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박상준의 댓글 모음 (민주주의란 통제의 변이에 관한 문제이다)
2008년 쯤에 본인이 쓴 댓글들을 네이버 카페의 누군가가 모아서 올려놓았다. 그리고 9년이 지난 후, 2017년쯤, 우연히 나는 내가 쓴 댓글을 누군가 카페에 모아서 올려놓은 것을 찾아서 읽게 되었다. 내가 쓴 글이라서 복사해서 저장해 놓으려고 했는데, 복사방지가 되어 있어서, 그냥, 이미지 파일로 캡처해놓았다. 그리고, 다시 6년이 흐른 2023년, 이미지파일의 댓글을 txt 파일로 변환시키고 있다. 제대로 이미지파일이 txt로 변환되었는지는 아직 미검토 상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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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란, "통제의 변이"에 관한 문제이다. 간혹, 민주주의를 "통제의 이양"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은 아니다. 통제권을 누가 누군가에게서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식욕과 성욕을 근본으로 하는 인간은 항상 통제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타율통제이든 자율통제이든, 항상 인간은 통제를 통해, 적절 한 관계를 유지하며 사회를 유지시키는 것이다.
여기선, "통제의 이양"에 대해서만 고려해보자. 노무현 정권때, 노무현 정권은, "자유"라는 명목하에, 국민에게 자유를 이양한다는 자세 를 취했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작동했냐하면, 가장먼저, 조직폭력배 등 온갖 폭력배와 사기꾼들이 이 "자유"라고 불리는 것을 적극적 으로 주장하며 사용하기 시작한다.
선량한 국민들은 폭력에 노출되는 강도가 많아지고, 상상할 수 없는 "고리대금"으로 상상할 수 없는 인생의 종말을 고하는 여성을 비롯해 국민들이 증대하고, 어떤 식으로든 탐욕을 증대시키기 위한 "스팸 문자, 스팸 전화 등"이 판을 치 고, 거기에 동조해, 거대 통신사들이 그것을 묵인해 주고, 상황이 이렇게 되자, 지방자치, 중앙정부 등 온갖 공무원 등이 세금포탈, 횡령, 수뢰 등 온갖 비리를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저질러 국민들의 삶을 완전히 짓밟아 버린다. 그리곤, 결국, 아무런 물리적, 법적, 제도적 힘 을 지니니 못한 국민들의 삶은 88만원 세대의 서막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통제의 이양"으로 인해 생겨났다. 어린 개가 자라, 튼튼한 이빨이 생기기 전에는 "다 자란 개 무리" 속에 풀어놓는 것이 아 니듯!! 통제 능력이 없는 자들에게 통제를 이양해버리면, 결국..!! 민주시민의 질서를 인식하고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민주 시민이 폭력과 탐욕의 노예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 위해서만으로도 적지 않은 얘기를 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선 거론되는 박정희 를 마치, 독재자는 민주주의와 배척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는데, 인과관계가 그렇게 단순한 것은 아니 라는 것이다. 독재자도 "민주주의 최대 공헌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박정희 이전 시대를 우선 고려해보자. 솔직히, "자유"라는 입장에서 보면.. 약육강식이 가장 자유로운 상태가 아닌가!! 그리고, 그 약육강 식이 가장 적나라하게 나타나는 시대가 어쩌면 전쟁 이후 상태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완벽한 자유를 통한
통제란, 결국 약육강식에 불과하다.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사람은 통제에서 열외가 되고, 먹이감을 노리듯 어슬렁거리는 세력들이 결국, "방치된 자유" 속에서 통제력을 획득한다. 결국, 박정희 이전 시대부터, 가장 맹활략했던 통제세력은 "통제되어야 할 대상인 폭력배들"이 다.
스스로를 통제할 능력조차 없는 폭력배가 오히려 국민을 통제할 힘을 증대시켜 국회의원이되고, 폭력을 동원하여 힘을 획득한다. 국민 은 극도의 두려움과 불안정 상태에 놓여버리게 된다. 이 상태는 중국의 전국시대와 비슷하여, 국민은 핑퐁볼과 같이, 폭력이 "국민"을 가 지고 노는 공기돌처럼 가지고 놀아버린다. 이때 떨쳐 들고 일어나는 것은, 어떤 강력한 의지와 통제력를 지닌 또 다른 힘이, 외부적으로 통제를 시도하는 것과, 통제능력없는 자들의 통제력을 변이를 꾀하는 사상가들의 출몰이다. 그리하여, 통제력을 지닌 무력과 사상가들 의 출몰이 의기를 떨
친다. 그러나, 온갖 사상가들의 사상은 통제력을 상실하여, 탐욕으로 미쳐 날뛰는 폭력(집단) 속으로 결코, 비집고 스며 들어갈 원초적인 힘이 없다. 이때,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영웅"의 출현이다.
강력한, 지도력과 강력한 통제력을 바탕으로, 폭력과 탐욕으로 국민의 삶을 짓밟는 것들을 짓밟아버리는데, 이것은 마치 불교에서 말하 는 "내가 아니면 누가 지옥에 가랴"라는 것과 흡사하다.
탐욕을 짓밟을때, 동원되는 세력 또한, 그다지 통제력을 지닌 세력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지식과 지혜가 부족한 자들이, "영웅"을 중 심으로 모여, 그 영웅의 의지를 대변하기 때문에, 이 순간에는 영웅의 대리자들이 미숙한 판단능력에 의해, 적지않은 희생을 동반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 후에 일어난다. 그 문제가 무엇이냐!! 통제능력이 없는 폭력으로부터, 지배력을 획득한 세력들이, 과연 통제권을 어떻 게 변이시켜 나가는 거냐의 문제이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 핵이다. 민주주의는 "통제권의 변이"로 부터 이뤄지는 것인데, 이점에 대해서는 구지 지금 말하지 않고자 한다. 그러나, 박정희는 "통제권의 이양"이 아니라, 통제권의 변이"를 이뤄, "대한민국 정치가 중 민주주의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정치가"이다. 독재가가 반드시 반민주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박정희가 이룩한 민주주의란 대단한 것으로, 그는 민주주의가 먼지를 이미 깨닫고 있었다고 본다.
만약, 박정희가 노무현과 같은 시대에 대통령 선거에 출마를 해, 민주주의 절차에 따라 대통령이 되었다면, 또 다른 정치를 보여주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박정희는 "민주주의"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었으나, 노무현은 "민주주의를 자유"라고 알고 있었기에, 대통령이 되고 난 후, 국민에게는 자유를 던져주는 액션을 취하고, 자기들 끼리는 "또다른 이권 나누기식 자유"에 취해버렸다. 그랬기에 복지를 위해 증대 한 세금은 모조리 블랙홀에 빨려든 것처럼, 정치적 밧줄을 쥐고 있던 자들에게 다 새어 버리고, 국민은 오히려 더욱 더 피폐해져 갔다.
노무현 당시, 세금을 거둬 복지를 이루겠다고 더욱 더 강력하게 국민연금을 강제징수당하고, 수많은 국민들이, 죄 아닌 죄인이 되어 결 국 가난해도 프라이드가 있었으나, 가난이 죄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되어 버린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가 결코 쉽게 "자유"만으로 논할 수 없는 복잡한 역학현상이라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과거를 청산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하기에, 그당시 그시절, 수천만 국민들이 박정희에게 열광했다면, 그들이 왜? 그들의 과거를 그런 식으로 청산하고 나아갔는지부터 고려해봐야 하는 것을, 극소수의 단순논리로부터 결단내리면 안되는 것이다. 사랑과 자유 그리고 존엄은 어떤 상황하에서 통제 속에서도 극대값을 지닐 수도 있는 것이다. 음~!!
우선, 한가지 비유를 더 들어보자. 인간의 존엄을 부르짖으면, 모든 아이들에게 평등하게 잘 먹여야 한다는 단순논리에 의해, 요즘은 초 중고 학생들은 급식을 한다. 한마디로 잘먹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가난한 아이들도 쑥쑥 잘크고, 부자와 가난한 아이들이 구별이 없 다. 서로가 처한 환경에 대한 이해도 없고, 스스로는 동일해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서로간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출발은 통제력의 상실과 직결한다.
서로를 바라보니, 다른 것이 하나도 없다. 결국, 가난한자도 부자도 서로의 차이점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결국, 사회에 나오자, 현실 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면, 돕고 도울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부자는 가난한자의 자존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가난한자는 왜 자신이 부자 보다 더 좋지 못한 기회를 제공받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쌍방은 대립하고, 범죄는 퍼져나간다. 통제력을 배우지 않았으니, 풀어 놓으면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다.
만약, 통제력을 배우지 못한 채, 사회라는 큰 물에 풀어 놓아버리면, 결국..우리 사회가 지불해야 하는 대가는 타율통제라는 강제력의 발 현이다. 그렇지 않으면 더 큰 엄청난 피해가 발생한다. 학교급식이 자유민주주의 일환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적지 않은 요소가 될 수도 있고, 알고보면 좋은 제도가 아니다. 사람은 항상 인간관계 속에서 행복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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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란 무엇인가?? 부모가 자식에게 가장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수단은 어릴 때, 먹을 것을 제공해주는 것..즉, 도시락을 싸 주는 것이다. 바로 이과정에서, 어린 자식들은 부모의 처지를 이해하고, 가난한 부모를 둔 자식들은 간혹 부모를 부끄럽게 생각하다가 점점 부모의 희생를 이해해가면서, 은혜를 배운다. 그리고, 간혹 부자 친구가 건네는 도시락 반찬을 먹으면서, 부자가 건네는 손길에서, 모욕도 배우고, 우정도 배운다.
이렇게, 어린 아이들이 먹는것의 차이 속에서도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불만과 부러움 속에서...점점,, 자신들의 여건을 받아들이고 동 제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게 된다. 그리고 부자를 인정하고, 가난한 자를 인정하는 과정을 통해, 그들은 서로를 해하지 않고, 관계를 유 지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한다. 즉, 가난한자와 부자들이 어울려도 스스로 서로들 통제하니, 그것이 민주주의가 아니고 무엇이랴!!
민주주의는 "자유의 이양"이 아니라, "자유의 변이"이다. 통제 속에서도 더 큰 행복과 자유를 느낄 수 있는 것은, 그 통제가 자신들을 속 박하는 것이 이날, 자신들을 변이시키는 과정이라는 걸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가 아이들을 속박하는 과정에서도, 아이들이 행복과 자유를 느끼는 경우가 있듯!! 부모가 아이들을 올바르게 통제하면, 그 아이는 스스로를 올바르게 통제할 능력을 키워, 결국 언젠가는 부 모와 머리를 맞대고 인생을 토론하게 될 것이다.
한 사람이 한 인생의 주인이 되었다는 것은, 한 사람이 자신을 탐욕으로부터 통제할 능력이 있기에, 한마디로 말해 "법 없이도 살 수 있 다"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무지한 자가 큰 역할을 하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회는 이미 통제력을 감당할 능력이 없는 사회로, 그런 사회는 항상 탐욕으로 넘쳐나기 에, 행복이란 타인의 행복을 파괴하며 출발하기 다반사이다.
박정희를 마치 독재자처럼, 이해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감당할 수 없는 폭력과 무지를 통제하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더 큰 물리적 통제"뿐이다. 이 틀을 만들고 나서야, 결국, 교육이라는 것을 행할 수 있는데, 폭력과 무지가 판치는 세상에 서, 교육을 시킨다는 인물들이 절대로 지금 생각하는 교육자처럼 인품이 높거나, 학식이 깊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당시, 글만 알아도 면서기는 거뜬히 하던 시절에, 교육과 통제를 담당 한 자들이 지금 생각하는 학식과 지혜 및 판단력과 배려를 갖 추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불성설이지 않은가!! 댐이 무너져 홍수가 터졌는데, 누가 그걸 막으려 뛰어들겠는가!! 홍수를 막지 못하 면 모조리 다 죽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나서서, 수많은 생명들을 죽음의 길이 되는 것을 알지라도, 강제로 죽음의 길 속으로 뛰어들 게 하거나 뛰어들어 홍수를 막기 위해 댐을 세워야 하는 것인것을!!
역사는 엄청난 세월을 폴짝 건너 뛰어, 징검다리 건너듯.. 몇을 훌쭉 건너서 뛰어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청산되고 나아가는 것이다. 일제시대도 이미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이 그렇게 청산했거늘!! 왜? 그들보고 너희들은 프랑스처럼 청산하지 못했느냐, 힐난한들 무엇하 랴!! 100여년 전 사람들이 되살아나, 우리에게 답을 해줄 수도 없지만, 과연, 그 답이 지금 일제청산을 외치는 역사가들을 만족시켜 줄 것 같은가!!??
못난 이들이 가득 찬 곳에서는, 그마나 조금 못난 이가 그들 무리의 최고의 대안이 될 수 있듯, 어떤 환경 속에서는 독재자도 대안이 될 수 밖에 없는 극대치의 기대라는 것이다. 그 속에서, 그당시 국민들은 열광했고, 그 당시 국민들은 행복과 만족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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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종이 울렸네..새아침이 밝았네"를 구지, 국민을 이용하기 위해 만든, 선동의 도구쯤으로 해석해버린다면, 그것은 어떤 주어진 문제 에서 요구하는 극값을 넘어 버린 것으로, 더 높은 값일지는 모르겠으나, 결코 옳은 값은 아니라는 것이다.
박정희가 "민주주의"를 파괴했다는 주장은 내가 보기엔, 어불성설이라고 본다. 어떤이는 박정희의 본질을 독재자라고 여기겠지만, 그의 본질이 "민주"였다면, 박정희가 지금 다시 환생해, 지금 이 시대에 존재한다면, 그는 또 다른 "민주의 극대값"을 찾아 낼지도 모른다. 그 값이 독재일지, 자유일지, 번영일지는 문제가 무엇이냐의 문제일 뿐이다.
비슷한 사람은 많아도, 똑같은 사람은 없듯이!! 독재자는 많아도, 박정희가 "민주 "와 역행했던 독재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가 시시각각 변하면, 그 주어진 문제의 값이 변하듯!! 문제를 푸는 사람이 문제를 풀고자 한다면, 문제(환경)이 바뀜에 따라, 최적의 값을 찾기 위해, 내놓는 해답도 유동적일 것이다.
그 답이 독재이든, 통제이든, 자유이든, 복지이든..!! 답을 알고 싶으면, 국민을 보라!! 국민이 만족하고 웃고 있다면, 그 문제를 풀고 있 는 자는 분명, "민주"를 풀려고 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너도 나도, 문제를 풀겠다고 달려드는데, 혹시, 문제 속에서 "민주"를 풀려는 것이 아니라, "탐욕"을 풀려고 하는지는 아닌지 점검해 보라!!
자신들이 무엇을 풀려고 그렇게 달려들었는지는 훗날 국민을 보라!! 국민이 찌그러지고, 절규를 하며 자신들을 비난하고 있다면, 문제에 서 "자유"를 적용했어도, 풀리것은 폭력의 난무뿐일 수도 있지아니한가!!
노무현 정권이 "자유와 복지"를 적용했어도, 국민들의 삶은 처절할만치 피폐해져버리고, 88만원의 세대가 되어!! 결국!!! 살려달라..살려 달라 외치며,,,붙잡고 늘어진 대안이 바로..."이명박 정권" 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진실이 이리하노니, 노무현 정권은 "민주"가 무엇인지 결코 알지도 못했던 것이다. 또한, 지금 이명박 정권이 과연, 무엇을 풀고 있는지 는 점점 드러날 것이고, 이명박 정권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도 "국민" 속에서 드러날 것이다.
이명박 정권이 "경제"를 외치지만, 경제가 폭싹 망해가고 있다면, 이명박정권은 경제를 알고 있지 않다는 것이며, 또한, 이 시대(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 문제가 어떤 형태인지도 모르고 아직 다 푼 것이 아니니, 이명박 정권이 단정적 으로, 전적으로 틀렸다고 주장하기엔 이른 것 같다.
물론, 내가 보기엔, 그들은 최적의 해(극값)을 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본인 또한, 국민의 입장 뿐만 아니라, 문제를 풀 고자 하는 사람!! 문제를 풀고자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보니, 본인이 원하는 풀이법을 찾지 못해, 답답하지만!! 혹시 알겠나!! 풀이법도 여러가지라, 결국 올바른 답을 구해낸다면!! 그들 또한 나와 똑같은 알고 있고, 똑같은 것을 찾으려 하고 있을지도...!! 노무현과 이명박 정권의 비교는 몇년 후로 미뤄둬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