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가계의저주를 끊어라 안녕하세요. 삶의 적용 원리 22번입니다. 가계 저주에 대해서 함께 나누겠습니다. 여러분 가계의 저주를 다 끊으셨습니까? 가계의 저주 그러면은 이 저주 때문에 우리가 이런다 저주를 끊어야 한다. 뭐 가난의 저주도 끊어야 되고 먼 저주도 끊어야 되고 뭔 저주도 끊어야 되고 저주는 떠나갈지어라 저주는 끊어질지어라 여러분 그런 선포 기도도 많이 하고 그렇게 그런 기도 많이 하셨죠. 저주가 다 끊어졌습니까? 다 완전히 없어졌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참 성경을 모르면 그렇게 어리석은 기도를 합니다. 저주를 끊는 기도를 지금 하면 예수님이 또 오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또 오셔야 돼요. 예수님이 한 번에 저주를 다 담당하셨는데 무슨 저주를 또 끊어냅니까 저주를 끊는 선포문이 있고 여러분 좀 말이 안 됩니다. 성경적으로는 예수님이 나무에 달리시므로 모든 저주를 담당하셨다고 그랬습니다. 그렇죠. 근데 뭔 저주를 또 끊어요. 끊을 계획은 예수님을 아직 못 만나면은 저주를 자꾸 끊고 있죠. 저주는 끊어질지어다 끊어질 치어다 안 끊어지니까. 또 끊어질지어다 또 끊어질지어다 이 안 끊어져 이게 예수님을 못 만나면 안 끊어지는 거예요. 예수님을 영접하면 이미 다 끊어졌는데요. 그런데 뭐 저주를 떠나갈지어도 한번 선포를 하고 가게에 저주가 흐르고 있다라는 둥 온갖 공간을 다 덮고 마귀가 막 속이거든요. 그래서 저주를 몰아내는 또 안수를 하면서 또 몰아내고 다 몰아냈어요. 그래서 여러분 저주는 가계의 저주를 끊어라 물음표를 왜 제가 3개나 해놨겠어요. 가계의 저주를 끊으라 물음표를 왜 3개나 해놨겠습니까? 답답하죠. 가계의 저주 우리는 우리 집 왜 이렇게 안 될까 병이 있으면 그것도 가계의 저주인가요? 아버지가 위가 안 좋으면 나도 위가 안 좋고 이게 가계의 저주인가요? 맞아요. 아버지가 오른쪽 이빨이 잘 썩으면 나도 오른쪽 이빨이 잘 썩어요. 그것도 저주인가요? 유전인가요? 유전도 저주인가요? 그런 저주를 끊어버리면 우리는 없지 다 없는데 지금 없어져야 되는데 목을 잘라 버려야 끊어지는데 그거는 그렇죠. 혈기도 저주입니까? 지난주에 축사에 대해서 할 때도 혈기를 또 축사의 대상인가요? 혈기도 저주입니까? 물론 저주처럼 보여요. 그쵸. 가난도 저주처럼 보이고 다 그렇게 보입니다만. 부여하신 자로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가난을 다 짊어지셨다고 했죠. 우리는 이제 가난한 자가 아니에요. 우리는 우리에게 임한 저주는 다 끊어졌어요. 예수님이 오셨을 때 예수님의 저주를 다 담당하셨다고 그랬잖아요. 맞아요. 근데 지금도 막 이 뭐 저주를 끊는 성품은 막 벽에 크게 붙여놓고 이렇게 하십니까? 뭐, 뭐 이 700의 저주는 떠나갈지어다 틀린 것 같기도 하고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죠. 물론 뭐 신명기에 보면은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면은 그 복이 천대까지 그렇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은 그 뭐 저주 그것이 3대를 내려가고 3대 만에 우리는 벌써 3대 한참 지났는데 3대 가기도 전에 그 다음 대회가 또 하니까 3 3 3 3 자꾸 내려와서 지금 끝도 없이 내려오고 있나요? 근데 한 번 지켰으면 복은 천대까지 간다고 했는데 천대는 아직 안 지난 것 같은데, 천대까지 오고 있습니까? 그러니까 이 성경을 잘못 아니까 뒤죽박죽 돼서 뭐가 뭔지도 모르겠죠. 그래서 무조건 많이 하면 될 것 같죠 그렇죠. 많이 뭔가 이렇게 던져놓으면 하나는 걸릴 거라고 생각을 하고 기도도 많이 하면 들려질 확률이 많을 거다 생각하고 그래서 그러니까 이게 무슨 심봉사 문고리 잡는 격도 아니고 성경은 그렇게 알면 안 돼요. 여러분 가게의 저주는 없습니다. 이미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있는 거지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가계의 저주는 다 끊어지는 거예요. 다 끊어졌어 근데 뭐 저주 같은 게 있죠. 근데 있죠. 뭐가 왜 있죠. 아직도 그거는 여러분 저주가 아니고 저주받은 우리 남현서부터 저주받은 인생이죠. 아담이 불순종함으로 저주가 임했잖아요. 우리는 아담이 후예죠 맞아요. 아면 잘 아셔야 돼 지금 잘못하면 성경이 완전히 뒤바뀌어 버려요 성경을 모르는 완전히 모른다라는 이게 이 창피를 당할 수도 있어요. 예 아면을 잘 아셔야 돼 예 그 저주가 계속 이렇게 내려오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뭐가 애매하죠. 아담이 불순종함으로 인해서 저주를 받게 되고 땅도 그들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여기 제가 창세계 3장 17절에 써놓은 내용입니다만. 땅도 저주를 받았어요. 이 땅은 사실 저주받은 땅이에요. 이 땅도 의원이 그날이 임하기를 학수고대한다고 그랬죠 그게 이제 그런 말씀입니다만. 그래서 우리도 저주를 받은 아담의 후예이기는 합니다만 이제 우리는 족보가 바뀐 거 아십니까? 우리는 이제 아담의 후예가 아니에요. 누구 후예요. 예수님의 후예죠 맞습니까? 믿는 순간 우리는 족보가 바뀐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저주를 다 감당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이제 저주는 없는 거예요. 근데 문제는 뭔가 하면 우리가 저주받은 인생에게 남아있던 그 저주의 속성들이 남아있는 거예요. 우리 축사할 때도 마귀는 떠나갔는데 집이 그냥 있죠. 그게 똑같은 거예요. 그러니까 축사나 맥락이 아주 똑같아요. 그러니까 우리에게 남아있는 그 속성들이 그대로 아직 있잖아요. 그것이 대물림 아버지가 잘 나가면 아빠도 아들도 잘 나가고 아버지가 뭔가 빌빌하면 아들도 좀 그런 게 있고 이런 게 저주가 내려오는 게 아니라 저주로 인해서 생겼던 게 대물림되는 거예요. 그거는 끊어야 할 대상일까요? 그 성품을 끊어낼 수 있나요? 성품을 축소할 수 있나요? 똑같은 내용이에요. 그러니까 그 내용이 아니고 그거는 여러분 새롭게 창조되어야 할 대상이에요.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내가 변하기는 싫고 맞잖아요. 변하는 건 죽어도 싫잖아요. 변하기는 싫고 그냥 떠나갈지어다 이거 쉽거든. 그러면 될 줄 아는데 안 돼 거기서 속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본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렇습니다. 거기서 다 속아요. 자 오늘 이걸 보세요. 이거 이거 보시면 이 저 줄에 대해서 그림을 딱 하나 그려볼려니까 딱 이 그림이에요. 뭐 지금까지 항이 여기 다 들어있어요. 1분 그림 안에 전부 다 들어있는 내용입니다만. 어쨌든 저주가 임한 이유는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서 저주가 임했습니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서 저주가 임했는데 그 저주가 임한 걸 잘 보면은 하나님과 떨어지는 그 자체가 저주예요. 하나님과 떨어짐으로 모든 고통의 시작이 일어났잖아요. 거기서 그게 문제죠 이거 기억나죠. 에 문제의 근본에 대해서 할 때 그 자체가 저주인 거예요. 하나님과 결별됨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방어해야 하고 우리 자신의 행복을 우리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내야 하고 모든 것을 우리가 다 생산해 내야 가시와 은근퀴만 낸다고 그랬고 땀이 흘러야 먹을 걸 겨우 먹고 그러니까 여러분 이 하나님 불순종으로 인해서 하나님과 단절되는 그 자체가 완전 저주예요. 그러니까 그래서 저주의 반대말은 사실 연합과 똑같은 말입니다. 그게 저주 그러니까 하나님과 단절됨으로 에덴에서 쫓겨 내려왔죠 에덴이 모든 풍요의 근본이잖아요. 그게 다 사라져 버린 거죠. 그게 저주인 거예요. 그러니까 그래서 그 하나님의 동산 천국에서 쫓겨나서 인생이 아무리 거기서 애를 써도 가시와 은근케 밖에 안 나는 거예요. 그게 문제의 핵심이에요. 여러분 그래서 이 다 아는 내용이죠. 그런데 그게 저주하고 연결이 안 되죠. 잘 저주는 뭔가 이 조상이 죄를 지어서 우리도 그것 때문에 나도 막 고통을 받고 있다고 막 왜 조상이 더러운 조상을 만나가지고 막 이런 원망 불평한 적 없어요. 왜 이따위 부모를 내가 만나 가지고 말이야. 저도 원망한 적 있어요. 우리 집에는 술귀신이 그렇게 강하게 있어가지고 제가 말씀드렸지만 제가 막 혀를 깨물더라도 술은 안 마시겠다고 내가 그랬거든요. 그게 저주가 대물림 된 건가요? 그런데 술을 완전히 고래였어. 고래 술 고래가 어떤 수준인지 아십니까? 차마 입에 못 담아서 내가 말을 안 합니다만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한번 보여드릴게요. 비싼 거 들고 한번 오세요. 제가 본색을 한번 드러내 볼 테니까. 아이 그게 여러분 이게 우리는 뭐 저주라고 생각하고 질병도 가계의 저주라고 생각을 하죠. 여러분 아버지가 뭐 안 좋으면 아들도 이런 게 안 좋다. 가계의 저주라고 생각합니까? 그렇게 생각해요. 그러니까 여러분 우린 그렇게 생각하고 가계의 질병의 저주는 아셔야 될지어다 이상한 걸 배웠어 나도 옛날에 뭣도 모를 때 그런 거 다 배웠잖아요. 어쨌든 뭐 더울 때 다 배운 거야. 그게 근데 잘못 배웠어 지금 보니까 그게 아니에요. 예수님의 채찍에 맞음으로 어떻게 됐어요. 남을 입었는데 뭔 또 질병은 질병의 저주는 떠나갈지어다 뭘 또 떠나가 그렇죠. 맞아요.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어떻게 됐어요.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성경을 안 읽나 봐요. 그가 찔림으로 마음을 입었도다 그러니까 우리 저주는 예수님이 달리는 순간에 모든 건 다 끝났어요.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므로 하늘과 땅이 연합되고 통일됐다고 그랬죠 그 피로 그래서 원수를 십자가로 멸하셨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과 연합을 예수님을 믿는 순간 하나님의 연합이 시작이 됐는데 아직 육체가 지난주에 한 것처럼 이게 남아있죠. 나라는 이 존재 이게 여러분 저주로 인해서 생겨난 내 안의 것들이죠. 그것 자체가 저주는 아닌 거예요. 이해 갑니까? 저주의 결과물이 있는 거지 내 안에 그거는 내 성품이 될 수도 있고 내 안에 고약한 거 이런 것도 될 수 있고 철벽 같은 거 고집 덩어리 이런 것도 될 수 있고 이런 것들이 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과 결별하면서부터 내 안에 생겨난 저주의 결과물이지 저주 자체는 아닌 거죠. 그거를 끊어질지 떠나갈지어도 안 되는 거예요. 그게 되는 게 아니라고요. 거기서 우리는 착각한 거예요. 속은 거죠. 마귀에게 속은 거죠.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렇게 안 될 그렇게 안 될 그렇게 하면 다 될 것 같지 않던가요 막 흥분되고 그러지 않던가요 가슴이 막 벌렁벌렁 막 뛰고 와 내가 막 황금을 발견한 것 같지 않던가요 내일 아침까지 로또가 10개 생길지어다 뭐 이런 하면 될 것 같지 않아요. 갑자기 아 내가 갑자기 그냥 인품이 완전히 180도로 바뀔지어다 그거 안돼요. 똑같은 거 아닌가요 이 더러운 성품들 저주받은 성품들 다 파셔야 될지어다 그런데 일어나면 또 또 선포해야 돼 또 파쇄될지어도 죽을 때까지 또 선포해야 돼 안 없어져요 그거는 여러분 그렇게 선포해서 없어지는 게 아니고 자기 부인과 십자가로 죽어야 되는 그거를 자꾸 선포를 하고 있네요. 하나님이 가난하신가요? 부하신가요? 그럼 그 부하신 하나님하고 옆에 같이 놀면은 나도 부해요. 가나님 예 근데 왜 가난해 저주를 떠나갈지 하다가 그거 왜 하냐고 그 내가 잘못해서 그렇게 된 걸 왜 떠나갈 줄 알아도 아냐고 그게 아니고 내가 죽어버린 그 가난한 내가 죽어버리면 되는 거예요. 그럼 부유한 하나님과 하나가 되면 되는 거 아닌가요 너무 간단한 거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래서 여러분 앞으로 여러분 자녀들 결혼할 때 가난한 사람하고 결혼시킬 거예요. 부한 사람하고 결혼시킬 거예요. 아 헷갈려 헷갈려요 대답을 잘해야 돼요. 이 시점에서 당연히 부한 사람하고 결혼시키는 게 맞아요. 이렇게 머리가 팍팍 안 돌아간다니까 하나님과 연합한 사람하고 결혼시켜야죠 이해가 그렇게 안 되세요. 여러분 가난한 사람하고 결혼해서 가난한 또 떠나갈지어다 막 파쇄될지어다 아무리 해보세요. 대나 그 시간에 열심히 가서 노가다 하면 훨씬 부해져요 맞죠. 그것도 틀린 말이에요. 가난과 부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이러니까 교회에 와서 1학년들이 하는 얘기입니다. 그건 그러니까 우리는 아직도 거기에 매여 있어요. 그러니 답답해요. 답답해요. 그게 아니라고요. 있어요. 뭔 말인지 우리가 그렇게 배웠어 지금까지 그건 아니에요. 그거는 처음에 뭣도 모를 때 성동굴 때 그렇게 이제 눈으로 볼 때 이렇게 막 보이는 것으로 보일 때 그때 하는 거고, 지금은 이제 우리는 다 졸업했잖아요. 맨날 십자가를 지는 사람들이 무슨 뭐 그게 떠나갈지 어디 있어요. 죽고 나면 없는데 안 그래요. 아니 죽고 나면 부안 주님과 연합도 있고 죽고 나면은 아프지도 않는 주님과 연합했고 암에 그렇죠. 죽고 나면 성질 좋은 주님과 연합했고 그러면 혈기 나오겠어요. 그걸 왜 자꾸 저주는 떠나갈 짓 하냐고 안 맞아요. 그러니까 여러분 근데 죽기는 싫으니까 아주 교묘하게 나를 속이고 성경도 속이고 다 속여서 그렇게 만들어내는 거예요. 여러분 아시겠어요. 그래도 이해가 잘 안 가실 수가 있는데, 자 보세요. 메뉴에서부터 하나씩 볼게요 오늘 참고 말씀은 창세기 3장 그다음에 갈라디아스 5장 로마스 5장 6장 7장을 나중에 이 저주에 대해서 보실 때 참고해서 보세요. 가게의 저주를 끊어라 이 말씀이 맞는지 안 맞는지 끝날 때 되면 이제 아시겠고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옛날에 저주를 불순종으로 인하여 저주율이 떨어져서 죄로 인하여 저주로 떨어지면은 죽었어요. 나무는 극형이죠. 그러니까 나무에 달려서 다 죽어야 돼요. 그래서 나무에 달린 자를 저주받은 자라고 손가락질했어요. 이해 가시죠. 그게 맞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래서 예수님을 지나는 사람들이 저주받은 인생이라고 그렇게 손가락질하고 저주를 우리 대신 당했죠. 그래서 끝난 거예요. 그걸로 우리에게 2만 저주는 예수님이 저주 없는 죄 없는 예수님이 다 짊어짐으로 해서 끝난 거예요. 이게 끝난 거예요. 자 근데 중요한 건 이걸 아셔야 돼요. 그걸 분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뭐가 뭔지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해결책을 어떻게 정확하게 알아야 돼요. 지금까지 한 내용에 다 들어가 있습니다만 여러분이 성경 안에서 제대로 찾지 못하는 것들이 있어요. 그걸 제가 여러분 확실하게 오늘 말씀을 드리고 저주가 뭔지 완전하게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과거의 저주를 끊어라 그거는 기도에 시간 낭비 너무 하지 마시고 그 시간에 그냥 불을 받아서 내가 거꾸러지는 게 빨라요. 아멘 불을 내려 주시옵소서 그 기도를 하는 게 더 빠릅니다. 창세기 3장 17절 그 아래 내용에 보면은 아담에게 이러시대 내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나더러 먹지 말라 한 남은 실과를 먹었으니까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소산을 먹으리라 이게 저주예요. 아담에게 이만저주 땅에게 이만주 여러분 보세요. 에덴 동산에서는 일 안 하고 입만 벌리면 됐죠 안 그래요. 뭐 동물이 와서 공격하지도 않고 하나님이 다 보호하고 계셨고 거기는 뭐든 필요한 게 다 있었죠. 인간의 모든 필요가 여전히 천국의 모형이니까. 거기가 그래서 기쁨의 동산이에요. 여러분 기쁨으로 충만한 곳이라고 거기는 그러니까 모든 게 다 있었던 거예요. 근데 거기서 이제 보세요. 23절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보내어 그에 근본된 토지를 관리하시니라 이제 쫓겨나잖아요. 쫓겨나니까 어떻게 됐어요. 기쁨이 사라지고 하나님도 멀리 멀리 없어져 버리고 그때부터 보호자가 없어지고 모든 문제가 거기서 그거의 저주예요. 여러분 이해 가시죠. 그걸 우리는 저주라고 한다고요. 잘 보세요. 이 저주 근데 우리는 그냥 몸이 아버지가 든 병이 나도 들고 뭐 이런 우리는 그 유전적인 뭐라고 뭐 가계 뭐 가계도가 어떻고 이런 말을 합니다만 그런 것들도 저주라고 하고 뭐가 안 되면은 또 저주라고 뭐 이 가만히 대물림되면 또 저주라 하고 아니 그거 아니에요. 본질을 알아야 돼요. 저주가 뭔지 정확하게 알아야 되는데 그걸 모르는 거예요. 저주는 하나님과의 분리로 인해서 나타나는 모든 문제들이 분리 자체가 저주예요. 사실은 물론 그 원인은 죄로 인함이죠. 근데 그 죄를 짓게 한 본질은 뭔가요 또 죄를 짓 그러니까 죄를 짓게 한 본질이 뭐예요? 이렇게 말씀을 드렸잖아요. 제가 이 눈만 뽑으면 다 해결된다고 보는 것 때문에 다 문제가 생긴 거예요. 보일 때 마귀가 하와에게 보여줄 때 기억나죠. 그게 보아인지 먹음직 지혜롭게 할 만큼 괜찮은 것 같고, 보암직이 뭐예요? 안목에 먹음직 육신의 정욕 그 다음에 지혜롭게 될 만큼 하다 이 자랑이죠. 자랑 이게 세 가지 세 가지가 핵심이에요. 그러니까 그 세 가지가 저주의 원인이었죠. 맞아요. 그게 없었으면 차라리 못 봤으면 어땠을까? 그래도 했을 거예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했을 거야. 노름하는 사람들 손을 잘라버리면 발가락으로 하고 발을 잘라버리면 또 뭐 입으로 가서 요렇게 하고 이거 해버리면 그다음에 어떻게 해요. 옆에 한 사람 데려와서 하는 그러니까 모든 문제의 핵심은 불순종인데 불순종하게 한 근본 원인이 바로 이 세 가지 아시겠어요. 그걸 철저하게 깨달아야 돼요라고 이걸 못 깨달으면은 저주 백날 저주 건너기도문 막 다 외우고 해보세요. 되나 안 끊어져요 다 해보셨죠 그런 거 지금도 하고 계신 것 아니에요. 혹시 가난이 저주 떠나갔나요? 아 여기 왔으니까 떠나가지고 아 뭔 말인지 모르시는구나 그래서 에덴에서 쫓겨나고 하느님과 분리되고 그게 핵심이 육체가 됩니다 라고 그랬죠 그게 저주 덩어리예요. 그러니까 그 저주를 입게 한 핵심은 본질은 바로 죄고 그 죄의 본질은 불순종이고 불순종을 하게 한 동기는 바로 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이 세 가지죠 그러면 우리도 아담이죠. 아담의 혈통으로 났잖아요. 처음에 아담 지금도 아담은 막이는 아담을 어떻게 유혹할까요? 맨 먼저 이거예요. 다 끝나는 거예요. 여러분 보는 거에만 안 속으면 모든 것이 다 기쁨으로 충만해집니다. 보는 건 듣는 거하고 똑같은 말이고 그렇죠. 느끼는 거하고 똑같은 거예요. 육체가 되면 육체로 눈을 못 보고 느끼잖아요. 느끼는 것으로 보잖아요. 똑같은 거예요. 그러니까 감정 이런 거 다 똑같은 말이죠. 그게 지정 육체 우리의 지정이가 그런 거예요. 그게 다 속는다고요. 그 다음에 욕심이죠. 그게 전부 욕심이죠. 다 합쳐서 욕심이죠. 육체정욕이라고 하는 육체의 욕심이라고 하는데 그게 탐심이라고 하기도 하고 그게 우상숭배라고 어쨌든 그것이 원인 제공 그 제공을 누가 했어요. 마귀가 했죠. 맞아요. 그래서 마귀 다음 여러분 첫 번째 아담이 마지막 아담의 표상이라고 그랬죠 로마스 할 때 기억나요? 이 아담은 첫 번째 온 아담은 예수님을 표상하고 있다고 그랬죠 예수님과 똑같은 거라고 똑같은 모습이라고 그랬죠 로마사에서 그래서 그 아담과 똑같이 진짜 예수님이 오셨죠 맞아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분리가 되고 쫓겨남으로 해서 우리 안에 이제 사망의 증상들이 나타나는데 그걸 채우려고 우리가 노력을 하는데 걔 땅은 가시와 엉컹키밖에 안 내고 우리의 목에 등에 땀이 흘러요 먹고 살까 말까 이런 이 지경이 되는데 그게 하나님 보시기엔 죽은 자라고 하는 거예요. 그게 사망이고 사망의 증상이라고 하는 거죠. 그렇죠. 그게 본질이에요. 근데 놀랍게도 아담이 또 오셨죠 두 번째 아담 두 번째 아담이 오셨을 때 그러면 마기는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똑같이 또 이 세 가지로 똑같이 유혹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마태범 사장에 누가보험 사장에 가면 성령에 이끌려 마귀시험을 받으러 강의하러 갔죠 우리도 성형에 이끌려 마귀시험을 받으러 교회로 온 거예요. 이해가셔요 거기에 넘어가면 어떻게 된다고 그랬어요. 누가 보면 사상할 때 눌리고 묶이고 눈 멀고 이렇게 된다고 그랬죠 거기에 넘어간 자들의 형편이 그렇다고 그랬죠 그게 바로 사망의 증상이잖아요. 그걸 해방하기 위해서 은혜회를 선포하려 하면 이사야서에서 이사야 61장에 일러스대 그러면서 예수님이 설교하잖아요. 누가 공사장 다 까먹었어요. 얼마 전에 또 했는데 이사야스의 일러스되 성령이 너 얘기해 임하시면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적게 하려 하십니다. 그 가난한 자가 눌리고 묶이고 눈먼 자라고 했죠. 그래서 끊어내고 눌린 자를 해방하고 눈먼 자를 보게 하고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십니다. 은혜 해라가 뭐라고 그랬어요. 우리가 잠드는 게 은혜라고 그랬죠 육체를 완전히 깨뜨려내는 게 은혜라고 그랬죠 근데 그 은혜는 희년이라고 그랬죠 노예가 해방되는 종이에 해방되는 성령이 오셔서 그걸 해방 시켜 너에게 자유를 주겠다. 그래서 저주가 다 끝난다 그걸 말씀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똑같이 예술인도 그걸로 유혹한 거예요. 첫 번째 유혹한 게 뭐예요? 도리또기에르 그게 육신의 정욕이죠. 그다음에 뭐예요? 뛰어내려라 맞나요? 뛰어내려라 맞아요. 뛰어내려라 그러면 그게 종교적인 어떤 그런 거죠. 그게 이제 여러분 안목의 정욕에 해당하는 거고, 그다음에 마지막에 내게 절하라 그럼 이 모든 것을 내게 줄이라 명예욕 권력욕 그게 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생애 사랑은 예수님이 아담이잖아요. 그러니까 똑같이 막에게 유혹을 당해서 그걸 겪어낸 거예요. 그래서 거기에 예수님은 실패하지 않았죠 그걸 실패를 이겨냈죠 그래서 뭐든 저주해서 거기서 실패를 극복 저주로 몰아넣은 그 세 가지를 극복하고 그 다음에 예수님이 여기서 만약에 거기에 떨어졌으면 모든 것이 끝이죠. 그런데 예수님은 참조적이기 때문에 그건 이미 땅이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완성이 되어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실패할 수 없어요. 그렇죠. 그렇죠. 그래서 그걸 이기시고 그 다음에 우리에게 임한 모든 저주를 자기 몸으로 받아내셨죠 십자가에서 그래서 십자가에서 저주를 다 담당하셨다고요. 맞아요. 그래서 예수님은 그 말씀 자체이셨기 때문에 말씀에 순종하여서 아담은 불순종했고 예수님의 순종함으로 인해서 불순종으로 인한 그 저주를 다 실패를 극복하고 그다음에 자신의 모습 똑같은 우리에게 임했던 저주를 이제 담당해야 되거든요. 왜냐하면, 불순종으로 인한 죄에 대해서 심판을 받아서 제값을 치러야죠 그렇죠. 그게 하나님의 법이잖아요. 그게 공인이라고 그래요. 죄진 자는 반드시 벌을 받아야 된다. 하느님은 절대로 그냥 안 넘어가요 그래서 우리 죄진 우리 아담의 모습으로 오셔서 그 죄값을 받아서 십자가에 죽었죠. 그 죄를 값을 받아 죽었잖아요. 그래서 이제 저주가 거기서 다 해결된 거죠. 그래서 우리 저주를 다 담당하신 거예요. 왜냐하면, 죄 없는 아담이 죄 있는 우리의 모습으로 와서 우리 죄를 한 번에 싹 담당하셨기 때문에 거기서 저주는 끝난 거예요. 그래서 우리의 모든 저주를 예수님이 안고 거기서 십자가에서 죽었심으로 저주가 다 끝난 겁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거죠. 그래서 죽고 나서 다시 부활하셨던 그 부활하신 예수님이 또 아담의 모습 우리 죄를 벗고 부활해서 다시 쫓겨나고 분리되었던 하나님과 다시 연합이 됐죠 하나가 됐죠 에덴이 회복된 거 아니에요. 에덴의 회복이라고 하면 말이 안 되고 에덴 그 자체가 됐죠 그게 우리 모습이라고 그랬죠 맞아요. 아담은 오실자의 표상이라 그렇습니까? 로마스에 그대로 나오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도 똑같은 그 모습이 예수님도 우리하고 똑같은 모습이죠. 그럼 그 저주를 벗고 완성하신 모습이 십자가를 통과하고 부활연합에서 하나님과 연합되었을 때 다시는 저주가 없죠 완성하셨죠. 그래서 이제 우리에게 저주는 이미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 저주를 자기가 다 받아내고 그걸 우리에게 넘겨 주셨죠 맞아요.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을 자신의 몸으로 다 받아낸 거예요. 그래서 끝난 거예요. 저주는 전부 다 거기서 끝난 겁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그래서 이 두 가지를 통해서 모든 것을 다 완성하신 거예요. 그래서 생명과 평안이 임하게 자 거기에 보면 갈라디아스로 잠깐 넘어가보면 갈라데스 2장으로 가볼게요 갈라디아스 2장에 가면 303페이지 갈라디아스 2장 16절 사람이 어렵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 오직 예스고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거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 있어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어렵다 함을 육체가 없느니라 그러니까 우리가 어렵게 되는 게 이제 우리 행위가 아니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해서 이제 우리가 어롭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저주는 다 끝난 거죠. 여기서 그렇죠. 그게 이제 갈라다에서 여러분 잘 아시는 이장 이십절 내 저주의 몸이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 그래서 내 안에 예수님께서 사셨다 그래서 이제 저주는 끝난 거예요. 그걸 말하고 있고 그래서 2장 21절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피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어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그래서 예수님이 다 감당을 하셨죠. 그래서 3장으로 넘어가 보면은 어리석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 너희 눈에 밝히 보이거나 누가 너희를 깨느냐 이게 여러분 문제예요. 이게 우리는 여기서 다 속아 넘어갔어요. 갈라디아 교인들처럼 여기서 속아 넘어갔어요. 거기에 율법주의자들이 갈라디아 교회에 쓱 들어와 가지고 너희도 할례를 받아야 된다. 율법의 행위를 해야 된다. 그래야 어렵게 된다. 이렇게 속인거죠. 꼬신거죠. 오늘날 교회 안 그렇던가요 열심히 뭐 해야 된다. 뭐 해야 된다. 뭐 해야 된다. 말씀을 잘 보고 듣고 이 읽고 뭐 열심히 순종하고 충성하고 봉사하고 헌신하고 해야 된다. 해야 된다. 그러면 복 받는데 전부 이거예요. 누가 너희를 꿰드냐 많이 꼬임을 당했죠. 여러분 아미 그게 율법이에요. 그러니까 여러분 예수님이 다 담당한 건데 뭔 소리를 또 하냐고 그거 안 지키면은 막 저주를 받는다. 막 이런 소리 하죠. 주일 날 골프 치러 가면 저주를 받아서 골프채 틀 때 번개 내려친다 막 아니면 차 타고 가다가 사고 난다 막 이렇게 저주를 퍼붓고 저주 그렇게 해서 혹시라도 사고 나면 주일날 어디 가서 저주받아서 그래 막 이런 소리 많이 했죠. 거짓말이야. 아니에요. 저도 옛날에 주요일날 골프 치러 가봤는데 타이어 펑크 안 났어요. 다행히 걱정하지 마세요. 그 말이 아니에요. 그건 운전을 잘못해서 그렇게 된 거지 안 그래요. 그거를 왜 저주받아서 그렇다고 말해요. 하나님 그렇게 째째한 사람이 아니야. 하나님은 그걸 왜 그렇게 몰아치냐고 말도 안 되는 걸 갖다 붙여가지고 그래서 막 예비에 목숨을 걸어라 그러면 예비에 왜 목숨을 걸어요. 하나님께 목숨을 걸어야지 그건 다른 말이에요. 예배 목숨을 거는 건 진짜 그게 틀린 말을 안 하는데 우리가 교회 왔다 갔다 하는 예배 목숨을 거는 그런 걸 말하는 거예요. 예배는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게 예배예요. 산 제사 거기에 목숨을 거는 게 맞죠. 다른 말로 삶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 내가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고 하나님께 내 자신을 드리는 그걸 예배라고 하는데 주일날 한 번 나와서 왔다 갔다 그게 예배 목숨을 거는 건가요? 나머지 일주일 나머지 시간은 내 멋대로 살고 예배 목숨을 걸러 주일 날 왔다가 가면 그게 예배를 잘 드린 건가요? 그런 착각을 하게 만든 율법주의자로 다 만들어 버렸어요. 이제 그게 갈라데 교회에 쓱 들어온 거예요. 그러니까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안 보이냐 이렇게 말을 그거 다 담당했는데 지금 뭔 소리 하느냐 지금도 네가 율법을 지켜서 내가 잘났다 내가 제대로 지금 살고 있다. 내가 의롭다 내가 복 받는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느냐 이 말이죠. 그 을을 복으로 바꿔보세요. 똑같아요. 그 을을 폭으로 한번 바꿔보세요. 얼마나 똑같은가 2장 16조를 한번 바꿔볼까요? 사람이 복을 받게 되는 것이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오. 똑같은 거예요. 여러분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복받는 게 복이 뭔지도 모르니까 그런 결과가 나오는 거예요. 복이 예수 그리스도가 복이라 했으면 교회에 아무도 안 나올 거예요. 지금 그렇죠. 여러분 복 받으러 왔죠 솔직하게 예 그니까 예수 그리스도 받으세요. 아멘 그 복이 뭔지도 모르고 로또 복권의 복인 줄 알잖아요. 그러니까 열심히 교회에 목숨 걸고 예배를 예배하고 행위를 열심히 하면 로또 복권 되는 줄 아는데 아니거든요. 그걸 말하는 게 아니거든요. 예수님을 주신다고 보세요. 얼마나 이게 정확한가 처음에 불순조가 일어나서 하나님과 떨어졌죠 그래서 모든 문제가 발생해서 고통과 괴로움 사망의 증상들이 왔죠 그걸 극복하는 건 어떻게 다시 달라붙으면 되는 거잖아요. 에덴으로 다시 들어가면 되는 거잖아요. 그러면 모든 기쁨으로 충분한 그걸 선물하겠다고 교회 오면 나를 믿으면 근데 우리는 그것보다 우선 눈에 앞에 보이는 떨어지는 그게 보인 줄 알고 그게 저주일 수도 있어요. 그래서 속은 거예요. 여기서 속은 거예요. 율법의 행위로 되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3절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은 성령으로 시작하여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다시 육체로 돌아가 버린다고 바울이 환탄을 하고 있는 거예요. 얼마나 답답한 일이에요. 그래서 사도바울이 목숨 걸고 거기에 복음을 전하면서 가슴을 치던 거예요. 어느 날 교회 이 일이 일어나고 있어요. 여러분 복타령으로 사람들 정신을 확 미혹해 가지고 눈을 가려버린 거예요. 그걸 누가 하겠어요. 마귀가 하죠. 마귀가 그러니까 마귀에게 마귀가 용이죠. 용의 능력을 받아서 거짓말을 하는 자들은 거짓 선지자라고 했죠. 전부 그런 거예요. 교회에 그런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분별을 잘하셔야 해요. 잘못하면 속을 수 있어요. 오절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 능력을 행하시는 일이 일이 율법의 행위로서냐 듣고 믿음이냐 그러니까 이걸 못 알아들으니까 아브라함을 예로 드는 겁니다. 아브라함 때 율법이 있었어요. 없었어요. 없었죠. 그런데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롭다 했죠. 하나님이 그게 의외예요. 근데 율법이 400년 후에 나온 율법이 아브라함을 폐할 수 있어요. 그때 약속을 안 되잖아요. 지금 똑같은 이야기예요. 예수님 믿고 우리는 저주해서 다 끊어져서 자유케 되고 다 됐는데 지금도 열심히 그렇게 해야 니가 저주를 안 받는다. 이렇게 말하면 이건 뭐예요? 이건 거짓이지요 진리가 아니지 니가 열심히 그렇게 해야 복을 받는다. 이것도 맞는 것 같은데,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은데,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그게 오케이 아니면 그게 진리가 아니에요. 거기에 걸려들면 눈이 싹 가려서 평생을 고생합니다. 그게 마귀예요. 마귀가 그렇게 해서 유혹을 해서 우리를 육적인 존재로 만들어서 평생 열심히 내게 해서 죽게 만든다고 했죠. 제가 그게 성경으로 우리를 속인다고 그랬죠 그게 큰 내용이에요. 여러분 그게 우리 역신의 정용과 딱 맞다. 내가 복을 받기 위해서 교회 왔는데 열심히 하면 복 준다. 하니까 이거야. 바로 이거야. 내가 지금까지 찾던 게 이거야. 열심히 교회 다니십시오. 여러분 예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고 그래서 뭐 내게 떡이 내려와요. 돈이 내려와요. 이렇게 나오거든. 바로 예수님 필요 없다는 거지 이미 예수님 내가 믿었으니까 예수님 말고 돈을 주시오. 수님 돈을 그게 그 말이에요. 너무 쉽게 말하니까 좀 원색적으로 들리죠 복을 주십시오. 성경에 나온 대로 신명기대로 복을 주십시오. 이렇게 순종을 안 하면서 그런데 할 만큼 열심히 하니까 순종하는 것 같잖아요. 살인죄 지음이었습니다. 미워했죠. 솔직하게 말해보세요. 그런데 뭔 복을 받으려고 그래 말도 안 되는 복을 그래서 자 보세요. 이게 얼마나 위험한 건가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했어요. 자 내려가 보세요. 그 아래로 10절 무릇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이 말이 뭔지 몰랐죠 여러분 나는 이제 복음 안에 들어와서 열심히 말씀을 지키고 열심히 충성 봉사한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것이 만약에 그런 모든 행위가 하나님께서 나를 잘 봐주셔서 나를 옳게 생각하고 내가 그런 행위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서 하나님을 감동시켜서 하나님께 내게 뭔가 보상을 해줄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게 율법의 행위에 속한 거예요. 그게 속이란 거라고 그랬죠 지금까지 그런 줄 알고 계셨잖아요. 그게 저주라고 맞아요. 그렇게 저주 아래에 있으면서 저주를 떠나갈지어다 떠나갈지어 선포는 엄청 해대요 본질도 모르고 원리도 모르고 성경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열심히 하면 된다고 하는 그 말만 듣고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믿고 그렇죠. 있습니다. 하면 되고 열심히 가서 내가 충성하고 이렇게 하면 언젠가는 복이 떨어지고 안 되면 그 다음 대회에도 받는다. 아멘 크게 했잖아요. 안 받아지더라고. 그렇죠. 우리 애들 막 배 아프더라고. 가끔 안 아파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 정도 되면 내가 목사인데 아니야. 그러니까 그게 뭔가 잘못된 게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진리를 똑바로 깨달으셔야 돼요. 답답하죠. 10절 계속 할게요 보세요.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자리 여러분 그래서 율법 제 66권 안 읽으니까 읽은 만큼만 지키면 되지 그러니까 다 읽지 마세요. 절대 다 읽으면 절대 못 지켜 까먹는 게 제일 좋아 그러니까 다 까먹어버렸어요. 빨리 그 하나라도 안 지키면 저주 아래 있다고 그러잖아요. 여러분 다 지켰어요. 매일 살인하고 매일 매호하고 매일 막 음란하고 그러잖아요. 그러면서 나는 교회 열심히 다닌다 라고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게 마귀고 고 마귀가 고걸 룩을 통해서 거짓 선지자를 통해서 거짓 선지자가 어디 있어요. 오늘날 교회 밖에는 전부 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밖에 없는데 무슨 교회의 교회 여러분 그렇게 속는다는 말이에요. 신민기 27장의 26조를 보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우리는 저주에서 헤어나올 방법이 하나도 없어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다 실행합니까? 안 하잖아요. 그런데 문복을 받으려고 그래요. 그런 속은 거예요. 지금까지 예수님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다 하고 지키셨죠 그런데 그 예수님이 그것을 우리에게 넘겨주셔서 우리가 지킨 자로 인정을 받는 거죠. 그것을 믿음으로 외롭다 한다. 라는 거예요. 어렵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되는 거다 그걸 말하는 거예요. 근데 우린 그걸 붙잡고 가는 거예요. 우리는 예술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어렵게 됐다라고 하는 거죠. 그래서 그걸 믿으면 우리는 연합한 자가 되는 거죠. 근데 문제는 아직도 남아있는 이 몸 육체에 남아있는 이 저주의 속성들 마귀적인 속성들이 그대로 있다고 그랬죠 그건 축사의 대상도 아니고 저주를 끊어라 이 대상도 아니고 없어져야 될 자기 부인과 십자가를 완전히 망해버려서 죽여버려야 될 대상이라고요. 근데 그걸 끊어질지어다 끊어질지에다 하고 있으면 되냐고 그게 안 되는 거예요. 안 된다고 그래서 11절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어렵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의는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림 믿는 자가 의롭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그걸 내 모든 죄를 담당하고 가셨기 때문에 나는 의롭다라고 믿는 거예요. 내가 뭔가 열심히 해서 내가 잘나서 어롭게 됨이 아니요. 로마스 5장이 나오죠. 그게 아니라고 근데 아직도 그걸 가르치고 있어요. 열심히 하면 복 받는다. 똑같은 말을 하니 의인에게 복을 준다고 한 거잖아요. 순종하는 자가 의인이죠. 그걸 지금 그렇게 지켜서 복 받으라고 노예처럼 부려먹는 거죠. 마귀가 나를 노예처럼 거짓 전쟁을 통해서 부려먹는 거죠. 이해가요 제발 꿈에서 여러분 깨어나세요. 제발 꿈에서 깨어나세요. 절대로 그런 일이 안 일어납니다. 12조 율법 민원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가 그 가운데로서 살리라 이 네 말씀을 다 지키면 너희가 살리라 했죠. 신명이 가면은 앞에 레비 다 마찬가지고 근데 못 지켰으니까 나는 죽은 자죠 죽은 자는 저주죠 근데 그거 못 지키면서 나는 교회담에서 열심히 지켰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지키고 행했으니까 하나님이 뭔가 나를 이쁘게 봐서 사탕 하나 더 주실 거야. 그렇게 생각한다라는 거죠. 안타깝게도 그 말씀 속에서 열심히 교회 와서 충성 봉사했죠. 물러달라고 하세요. 저도 열나게 했어요. 20년 정도 물러 달라고 하려고 보니까 없어 안돼요. 이제 핵심 13절 보세요. 이게 오늘 주제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대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송양하셨다 어떻게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습니까? 그래서 나무에 달려서 저주를 담당하시므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숭령하셨다고 이 저주라는 것은 우리에게 이만희 저주는 율법의 저주예요. 하나님이 주신 율법이 에덴에서 한 가지였죠 저거 먹지 마라 그 율법 한 가지 선악가가 율법이에요. 그러니까 그게 율법의 대표로 나온 거라고요. 그걸 못 지켰죠 한 가지도 못 지키는 게 이 66권을 지키겠다고 막 열심을 내라고 서로 그거는 속임수예요. 여러분 절대로 못 지킵니다. 되는 게 아니에요. 이 스님을 믿음으로 우리에게 이루어진 것이라 라고 우리는 믿는 거죠. 그게 바로 약속이라는 거예요. 약속 그래야 약속이라는 하나님의 언약이죠. 이해 가시죠. 그래서 예수님의 저주를 여러분 다 담당하셨어요. 더 이상 우리에겐 저주는 없는 겁니다. 저주는 떠나갈지어도 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안 믿는 자들이 이해가세요. 예수님을 머리로 알지만 안 믿는 마음으로는 안 믿는 자들이 그렇게 하는 거예요. 맞지 않아요. 성경에 나오잖아요. 그렇죠. 맞아요. 그걸 부연 설명한 게 로마스 고장 갈라디아스가 로마스보다 먼저 써줬어요. 갈라디아스 다음에 로마스가 완전히 율법에 대한 완성에 대한 책임 여러분 로마스 고장 할 때 확실하게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오늘 한 번 더 확인하고 넘어갈게요 로마스 5장 14절부터 볼게요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에 이르기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의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의 아담 오실 자의 표상이라 우리 범죄를 안 지었는데도 범죄를 지은 자처럼 취급 당한다라는 거죠. 사망이 왕노라 했다고요. 왜냐하면, 우리 육체가 되었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그 자체가 져준 거예요. 그래서 이 은사는 그러나 이 언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으니까 더욱 한 사람의 은혜라면 한 사람이 예수 그레스도를 은혜로 말미암아 선물이 많은 자에게 넘쳐나는 이라 이게 대표대표라고 했죠. 대표의 원리라고 하면서 제가 말씀을 드렸어요. 16절 이 선물은 범죄는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그렇지 아니하니 심판을 한 사람으로 인하여 정조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사람으로 인하여 어렵게 하시며 일어나며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였습니다. 그다음에 후에 우리는 사망 안에 가는 거예요. 사망에 끌려 다녔던 거예요. 그래서 제가 사망의 법이라고 그랬죠 받은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도록 다 그래서 한 분 예수 그리스도께 아담의 표상이죠. 아담의 표상으로 오셔서 그 모든 저주를 담당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해서 생명 안으로 들어간 거죠. 그런 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조의 이론과 같이 의아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외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리라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가 생명으로 들어갔다고요. 그 생명은 하나님의 영성의 생명이죠. 그러니까 다시 연합이 된 거예요. 그래서 그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하늘과 땅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함이라 그게 그 말이에요. 결국은 그걸로 향하고 있죠. 그래서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었느냐 이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어렵게 돼서 저주는 끝난 거예요. 그래서 나무하라 달린 자마다 저주하라 해서 저주는 다 이미 끝난 거예요. 그리고 우리 예수님과 함께 그 저주받은 육체가 십자가에 죽었기 때문에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여 내 안의 그리스도께서 사셔서 그 모든 저주에서 벗어난 자가 됐죠 그런데 아직도 남아있는 이 육체 나라는 이 자아라는 존재가 저주의 부산물이라는 거죠. 그게 마치 저주 받은 저주가 계속 흐르고 있는 것처럼 나를 그렇게 속여간다 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 저주가 흐르고 있는 것처럼 속여서 니가 열심히 열심히 말씀을 지키고 행하고 율법을 지키고 행하면 그 저주에서 벗어나서 하나님께 복을 받을 수 있다. 그게 앞에 구약 율법에 나오는 내용들이잖아요. 그걸 갖다 대서 그렇게 그렇게 해서 저주가 벗겨지는 게 아니고 이미 우리는 저주가 다 끝났어요. 이 남아있는 저주가 남아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이 저주가 아니고 이것은 저주로 인해서 육체가 되었고 그 육체가 된 게 저주죠 그 육체가 되어서 내가 만들어졌던 이 모습들이 대물림되어 내려오는 거지 그게 무슨 저주라고 하면 되겠냐고요. 이미 끝났는데 근데 그걸 가지고 전수받은 인생이라 어떻고 저주를 받을 것이다. 어떻고 하는 건 전부 진리가 아니에요. 그걸 통해서 자기의 종 노릇하게 만드는 거예요. 종처럼 부려먹는 거예요. 여러분 아시겠어요. 절대로 속지 마세요. 여러분은 절대 여러분 저주가 없습니다. 이제 그 남아있는 내 육체에 이 저주받은 속성들을 해결해야죠 그게 우리가 하는 일이에요. 여기서 완성됐죠 예수님의 십자가에 목박해심으로 다 이루었다 완성이 됐잖아요. 다시는 저주가 없죠 질병도 담당하셨죠. 고통도 담당하셨죠. 가난도 다 담당하셨죠. 부한 자로 스스로 가난하게 되시면 그 가난하게 되심으로 말미암아 가난한 우리를 부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거든요. 근데 안보해요. 그러니까 가난과 부에 대해서 우리는 아직도 개념을 모르고 끼니가 없는 게 가난한 것으로 착각하는 그거 아니에요. 여러분 이 옥에 갇힌 사도 바울은 가난한 자였나요? 부활자였나요? 몸이 건강한 자였나요? 병든 몸이 건강하지는 않았죠 그런데 가난한 자였나요? 부한자였나요? 내가 그리스도 예술원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나니 가난에 처할 줄 알고 부활에 처할 줄 알고 뭐도 할 줄 알고 오직 이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일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게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일화 그게 가난한 자유 부활자의 엄청난 자지 그게 능력자죠 근데 그 병든 것 때문에 그 사람을 판단할 수가 있겠어요. 아니 그거는 하나님이 그 병으로 인하여 그거를 강건하게 만들기 위해서 놔둔 거지요 그 하나님의 은혜죠 그거는 여러분 질병의 저주가 아닌 거예요. 우리도 아프고 때로는 가난한 것 육적으로는 그렇게 보여도 하나님이 그 안에서 왕 노릇을 하고 계시면 이 땅에서 제일 부하고 제일 강한 제일 강건한 자가 가 될 수 있는데, 우리는 그걸 자꾸 아직도 가난과 부를 착각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좀 뭔가 일이 안 풀리고 그러면 저주가 떠나갈지야 돼 이런 식으로 그걸 해결하려고 혀바닥을 놀려서 뱀이 왜 햇바닥이 두 개겠어요. 왜 갈라져 있겠어요. 하나가 되어 진리는 하나인데 갈라져 있으니까 두 개죠 그게 진리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뱀이 뒤에서 혀를 날름날름하니까 거짓산자들이 속아서 날름날름해서 우리는 그거 날름날름 받아먹고 똑같이 날름날름 이해가셔요 진리를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도 똑같이 막 이는 그걸 가지고 우리를 물어뜯는 거예요. 우리도 지금 아담의 모습은 그대로 있잖아요. 육체가 된 저주받은 아담의 모습은 그대로 있잖아요. 근데 예수님 와서 이 모든 것을 다 해결했죠. 근데 이 육체는 그대로 가지고 있죠. 근데 이 마귀가 최초의 아담에게 가서 유혹한 걸 그걸 가지고 지금도 우리를 유혹하는 거예요. 그래서 계속 뭘로 이 보이는 것으로 유혹하는 거예요. 거기에 모든 것이 다 들어있죠. 맞아요. 그래서 여기 다 속아놓은 거예요. 전부 다 속 여러분 율법을 멋지게 지키고 멋지게 하는 것도 다 안목의 정욕이에요. 남들이 알아주겠지 이쯤 하면 내가 괜찮지 전부 육신이 정욕의 수가 그렇게 하면 뭔가 떨어진다 이거를 하나님을 거래 대상으로 만들어버려요 하나님이 거래의 대상입니까? 하나님은 거래 대상이 아니고 결혼해야 될 상대예요. 아 결혼해야 될 상대한테 가서 자꾸 돈만 달라 해보세요. 아이 뭐야? 이 여자 돈 벌레야 안 되겠다. 다른 여자 구해야지 큰일 나겠다. 이따가 내가 쫄딱 망하겠다. 이렇게 안 하겠어요. 여러분 왜 자꾸 하나님을 돈 벌레 돈 벌레 내가 또 그 하나님을 그렇게 만들면 되겠냐고요. 무슨 거래 대상으로 내가 열심히 한번 많이 주고 좀 못하면 저주를 받아서 맨날 띠굴띠굴 고래를 굴러야 되고 막 이렇게 하나님을 만들어 버리냐고요. 그게 아니고 내가 너의 모든 저주를 담당해서 이제 내가 너에게 와서 찾으러 왔다 다시 하나가 되어서 천국에서 영원히 살자꾸나 거기 찾으러 왔는데 그 찾으러 오신 분하고 돈 내놓으세요. 내일까지 내일까지 다 풀어주세요. 내일까지 손가락 다 낫게 해 주세요. 막 이런 맨날 손가락은 다 낫죠 내일까지 다 낫죠 물론 다 틀렸다라는 건 아니에요. 그렇게 하게 할 수도 있어요. 하나님이 근데 그걸 마치 공식처럼 선포하고 다행히 혀를 날름날름 안 맞아요. 여러분 그거 분배를 제발 잘하세요. 절대 그게 아니에요. 이게 속는 거예요. 여러분 그래서 지금도 육체를 가진 우리를 마귀가 옛사람에게 육체 속에 들어와서 그걸 계속 속이는 거예요. 보이는 게 속에 넘어가게 하는 거죠. 말씀도 바로 보이죠. 말씀도 바로 보이니까. 바로 지켜야 되잖아요. 바로 지키면 복인이 쏟아진다고 하는 그 말씀이 그냥 바로 끝이죠. 그럼 바로 행하려고 하죠. 그 율법에 행하여 행해서 뭔가 할려는 자는 저 자리 있다고 그런 이 말씀은 나와 상관이 없는 줄 알아 이스라엘은 그 당시에 이놈들이 아유 모르네 진짜 몰라 이렇게 생각 이스라엘 백성들 진짜 말 안 들어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우리를 말하고 있는데, 지금 아니에요. 우리는 더 교묘하게 속이려고 하죠. 하나님은 근데 다 알아버려요 속이기 전에 알아버려요 그거 아세요. 속이기 전에 알아버린다니까요? 안 믿으시는구나 그 지금도 그렇게 유혹을 하는데 똑같이 우리를요 이 세 가지 카테고리 보이죠. 여러분 노란 거 칠해놨잖아요. 요쪽으로 갔다가 예술인과 똑같은 모습을 내 얘기로 왔다고 이렇게 똑같이 욕을 하는 거예요. 우리에게 똑같이 시험을 하는 거예요. 여러분 그래서 보이는 걸로 쫓아가라는 거지 맞아요. 그러니까 그게 바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성의 자랑을 채울 수 있으면 그걸 만족하게 할 수 있으면 너는 교회에 가서 죽더라도 충성해라 그러면 그게 채워진다 그러면 할 거 아니에요. 맞죠. 그게 율법의 정 노릇하게 만들어 멋지죠 오늘날 교회에서 그런 말씀이 있으면 안 되나요? 충성 봉사하시면 뿌리십시오. 10배 10배 아니지 30배 60배 100배 천 배 하다가 그것도 안 되면 만 배의 축복을 받을지어다 그러면 되는 줄 알아 그래서 안 되면 안 해서 그렇죠. 조금만 더 심어보세요. 조금만 더 해봅시다 우리 그게 육신의 정용이잖아. 마기는 그걸 이용하죠. 근데 마기가 이용당하면 모르죠 자기도 그게 그런 줄 알고 있으니까 당연히 그렇게 해서 성도들이 크 잘되고 복 받으면 좋겠다. 아주 이 성도들을 위한 마음이 갸력하죠. 근데 그게 속은 줄 알면 어떡하겠어요. 지금 아니고 죽을 때를 알거든요. 큰일 나는 거예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해서 둘 다 지옥에 떨어지는 그게 예수님이 유대 바리스인들에게 한 내용이에요. 지금도 똑같이 그런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육신의 정욕을 자극하고 안목의 정욕이 생긴 정욕을 채워주고 만족시켜준다. 주는 어떤 행위를 유발하게 하는 것들을 여러분 조심하셔야 돼요. 그게 다 속아 넘어가요 이해가죠 그래서 여러분 거기에 절대로 속으시면 안 돼요. 그래서 여러분 자신이 그런 것들은 이제 분별하실 거야. 귀가 따갑게 들었으니까 그래도 돌아서면 또 몰라 또 내가 뭔가 열심히 아닌 것 같죠 또 하루 안 나가고 죄지은 것 같고, 그렇죠. 하 이거 이러면 내가 또 뭔가 이게 일이 꼬일 것 같기도 하고 그러지 않아요. 저주받은 인생들 제가 언제 그런 설교를 했어요. 여러분 그게 아니에요. 그건 아니 그게 아니고 성령님이 예를 들어서 그런 감동을 주시면 맞아 내가 교회를 가서 더 내가 깨달아야 되고 더 기론 붐을 받아서 내 자신을 깨뜨려내고 이렇게 해야 되는 게 성령의 인도하심이지 안 가서 내가 뭔가 좀이 쑤셔서 이게 뭔가 일이 안 될 것 같다 이건 아니에요. 그건 율법이죠. 그렇죠. 성령님이 오시면 우리를 그냥 그 말씀을 지키게 만들어 가셔요 예 제발 이제 분별하시겠죠. 내 욕심하고 딱 맞는가 안 맞는가 그것만 아시면 돼요. 사기를 잘 당한 사람의 핵심이 뭔가 하면 욕심이 많은 사람들은 사기를 잘 당해요. 제가 사기를 많이 당했어요. 한 방에 다 털어먹어 버렸어요. 그러니까 큰 거 한 방 노리려다가 큰 것 하는 싹 다 들어버렸어요. 욕심이 조금 있는 게 아니고 아주 입담하게 있죠. 간이 크게 욕심이 있는 거죠. 그건 그래서 다 날려버리는 거예요. 그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성령 인도하심을 받으면 절대로 그런 일이 없어요. 그게 육신의 정욕이에요. 보이는 것은 여러분 이 보이는 것으로 자신이 뭔가 드러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속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열심히 기도하는 것도 보여주고 싶고 손 들고 그렇게 했죠. 이 길거리에 가서 뭐 다 했죠. 그것도 다 속는 거에 속할 수 있다고요. 그런 것들이 맨날 맨 먼저 오고 늦게 가고 그렇죠. 하지 말라는 게 아니고 그렇게 하셔야 돼 하셔야 돼 신 목사님이 얘기했잖아요. 그걸 거쳐가야 된다고 안 거쳐가면 모르게 모른다니까요? 거쳐온 사람이 알지 안 해본 사람은 이거 몰라요. 충성봉사 해 본 사람이 그 다음에 아 이게 아니구나 알지 안 해 본 사람들은 머리로는 될 것 같아도 안 돼요. 그거는 영적인 말이 있어야 되겠죠. 우리는 그런 과정을 다 겪어왔기 때문에 제가 그런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지금 또 속으면 되겠어요. 다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면 되겠냐 그러잖아요. 좀 전에 봤잖아요. 왜 다시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율법으로 돌아가느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게 보이지 않더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서 네 저주를 다 담당하고 율법의 속량을 다 담당했는데 왜 또 율법을 지켜서 할례를 해갖고 그렇게 해서 네가 그렇게 되려고 하느냐 복 받으려고 하느냐 그 말이거든요. 그게 근데 그거 아직도 그걸 눈치를 못 채고 열심히 해야 돼 열심히 해야 돼 막 좋아 그런 분들 계시면 너무 좋아 나는 너무 좋아 근데 앉으면 순간에 돌변해서 바로 칼을 들고 달려옵니다. 아셔요 그런 거 그걸 알기 때문에 제가 그런 분들한테 절대로 제가 열심을 내라고 안 해요. 그냥 쉬엄쉬엄 합시다. 쉬엄쉬엄 왜냐하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이 한민족의 기질이 그래요. 앞뒤도 안 봐요. 물불 안 가리잖아요. 그냥 앞으로 돌진이잖아요. 그게 돌파인 줄 알고 돌파 돌파 불구덩이로 뛰어지는 거지 그게 무슨 돌파야 돌파는 이상한 걸 돌파해 갖다 대가지고 돌파하는 어묵이 십자가가 돌파지 무슨 그런 걸 돌파라고 그래 막 이상한 데 속지 마세요. 돌파 아니에요. 그거는 그런 걸 돌파라고 하면 안 돼요. 돌파는 내 이걸 깨는 게 돌파지 아무거나 돌파라 하면 되겠어요. 하나님 그러니까 돌파 많이 해 봤죠 되던가요 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던가요 여러분 착각하지 마세요. 그래서 똑같은 카테고리를 가지고 우리를 속이는데 우리는 그게 금방 넘어가버려요 왜냐하면, 내 안에 그게 그대로 살아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딱 맞으면 코드가 맞잖아요. 순식간에 넘어갑니다. 그래서 예를 들면 이번에 우리 승전을 건축합니다. 여러분 이번에 승전이 기둥이 되시는 분들 천대를 걸쳐서 하나님이 그냥 쏟아부어 주신답니다. 그러니까 천대에 걸쳐서 쏟아부어주는 게 나의 마음하고 딱 맞죠. 그러면 이제 바로 집에 가서 집을 팔아버려요 그게 육신의 정욕하고 말씀하고 딱 떨어지잖아요. 할렐루야 드디어 내 때가 오는가 보다 그걸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여러분 성령님이 야 너 이번에 그러면 해야지 그렇죠. 야 너 이번에 꼬깃꼬깃 숨겨놓은 거 그거 가서 나를 위해서 내라 그러면 해야지 그러면 진짜 하나님이 그때 이 땅에서도 물질의 법칙이 똑같이 있어요. 왜냐하면, 나를 위하여 전투를 버리고 처자식을 버리고 부모를 버리고 모든 것을 다 버린 자에게 이 땅에서도 내가 100배로 받게 하고 영생을 내세에서도 그걸 받지 못할 차가 없다고 그러니까 하나님의 법은 이 땅에서 통해요. 근데 내가 내 정욕을 가지고 이렇게 하면 될 것 같다라고 해서 이렇게 하는 거는 그거는 여러분 속는 거예요. 그게 하나님과 거래하는 거라고 하나님과 거래하지 마세요. 하나님 순종하세요. 그냥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 못하죠. 성경이 오셔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선종이 성경이 오시면 예수님 안에서 행하셨던 이 모든 유혹을 물리치셨던 성령의 이끌림으로 가서 시험을 받았죠 그래서 예수님이 십장에 달린 것도 성령으로 인함이죠.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게 하신 것도 성령이었죠. 로마스 팔장에도 나왔고 우리도 똑같이 이제 예수님이 가시고 이와 연합돼서 다시 우리에게 보회사를 보내서 우리한이 오셨으니까 성령으로 인하여서 이 세 가지를 우리가 물리치고 십자가로 달려가서 모든 육적으로 남아있는 이 저주의 속성들이 끊어져 죽어 없어지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그 모습이 이루어질 거라는 거죠. 그게 새로운 피조물이죠. 그래서 통과하게 만드는 거예요. 여러분 내 육적으로 통과해서 여기에 기쁨으로 충만해지고, 편광으로 충만해지고, 뭐가 이렇게 충만해지고, 절대 안 돼요. 그래서 여러분이 막 이라면 제일 먼저 우리에게 어떻게 공격하겠어요. 눈으로 보고 딱 욕심에 맞는 걸 던져주는 거죠. 그렇지만 하나만 하지 말라 뭐예요? 십자가만 피하라 마귀의 슬로건이 뭐냐 그래서 마귀의 슬로건 마귀 마귀의 슬로건 뭐예요? 십자가만 피하라 십자가만 지지 말게 하라 이러면은 이제 십자가만 앉으면 이 6에 속한 우리는 전부 율법으로 달려가게 돼 있어요. 보이는 것으로 달려가게 돼 있어요. 그죠 그걸 유혹하잖아요. 마귀가 우리도 유혹해요. 유혹 당해요. 왜냐하면, 성령이 오시면 우리를 교회가 관계하죠. 교회로 끌고 와서 교회에서 이걸 가지고 우리를 시험해서 너희가 여기에 아직 속아있다는 걸 보여주고 이걸 깨뜨리게 만드는 게 성령이거든요. 그런데 마귀는 마귀를 통해 수용한다고 했으니까 육에 속하는 우리는 성욕으로 인도화물을 받아서 가지만 육적인 크리스턴들은 마귀에게 속아서 이육에 속한 것들을 여기로 가면 다 속아서 넘어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흔히 두께 채집도 하고 여기 전부 다 넘어가 버리는 거예요. 이해가세요. 그게 보이는 거잖아요. 제정욕이죠. 여기에 전부 다 넘어가는 거예요. 그렇지만 이것만 안 하면 되죠. 이것만 안 하면 너희는 영원히 네 밥이다. 영원히 네 밥이다. 십자가 많은 지적 십자가로 원수를 패했죠. 마귀를 패했잖아요. 그것만 지지 않으면 평생 너는 내 종이다. 니가 원하는 거 다 해줄게 다 해줄게 그렇죠. 그게 그래서 마귀가 여러분 해주는 거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일루미나티 이런 거 들어봤죠 거기에 넘어가는 거예요. 그런데 교회 다니면서 그걸 하니까 자기는 합법적으로 하는 것처럼 보이죠. 그게 속는 거 이해가세요. 이쪽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십자가밖에 없는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게 제일 우리의 고통스럽거든요. 예수님의 관계를 따라가야 여기에 생명과 평안인데 그래서 예수님도 너희는 나를 따라오라고 했는데 어떻게 네가 원하는 육체의 종류 안목의 종류 이 세계자랑 그게 자기잖아요. 그걸 부인하고 매일 그걸 때려 죽이고 나를 따라오라고 했는데 그것만은 싫거든. 교회 그걸 채우기 위해서 왔기 때문에 그것만은 못 내려놓거든. 그래서 마귀에게 넘어가는 거예요. 막이 그냥 넘어가는 거예요. 교회가 완전히 막이 밥이라니까요? 마귀 속을 아시겠어요. 그게 여러분 다 넘어 근데 그걸 못 이루면 저주받았다고 또 하네 얼마나 피곤하게 그러니까 일이 짐 저 집 다 눌려가지고 교회 다니면 침에 눌려서 눈도 머리도 못 들게 머리 들면 교만하다 하지 또 완전히 밟아 죽이나 봐요. 그게 아닌데 그게 아니에요. 그래서 성경도 얼마든지 읽으라는 거지 마귀 많이 읽을수록 좋잖아요. 마귀에게는 그렇죠. 그 말씀에 속아서 행하면 되니까. 행하면 복반되니까. 그렇게 할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얼마든지 읽으라는 거지 얼마든지 그 대신 십자가만 절대 안 된다. 이미 예술인께 다 졌기 때문에 상관없다고 그냥 넘어가 버려 빨리 빨리빨리 넘어가 버려 그렇죠. 그래서 그 십자가만 나오면 동해 십자가를 이미 치셨군요. 이러고 빨리 넘어가 버립니다. 나를 따라오거나 매일의 십자가를 치고 나를 따라오고 이거는 상관없는 줄 알아요. 이미 다 치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따놓은 당상이잖아요. 그러니까 괜찮아 괜찮아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거야. 합력해요. 선을 이루실 거야. 그러면서 막 넘어가는 거예요. 그래 안 되면은 저 이 저주를 안 끊어서 티가 제대로 아니니까 저주를 받아서 또 그렇다고 맞는 말 같애 왜냐하면, 말씀대로 안 하면은 저주를 받는다고 그랬거든요. 근데 말씀대로 할 사람이 있나요? 안 되는데 그걸 하라고 하네요. 이건 뭔가요 거짓말이죠. 그러니까 안돼요. 여러분 속지 마세요. 그래서 우리에게 남아 있는 이 육체에 속하는 저주의 속성들은 저주는 끊어질지어도 이 대상이 아니고 십자가에 죽어야 될 책 그래서 새롭게 창조되어야 될 새 창조의 대상이에요. 여러분 그걸 제발하세요. 그래서 육체에 속한 육체의 저자의 속성들이 쭉 있죠. 지난주에도 했지만, 이 쭉 있죠. 뭐 성질내고 뭐 불리하고 당직과 뭐 이 쭉 나오잖아요. 그렇죠. 육체의 속성을 현재 하니 그렇죠. 유개숙 한 사람은 어떻고 어떻고 그게 굴로스 3장 그다음에 갈라데스 5장에 나오는 내용이잖아요. 그거를 여러분 축사 대상도 아니고 그건 저주를 끊어질지 어떤 대상도 아니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그리스도 예수회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그래서 우리는 이미 예술인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나니 이게 이미 다 죽었어요. 여기서 근데 살아있죠. 근데 이 사람이 십자가로 처리하는 거죠. 그게 실제화라고 그랬죠 로마스 할 때 죽었는데 또 살아있고 죽었는데 또 살아있고 계속 나왔잖아요. 그게 시간이 아니고 이건 우리 상태라고 그랬죠 이미 이루어진 대로 이제 이루어 현실에서 이제 우리가 이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고는 육적인 걸 벗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 성령님이 오시면 예수님을 십자가로 우리 모습 똑같이 하고 온 예수님을 십자가로 끌고 가서 처리하셨듯이 우리도 성령이 오시오. 우리를 그래서 이 모든 저주의 속성에서 해방하는 거예요. 잊은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걸 하시기 위해서 보증으로 인을 치신 성령님이라고 그랬죠 성령이 오시면 자유를 우리에게 해방을 선포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성령을 구하는 거고, 성령이 우리에게 오시면 그렇게 우리를 인도해서 자유롭게 하시는 거예요. 실제 그게 우리가 실재화라고 했고 역창조라고 그랬죠 그 일이 우리에게 남아 있는 거지 저주는 끊어질지 아니 뭐 가난의 막이 떠나갈지라도 웃기는 소리 그만하시라고 그래요. 아니에요. 여러분 그게 아니에요. 내 정욕의 전부 내 탐심이고 거기 안에 마귀가 나오는 거예요. 그게 마귀가 왕 노릇하고 우리를 질질 끌고 다니는 게 죄와 사망의 법이라고 그랬죠 그래서 성경을 가지고 속이는 거예요. 이렇게 되라고 그렇지만 요것만 하지 말라는 거죠. 절대로 마귀의 슬로건은 십자가만 제발 치지 마라 슬로건 아래에 하나 더 쓴다면 뭘까요? 성경을 많이 읽어라 많이 읽고 지켜 행하라 율법을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여기 아래 쓰면 딱 맞겠죠. 틀린 말 같기도 하고 맞는 말 같기도 하고 그 율법을 지키게 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에요. 그래서 새언약을 주셨잖아요. 우리가 안 되니까. 성령이 너의 마음판에 새겨 지키게 하겠다고 이 상태야 이 상태 여러분 우리 마음의 말씀이 새겨지는 거예요. 성육신 하나 되는 거예요. 통과해서 되는 거죠. 여러분 그래서 이 법을 제대로 아셔야 돼요. 그래서 저주는 끊어질지어도가 아니고 자기 부인과 십자가로 새롭게 창조되어야 될 대상이에요. 우리 유교에 속한 것 이육적인 성품 이것이 대물림되죠. 그렇죠. 이것이 대물림 되는데 우린 그게 저주가 대물림 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가게에서 대물림 되는 거는 잘 보세요. 왜 그런가 하면은 그 가게의 성품하고 가게에 먹는 것들이 똑같죠 그러니까 먹은 대로 우리 안에 양식이 되잖아요. 그게 그냥 내려와 몸이 몸이 유전이 되는 거예요. 여러분 성격도 근데 이제 그거 여러분 쌍둥이 가지고 연구한 거 보셨어요. 한 사람은 쌍둥이는 똑같이 가야 될 거 아니에요. 유전이 되면 한 사람은 완전히 식물성만 먹이고 한 사람은 동물성만 먹이고 이렇게 하니까 완전히 둘이 겉에 가는 게 달라져 있는 거죠. 아니라는 걸 적나라하게 보여주죠 그러니까 음식이 유전이 되는 거예요. 사실은 먹은 것을 먹은 것대로 우리는 우리 몸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러니깐 기름기 많이 먹으면 혈관이 막히는 거 당연한 거 아니에요. 혈관 막힌 저주는 떠나갈지어다 웃어버리지 마귀가 잘한다. 잘한다. 계속하라고 잘한다.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분별을 잘 하시라고요. 아멘 그러니까 왜 뭐가 유전이 왜 우리 가게에 그런 게 흐르는지 전부 그런 거예요. 여러분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우리가 육적으로 조심해야죠 그게 몸을 하나님 우리 몸을 멋대로 굴리라고 하지 않잖아요. 그 성경이 그런 말들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절제할 거는 절제 이 성령의 열매 중에 절제 열매도 있죠. 절제 안 하고 많이 먹어보세요. 어떻게 되나 아니면 너무 절제해서 안 먹어보세요. 그런 게 되는 거라니까요? 그러니까 즉 그런 것들을 여러분 성경에 연결시켜서 저주하고 연결시키고 그러면 안 돼요. 그러니까 이해 가셔요 그래서 여러분 에레미나 31장에 보면 신포도 먹은 사람이 그 아들이 쉬다고 했죠. 맞아요. 예레미아사 sns를 먼저 보죠. 에레미아사 scls 18장 볼까요? scls 18장하고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scls 18장 구약성경 1175페이지 1절에서 4절 여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되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비가 신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시다고 함은 어찌니오. 나 주 여호에게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서 다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하리라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한 것 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으니 범죄화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 죄로 인해서 죽는 거지 아버지가 죄 짓다고 해서 아들도 죄가 아니라고 이게 뭔가 하면 여러분 이스라엘의 그 당시 유다 사람들이 하나님 심판에 대해서 막 항변했어요. 부당하다 막 불평했어요. 왜 우리가 조상들의 고통을 우리가 당해야 됩니까? 그러고 하니까 하나님이 하신 말이에요.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신포도를 먹었다고 해서 아들이 이가 어떻게 쓰냐 절대로 그런 속담은 다시는 서지 마라 이건 너의 완악함 내 말을 안 들어서 그런 거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예레미야 31장으로 가면 똑같이 또 나와요. 그게 그래서 여러분 신양이나 예수님이 어떻게 그걸 표현하는가? 하면 요한보고 그다음에 보면 소경이 등장하죠. 예수님이 그 옆에 있는 사람들이 이 누 죄로 인해서 이렇게 소갱이 됐냐고 날 때부터 소갱이 됐냐고 그러니까 예수님이 뭐라고 그랬어요. 날 때부터 소갱이 된 그게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을 내게 보여주기 위해서 그렇다고 그게 그러니까 죄로 인해서 된 게 아니라고 그러니까 저주의 대물림 그게 아니라고 예수님이 오심으로 저주는 다 끝났어요. 여러분 지금 이상하게 선포를 하고 기도를 이상하게 여쭤보던 단계에서 그게 아니에요.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거죠. 그 율법의 행위라고 하니까 다르게 생각하는데 이거예요. 율법을 하나님을 거래 대상으로 생각하고 내가 뭔가 잘해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전부 율법의 행위예요. 육신의 정욕이라고 그랬죠 몸의 사욕이라고 그랬죠 에피디미야 기억나요? 희생제사 그게 마귀가 율법을 가지고 나를 속여서 죄야 사망에 먹혀 죽어가게 하는 그거라고 일로 마치 7장 11절이 그 말씀이라고 그랬죠 우리가 말씀에 속는 게 그거라고 그랬잖아요. 그게 보이는 거잖아요. 그래서 지금도 우리 보이는 걸로 속이는 거예요. 말씀을 가지고 속이는 거예요. 그 안에 영적인 진리 생명을 보지 못하게 속이는 거예요. 그 생명을 그래서 성경을 보면 전부 예스 그리스타 십자가밖에 없거든요. 그리고 구약성경인 토라가 십자가의 뭐 밖에서 손을 보는 게 토라라고 그랬죠 그걸 가르치는 게 토라라고 그랬는데 그게 아니고 계속 거기에 어떻게 하면 복받고 어떻게 하면 저조하고 이런 것으로 가르치면 그게 진리가 아니라는 거죠. 이해 가세요. 그게 마귀가 거짓 선지적 거짓으로 속여서 우리 영혼을 도적질하는 게 그거죠. 그래서 여러분 저주는 예수님이 다 담당하셨어요.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속지 마십시오. 지킬 수 없는데 자꾸 지키라 하면 됩니까? 여러분 절대로 안 돼요. 그게 저주 아래 있게 하는 거잖아요. 하나라도 안 지키면 안 되는데 근데 내가 지킨 만큼 복 주세요. 이 말이잖아요. 지금 열심히 헌신한 만큼 복 받겠다. 이 말이잖아요. 그럼 열심히 죄지은 건 어떻게 해요. 그거는 예수님이 다 담당하셨으니까 잘못했습니다. 하면 하면 다 해결된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잖아요. 그런 법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우리가 열심히 한 것보다 죄지은 게 아마 셀 수 없이 더 많을 거예요. 도대체 답이 안 나올 거예요. 그런데 겉으로 멀쩡하다고 생각하죠. 그게 속는 거예요. 여러분 성품이나 인격이나 이런 건 끊어질지어다 아니에요. 십자가에 죽어야 할 대상이에요. 그렇게 해서 저주의 속성을 가진 이 육체가 십자가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이전 것은 지나가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되는 거죠. 그게 바로 첫 번째 이 아담이 불순종에서 쫓겨났던 에드인을 다시 연합함으로 모든 기쁨으로 충만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 십자가가 최고의 복인 거예요. 거기에 모든 회복의 본질이 거기 들어가 있다. 그래서 굳이 예수님이 오셔서 자신이 우리하고 모습 똑같은 모습을 하고 그 길을 보여주고 이 길밖에 없다고 우리는 그 길이 제일 힘들고 고통스러워 보이죠. 근데 예수님은 그 길이 제일 쉽고 가볍다고 그랬어요. 내치면 쉽고 가볍다고 그랬거든요. 왜냐하면, 우리는 혼자 진다고 생각하지만 같이 지거든요. 성경에 오셔서 이제 같이 지고 가거든요. 우리가 질려면 그건 율법이 되고 성경에 오셔서 나를 끌고 가서 지게 하면 그게 복음이에요. 착각하니까 자꾸 율법으로 흘러가는 거예요. 죽기가 싫거든요. 성질 내려놓기 싫죠 대들고 싶죠 그거 내려놓으라 하니까 그거 내려놓는 것보다 열심히 봉사는 좀 쉽잖아요. 하는 거예요. 그렇게 만들어버렸어요. 율법에서 교회에서 그렇게 만들어 버렸다니까요? 그렇게 해서 열심히 교회 너무 좋잖아요. 그리고 열심히 복 안 받으면 더 해라 하면 되고 완전히 걸려든 거예요. 속지 마세요. 맨 아래 칸으로 내려갈게요 이 읽고 마치겠습니다. 아담과 하하는 저주를 끊는다는 기도문을 주술처럼 되뇌어서 되는 게 아닙니다. 바로 이쪽 십자가로 달려가야 되는 겁니다. 우리 힘으로 달려갈 수가 없으니까 예수님도 그 안에 성령이 계셔서 그 일을 이루셨던 것처럼 이제 똑같이 자기 일을 하셨던 그 예수님의 영을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그 일을 하게 하신다는 거죠. 우리도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못하지만 주님이 우리 안에 오셔서 하기 때문에 그렇죠. 아담과 하은은 선악가 이외의 모든 실과를 다 먹을 수 있었던 최고의 풍요의 상태에서도 육신의 정욕을 이기지 못했죠. 그 에덴에는 부족함이 없었어요. 모든 걸 충만했어요. 그런데도 이 정욕은 안됐던 거예요. 놀랍죠 그래서 부자들이 욕심을 더 더 욕심을 그게 당연한 거예요. 여러분 왜냐하면, 그게 육에 속한 인간이기 때문에 그래요. 어려운 사람은 어려운 걸 알기 때문에 있는 건 내놓는데 부자들은 어려운 걸 몰라서 어려운 사람 보면 열심히 일하지 바로 율법이 나와버리죠 네가 그 모양이니까. 그렇게 살지 더 고생해 이렇게 그렇죠. 반성합시다. 그렇게 했죠. 그래서 에덴의 그 풍요 속에서도 육신의 종욕은 그대로 있었던 거예요. 못 이겼어 근데 두 번째 아담은 어떻게 40일을 금식하고 줄인 상태에서도 그 시험을 이겨냈습니다. 그게 차이에요. 그런데 똑같이 아담이죠. 그걸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사람으로 이긴 게 아니라 그 안에 계신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이셨기 때문에 그게 됐던 거예요. 아담 안에는 말씀이 그렇게 없었던 모양입니다. 자 그리고 승리를 우리에게 이제 넘겨주셨죠 그 승리가 우리에게 우리 것이 된 거예요. 그걸 믿는 게 의라고 그랬죠 그래서 우리가 외롭게 된 거예요. 그래서 믿음으로 어렵게 된다. 그렇게 해서 모든 인간들이 하나님의 저주로 몰아넣은 첫 번째 아담과 하와의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생의 자랑 그것이 해결된 거예요. 하면 예수님께서 그걸 극복하신 거죠. 그다음 중요합니다. 주님이 타락한 아담의 후손 중에서 마지막 후손으로 이 땅에 오셨죠 맞아요. 그래서 마지막 아담이라 하는 거예요. 마지막 그 아담 그러니까 예수님 이후에는 그 다음에 족보가 없죠 그건 끝난 거예요. 이제 그 저주의 아담은 끝난 거라고요. 마지막 아담으로 그 대는 끊어진 거예요. 이제 없어요. 저주의 대는 다 끊어졌다 그 이후로는 전부 성령으로 인해서 우리에게 생명으로 잉태되어 가죠 그래서 우리는 성령으로 난 사람들이 이제는 그 그리스도로부터 난 자들이에요. 십자가에서 우리를 낳았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받은 자들이지 아담의 후예가 아니에요. 여러분 이제는 아시겠어요. 그러나 다시 육체 아담으로 돌아가서 지켜서 못 박겠다는 그게 너희가 아직도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안 보이느냐 그 말이에요. 그게 안타깝죠 여러분 우리가 그렇게 살아왔어요. 그래서 더 이상 아담의 후손은 없어지고 그 후로는 이제 성령으로 잉태된 예수쿠이스도 그 후예들만 나타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은 마지막 아담이 되셔서 그 아담에게 떨어진 저주를 모두 안고 죽어버리신 거예요. 끝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더 이상 타락한 아담의 후예가 아니고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난사들이에요. 그래서 이런 것은 지나갔어요. 우리에게 임했던 모든 저주가 다 벗겨진 겁니다. 여러분 이제 저주 저주 이 밖에도 내지 마세요. 저주가 아니에요. 그건 내 성품이지 내가 저질러 놓은 거지 그렇죠. 내가 엎질러 놓은 물이지 저주가 아니라고요. 성형 인도하심을 받지 않고 내 의지로 해서 그런 거죠. 성형 인도하심을 받으면은 그런 일이 없어요. 물론 엎드려지게 하더라도 그것을 합력하여 손을 우리는 그 공식이 거기는 맞아요. 왜냐하면, 그렇게 하기 때문에 그걸 통해서 만들어가기 때문에 그게 맞는데 내가 하고 합리카의 선을 이룬다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 이해 가시죠. 그리고 마지막 줄 그래서 예수를 영접하고도 여전히 남아있는 이 죄와 사망의 몸 저주의 증상 이것들은 말씀과 성룡으로 새롭게 창조되어야 되는데 그것이 실재화죠 그것의 창조를 통한 아멘 그게 바로 1번 그림이에요. 여러분 그게 1번 그림 안에 여러분이 전부 다 녹아서 풀어져 있는 겁니다. 갈라제스 삼장으로 아래 갑니다. 아까 했던 거죠. 그리스도 그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것에 대해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숙려가 갔습니다.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으며, 기시록 22장 3절 마지막에 보십시오. 다시는 저주가 없으며 끝난 거예요. 여러분 근데 왜 계시록의 마지막에 다시는 저주가 없음 했을까요? 거기서 저주라고 표현한 건 뭔가 하면 육에 속한 것들을 말하는 거예요. 그 육에 속한 것들이 일곱 인을 통해서 다 제거되고 없어지죠 마귀도 다 없어지죠 그게 저주가 이제 모든 것이 끝난 거예요. 그래서 다시는 저주가 없다라는 표현이 거기서 등장하는 완성되는 거예요. 그게 십자가잖아요. 일곱인 전부 십자가라고 그랬죠 그걸 통과하고 다 깨뜨려져 없어진다고 그랬죠 그러니까 저주는 더 이상 없나니 그래서 남아있는 이 육적인 것들을 깨뜨려내는 걸 또한 저주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분리 자체가 저주이긴 하지만 그 저주를 분리된 자체를 깨뜨려내는 게 우리가 보기에는 저주처럼 보인다라는 거죠. 그래서 육적자를 죽이는 게 우린 저주라고 말하기도 해요. 하나님께서 저주를 내리신다 이렇게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헷갈리시면 절대 안 돼요. 이해가시죠. 그 화라고 하기도 하고 그게 재앙이에요. 재앙 우리 육적인 자아를 깨는 재앙이 그게 바로 이 십자가를 통해서 나타나는 거죠. 그게 여러분 다 십자가 안에 들어있는 내용들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우리 자신을 위해서 살게 되기 시작할 때 그때부터 우리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종욕 이상의 자랑들이 우리에게 충만해지는데 그것이 얼마나 인간을 우리 세상을 황폐하게 만드는지 보셨죠 지금 일어나는 일이 전부 그거예요. 서로 시기질투 전쟁 뭐 이런 깨뜨리고 죽이고 밟고 전부 분리된 인간을 통해서 일어난 거죠. 우리가 하나님이 만든 게 아니잖아요. 우리는 그게 하나님으로 저주다 물론 맞아요. 저주로 인해서 그 인간이 다 만들어낸 거예요. 그 자체가 젖은 거예요. 그러니까 인간이 그렇게 악한 거야. 여러분 그게 만들어낸 거지 하나님이 탓하나면 안 되죠. 맞습니까? 그래서 여러분 요한일성 2장 15절 17절 가면 육신의 종교 안목의 종교 이생의 자랑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쫓아온 거라고 했죠. 근데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는 영원히 서리라고 했죠. 그 두 개를 대조한 거예요. 육신의 종이 왕목의 종욕이 희생장을 따르는 자가 불순종하는 저주에 처한 그 자신의 본질이고 하나님을 따르는 자는 영영이 있으리라 그게 순종과 불순종의 반대 두 개를 대비해 놓은 게 그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순종할 수 없는 존재인데 성경에 오셔서 순종하게 하셔서 그 법을 성취하니까 그 법을 성취하면 복을 받죠. 그걸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다 그 말이죠. 이해가시죠. 그래야 복이라는 단어가 맞게 되겠죠. 지켜서는 절대로 복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는 자는 그래서 치명적인 질병에 걸리게 되어 있는데, 순종하지 않는 자는 치명적인 질병에 걸리게 되어 있는데, 그것이 뭔가 하면 바로 세 가지 육신의 정욕 안몽의 정욕 이 생애자랑 이게 세 가지 치명적인 질병이에요. 그게 저주로 인한 가장 큰 질병 근데 그걸 담당하셨고 이제 내 육체에 남아있는 건 내가 이 땅에 교회 살면서 말씀과 성령으로 내가 죽어져야 그리고 새롭게 되어야 할 대상이라는 거예요. 끊어내야 할 대상이 아니에요. 아시겠죠. 그걸 똑바로 아시고 이제 기도도 똑바로 하셔야 돼요. 아시겠죠. 축사도 똑바로 하셔야 되고 좋은 성격은 또 축사해야 됩니까? 그거 아니잖아요. 그렇죠.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성경을 오해하니까 우리가 기도도 잘못하게 되고 순종을 하는 것 같은데, 불순종하게 되고 열심을 내는 것 같은데, 사망으로 달려가게 되고 원망 불평이 쌓이게 되고 계속 속아 있으니까 더 해야 되나 보다 더 열심을 안 내서 그런가 보다 내가 아픈 게 저주를 받아서 그런가 보다 이렇게 그게 아니에요. 그게 아니고 그건 저주로 인해서 우리에게 남아있는 육체에 남아있는 을이에요. 아직도 성품 어떤 그런 결과물들이지 그건 이미 다 십자가에서 끊어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저주 저주 우리는 이미 복이에요. 이미 복이에요. 우리는 그걸 이제 그걸 실현해 가고 있는 거지 지금 교회 오셔서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이건 불순종의 문제로 시작된 것 맞습니다만 계속 그 말씀을 하시고 그게 순종 아니다. 저주다 이렇게 공식화해서 말하면 절대 안 되는 겁니다. 그게 아니에요. 그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성경과 이 말씀을 통해서 완전한 회복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그걸 보여주시는 거지 이해가세요. 성경을 오해하시면 안되는겁니다. 여러분 똑바로 하시고 이 땅에서 실제화를 통해서 하나님이 그 에덴의 모든 기쁨으로 충만해지셔야 합니다. 반드시 그렇게 되셔야 합니다. 여러분 성경을 똑바로 하시고 우리에게 임한 이 길을 우리는 갈 수밖에 없어요. 그것이 바로 생명의 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