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는 자랑거리가 많다
대표적으로 동춘당을 빼놓을 수 없다
동춘당 송준길을 1606년에 태어나 지금의 대덕구 송촌에서 살았다.
사계 김장생선생으로 부터 공부하였으며
조선 중후기를 아우렀던 대표적인 성리학자이자 우암송준길과 함께 노손의 거두이었다.
아버지 송의창의 장남으로 태어나
어려서 부터 학문에 밝고 품성이 좋아 일찌기 큰 인물로 주목을 받았다.
영남학파의 거두인 우복 정경세가 사위를 구하려고
기호학파 김장생선생의 집을 찾았는데
글방에서 3명이 글을 읽고 있었다.
정경세선생이 글을 읽는 방을 슬그머니 들어다 보니
초려 이우태선생을 쫒아나와 인사를 하였으며
우암 송시열은 벌떡 누워 있는 자세로 아랑곳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송준길을 책을 보다 눈맞춤을 한 후 책을 계속읽었다고 한다
우복은 사계에게 셋중 동춘당을 지명하며 사위감으로 정했다는
후문이다 .
잠시 엿보는 모습을 보며 사람의 성품을 읽었던 일화처럼
훗날 이들은 각자의 길을 걸어가며 조선을 쥐락펴락했다.
영남학파(퇴계이황)와 기호학파(율곡이이)는 성리학의 쌍벽을 이루었으나
사돈을 맺을 만큼 집안의 일가를 이루는데는 학파를 초월했다는 설이다.
당파적 차원을 넘어 동춘당과 우암은 대전의 인물이자 자랑거리다
대전의 탄방동으로 숯뱅이골이다. 숯을 불태워 철을 만들었던 흔적이 있는 고장이다
공주시 명학소라고 불리웠던 탄방동은 학이 소리내는 고을이라는 의미로
고려 명종때 망이와 망소이 형제 최조 민란을 일으킨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고장으로
사실상 동학혁명보다 5백여년이 앞섰고 4.19. 5.18보다
세금포탈과 민초의 고름을 짜먹는 현감과 관리들에 항거한 민란이다.
셋째 미륵원이다
금강변 지금의 추동지역에 자리한 미륵원은 영남과 호남지역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손들에게 무료로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했던 곳으로
최초의 사회복지의 실천현장이다.
회덕황씨가 가문에서 고려말부터 100여년이 넘도록 4대에 걸쳐 선행하였던 자랑스런
명문가 회덕황씨의 이웃복지의 산실로 경주의 최부자집, 호남의 운조루가 있다며
대전에 미륵원을 빼놓을 수 없다.
유성(儒선비유 城제성)은 온천의 고장이 아니라
선비가 많이 살았던 고장이었는가보다
유성 교촌동으로 학교가 많았던 고장으로 진잠향교가 이를 대변한다
교촌동은 대전교도소가 있어 죄인들의 진정한 교화사업을 펴고 있는데 이만한 교육이 어디있겠는가
이 뿐인가
지명에서 보듯
유성구내에는 전국 최고의 인재의 요람
카이스트가 있으며 국립 충남대학교 한밭대학교 외에 목원대학교, 대덕대학교, 정보통신대학원대학교, 육군대학교 간호대학교 교가 있으며 한남대, 배재대, 분교가 테크노벨리에 입지하는 등 명실상부한 교육의 고장이다.
대덕연구단지는 석박사 4만여명이 연구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 큰 교육의 요람이 있는가
전국 유일한 송준길 집 뒤터에 위치한
송씨가묘이다
동촌당 송준길의 어린 시절의 글귀이다
김호연재의 시 194수중
대표적인 몇편을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