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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4: 9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 골 4: 11 유스도라 하는 예수
골 4: 9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그들이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 (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저희가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
바울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두기고와 함께 오네시모를 골로새 교회에 보낸다.
1]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본 절의 '오네시모'에 대해서 혹자는 빌레몬서에 나오는 도망간 노예와 동일 인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Calvin). 그러나 본 절의 '오네시모'와 동일 인물이다(Lohse, Schweitzer, Lighrfot).
왜냐하면 바울이 본 절에서 '오네시모'를 골로새에서 온 자라고 밝힘으로써, 골로새에 거주하고 있는 빌레몬의 도망간 노예임을 나타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로 소개하고 있다. 이것은 골로새 성도들이 오네시모를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추천장이 되었다(Bruce, P' Brien).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 그는 빌레몬의 종으로 있다가 로마로 도피해 있던 중 바울을 만나 복음을 받고 주님께 돌아온 자이다.
빌레몬서를 보면, 바울이 오네시모를 가리켜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몬 1: 10)라고 하였으니, 그를 귀중히 여기는 바울의 애정은 말할 것도 없다.
오네시모(*)는 헬라어의 뜻으로는 '유익한'이란 의미이다. 바울이 이 형제를 사랑하여 빌레몬에게 부탁하면서 그 이름의 뜻을 음미해 말하기를, '저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몬 1: 11)라고 하였다.
2]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곧, 골로새 사람이란 말이다.
3] 저희가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저희는 위의 두 사람, 두기고와 오네시모를 가리킨다.
두기고와 오네시모가 바울의 형편을 소상하게 알려주어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의 궁금증을 풀어줄 것을 말한다.
골 4: 10 나와 함께 갇힌 -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 (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
1]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
아리스다고는 데살로니가 출신으로 에베소에서 소요가 일어났을 때 바울과 함께 투옥되었다.
* 행 19: 29 - 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지라.
바울과 더불어 예루살렘 회의에 참석하였고
* 행 20: 4 -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가이사랴에서 로마로 항해할 때 바울, 누가와 함께 동행 하였다.
* 행 27: 2 -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항해할 새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
이것을 보면, 그가 바울이 받는 환난에 동참한 때가 종종 있었다. 평시의 동사(同事)도 막역(莫逆)의 친분을 의미하지만, 난시(亂視)의 동고(同苦)는 더욱 그러한 것이다.
바울은 이런 아리스다고에 대해 '나와 함께 갇힌 자'라고 소개한다. 이 호칭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1) 은유적이고 영적인 의미이다(Carson, Lenski).
이것은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힌 자로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 자임을 시사한다.
(2) 신체적이고 실제적인 것으로 아리스다고가 바울과 함께 투옥되었음을 의미한다(O' Brien, Lohse).
이 견해는 세부적으로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이리스다고가 자발적으로 바울과 함께 갇혔다는 것이다(Ramsay, Bruce).
둘째는, 아리스다고가 바울을 돕는 자로서 순번제로 투옥되었다는 것이다(Abbott).
이런 영적인 것과 신체적인 투옥 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갖는다(Vaughan).
2]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마가는 마가 복음서를 기록한 요한 마가이다.
* 행 12: 12, 25 - 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25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하는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
생질이라는 말은 남동생의 아들, 혹은 여동생의 아들을 가리키는데, 마가의 어머니는 바나바의 친 자매였다.
마가는 경건한 모친 슬하에서 생장하였고
* 행 12: 12 -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바나바와 바울의 제 1차 선교 여행에 시중들다가, 마가는 바울의 1차 전도 여행 도중에 바울 일행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 행 13: 5 -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 행 13; 13 -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그래서 바울은 2차 전도 여행 때에 마가를 데리고 떠나자는 바나바의 제안을 거절하였고, 그것으로 인해 바나바와 결별하게 되었다.
* 행 15: 36-41 - 36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37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40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41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후년에 베드로의 조사로 근무하기도 하거나, 또한 바울의 조사로도 근무하였다.
* 벧전 5: 13 - 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 딤후 4: 11 -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바울은 후기 서신에서 마가를 '동역자'로 부르고 있는데(딤후 4: 11) 아마도 마가가 바나바의 세심한 지도하에 변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O' Brien, Bruce).
* 몬 1: 24 -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3]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너희가 명을 받았느매'에서 누가 무슨 명을 보냈는가에 대해서 혹자는 바울이 두기고를 통해서 마가에 관한 명을 보냈다고 주장하거나(Lenski), 혹자는 단순히 바울이 마가를 영접하라고 한 것이 명령의 내용이라고 주장한다(Lightfoot, Bruce).
그러나 그 명령이 바울에게서 인지 아니면 '바나바'에게서 인지 확인할 수 없으며, 그 내용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다(O' Brien).
골 4: 11 유스도라 하는 예수 -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들은 할례파이나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저희는 할례 당이라. 이들만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
1]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유스도라 하는 예수'에 대해서는 본 절에서 언급되고 있는 바와 같이 바울과 함께 있었던 유대인 그리스도인이었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다.
'예수'라는 이름은 유대명인 '여호수아' 혹은 '예수아'의 헬라명으로 주후 2세기까지 유대인들 사이에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이름이었다.
2세기 이후에 나타나지 않은 이유는 유대인 회당과 그리스도인 사이에 생긴 배타적 감정 때문에 유대인들이 '예수'라는 이름을 기피한 까닭이다(O' Brien, Foerster).
'유스도'는 '정의'를 뜻하는 라틴어 명이다(Bruce).
'유스도'는 로마 이름으로서 '의인'(義人)을 의미하는바, 이 이름을 가진 다른 사람들이 성경에 두 번 더 나타난다.
* 행 1: 23 - 그들이 두 사람을 내세우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 행 18: 7 -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유스도 예수'는 히브리 이름 '예수'에다가 '유스도'라는 로마 이름을 덧붙인 것이다.
2] 그들은 할례파이나
그들은 앞서 언급된 아리스다고, 마가, 유스도라는 예수를 가리킨다.
바울은 이들이 유대인이라고 밝힌다.
혹자는 셋 중에서 '아리스다고'는 데살로니가 출신이며 이방 교회의 대표자로 예루살렘에 파견된 것으로 보아 유대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Lenski, A S.Peake). 그러나 유대인이 이방 교회의 교인이나 대표자가 되는 데에 문제될 것은 없다(Bruce).
3]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하나님 나라'는 두 가지 차원에서 이해된다.
(1) 다가오는 미래에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질 유업이다.
* 고전 6: 9-10 - 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10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 갈 5: 21 -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 살전 2: 12 -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
(2) 현재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하는 것으로(1: 13) 그리스도께서 오신 이후의 구원 시대를 가리킨다.
* 롬 14: 17 -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함께 역사하는 자들'에 해당하는 헬라어 '쉬네르고이'(*)는 교회를 위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사역하는 바울의 동역자를 가리킨다.
* 롬 16: 21 - 나의 동역자 디모데와 나의 친척 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 고전 3: 9 -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 고후 1: 24 -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
* 빌 2: 25 -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 살전 3: 2 -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건하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그들은 바울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는 자들이었다.
할례를 자랑하는 유대인 중 대다수는 반기독자(反基督者)들이다, 그들 중에 약간의 신자들이 있어도 그들은 유대주의에 강하기 때문에 이방에 복음을 전하기를 등한히 하였다.
로마의 큰 도성에 유대인들이 많았으나, 복음을 위하여 옥고(獄苦)를 당하는 바울을 동정하는 자가 별로 없었고, 오직 위의 세 사람만이 바울을 도와 함께 역사한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는 복음을 반대하고 또 몰이해(沒理解)하는 유대인들 중에서도 위의 세 사람과 같은 동역자들이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희귀한 일이었다.
이렇게 희귀한 일은 바울에게 특별한 위로를 주었다. 그것이야말로 사막에서 진주를 줍는 것 같은 기쁨이었을 것이다.
바울이 유대인인 동역자들로부터 '위로'를 받는다고 한 것을 볼 때 바울은 동족인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영접치 않은 점을 염두에 둔 듯하다(Hendriks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