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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의 도식: 1단계(회심/중생: 물세례를 받고 구원받음) ➔ 2단계(성령 세례: 방언 등의 표적과 함께 능력을 받음)
이러한 신학은 교회 안에 치명적인 '영적 엘리트주의'를 낳습니다. 교회 안에 '평범한 신자(구원만 받은 자)'와 '탁월한 신자(성령 세례까지 받은 자)'라는 두 계급이 존재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패커가 날카롭게 지적하듯, 신약 성경은 결코 성령이 없는 '반쪽짜리 기독교인'을 알지 못합니다. 바울은 단호하게 선포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3. 성령 세례의 성경적 정의: '그리스도의 몸으로의 연합'
그렇다면 바울 사도가 정의하는 성령 세례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입니까? 고린도전서 12장 13절은 성령 세례의 본질을 규명하는 가장 결정적이고 절대적인 본문입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All)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All)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고린도전서 12:13)
존 스토트는 이 한 구절로 오순절주의의 주장을 완벽하게 논박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영적으로 미성숙하고 육신에 속한 자들이 많았습니다(고전 3:1).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들 중 '영적으로 탁월한 소수'만 성령 세례를 받았다고 말하지 않고, "우리 다(All)"가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선언합니다.
따라서 성경이 말하는 성령 세례란, 회심 이후에 소수만이 도달하는 영적 고지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거듭나는 그 최초의 순간(Initial Act)에, 성령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보편 교회)의 지체로 영광스럽게 편입시키시고 연합(Union)하게 하시는 단회적이고 객관적인 입문 사건(Initiatory Event)'입니다.
4. 사도행전의 역사적 특수성과 구속사적 전환
오순절 신학의 또 다른 오류는 사도행전에 기록된 사건들(오순절, 사마리아, 고넬료, 에베소 사건)을 오늘날 모든 신자가 개별적으로 밟아야 할 '규범적 패턴'으로 삼는 데 있습니다.
싱클레어 퍼거슨은 『성령』에서 사도행전을 '구속사의 과도기적 기록'으로 탁월하게 조명합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 강림의 지연이나 독특한 현상들(예: 사마리아인들이 믿은 후 베드로가 안수할 때 성령이 임한 사건)은,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사마리아인으로, 그리고 이방인으로 확장되는 구속사적 분기점마다 보편 교회가 하나 됨을 확증하기 위한 '역사적이고 단회적인 표적'이었습니다.
이를 개개인의 구원 순서로 일반화하여 "믿은 후에 성령 세례를 따로 구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은 역사적 서술(Descriptive)과 교리적 명령(Prescriptive)을 혼동한 치명적인 주해 오류입니다.
5. 제21강 결론: 구하지 말아야 할 것과 반드시 구해야 할 것
목사님, 제21강의 결론은 성도들의 영적 정체성을 뒤흔드는 엄청난 복음적 해방의 선언입니다.
존 스토트의 결론은 명확합니다. "성경 어디에도 성도들을 향해 '성령 세례를 받으라'고 명령하는 구절은 단 한 곳도 없다."
명령이 없는 이유는, 진정으로 거듭난 신자라면 이미 예외 없이 성령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완벽하게 연합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성취된 십자가 사건을 다시 구하지 않듯,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편입된 이 영광스러운 '성령 세례'의 객관적 사실을 다시 구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성령 세례의 영광스러운 기적을 믿고 찬양하는 것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엎드려 통곡하며 끊임없이 구하고 갈망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미 단회적으로 이루어진 '성령 세례'가 아니라, 매일매일 우리의 심령을 가득 채워 다스리시는 '성령 충만(Fullness of the Spirit)'입니다.
(제22강 예고: 드디어 성도들의 실천적 삶과 강단의 불을 지피는 '성령 충만의 본질 -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성령의 통치'로 뜨겁게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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