 뿐일걸.
2.반짇고리
청상(靑孀)은 서른 고개 물레에 걸어 놓고
살김(肉熱)없는 이불자락 눈물로 수를 뜨다
긴 밤을 바늘로 찔러 피로 지새는 李朝女人.
3.연(鳶)
질긴 명줄 목숨하여 안천(한천)에 띄워놓고
이승에 저린 恨 올올이 보내놔도
얼래에 되감겨 오는 시름이여! 시름이여!
4.질화로
질긴 속열이야 인종(인종)으로 다독이고
시나부로 삭힌 불씨 슬픈 내 조상 숨결
인두로 다려간 밤만 날(刀)이 서는 번쩍임.
*鐘의 變身을 위한 序詩 / 차정미
소리로 더들다가
굴레 밖에 돋친 날개
타는 노을 가장자리로
울음의 수렁이 패여도
캄캄한 바의
빛을 캐는
난 한 마리 날새였다.
육신을 죄다 벗어도
뿌리채 흔들리고
귀촉도 피 듣는 설화
바람의 흰 뼈로 남아
불 지른
영혼의 성에
나 한송이 불새였다.
84. *가을호(40호)
*新都安에서 외1편/ 이태룡
계룡산 도읍지란
전설만이 허망한데
신도안 궁터에는
옛 생각만 오락 가락
주춧돌 다듬는 소리
그름결에 들려온다.
신화
대자연 큰 화폭을
절로두고 그려봐라
돌 하나 풀 한포기
옮길 자리 있겠는가
한개 점 한 금 줄인들
다시 그을 수 있겠는가.
*추억/ 정위진
추가위 흰 박꽃
으스름을 피워 내면
무엔지 그리움에
눈물겹던 검은 머리
어디라 가고픈 정을
바람 결에 실었네.
달밤에 흡뻑 젖어
백옥이던 얼굴 마주 보며
수양버들 아래서
밤은 그만 비단 이불
보고픈 그는 어디서
무슨 곷으로 이우는가.
세월이 흐를 수록
꿈만 길은 두레박 끈
감기는 연륜만큼
매듭만 늘어나네
그 추억 도로 풀어서
三장六구에 싣는다
*外燈의 書/ 정수자
맺혔던 가억 하나
문득 되살아나듯
묻어둔 약속 있어
살며시 떠오른 꽃.
바람은
무슨 뜻으로
속맘 앗아 가는가.
채색 될 굼의 영농(營農)
밤발갈이 하는 별들
한 생각 한 생각씩
잎으로 돋아나고
미리내
외진 기슭에
민들래도 핀단다.
후미진 어머니 가슴
나는 늘 外燈일까.
용인 - 수원사이
가로막은 모롱이들
어느밤
잠못드는 녘은
이 저승의 거리어라.
*다시 청자(靑瓷)앞에서/ 김인호
동해 그 시린 물밭
행귀 낸 풀피리소리
바르고 구운 태깔
하늘마저 翡色(비색)인데.
먼 수평
지고 날으는
죽지 고운 물새야.
앓는 속 다스린 별
빛 고와 드리운 천년
가냘파 휘어진 삶
여윈 날 맵던 한이
터진 살
아픈 문신되어
계면조(界面調)로 섦구나.
*달빛 抒情 / 조근호
긴 세월 물이 어
대숲은 강이 고
산 허리 비단 안개
연륜으로 휘감는데
오늘도
여린 가슴을
떨며 우는 작은 새.
세월은 강심으로
혈맥되어 흐르고
마음은 보살 되어
사려 앉는 갈포 방석
멍울져
흐르는 달빛에
씻기울까 業報는!
*낙화암 小曲/ 오재열
어느 녘 꽃샘 바람
못다 핀 꽃 흩히던 날
한 지핀 강기슭에
전설 품어 앉은 바위
고운 임
구천길 열고 디딤 돌로 섰더니.......
부소산 소적새도
한 철 울다 잠이 들고
밤을 뒤챈 강바람이
꽃넋을 달래다 간
살풀이
한 곡조 접고 더디 사윈 세월이여.
강 건너면 정토라고
차마 이 강 아니 넘고
무너진 하늘 괴고
높새받이 천년일세
풍상에
주름은 가도 정정함은 예대로다.
84. *여름호(39호)
*비/ 김송배
하늘을 흥건하게
쏟으시는 情이신가
수정빛 강심을 때려
타이르는 고운 말씀
천지가 화합 하는소리
이 고요한 환희여
생모시 흰 오리를
자락마다 풀어헤쳐
바람결에 속삭이며
하염없이 가는 발길
그 산야 은혜로 감싸
草花들은 벙그나.
*서천 강나루/ 金珍赫
갯바람에 절어버린
도선장
그 강나루
소복한 여인네의
한 천년 지쳐있고
맴도는
진한 그리움
심연되어 일렁인다
어둠의 그 언저리에
부옇게 바랜 山影(산영)
언제나 가슴 한 쪽
수렁이는 바다 있어
불러도
되 오지 않는
매아리로 쌓여라
하늘 끝 수평 위에
이승의 긴 숨결이
산ㅂ다 큰 업으로 남아
물비늘로 삭이는데
어둠 속
물새 몇 마리
피안(彼岸)을 쪼아댄다.
*삶/ 여동구
1
드높은 회색 하늘
뼈 아픔을 토해 놓고
서러움 잡고 보니
시름마저 겹쳐 온 밤
차가운
바람 따라서
벼랑 위에 오른다.
2
선창가 부두 같은
비린내 난 그날 그날
향수를 사르다가
꿈을 낚는 어부마냥
포말로
부서진 아픔
무겁게도 달려온다.
84. *봄 호(38호)
*침묵/ 金惠培
은빛 머리 마주 앉아
말이 없는 뭉게 구름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깊은 골 그 고요를
바람이 하늘로 날려
두 가슴을 적시네.
눈 감아 생각하면
꽃잎지듯 저버린 날들
그대 깊이 모를
출렁이는 바다 위엔
달빛은 천만 구비에
황금 가루을 뿌리네.
*내 또한 漁夫되어/ 이인식
1
감감턴 세상 한 끝
작은 배로 닿아 들어
싣고온 시간들을
넋 놓듯 보내누나
가만히
믿어 오르면
갈대 새순 뽑는 바람.
2
만발한 꽃숨 쉬며
맺고 있는 가득한 봄
복사 꽃빛 물든
새떼들 지저귄다.
가슴 안
십리 풀밭엔
보슬비 젖는 소리.
3
문명을 앓던 골목
가마득한 날들이여.
홀로 가꾸던 뜨락
여울 이리 감고 돈다
말하리
참으로 채워
다 비우는 일들을.
*항아리/ 유승식
차는 듯 비어 있고
텅 빈 듯 알찬 마음
가슴 앓는 말씀들이
현처럼 긴장한다.
손 끝에 닿기만 하면
파도 이는 그 목소리.
대질리면 깨질세라
멀리 두고 바라보면
투박한 그 모습이
볼수록 귀품 돌고
어머님 고운 손때도
향기되어 고여 있다.
뱃속을 채우려면
구름만 흘러가고
마음을 비워내면
하늘이 가득 찬다
아버님 기침소리가
맴을 돌던 항아리.
*겨울/ 박태산
바람결 눈발이듯 흩어진 인연 속에
그립게 찾아 본 이들 안부조차 감감한 날
고향엔 또 묻어둔 시름
익어가는 노을빛.
불 사원 아궁이에 투정도 얼부풀고
을르 寒天이 드는 창호지 구멍 너머
쓴 웃음 목숨을 벗는
청자 하늘 기러기여.
이 겨울 애중함도 동국(冬菊)만한 생일런가.
비우고 간 뜨락에도 뿌리들은 깊어가고
이따금 볕 그림자인양
주님 계심을 봅니다.
*辭說調/ 정공량
홀로 먼 기억에도
아스란히 묻은 자취
카랑한 바람 한 점
곷으로 와 수를 놓듯
무거운
시간을 비껴
메아리를 찾는 마음.
가난 ㅎ 던 굼 어귀를
파도 일듯 헤쳐 눕고
일찍이 빛을 깔아
무수히 던진 말에
설워도
소망 큰 자위
뛰고 뛰는 맥박이여.
어둠이 사윈 거리
다시 높은 산이 솟고
슬혼 정 속살 키워
번지는 향 온 누리에
순금의
넋은 살아서
내일의 문 열고 있다.
*空/ 신진식
바람은 앉는자의
가슴에 와 닿아
고운 이 문전에서
피가 닳던 내 노래는
바람결
귓전을 누벼
밤을 켜며 들앉는다.
햇살은 또 어디서
마름질로 스쳐가고
들녘 끝 그 언덕에
고개드는 갈대꽃들
사랑은
능금빛 웃음
네 가슴에 타오르는.
숨 죽인 가난에도
베갯닛은 덧정 끼고
은실같은 참빛살들
홑이불을 파고 들면
푸름의
숲을 이루는
나의 잿빛 연가여!
*바람/ 박필상
불(火)로도 다 못 태울
욕망을 펄럭이며
산과 들
거침없이
구르고 내닫다가
빌딩 숲
덤불에 걸려
떨고 있는 오늘의 넋.
휘둘린 목숨 한 금
벗어 둘 터도 없이
시퍼런 칼날 세워
난도질한 이승 들에
켜켜로
쌓이는 어둠
비질하는 저 소리.
깊은 잠 여울 헤는
의식들을 길어올려
눈 닦고 귀 밝히고
마음자리 씻어 내고
가슴 속
가득 한 분진
실어 가는 나래여.
1983.
*겨울호(37호)
*속리산 새벽에 서서/ 이일향
속리 무거운 정작(靜寂)을
새 소리가 밝혀든다,
흐르는 물 소리에
골 안개도 걷어내고
문장대 내리는 솔바람
새벽 빛이 흐른다.
푸른 산 푸른 골이
자취 밟아 내려온다.
솔바람 일 적마다
높이 뜨는 송화 가루
자우룩 머리에 앉은들
털어 줄 이 없어라.
*여름 밤의 서곡/ 黃暎坡
1
두견의 울음 소리
창 가에 잠재우고
까맣게 잊어버린
시각의 초점이여
여름밤
오열을 타고
옮겨 딛는
목소리.
2
한나절 시름없이
물소리 삼키우고
무거운 묵념으로
나 몰래 떠난 환영(幻影)
찢겨진
가슴 틈으로
너울 잡는
눈동자.
*춤/ 박옥위
가냘픈 蘭 허리에
한 줄기 실바람이
옷고름 길게 서린
설움 고이 풀어내고
허공을 버선 발로 마르며
한을 접고 펼친다.
모우다 뿌리친 염(念)
하늘빛도 푸르른데
비껴 친 한삼 자락
어둔 벽도 허물으리
한 생의 수레를 따라
문을 여는 기원이여.
어깨를 들썩이며
근심 하나쯤 저어내면
새하얀 비단 너울
살을 푸는 까치 소리.
슬픈 그 얼의 매듭을
마디마디 사루리.
83. *가을호(36호)
*까치소리/ 윤신근
어둠에 가린 하늘
그 한 생을 사시느라
까치소리 들릴 때면
가슴 열어 맞으시고
사낭당
먼 고갯길에
눈을 두고 사시더니.
마들땅도 고향이라
뼈를 붇은 할머니
청룡등 가지 끝에
까치소리 걸어 놓고
천년 집
얕은 봉분 밖에서
볕쪼임을 하신다.
*강변 길/ 尹정란
그리움 구비돌아 물새나는 강변길
밤도 와 앓던 꿈이 풀섶에 스며들어
강바람 쏟는 햇살도 아침마다 설렌다.
바람은 바람만 모아 가로수를 흔들고
철따라 풀꽃을 피워 눈빛을 닦는다
회심의 그 자리마다 산가치 퍼득이며.
고요히 눈 뜨는 하늘 가슴 펴는 산과 들
물소리 청청한 강물에 인종의 넋을 심어
오늘도 한마음으로 별이 되는 조약돌.
*애기 동지/ 조용자
大雪을
앞애두고
아세(亞歲)가 들어간다
삭풍은 쓸어 안고
초승달 희롱터니
초승에
찾아든 잡귀
애기둥지 트집이네.
밤낮을
사이 두고
오늘 하루 이긴 어둠
날 새면 객이 되니
천추의 한 품을까
시루에
온 정성 쏟아
동남동녀 빌고 있네.
마지막
한 삭 두고
전설 떠간 작은 설날
새하얀 옹시미는
애기동지 스쳐가고
안마당
넘보는 靈歌
대문턱에 머문다.
83. *여름호(35호)
*낙화암/ 김근주
외로운 역사의 참변
긴 세월 서성인다
강변 갈대꽃으로
전설처럼 피어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은
강이 되어 흐르는데
바윗돌 하나마다
눈물 빛 슬픈 이름
노을로 타는 애모
시름 속에 접어두고
낙화암
그림자 안고
굽이 도는 흰옷자락.
*등대/ 박달수
올 져 오면 이는
무늬
고향은 고운 빛갈
문 밖에 선 그리운 이
손짓이 뜨거워도
한 하늘 함께 이고 사는
이 은총이 느꺼워
守節 하는 고운 아픔
한 개 별로 혈맥 잇고
천국의 문을 열어
때도 잊고 합장하는
한 마음
재로 삭아도
불씨 깊이 묻으오리.
*감 외 2편/ 김수자
가을은 너 아니면 쓸쓸함이 더 했겠다.
노랗게 물든 들판 파아라니 펼친 하늘
그 한끝 산모롱이에 타는 듯 붉은 홍시.
석류
염낭에 하나 가득 태깔 좋은 빨강 구슬.
여름날 밤 하늘에 반짝이던 별빛인가?
가을이 문 두들길 때 가슴 여는 석류알.
해바라기
해 따라 애 맞도록 맴돌다가 지쳤는가
담밑에 해바라기 말 잊은 채 홀로 섰는.
숙여진 그 머리 위에 떨어지는 저녁놀.
*종소리/ 이강룡
1
한천년 그렇게만
시름들을 삭히면서
차라리 후미진 길에
메아리로 남는 너는
구만리
하늘을 솟구쳐
이승 매드 풀고 있나.
2
바람이 비운 가슴
그 여백을 별이 뜨면
둘러선 어스름도
웬만큼은 밀린 자리
쓸쓸한
영혼을 위해
떨려 오는 여운이여.
*解凍/ 장병우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한 나절을 누운 자리
생각은 고향 동구밖
미루나무 숲을 간다.
가다림
가슴을 지적셔
온 종일을 서성인다.
어둠처럼 밀려난 게절
그 未明의 뜰에 서면
어느새 하늘 한 자락
이끌고 와 누운 들녘
종다리
울음 소리도
풀빛으로 돋아 난다.
83. *봄 호(34호)
*대청 댐에서/ 전태익
물에 잠긴 감나무 가지
낮달처럼 걸렸어라
이장한 무연분묘
산세 또한 어떻한가
쫙 깔린 골짝 시름도
꽃이고픈 안개여
해와 달 잠기다 지쳐
돌아가던 산 모롱이
수압을 마름질 하는
은어 떼는 물가에 나와
빛나는 기억의 비늘
떨궈 놓고 부침한다.
그름도 눈 비비다
돌아서는 선착장엔
바람이 놓고 떠난
하얀 갈곷 몇 무더기
현암사 층계도 백팔
물이 되던 저 종소리.
새 소리 물 소리가
천 길 물 속 뛰어든다.
어부들 빈 그물에
산 그림자 묻어나고
이 무량 수심을 재며
사려 담는 다복솔아.
닫쳤던 수문을 열면
솓아져 익는 노을
수중 속 원앙 금침도
꽃물로 와 번지는데
하늘 길 별자리 밟아
민들레 길 놓는다.
*추억 / 정태무
허무로 막이 내릴
결이 이는 회상곡
한 아름 꽃을 안고
始發한 壯圖였기에
환희와 실의가 얽혀
백천 구비 여울로 일다.
망각의 대해를 향해
띄워 보낸 고난의 운명
너무나 험한 오랜 歷程
멍이 든 산하의 아픔
민족의 목메인 울음
체념으로 달래나.
가버린 일월의 명암
萬像의 事事緣緣
슬픔도 괴로움도
지나가면 고운 추억
접어둔 하늘 한 자락
무지개로 어리나.
*저 물새를 / 강세화
오래 감감하던
귀한 손(客)이 닿은 날도
갑천에는 새벽이다
목이 메는 일 뿐이다
무참한 주검 앞에선
눈물조차 사치(奢侈)리.
고통도 햇살속에
녹아드는 강바닥은
젖어 있는 단 한군데
빈 자리로 남았더니
바람도
어쩌지 못해
허공에서 맴돌 뿐.
자꾸만 흐려지는
시야를 닦아내고
몸부림도 겨워져서
잦아들고 싶은 강물.
맨발로 더나는 바람도
[저 물새를] [물새를]
*石燈/ 南銓熙 (남전희)
남향의 마을 어귀
봉암사 길을 열면
산빛도 즈려 밟던
검은 빛의 석등 하나
정 먹던 설레임 살아
가을 볕도 잊었다.
새소리 하나 풀면
쪽빛의 하늘 이고
물소리 귀를 트면
일렁이던 세월들을
잠잠히 가슴에 재워
아직 불씨 지녔거니
더러는 바람으로
들녘에도 나섰다가
못 버릴 인연으로
돌아와 선 이 길섶
적갈색 가을이 훨훨
돌꼭지에 타고 있다.
*노승/ 金炯辰(김형진)
다문 입 천년 가도
잃지 않은 깊은 미소
오욕이 머물지 못할
깡마른 몸매여라
그 안에 말없이 살은
세월만이 잠겨 든다.
하많은 중생들의
가슴 가슴 어루만져
허구헌 저 번뇌를
참선으로 떨치우며
쌓아온 일월 거슬러
염주알을 헤인다.
바다 같은 무한으로
시방(十方)을 혜아린다
때 절은 인연들을
목탁으로 회오하며
뼈 마른 안을 다지어
사리알을 빚는다.
1982.
*겨울호(33호)
*진달래/ 이병춘
차마 못 다한 사랑
이제 와 눈을 뜬다
안으로 타는 숨결
수액으로 피가 돌아
저문 날 산불 번지 듯
피어나는 봄이여.
애증(愛憎)의 길숲 속에
기대 앉아 조는 산령(山嶺)
슬픈 제 그림자
짐짓 이고 울던 것들
그 모두 가슴을 풀고
타고지라 그 둘레
아직도 이 산하는
동강 난 그대론데
모두들 마주 한 시간
역사의 먼 기약을
저 하늘 타는 강물에
염원으로 듸운다.
*휴전선의 개나리/ 곽영기
녹슬은 철조망에
눈물 방울 아롱지고
네 허린 고향 바라
굽어버린 한 평생
어느날
통일이 온들
그 몸값을 되찾을까.
손에 손에 노오란 등불
거친 들녘 밝힌 것은
조국 위해 가신 님들
고운 꿈의 발원인가
응얼진
한을 풀어서
마디 마디 토함인가.
너는 향기 삼켜버려
해맑고 애닯구나
마음은 가고 와도
트지 못한 휴전선에
내일은
낙화로 질손
잎 돋우어 지켜다오.
*스승님/ 김오차
꽃 향기 씨 뿌린 길
다독여 가르침은
하늘 땅 푸른 꿈 속
갈고 닦은 참 사랑이
스승님 밝은 거울로 맑고 밝게 비친다.
거세게 되뇌는 바다
동심 키워 가르침에
그 물결 타고 넘는
슬기로고 알찬 힘을
등댓불 밝히시므로 믿어 오늘 살으오
참 뜻 믿는 마음
한 길을 걸으시며
평생을 지킨 그 길
누리 모두 새벽이예
샛별로 빛나는 말씀 저리 우뚝 섰으니-
*成道寺 / 박상문
수유리 맑은 고을 믿는 마음 맑은 땅에
깨달음 깨우친 꿈 동녘 햇살 담뿍 먹고
성도사 후미진 길로 티끝바람 몰고 간다.
삼각산 높은 기상 꽃이듯 솟았는데
성도사 깊은 골짝 숲과 열매 익는구나
삼세계 큰 눈도 뜨여 하늘 땅도 보인다.
웃음 띈 연꽃인양 삼각연봉 펴 오를 때
南北 恨 애 태운 꿈 한길로 소원 풀면
성불사 염불소리에 마음 모두 얼리리.
82. *가을호(32회)
*四季/ 崔無碍(애)
1春
졸졸 냇물소리
꽃망울에 와 닿는데
얼었던 하늘자락
山心에 드리웠다.
바위 틈 진달래꽃이
혼자 웃고 피어난다.
2夏
먹구름 천둥속에
퍼붓던 비가 개고
흥돋군 매미 소리
동구 밖을 맴도는데
더워도 빗물에 씻겨
산마루를 넘는다.
3.秋
시소리 물소리도
산그늘로 나래 접고
들국화 감은 눈매
빛이고와 서러워라.
산마루 이고 선 하늘
붉게 타고 있었다.
4.冬
호풍(胡風)모진 목숨이
꽃씨 바랜 진통인가
빛 바랜 한웅큼 햇살
뒷마루에 조을고
살 에는 칼날 추위가
거친 들판 닫는다.
*어젯길/ 최중간
수수 키 자라 넘는
퍼언한 들밭 길에
머언 뫼 등에 업힌
파르한 하늘의 아들
오늘도
가분가분
걷는
내일 바란 어젯길.
할아버지 노래 물씬
물씬 서린 이 두둑두둑
누우런 바람결에
신명 들어 익은 마음
고수레
배 두드리며
한 가락 뽑던 이 길
가다가 후미진 곳
양지 발라 자리하면
지나온 이야길랑
향으로나 피우면서
국화꽃
한 가지에
마음 두고 떠난다.
*장미/ 최상남
맨발로 가야 하는
가시밭 머나먼 길
이슬젖은 가슴 속
뛰는 맥박 이야기가
기어이
가지 끝에서
흑장미로 핍니다
숱한 날 많은 밤을 돌아 누워 보아도
피 맺힌 줄기줄기
따가운 인연의 끝
기뻐도
눈물이 나는
노래를 부릅니다.
*고목/ 한영일
소망은 눈섭에다 담아
시름 끝에나 얹어 놓고
침묵으로 달래던 모숨
맥맥히 삭아 내리면
사랑은 地心으로만
가슴 섶에 남는다.
마음 속에 새긴 얼은
요원의 물보라인가
숨막히던 이승 끝을
줄줄이 꿰어 놓고
잎마다 구원의 손짓
고독으로 서던 자세.
바람도 날개를 접고
죽음을 기다리네
한 천년 쌓던 오욕
솟구치는 아품일까
산악도 무너진 광란
기도하는 나무여.....
82. *여름호(31호)
*목각/ 이성호
깎이고 깎이고도
천년을 사는아픔
바람은 도 물결은
그 얼마를 꿈꾸며 갔나
때로는 목슴도 비워
칼을 뽑아 보다가
한가닥 애정인 듯
그리움을 묻어 보면
부르튼 손끝마다
벙근 듯 이는 미소
길차게 영원을 바래
혼을 불러 넣는가.
*스승님 가시고/ 김공천
1
땅거미 진 동서남북
억새꽃 물결이여
天道는 好還이라시던
님 잃은 高原에서
계절을 되세김하며
들소 되어 밤새 운다.
2
산과 바다 멀리 두고
하늘 흘린 골목 술집
앉았다 간 사람들이
넘기다 남긴 달력장을
한해도 찢가운 손으로
마저 넘기라니다.
3
동 트는 겨울 산골
목련 먼 발돋음에
가지 끝 꽃망울로
未生의 봄 노질하며
어재와 내일의 합창
曲을 엮나 보옵니다.
*세월/ 김영상
봄
꽃으로 휘감아도
토라지는 너의 심술
한 맺힌 가슴 깊이
한숨 새겨 저며 두고
먼 하늘 비원의 아우성
낙화처럼 지운다.
여름
초연 낀 슬픈 산하
녹음으로 가려 둔 채
두견새 토하는 피로
나이테만 늘리는가
흥건히 머문 강물 속
층층 구름 뿐인 걸.
가을
설악산 단풍 소식
바람결에 들려 올 때
풍악산 먼먼 꿈길
조여드는 가슴팍에
모딜게 찬서리 뿌려 놓고
철새따라 떠났다.
겨울
철사줄 허리 질러
뻗어간 멍든 자국
아픔도 기다림도
그 자리에 얼어 붙어
또 한 겹 한을 포갠 채
영겁으로 달리는가.
82. *봄 호(30호)
*모시이야기/ 백승수
1
결 바랜 태모시를 시절 가려 이어 내고
굿 삼아 날라 매어 도투마리 감친 틀에
韓山 땅 전설이 익어 맥이 뛰는 날줄들.
2
쇠꼬리 끄는 발에 세월 문살 여는 소리
바디집 잘각 잘각 엉킨북실 절로 풀려
서울 간 고운 님 얼굴 얼무늬로 짜이네.
3
속실이 끊어지는 잉아 속을 더듬으면
풀 먹여 지운 자리 쌓인 정이 저려 닿아
싸락눈 드는 이 밤이 새말갛게 타오네.
4
잔 별밭 되바래 낸 세모시 오린 자락
솔기 없는 선녀 바늘 솔바람에 꿰어내면
꿈 고른 한 뜸 인연이 앙가슴을 누비네.
5
옷섶을 만져보면 속삭임 새어나고
가너려 차디찬 올 삭인 외롬 감은 눈매
금강물 그리움 돌아 하얀 꽃을 피우네.
*古宮유회/ 이요섭
팽나무 등걸 밑동
움 트던 새 아침에
한 하늘 푸르름이
외려 靑瓷(청자) 고운 호수
얼비친
맥제와당(瓦當)의
소생하는 연잎이여.
딧들 거북비의
글발 촘촘 자란 이끼
묵시(默視)로 더듬어서
천년을 헤아이면
할배님
오래인 빛깔
단청마다 상기(爽氣)롭다.
왼 뜨락 옛스런 봄을
홀로 누벼 가는 걸음
채이는 조약돌도
양짓께로 뛰어 든다
꽃 그늘
山竹 마디처럼
想起되는 역사의 章.
*소라/ 이종훈(塤)
침묵이 미덕이듯
누운 채 말이없고
못볼 것 멀리 하고
돌아 앉은 잿빛 하늘
그 속에
파도를 짚는
나는 곧 돌입니다.
물결에 이은 달빛
결결이 숨 고르고
모래벌 물 나간 자리
나이테로 감은 우주
그 품에
그윽한 눈빛
나는 바로 별입니다.
*돌밭에서/ 이호광
비 오면 비에 씻겨서
빗물 먹은 돌이 되고
눈 오면 눈에 덮혀서
눈물젖은 돌이 되고
풍상(풍상)에
몸을 맡긴 채
물소리도 하고 있다.
슬픔으로 닦아 내면
슬픔 먹은 돌이되고
기쁨으로 안아 내면
기쁨 듣는 돌도 되고
나도야
돌밭에 서면
한 개 돌로 사는 일.
눈을 열면 고운 산빛
귀를 열면 여울 소리
하루 해 기운 날을
돌밭에서 챙겨 보면
사무쳐
되 잠긴 자리
숨어 사는 山水情.
*문/ 주강식
가슴에 서린 가난
토담처럼 두터워서
서른 해를 서성대도
헛기침 한 번 못해 보고
강물도
열리는 입춘에
속씨는 기별도 없네.
매서운 찬바람은
아직도 높은 서설
언 가슴 풀지 못해
꽃가지는 망울지고
열릴듯
가득한 침묵
문틈 가득 엉긴다.
1981.
*겨울호(29호)
*도회의 밤/ 문무학
겨울 목숨 달래다가
잿빛 받아 돌아 오면
지친 포도 위에
누워 우는 오늘의 넋
뉘랑도
채우지 못한
깊은 여백 샘을 판다.
피뢰침에 걸린 달과
불고 간 바람 끝에
밀려 난 고향이 앉아
테를 닦는 하늘 속에
빈주먹
내 몫으로 남은
종이 연이 날은다.
*낙엽/ 김길순
빈 하늘 가득 메워
하늘 하늘
날으는 새
금실로 수를 놓아
펼쳐 놓은
비단폭에
알알이
추억을 묻어
다독이는 저 몸짓.
가지 끝 바람을 날려
살같이
흐른 세월
무너져 내리는 빛살
차라리
모두 삭여
대지에
다시 심는 꿈
슬픔 깨는 미래여!
*석불/ 하장수
이끼 낀 돌층대에
지긋이 자리 잡아
무거운 업보를 이면
가슴에도 금이간다
긴 시름
달래고 달래
누리에 번지는 저 불심
우러러 받은 하늘
세월이 힘겨워도
오직 그 바랍으로
사려 앉아 손 모으고
안으로
안으로만 다져
묵시하는 미소여.
*청자를 보며/ 최광순
청산을 돌아 오면
벽공 향해 합장한다.
그믐밤 별빛을 일궈
제단을 밝혀 놓고
그 세월
그림자 밟는
고려적 여인의 쪽빛 限
무심의 밤을 사뤄
머리 위엔 학이 앉고
그렇게 빛은 목숨
정좌한 하늘인데
비워 온
이승의 공간을
훨훨 나는 파랑새.
낙엽 지는 계절을 인
늘 흙빛 그런 삶도
맘 속 가마를 달궈 내는
정성으로 꿰어 가며
비색의 그 크신 말씀을
속품 열어 듣는다.
81. *가을호(28호)
*묵난을 치며/ 손광세
탑을 돌듯 먹을 갈면
점지되는 고운 생명
발자국 하나 없는
눈밭을 갈라 내고
어디서 종이 우는가
흑란잎 돋아난다.
시간도 토막 나는
비수의 성곽 속에
맑은 바람 불러 모아
입을 여는 꽃봉오리
고뇌의 산골짜기에
흩뿌리는 향내여.
*달밤/ 원동은
1
풀잎 뜬 강나루에
감기우는 물안개
물길은 달빛 따라
하늘 끝에 닿았는데
想思 진
여울 따라
배를 듸워 봅니다.
2
갈앉는 산그리매
눈섭 위로 젖어들고
낮게 뜬 들머리엔
홀로 외론 삶의 등불
강어귀
시린 가슴엔
달빛만 푸릅니다.
3
아득한 강물 위에
떠도는 초(草)집마다
할머니 잣는 물레
실꾸리도 풀어지면
어머님
달이 밝아
몸을 풀엇더이다.
4
떠밀려 온 연륜 속
이쯤 와 돌아 보면
아직도 외진 물길
잠기는 달그림자
이 밤을
뜬눈으로
더디 밤을 지샙니다.
*물오리고 싶다/ 오승희
치솟는 물줄기 따라
피어나는 화사한 웃음
은하에 행궈 낸
영롱한 구슬알 되어
운무로 쏟아 퍼지는
落下의 美學이여.
생각 잃은 오리 한 마리
연못가를 바자니며
물 속에 잠긴 일월을
건져올려 지니려네.
나 또한 물결을 타고 노는
물오리고 싶어라.
*난초 송/ 김필곤
기쁜 숨결 사려 담은
생각의 저 먼 하늘로
화안한 구름도 한 장
결을 지어 오는데
그 둘레
등불을 켜듯
꿈을 여는 꽃송아리.
내 홀로 뜰에 서는
촘촘한 별의 밤을
뉘 모를 그 맑은 사연
향기로나 풀어 놓고
아찔한
잎새마디에
피리 부는 너의 사랑.
*코스모스/ 이동륜
가을 해 발돋음 해
쌓이고 쌓인 연정.
푸르른 하늘을 닮아
멀숙하게 키만 자라.
연분홍
순정길에서
하늘
하늘
피는 꽃!
가을 바람 부끄러워
비비고 어우러져.
설레이며 붉힌 얼굴
안으로만 다독인 정.
빠알간
사랑길에서
해말갛게
웃는 꽃!
가을볕 비껴 떠난
언덕받이 길가에서
슬픔도 울다못해
아쉬움을 손짓 한다.
하아얀
이별길에서
흐느껴만 섰는가.
81. *여름호(27호)
*겨울 역에서/ 신현배
가다림에 모인 고뇌
異邦의 대합실에서
참회의 얼굴 잃고
몸져 누운 불면의 밤
슬픔도 한장 차표로
내 가슴에 머물어.
무수한 고통의 불빛
추억에다 감추고서
싸늘히 눈을 감고
저 혼자 잠든 난로
오늘 밤 어느 꿈길에
시름의 철로를 깔까.
어둠의 통곡 소리
예감처럼 다가오면
불 지핀 소망을 안고
개찰하는 가슴들
겨울 역 허공에 남아
그림자만 쌓인다.
*항아리 / 오승철
1
애초 설래임이
한 획으로 금이 갔다
한잩 외로움이야
비워내면 그만인 걸
설음이
만월(滿月)이 되어
가슴으로 차오는 恨.
묵묵히 三대째를
견디어 온 살붙이여
어머님.
제주(濟州) 바람은
칼끝보다 매섭지요
세월이 약이라지만
병도 되는 금 하나.
81. *봄 호(26호)
*까치/ 허민홍
뒤울 안 정화수에
선잠 설친 이른 새벽
울오매의 하얀 입김
혼령하나 허물며는
햇살 속
뜨건 맥박에
표백되는 말씀이여.
살아온 그 허울을
떠받드는 당신 뜻이
화답해 줄 사연 없이
무딘 손만 부비는데
사립 앞
우짓는 까치
소식되어 풀린다.
*바위/ 김택주
적막을 씹어 뱉는
깊은 산 골짜기서
몇 겁을 정토 그려
靜座로 지킨 자리
파랗던 이끼도 지레
은빛으로 세엇네.
일월도 잊은 가슴
고독은 몸에 배고.
바램은 아픔을 넘어
피로 맺혀 돋은 부리
정 맞고 깨지는 그날
불꽃 튀어 살리라.
*들국화/ 권형하
가려 앉지 못하고
풋목으로 번져 든 길
생각만 키로 서서
먼 발치로 돌아보면
삶이야
외롭다지만
愛香으로 자랐다.
꽃심이 흘린 여정
매무새로 챙겨들다.
푸르게 닦인 하늘
거울져 비쳐내면
입가에
노랗게 지는
염원을 토하던가.
기우는 가을날이
이슬 받아 눈을 뜨고
밝혀 들 여린 燈心
별빛으로 켜보며
몸짓만
울음 잊으련
이 생으로 살고 싶다.
*연/ 박영우
마음의 실을 풀어
하늘가를 뒤척이면.
소망처럼 어려오는
유년의 창포빛 꿈
서풍에 밀고 쫒기며
언 하늘을 못질한다.
철새가 짝을 지어
날아간 이 길목에.
서슬 퍼런 날개를 세워
날으는 딱한 짐승.
비정의 빈 물레 소리에
더 못 가는 아픔이여.
풀어도 풀리지 않는
인연의 줄을 따라.
무시로 띄워 보낸
노을빛 아픈 사연......
내 안엔 가눌 수 없는
정적만이 쌓인다.
*새소리/ 김경자
산수도 심던 수틀
꽃 그늘에 던져 두고
부서진 새 소리를
바늘 귀에 늘이는데
다가와 땀땀이 뜨는
가슴안의 풀빛 가락
젖은 맘 열두 서리
올올바다 가춰 내면
비 바랜 낟가리에
다시 돋는 들꽃 향기
그 자락
산정(山頂)을 휘 돌아
정한 풀어 사린다.
햇살만 즈려 밟아
사계 속을 여울지다
꿈 만리 천상에서
짝을 잃은 서러움을
목 놓아
가리는 마음
개울 물에 씻고 있다.
*고려 청자. / 조진우
푸른 댓잎 결에
절로 이는 하늬 바람
달 가는 가을 하늘
드나드는 묵은 만리(墨雲萬里)
울음 깬
학 한 마리가
솔 가지에 깃을 편다.
영고(榮故)의 세월 저쪽
모숨 가득 잔을 두고
가신 님 오운 숨결
전설처럼 타 흐른다.
진실로
호젓해 옴이
지복(至福)스런 그 둘레
하늘 젖은 그 물색을
한 자락 펴 앉아
바람도 기름 되어
타 오르는 소심(素心)이야
머무신
그늘에 묻혀
잦아드는 이 법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