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실의 상권 제 3편(3-4)
* 3-3 중국 선비가 말한다:
대저 영혼이 살면서 끝없는 복락을 누린다. 사람들이 바라는 것 중에 이것보다 더 큰 것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저로서는) 그런 이치를 아직 깊게 알고 있지 못합니다.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사람은 혼魂과 백魄이 있습니다. 이 둘이 온전하면 살아 있는 것입니다. 죽으면 ‘백’은 흩어지고 변화하여 흙으로 돌아가고 ‘혼’은 늘 있으면서 없어지지 않습니다. 제가 중국에 들어와서 일찍이 (사람의) 혼이 소멸하여 동물과 같아 질 수 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밖에 (중국과 다른) 세상의 유명한 가르침들과 유명한 나라들은 모두가 사람의 영혼은 불멸하여 동물과는 크게 다름을 성찰省察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제 그 이치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선비께서는 마음에 비우고 들어 주십시오.
저들, 이 세상의 혼에는 세 가지의 품격이 있습니다.
하품下品의 이름은 생혼生魂이니 곧 초목의 혼이 그러합니다. 이 혼은 초목을 도와 낫고 자라게 하며 초목이 말라비틀어지면 혼魂도 소멸합니다.
중품中品의 이름은 각혼覺魂이니 곧 동물의 혼입니다. 이는 동물에 붙어 있어서 성장과 발육을 돕고, 또한 동물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게 하고 입으로 맛보고 코로 냄새 맡게 하며, 사지四持와 몸체로 사물의 실정을 지각知覺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치를 추진할 수는 없습니다. 동물이 죽음에 이르게 되면 (각) 혼魂 역시 소멸합니다.
상품上品의 이름은 영혼靈魂이니 곧 사람의 혼魂입니다. 이는 생혼生魂과 각혼覺魂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 몸의 성장과 발육을 돕고 사람으로 하여금 사물의 실상을 지각知覺하게 하며,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사물들을 추론하게 하여 이치와 의리를 명백하게 분석할 수 있게 합니다. 사람의 몸이 비록 죽는다 하더라도 영혼靈魂은 죽지 않습니다. 대개 영원히 존재하여 소멸하지 않습니다.
무릇 지각知覺하는 일은 몸(육신肉身)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몸의 형체(육체肉體)가 죽어서 흩어지면, 각혼이 작동할 장소도 없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초목이나 금수의 혼은 몸에 의존함이 본래의 실정이니, 몸이 죽고 나면 이들의 실정이나 혼도 함께 없어집니다.
추론하고 분명하게 따지는 일과 같은 것은 반드시 몸에 의거하지 않으니, 그 영혼(즉 추리력, the ability of inference)은 독자적으로 존재합니다.
몸이 비록 죽고 형체(육체肉體)가 비록 흩어진다 하더라도, 그 영혼은 그대로 다시 작동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식물이나 동물과는 같지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식물이나 동물과는 같지 아니합니다.
(* 마태오 리치는 성性은 리理이므로 흩어지지 아니하여 혼魂에 해당되고, 정情은 기氣이니 흩어지는 혼魂과 통한다고 생각한 듯하다. 그러므로 사람의 영혼靈魂은 흩어지지 아니하는 것이며, 초목의 생혼生魂이나 금수禽獸의 생혼生魂과 각혼覺魂은 모두 –백魄처럼-결국 흩어지는 것으로 보았다.)
*3-4: 중국 선비가 말한다:
(혼이) ‘몸에 의지하고 있는가, 아닌가?“는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기르고 발육시키는 것은 몸이 할 일입니다. 몸이 없다면 기르고 발육시킬 것이 없습니다.
보는 것은 눈이 주관합니다. 듣기는 귀가 주관합니다. 냄새 맡는 것은 코가 주관합니다. 맛보는 것은 입이 주관합니다. 사물들의 실태를 지각하려면 몸통으로 알게 됩니다.
그러나 색깔이 눈앞에 있지 아니하면 (눈은) 색깔을 볼 수 없습니다. 소리가 귀에 가까이 있지 않으면 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냄새가 코에 가까워야 분별해 낼 수가 있습니다. 멀면 분별되지 아니합니다. 맛에 짜고 시고 달고 쓰면 입에 들어오면 알게 되고 들어오지 아니하면 모릅니다. 차가움과 뜨거운 딱딱함과 부드러움이 몸에 닿아야 비로소 우리들은 그것들을 느낍니다. 멀리 두게 되면 느끼지 못합니다. 하물며 소리가 귀마다 똑같이 들린다 해도 귀머거리는 듣지 못하며, 색깔이 눈마다 똑같이 보인다 해도 장님은 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각혼은 몸(신체身體)에 의지하고 있으며, 몸이 죽으면 따라서 없어진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혼의 고요한 작용(본용本用)은 몸에 의지해 있지 않습니다. 대개 몸에 의지해 있으면 몸에 지배를 받아서 그 (몸이 저지른 행위가) ’옳은지 그른지‘(시비是非)를 알릴 수 없습니다.
예컨대 새나 짐승들은 먹을 수 있는 물건을 보게 되면 바로 먹고자 하며, 스스로 그만둘 수 없으니 어찌 다시 그것에 옳고 그름을 밝힐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사람은 배고플 때라도 마냥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 도의道義라면 뜻을 세워서 먹지 않습니다. 비록 맛있는 음식이 앞에 차려져 있다 하더라도 먹는 것을 하찮게 봅니다. 또한 비록 사람의 몸이 (집)밖에 나가서 놀고 있는 ( 경우)라도 그 마음의 한구석은 오히려 집안을 생각하고 늘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치를 밝게 추리하는(명리明理) 혼魂이 (어찌) 몸에 의지하여 작용하는 것이겠습니까?
선비께서 사람의 영혼이 불멸하는 이유를 알고자 하신다면 모름지기 세상 사물의 본성을 알아야 합니다. 무릇 소멸당하는 것은 반드시 그것을 소멸消滅시키는 것이 있습니다. 소멸의 원인은 서로 어긋난 모순 때문에 일어납니다. 사물이 서로 모순됨이 없으면, 서로 결코 서로 소멸될 수 없습니다. 해와 달과 별들은 하늘에 벌려져 있는데, 어느 곳에 매달려 있기에 끝내 소멸됨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서로 모순됨이 없는 까닭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물은 불, 공기, 물, 흙이라는 내 원소(사행四行)가 서로 결합하여 생성되지 아니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불의 성질은 뜨겁고 마르게 하는 것이니 물과는 배치됩니다. 물의 성질은 차고 습합니다. 공기의 성질은 습하고 뜨거워서 흙과는 배치됩니다. 흙의 성질은 마르고 차갑습니다. (물과 불 공기와 흙은) 둘이 서로 대치되고 맞서게 되면 자연이 필연적으로 서로를 해치게 됩니다.
(사행四行이) 일단 한 사물 속에 함께 결합되어 있으면, 그 사물이 어찌 오랫동안 평화로울 수 있겠습니까? 그 사이에 때때로 서로 다투고 싸우는 것을 면하지 못하며, 단지 한쪽으로 승勝하게 되면, 그 사물은 필연적으로 부서져서 없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네 원소를 가진 사물은 소멸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무릇 영혼靈魂은 (물질mattet이 아닌) ’정신spirit’이어서 (이 물질적인) 네 원소들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영혼은 어느 (원소를) 좇아서 모순이 생겨나 소멸되겠습니까?
입력:최 마리 에스텔 수녀;20260512;pm 21:26
첫댓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