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은혜에 깊이 잠겨라 (겔 47장 1-5)
성경본문|에스겔 47: 1~5
○ 성문 밑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
1.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 내리더라 겔41:2
2.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말미암아 꺾여 동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우편에서 스미어 나오더라
3.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일천척을 척량한 후에 나로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겔40:3, 슥2:1
4. 다시 일천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일천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5. 다시 일천척을 척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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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티의 「행복론」은 유난히 성령의 역할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는 ‘성령은 복종하는 자들에게 무엇을 주실 것인가?’를 묻고 3가지를 지적하였습니다.
첫째, 성령은 필설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생의 즐거움을 줍니다.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징표에서 해방시켜 줍니다. 그리고 지상 행복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결정하는 염려로부터 자유를 줍니다.
둘째, 성령은 우리들이 세상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일종의 열정과 생기를 줍니다.
셋째, 성령은 사람들에게 권위를 줍니다.
세상적인 특별한 지위가 없더라도 범하기 어려운 생기를 발하고, 아무도 쉽게 따르지 않는 사람도 즐겨 따르는 권위 있는 사람이 되게 합니다. 이처럼 성령님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십니다.
오늘 봉독한 에스겔 47장은 하나님의 성령의 은혜가 얼마나 귀한지 보여줍니다. 그리고 성령이 은혜가 시작하는 근원은 어디이며 또 어느 방향으로 발전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오늘은 본문을 중심으로 하여 「성령의 은혜에 깊이 잠기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증거 하겠습니다. 말씀을 경청하시는 가운데 성령의 은혜에 더욱 깊이 잠기시기 바랍니다.
A. 성령의 은혜의 강은 성전에서 시작합시다.
1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내리더라.” 아멘.
성령의 은혜의 샘물이 성전에서 시작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 성전이 은혜가 흘러내리는 근원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영광과 성령의 은혜가 있는 곳입니다. 출애굽기 40장 34절 이하를 보면 성전의 전신인 성막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광야에서 성막을 모시고 있을 때였습니다.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리고 낮에는 구름기둥이, 밤에는 불기둥이 성막에서 떠올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고 보호하였습니다. 성막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이사야 6장에는 이사야가 성전에서 하나님의 충만한 영광과 은혜를 체험한 사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웃시야왕이 죽던 해에 근심 중에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그는 거기서 주께서 보좌에 앉으신 것과 그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한데 천사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또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하는 연기가 성전에 가득한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성전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열심히 모이시기 바랍니다. 열심히 모일 때 은혜를 받습니다. 열심히 모여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이 충만한 은혜가 임합니다. 웨슬리목사님은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을 태만죄라고 하였습니다. 은혜 받는 일을 게을리 하는 것을 지적하였습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엿새 동안 일하고 영육 간에 지친 사람들이 주일에 안식하며 예배를 드림으로 새 힘을 얻습니다. 주일오후예배, 수요기도회, 새벽기도회도 열심히 모이십시오. 새벽에 일어나기 힘드신 분들은 저녁기도회에 나오십시오. 모이면 은혜를 받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성전에 나오십시오. 성전에서 성령의 은혜가 흘러내립니다.
B. 동으로 흐르는 성령의 은혜의 물줄기를 생각하십시오.
1절에 보면 성전의 전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문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2절도 동향한 바깥문에서 생수의 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여줍니다.
2절을 보십시오.
“그가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말미암아 꺾여 동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우편에서 스미어 나오더라.”
성령의 은혜에 강물이 동쪽으로 흐르고 있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동쪽은 태양이 어두움을 깨치고 솟아오르는 곳입니다. 은혜의 강물이 동쪽을 향하여 흐르면서 점점 깊어지는 것은 태양처럼 빛으로 오시는 하나님
을 향하여 나아갈수록 은혜의 강물은 깊어진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해바라기가 태양을 바라보며 자라듯이 성도는 주님을 바라보는 주바라기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나아갈 때, 더 깊은 은혜의 강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눈의 초점을 주님께 맞추십시오. 세상에 대하여는 눈을 감고 오직 주님을 향하여 눈을 뜨십시오. 우리의 눈을 유혹하는 세속의 속된 것을 포기하고 오직 거룩한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C. 성령의 은혜에 깊이 잠기십시오.
은혜의 물줄기는 동쪽으로 나아갈수록 점점 깊어졌습니다. 동쪽으로 나아가며 1천척을 척량하니 물이 발목에 이르렀습니다. 또 다시 1천척을 척량하며 앞으로 나아가니 물이 무릎에까지 올랐습니다. 또 1천척을 척량하며 나아가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1천척을 척량하며 나아가니 물이 건너지 못할 만큼 깊어져 헤엄을 쳐야할 물이 되었습니다.
물이 발목에 이르렀다는 것은 아주 얕은 은혜 속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 물에서는 마음대로 걷고 뛸 수 있습니다. 물이 있어도 별로 불편할 것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은혜가 깊지 못하면 성도라 할지라도 육체의 소욕을 따라, 본능을 따라 마음대로 행합니다. 이때는 영적 유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이 무릎까지 올랐다는 것은 은혜의 깊이로 조금 더 들어갔다는 말입니다. 그런 물에서는 마음대로 걷고 뛰려면 조금 불편합니다. 물이 거추장스럽습니다. 이것은 서서히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충돌하기 시작하는 단계를 뜻합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육체의 소욕이 강하여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행하는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영적으로는 초등학생 정도의 수준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물이 허리까지 깊어졌다는 것은 은혜의 깊이로 상당히 들어갔다는 말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서로 충돌하는데 막상막하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 단계에서 크게 갈등하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2-24).
그리고 물이 헤엄칠 정도가 되었다는 말은 은혜 속에 잠겼다는 것입니다. 즉 성령의 은혜가 충만한 상태를 뜻합니다. 여기서 인간이 소욕은 완전히 통제를 받습니다. 인간의 본능과 마귀의 유혹이 극복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었던 것을 성령님께서 능력으로 이루어 주십니다. 갈등의 단계를 넘어 화평과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바울은 이 단계를 체험하고 성령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로마서8:1-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의 은혜에 깊이 잠기시기 바랍니다.
성령 충만 하시면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는 능력을 주십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힘과 지혜와 기술을 자랑할 때는 성령님은 구경하시지만 성령님께 완전히 사로잡히면 성령님이 역사하십니다. 이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세상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D. 성령의 은혜가 충만한 곳에 회복과 풍요가 있습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회복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8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방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소성함을 얻을지라”고 하였습니다.
은혜의 물이 흐르는 곳에 물이 살아나고, 생물들이 살아나고 모든 것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성령님은 회복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찌무라 간조는 성령은 도덕적 강화력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성령은 하나님께서 주신 최대의 선물로서 용기와 정기를 주시며 도덕적 강화력을 주십니다. 성령은 도덕적 강화력으로 죽은 자아를 살리시고 내적 변화를 일으키십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님은 우리의 외면까지도 정숙하게 하십니다. 이탈리아의 신비사상가인 안젤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령이 어떤 사람의 영혼이 부어지면 성령님은 그 사람의 외면도 완전히 정숙하게 한다. 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거짓일 뿐이다.” 즉 성령은 우리를 내적으로, 외적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을 주십니다.
또한 성령의 은혜가 충만한 곳에 풍성한 열매가 있습니다.
12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음이라.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재료가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또 9절과 10절을 정리하면 강물이 흐르는 곳에 모든 생물이 살고 고기가 많아 어부들이 고기를 잡을 것인데 그 고기가 각기 종류에 따라 큰 바다의 고기같이 심히 많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곳에 충만함이 있다는 상징적인 언어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풍성한 은사가 나타납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로서 우리의 유익을 위해 주십니다.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지식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능력행하는 은사를 주십니다.
또 어떤 이들에게는 예언과 영분별의 능력과 방언과 방언을 통역하는 능력을 주십니다.
또한 성령이 임하시면 풍성한 열매가 있습니다.
성령은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성령은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투기와 술 취함과 이와 같은 모든 것들의 원인인 육체의 소욕을 제어하고 아름다운 삶의 열매를 얻게 하십니다.
출 처| 황광민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