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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 7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 약 3: 10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 도다.
약 3: 7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 )
본 절은 다음절의 내용을 유도하기 위한 대조적인 예이다.
본문은 야고보가 혀를 불의의 세계라고 말한 이유를 말한다.
혀를 불의의 세계라고 말한 것은 혀가 길들여지지 않고 남을 죽이는 독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여러 종류의 짐승들과 새들과 기는 것들과 해물들은 다 길들이면 길이 든다. 우리는 개나 소나 말이나, 또는 비둘기나 뱀이나 물개 등이 어떻게 길들여지는지 알고 있다.
1]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길들므로'(다마제타이)는 현재 시상이며 '길들었거니와'(데다마스타이)는 완료 시상이다. 야고보는 현재시상과 완료시상을 중복하여 사용함으로 인간이 여러 세대에 걸쳐 짐승과 새, 벌레, 해물등의 동물들을 지배하고 정복한 상태의 연속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다(Robertson, Tasker, Burdick, Mayor, Adamson, Moo).
* 창 9: 2-7 - 2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웠음이라. 3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찌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4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채 먹지 말 것이니라. 5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6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7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편만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 행 10: 11-13 - 11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12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 하거늘
* 행 11: 6 - 이것을 주목하여 보니 땅에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보이더라.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연을 다스리고 정복할 권한을 주셨다.
* 창 1: 28 -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 시 8: 6-8 - 6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아래 두셨으니 7 곧 모든 우양과 들짐승이며 8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 이다.
실제로 인간들은 동물들을 다스려 길들였고, 동물들은 인간에게 지배되고 복종하였다. '짐승'을 나타내는 '데리온'은 원래 신약성경에서 길들지 않은 동물들 즉 야생 동물에만 사용됐다.
야생 동물이 길들여지는 것은 사 11: 6-9처럼 메시야 시대의 상징으로 쓰인다(Adamson).
* 사 11: 6-9 - 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9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약 3: 8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
그러나 사람의 혀는 길들일 수 없고 길들여지지 않는다. 그것은 '다루기 힘든' 악이다.
혀는 또 죽이는 독이 가득하다. 사람의 혀는 심히 악하다.
1]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앞 절에서 언급한 바대로 인간은 모든 짐승을 다스리고 길들였다. 반면에 인간은 자신의 지체 중 하나에 불과한 혀를 스스로 제어할 수 없다.
야고보는 앞 절에서 인간이 다스린 동물과 본 절에서 인간이 다스릴 수 없는 혀를 대조시켜서 혀의 악함과 파괴력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비록 인간 자신의 능력으로는 혀를 제어할 수 없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인의 혀는 성령에 의해서 지배되며, 하나님의 긍휼과 도우심과 은혜로 말미암아 제어될 수 있다(Burdick, Moo, Mayor, Martin).
야고보는 본 절에서 제어되지 않은 혀의 두 가지 속성을 제시한다.
2]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쉬지 아니하는'(아카타스타톤)은 1: 8의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에서 '정함이 없는'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전통 사본에는 '다루기 힘든, 제어할 수 없는, 길들일 수 없는'이라는 뜻의 말(아카타스케토스)로 되어 있다. 이것은 '아카타스타톤'이 수식하는 악이 불안정함과 한 마음을 품지 않는 데서 기원함을 시사한다(Moo).
이러한 악은 마치 복종될 수 없는 흉악한 짐승과도 같은 것으로 결코 제어될 수 없음을 암시한다(Burdick, Tasker).
3]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죽이는'(다나테포루)는 '다나토스'(죽음)와 '페로'(가져오다)의 합성어로 '죽음을 가져오는'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Robertson). '죽이는 독이 가득 하다'는 구약성경의 교훈들을 반영하는 것이다.(Moo)
* 시 140: 3 - 뱀 같이 그 혀를 날카롭게 하니 그 입술 아래는 독사의 독이 있나이다(셀라)
* 잠 10: 8 -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명령을 받거니와 입이 미련한 자는 패망하리라.
* 잠 11: 9 - 사특한 자는 입으로 그 이웃을 망하게 하여도 의인은 그 지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느니라.
독사에게 물린 즉시 온 몸에 독이 퍼지고 급기야는 죽음을 초래하는 것처럼 혀는 이웃을 파괴시킬 뿐만 아니라 범죄케 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다.(Burdick, Robertson, Moo)
사람의 혀는 이렇게 심히 악하다. 그래서 바울은 죄악된 인생을 묘사하기를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라고 했다(롬 3: 13-14).
약 3: 9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
야고보는 혀의 양면성 즉 '찬송'과 '저주'를 대비시켜서 그 불합리성을 제시한다.
1]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주 아버지'(톤퀴리온 카이 파테라)는 '주와 아버지'가 아니라 '주이신 아버지'라는 의미로 '주'와 '아버지' 모두가 하나님께 적용되고 있다(Robertson).
'주 아버지'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고백으로(RV, Tasker) 혀의 가장 고귀한 기능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임을 시사한다(Martin, Moo).
2]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저주'는 구약성경에서 자주 나타나는 주제이다.
* 창 9: 25 -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 창 49: 7 - 그 노염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 잠 11: 26 - 곡식을 내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나 파는 자는 그 머리에 복이 임하리라.
* 잠 24: 24 - 무릇 악인더러 옳다 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요 국민에게 미움을 받으려니와
* 잠 26: 2 - 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의 떠도는 것과 제비의 날아가는 것 같이 이르지 아니 하느니라.
이러한 저주는 고대 세계에서 큰 힘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며, 상대방으로 하여금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지고 영원한 심판을 겪게 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구약성경에 비해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저주하는 것을 금했다.
* 롬 12: 14 -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저주를 금하고 오히려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라 하셨다.
* 눅 6: 28 -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형상'(호모이오신)은 '닮게 만들다'는 뜻을 가진 '호모이오오'로부터 온 것으로 '하나님의 외관대로 지으심을 받은 것'을 의미한다(made after the likeness of God, RV).
'지음을 받은'(게고노타스)는 완료시제이다. 이 두 가지 즉 '호모이오신'과 '게고노타스'는 인간이 범죄로 타락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자신의 거룩함을 보여주는 흔적을 여전히 가지고 있음을 암시한다(Tasker, Burdick).
이에 야고보 사도는 사람이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또 사람을 저주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높이고 저주하는 것과 마찬 가지임을 강조하여 그 불합리성을 나타낸다(Burdick). 그 이유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혀의 악함은 성도에게서도 종종 보인다. 그것은 이중적인 모순된 언어생활에서 나타난다. 성도는 자신의 혀로 '하나님 아버지'를 찬송한다.
전통 사본에는 '주 아버지' 대신에 '하나님 아버지'(톤 데온 카이 파테라)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또한 성도는 그 동일한 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한다.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 것이다. 이것은 이중적이고 모순된다. 이것은 성도에게 합당치 않은 일이다.
약 3: 10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 도다. -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 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 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
혀의 악함은 성도들에게서도 종종 보인다. 그것은 그들의 이중적인 언어생활에서 나타난다. 성도들은 자신의 혀로 거룩하고 선하고 아름다운 말로 '하나님 아버지'를 찬송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 동일한 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다른 사람을 저주한다. 한 입으로 찬송도 하고 저주도 하는 것이다.
한 입으로 찬송도 하고 저주도 하는 것은 이중적이고 모순되다. 이것은 성도에게 합당치 않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교훈하기를,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라.'고 하였다(엡 4: 29, 31).
1]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 도다.
야고보는 한 입에서 찬양과 저주가 나오는 이중성을 드러내며 경고한다(Mayor). 이와 같이 입에서 나오는 말의 이중성으로 인해서 생기는 모든 양태는 죄악이며 사람들이 가장 범하기 쉬운 범죄이다.
이러한 말의 폐해(弊害)에 대해 예수께서도 엄중히 경고하셨다.
* 마 15: 11, 18-20 - 11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18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2]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마땅치 아니하니라.'(우 크레)는 선악간의 차이를 분별하는 기준이라기보다는 이중적인 면 즉 찬송과 저주의 공존으로 인해 생겨나는 불안정함을 시사한다(Tasker).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지배와 인도하심을 따라 우리의 입을 일관성 있게 하나님만을 찬양하고 사람에게 사랑과 친절을 베푸는 것에 효과적으로 사용하여야 한다(Burd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