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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감각 : 맡아라! 그리스도의 향기를!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고린도후서 2장 15절)
17
저는 젊은 기독교인으로써 앉아서 많은 제단의 부름과 “자신을 바치라”는 설교를 들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설교자는 우리에게 빛과 소금이 되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 더 많은 일을 하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성경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다른 사람들과 그리스도를 더 많이 나누고, 교회를 더 많이 섬기라고 격려했습니다.
더. 더. 더.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성경을 일고, 그리스도를 나누는 것은 모두 좋은 것들입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하나님과 충분히 가깝지 않기 때문에 느끼는 거리감에 대해서 “동기 부여가 되는” 대화에서 멀어지고 있다고 기억합니다. 친밀감은 언제나 다음 순번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함축적인 의미는 친밀감은 행위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반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구원에서)와 우리 관계의 첫 째 날에 기독교에게 좋은 소식은, 우리는 그분과 굉장히 가깝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리스도를 더 많이 알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처음 믿게 된 그 날에 일으켜져서 그분 우편에 앉혀졌고(엡 2:6) 그분과 합하는 한 영이 되었습니다(고전 6:17). 우리는 이미 예수님과 함께 있기 때문에 더 가까이 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의 연합을 인정하면, 우리가 삶에서 취한 모든 행동에 대한 우리의 동기는 변화됩니다. 우리는 가깝게 되기 위해서 더 이상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이미 누리고 있던 친밀감에서 벗어나서 행동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향기로운 향기를 맡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론 도출
이 급진적이고 영적인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일상적인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줍니까?
첫 째,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기본 지식이 그분을 더 성숙하게 이해함으로써 대체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천국으로 장거리 전화를 걸어서 그분께 도움을 요청 드리기까지 기다리고 계시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하늘에서 내려와 우리 바로 옆에 서서 우리의 어려움을 통해서 우리를 돕지도 않으십니다. 그것은 그보다 훨씬 더 낫습니다: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여러분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해서는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다른 분, 곧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그분에게 속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함입니다(롬 7:4).
그러나 주님과 합하는 사람은 그와 한 영이 됩니다(고전 6:17)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고후 13:5).
그리스도는 우리와 멀리 떨어져계신 분이 아닙니다. 대신에, 그분께서는 그분과 함께 우리를 일으키사 천국에서 그분 곁에 앉히셨습니다. 우리는 동시에 두 장소에 있습니다. 육체적으로는 지구 상에 있고, 영적으로는 천국에 주님 옆에 앉아있습니다(엡 2:6).
둘 째, 우리는 예수님을 얻기 위해서 더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것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삶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더 많이 얻기 위해서 최선을 다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소유하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깨워만 준다면, 더 이상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께서 가지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경건한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부르셔서 당신의 영광과 능력을 누리게 하신 그분을 알게 해주셨습니다(벧후 1:3)
우리 안에 있는 이 그리스도의 삶에 대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위대한 발견은, 우리는 삶의 모든 부분에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특성을 이제 우리가 소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 받는 것이 바로 그 예시입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을 더 사랑할 필요가 있거나, 하나님이 성령을 통하여 우리 마음에 부어주신 하나님의 사랑(롬 5:5)을 여러분이 깨달았다고 믿으십니까? 한 가지 신앙 체계는 더 많은 사랑을 얻고 더 많이 사랑하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신앙 체계는 하나님이 본질적으로 여러분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도록 이미 재창조하셨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되었습니까? 본질적으로. 이것의 의미는 하나님이 우리를 더 사랑해주실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대신에, 우리는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었고 사랑이신 하나님에 대하여 살았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에 대하여 산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에 의해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그리스도의 인격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의 연합은 우리와 그분이 우리의 가장 깊은 내면의 필요를 충족 시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현실을 직시하십시오: 이 땅에서 우리의 필요를 진실로 충족시킬 수 있는 영혼은 없습니다. 오직 한 분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에서 우리의 필요를 채우려고 할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실망하게 됩니다. 그것은 창조주가 아닌 창조물에서 찾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결코 우리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배우자를 찾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 역시 실망감만 안겨줄 뿐입니다. 우리의 배우자는 창조물이지, 창조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영혼을 비추는 거울의 각도를 우리 주위 사람들에게 맞추게 될 때, 우리는 분명히 우리의 필요를 충족시키는데 좌절감을 경험할 것입니다. 문제는 거울의 각도입니다. 우리는 우리 영혼의 거울의 각도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앉아있는 천국에 맞추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자신으로부터 필요로 하는 생명을 받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고대의 플랜 비(Plan B)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수 년, 수 개월이 흘러도 아이가 생기지 않자,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는 걱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점점 나이가 들어갔고 언제, 그리고 어떻게 하나님이 그분의 약속을 지키실지 걱정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아들을 주시겠다고 한 약속을 스스로 지켜보라고 제안했습니다. 그녀의 제안은 그녀의 몸종인 하갈과 그의 남편인 아브라함이 동침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하갈은 아이를 낳았지만, 그 아이는 엄밀히 따지면 사라의 아이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서 “돕는” 그들의 창의적인 방법이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그들의 노력을 존중하실 것입니다!
여전히 아들이 없어서 두려움에 떨고 있던 가운데, 아브라함은 사라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하갈에게 아이를 갖게 했습니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불신앙의 산물이었고 이스마엘의 자손들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꽤나 많은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사라의 행동은 좋아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기꺼이 그녀를 위해서 다른 여자가 자신의 아이를 낳게 했습니다. 그녀는 모든 행동을 하나님을 돕겠다는 명목하게 한 것입니다. 그 얼마나 좋은 이유입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약속을 통해 다른 길을 제시하셨을 때, 이런 종류의 “도움”을 단순히 존중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오늘날 십자가 이후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열매 맺기 위해 “하나님을 돕는 것”은 우리의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노력입니다. 사라가 어느 날 약속된 아들 이삭을 낳은 것과 같이, 우리는 약속된 하나님의 성령의 열매를 맺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우리는 포도나무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가지일 뿐입니다(요 15:5).
하나님의 페덱스(FedEx, Federal Express) 경로
저는 버지니아 주(州), 워렌턴(Warrenton)이라는 작은 마을에 있는 말 농장에서 자랐습니다. 오늘날까지, 저의 어머니는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게인즈빌(Gainesville)에서 살고 계십니다. 또한 제 동생 윌(Will)은 워렌턴에 살면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 있습니다. 윌의 업무 특성 상, 그는 언제나 페덱스를 통하여 북부 버지니아 지역의 고객들에게 서류를 발송했습니다. 그 결과, 윌의 이 메일 수신함은 송장번호와 노선 정보와 관련된 메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윌은 페덱스와 페덱스의 운영 방식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페덱스는 특정 도시를 중심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때때로 소포가 영문 모를 경로를 통해서 그들의 목적지에 배송이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윌이 워렌턴에서 게인즈빌에 있는 저의 어머니에게 소포를 보내고 싶다면, 페덱스는 프레데릭스버그, 인디애나폴리스, 덜레스, 헌든을 거쳐서 마침내 게인즈빌에 도착할 것입니다.
와우! 정말 엄청나게 돌고 돈 경로입니다! 차를 타고 워렌턴에서 게인즈빌로 소포를 옮길 때 아무리 많이 걸려도 15분인데, 페덱스는 우리에게는 매우 낯선 길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페덱스에서 사용하는 방법을 들었을 때, 저는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나는 성장(골 2:19)”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우리를 어디로 이끄는지, 또는 하나님이 그 일들 가운데에서 어떤 일을 하시고 계신지 항상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끄시는 길은 때때로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멈춰있거나 정착해서, 왜 “진전”이 없는지 걱정할 수 있습니다(하지만 우리는 가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경로 또는 다른 경로를 통하여, 그리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해져 있습니다(롬 8:29). 그리고 우리 안에서 이 여정을 시작하신 그분께서 우리를 완성시키실 것입니다(빌 1:6). 그리고 그 경로가 어떻든지 간에, 하나님은 언제나 제 시간에 도착하십니다! 운명은 우리보다 앞서서 정해졌으며, 우리의 성장은 확실합니다. 천국은 우리가 그것을 알기를 원합니다.
천국에서 온 메시지
네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교훈의 풍조에 의해서 갈팡질팡하기를 나는 원하지 않는단다. 나는 네가 꾸준히 성장하고 내 안에서 성숙하게 되기를 바란단다. 내가 너에게 감사를 요구하기 때문이 아니라 네가 감사하는 삶을 살도록 지어졌기 때문에, 네가 그저 나를 받아들이고, 내 안에서 숨쉬고, 내 안에 뿌리내려서 기초를 두고 네 믿음이 강해지고 나에 대한 감사가 넘쳐났으면 한단다. 창조물인 너희들이 창조주인 나를 바라보고 이 모든 것에 대해서 감사를 돌리는 것은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란다.
나는 너를 나와 화목하게 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정결하게 했으므로, 너의 영과 혼과 육은 모두 내게 임할 때 분별되고 흠이 없이 없단다. 나의 성령이 그 증거이며, 이 모든 일이 일어날 거라고 보장한단다.
너는 나의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게 될 거란다. 내 성령을 통해서만 오는 영광으로 네가 나의 형상대로 변하고 있음을 깨달으렴. 육신 안에서 너는 매일 망가져가고 있지만, 영적으로는 매일 새롭게 변하고 있단다. 그리고 이제 네가 겪는 고난은 내가 네 안에서 일하는 영광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단다. 그러므로 너의 시선을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에 맞추렴. 왜냐하면 그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란다.
사랑한다. 그리고 이 여정을 너와 함께 할 수 있어 기쁘구나.
예수님이
하늘을 향해 깨어나기
예수님, 제가 저의 성장과 미래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 없게 해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저를 성숙하게 인도해주시겠다고 약속해주시고 주님의 형상과 영광에 맞추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주님의 고난을 알기를 기꺼이 받아들이기 때문에 제 안에 일어난 주님의 부활의 권능 또한 알 수 있습니다. 주님만이 제 마음 속 가장 깊은 필요를 충족시켜주십니다. 주님은 저의 튼튼한 닻이며, 곤경에 빠진 저의 위대한 희망이십니다. 주님은 저의 전부입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천국은 다음 구절에서 영감을 받아 이야기합니다:
▶ 고전 1:9 ▶빌 3:10~11 ▶살전 5:18, 23 ▶딛 2:13 ▶롬 1:25; 8:18
▶고후 1:22; 3:18; 4:16~18 ▶ 엡 1:14; 4:14; 5:20 ▶골 1:15; 2:6~7
첫댓글 이 글은, 그리스도와 연합한 삶....이 좋겠군. 그런데 '천국에서 온 메시지' 첫 문장은 재검토가 필요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