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석에서 맛과 향을 우려내는 베트남식 Phin pha cafe
/이준호 저널리스트·KOICA 자문관
Cafe Bệt은 ‘바닥에 앉아서 커피를 먹는 장소’라는 뜻이다. 명당으로 이름난 호치민시의Cafe Bệt은 Hàn Thuyên거리나 Nhà thờ Đức Bà 성당 건너편에서 만날 수 있다. 탁자나 의자는 없고, 그냥 신문지를 펼쳐놓고 편하게 앉아서 먹고 마시고 이야기한다. 수도 하노이 길가에는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연유 탄 커피’를 마시거나 냉커피를 부은 요거트를 떠 먹으며 담소하는 거리 카페를 어디서나 만난다. 서양에서 전래된 커피문화지만 베트남식으로 즐기는 거리 카페에서 정겨움이 느껴진다.
‘거리 까페’ 옆 건물, 커피체인점 ‘Highlands Coffee’에는 깔끔한 인테리어와 냉방이 완비된 실내 소파에서 노트북에 열중하는 젊은이들 모습이 서울과 흡사하다. 이곳에는 Vietnamese Coffee와 함께 Americano, Cappuccino, Latte, Mocha가 다 있다. 아메리카노 4만5천 동, 카푸치노 5만4천 동, 모카 5만9천 동, 베트남커피는 2만9천 동인데, 함께 파는 Pho(쌀 국수)가 4만9천 동, VanhMy(바게트샌드위치)는 1만9천 동이다(2만 동=1천 원). 커피한잔 가격이 점심값을 넘어선다. 한국이나 베트남이나 서양문화에 물든 신세대들에게 커피는 값을 따지는 대상이 아닌가 보다.
종이필터를 사용하지 않는 베트남커피
베트남사람들의 원두커피 추출방법은 독특하다. 1인당 국민소득 2천 달러인 베트남에서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캡슐형 추출기는 상당기간 선보이기 어렵겠지만 종이필터는 사용하지 않는다. 그 대신 밑부분에 바늘구멍이 송송 뚫린 주석이나 스텐, 도자기로 만든 작은 용기에 원두가루를 담아 속 뚜껑으로 눌러 압축한 뒤 커피잔에 얹어놓고 물을 끓여 붓는 핀파 카페(Phin pha café)를 즐긴다. 취향에 따라 적당량의 연유는 미리 잔에 넣는다. 모래와 진흙의 차이처럼, 압축된 뒤 젖은 커피가루 사이 공간은 매우 촘촘해서 물은 방울져 서서히 떨어지고, 그래서 커피의 향과 맛을 최대한 뽑아내 준다. 당연히 종이필터보다 적은 양으로 진한 향의 커피가 내려지니 일석이조다.
지난해부터 한국에서는 냉수로 추출한 ‘Dutch Coffee’가 유행이다. 더치커피 메이커들은 찬물을 8시간 이상 커피원두에 방울방울 떨어뜨려 만들고 그래서 향은 진하고 카페인은 적다고 광고한다. 그런데 베트남 커피추출용기를 사용하면 간단히 더치커피가 만들어진다. 커피추출용기에 커피가루를 최대한 압축시키고 냉수를 부어 내리기만 하면 된다. 아무래도 더운물보다는 커피가 연하게 추출되지만 한두 번 더 반복해서 추출하면 충분히 원하는 농도의 커피를 얻을 수 있다. 이렇게 내린 “즉석 더치커피”는 향이 깔끔하고 맛도 좋다는 것이 내 느낌이다.
베트남 커피역사는 프랑스식민지배의 유산이다. 1850년 무렵부터 프랑스는 베트남 중부고원지대에 대규모 커피농장을 조성했다. 농장들은 하이랜드로 불리는 Dak Lak과 Lam Dong, Dak Nong, Gia Lai, Kon Tum등 다섯 개 省에 걸쳐있는데, 연평균기온 15~25도, 강수량 1,500밀리, 건기와 우기가 뚜렷이 구별되는 현무암지대로 커피생육에 알맞은 토질과 기후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렇게 한세기 지나 베트남은 세계 총 생산량의 20%를 차지하는 제2의 커피생산국이 됐다.
‘루왁커피’는 만나기 어렵다
베트남커피의 명품은 Kopi Luwak(루왁커피)이다. 루왁은 동남아시아 밀림에 야생하는 사향고양이로 잘 익은 커피열매만을 골라먹는데 원주민들은 배설한 씨를 모아 커피를 만들었다. 루왁의 소화기관을 통과하는 동안 쓴맛과 카페인이 순화되어 부드럽고 향 좋은 커피가 만들어진다고 알려져 있다. 일부 커피농가에서는 루왁을 사육하지만 환경과 사료가 문제되곤 한다. 천연 루왁커피는 매우 귀하고 값도 비싸다. 일반 마트 진열대에는 루왁커피가 없고, 관광객을 맞는 곳에서는 루왁커피를 판다지만 품질을 믿을 수 없다.
베트남커피나무는 대부분 로부스타(Robusta)종으로 카페인함량이 높고 향이 진하다. 부드러운 맛과 향을 가진 브라질 아라비카(Arabica)종은 통상 원두커피로 추출해서 마시고, 로부스타는 인스턴트나 블랜딩용으로 사용한다. 베트남은 세계 제2의 커피생산국이지만 열매에 열을 가해 내용물을 변화시켜 부가가치를 높이는 로스팅과정은 베트남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부분 열매가 건조만 된 채 1차 상품으로 수출된다. 18~19세기 아시아를 식민 지배한 대부분 유럽국가들이 그러했듯이 프랑스도 원자재만을 싼값에 가져갔을 뿐, 로스팅기술을 전수하거나 공장을 지어주지 않았다.
커피는 ‘내리고 마시는’과정을 즐기는 음료다
4월이 되면 하이랜드의 커피나무는 향기 짙은 하얀 꽃을 피운 뒤 빨간 열매가 달리고 연말에 수확한다. 꽃피는 시기에는 커피축제도 열린다. 하지만 올해는 겨울가뭄으로 생산량 감소가 예상되는데다 국제적인 커피가격 폭락으로 농가의 시름이 깊다. 그래서 베트남 농가들은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아라비카종으로 수종을 바꾸고, 로스팅은 물론, 고품질의 완제품을 만들어 부가가치를 높이려는 노력을 시작하고 있다.
베트남을 여행하는 많은 관광객들은 한국에도 잘 알려진 G7브랜드 커피를 찾는다. 하지만 G7은 대부분 인스턴트제품으로 의사들이 적극 말리는 설탕과 프림이 들어있어 권하고 싶지 않다. 커피는 목 말라 꿀꺽꿀꺽 마시는 음료가 아니다. 여유롭고 분위기 있게 음미하는 기호식품이다. 값비싼 기계로 캡슐커피를 순간 추출하기보다 값싸고 운치 있는 베트남식 용기로 서서히 향과 맛을 우려낸 커피가 한결 멋스럽고 맛깔스럽다는 생각이다.
한인소식지 6월호 발췌
from : http://homepy.korean.net/~vietnamhanoi/www/groups/vietnamhanoi7/read.htm?bn=vietnamhanoi7&fmlid=16225&pkid=103&board_no=16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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