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데 교회에 보내진 사자. ~ 루터 ~
계시록3:1사데에 있는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별을 가진 이가 이것들을 말하노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아있다는 이름은 가지고 있으나 죽었도다.
2깨워서 남아 있으나 죽으려 하는 것들을 강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서 네 행위의 완전함을 찾지 못하였나니
3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고 들었는지 기억하고 굳게 붙잡아 회개하라. 그런즉 만일 네가 깨어 있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같이 네게 이르리니 내가 어느 시각에 네게 이를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4사데에도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몇 이름이 네게 있어 그들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걸으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들이니라.
사 자
이 시대의 사자는 모든 시대들 중 가장 잘 알려진 사자입니다.
그는 마틴 루터였습니다. 마틴 루터는 부드러운 성품을 가진 총명한 학자였습니다.
그는 한 가까운 친구의 지병과 사망이 그로 하여금 자기 삶의 영적인 상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만들 때까지 법률가가 되려고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1505년 에르푸르트에 있는 어거스틴 수도회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그는 철학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도 공부했습니다.
그는 극심한 참회의 생활을 했지만 모든 외부의 행위들은 그의 죄의식을 몰아내 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나는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만들려고 나를 죽음에 몰아 부칠 정도로 괴롭혔지만,
여전히 암흑 가운데 있었고 그것을 얻지 못했다. 라고 말했습니다.
수도회 부총장이었던 쉬타우피츠는 루터에게 구원은 의식보다 마음의 역사를 체험해야 될 것이라는 통찰을
갖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이런 격려를 받고, 그는 더욱 더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나중에 그는 사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는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말씀과 현존하는 위대한 신학 작품들을 탐독하고 깊게 연구하는 연구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심오한 지식과 대단한 열성 때문에 그는 교사와 설교자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다짐한 맹세를 성취하기 위해서 로마에 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그는 구원을 전달하기 위해 존재하는 교회가 강요하는 행위들의 무익성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마음을 강하게 내리쳤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 성경구절의 복음적인 진리는 그의 마음을 강력하게 사로 잡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그는 죄에서 자유롭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에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이 일 직후 그는 신학박사로 등용되어 전 생애를 성서를 연구하며 충실히 설명하고 방어하는데 전념하라. 고
위임 받았습니다. 그는 그렇게 했고, 그의 마음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말씀의 진리에 깊게 고정되어
있을 정도였습니다. 말씀은 교회의 신조들과 교리들의 남용과 공개적인 마찰을 빚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레오 10세가 교황이 되고, 존 테첼이 면죄부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루터는 이 비 성경적인 가르침에 대항하여 일어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먼저, 그는 강대상에서 그것을 공격했고 다음에는 유명한 그 95개 조항을 써서 1517년 10월 31일에 캐슬 교회 문 앞에 못박았습니다.
그로 인해 삽시간에 독일은 불타올랐고 개혁이 본격적으로 궤도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로마 카톨릭 교회에 항거했던 사람은 마틴 루터가 유일한 사람이 아니었음을 명심하십시오.
그는 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교황이 자신에게 수여한 정치적 영적인 권세에 대해 교황들을 부인했습니다.
교황들 사이에서조차도 작은 단시일적인 개혁들이 일어났습니다.
네, 문제들을 야기했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루터의 경우에는, 교회가 한참 시일이 지난 후에 있을 성령의 부어주심으로 회복되는 시초가 될 명확한 운동을
위해 하나님의 시간이 무르익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마틴 루터는 민감하고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는 그야말로 말씀의 사람이었는데 왜냐하면 말씀을 연구하는 데에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말씀으로 살 수 있도록 모든 사람이 말씀을 이용 가능케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신약을 번역해 사람들에게 주었습니다. 이 고된 일을 혼자서 했는데, 한 구절을 스무 번 정도 교정했습니다.
그는 주위에서 유대인인 히브리 학자들을 한 무리 모아 구약을 번역 했습니다.
루터의 이 기념비적인 공적은 아직도 독일에서 계속되는 성경 작업 전체가 기초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말씀을 훌륭히 전하는 설교자였고 교사였으며, 특별히 공적으로 유명해진 초창기에, 말씀이 유일한 가치
기준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구원의 수단으로서의 행위와 중생의 수단으로서의 침례를 반대했습니다.
그는 최초의 말씀과 오순절 개념처럼 그리스도의 중보가 인간의 행위와는 별개의 것임을 가르쳤습니다.
루터는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이었는데, 더 많은 일을 해야 하고, 시간에 쫓기면 쫓길수록,
만족스러운 결과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을 하나님께 드려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는 마귀와 싸우는 것이 어떻다는 것을 알았고, 어느 날 사탄이 그의 눈 앞에 나타났는데,
루터는 그에게 잉크 병을 던지며 가라고 명령했다고 합니다.
또 한 번은 두 명의 광신자들이 그에게 와서 모든 사제들과 성경을 추방하고
자기들에게 합세하라고 회유했습니다. 루터는 그들 안에 있는 영을 분별하고 그들을 쫓아버렸습니다.
루터는 선지자였으며, 전도자였고, 방언들로 말하며 통역하는 자였고, 한 몸에 성령의 아홉 가지 은사를 다 부여받은 사람이었다고 싸우어의 역사 제 3권 406쪽에 마틴 루터 박사에 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령에 의해 그의 마음을 뒤흔든 것은, 그리고 오순절날에 그랬던 것처럼 진리가 교회로 돌아온 것을 의미하는
그 작은 파란 싹이었던 그것은 의롭게됨(칭의)의 교리 였습니다.
행위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구원입니다.
저는 루터박사님이 의롭게 됨을 믿기만 하고, 설교만 했던 게 아니라,
그것은 말씀의 진리 중 기본이 되는 교리이기 때문에 그의 주된 주제여야만 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는 영원히 이 진리를 소생시킨 하나님의 손에 들린 도구로 알려질 것입니다.
그는 다섯째 사데 교회에 보내진 사자였고 그의 메시지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였습니다.
물론 우리는 그가 우리는 믿음에서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며 가르쳤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택하심과 예정론과 다른 진리들에 대한 그의 놀랄만한 이해력은 그가 말씀에 충만한 사람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도 역사가들처럼, 다시금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행위를 대적하는
하나님의 표준을--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는 하나님의 주권을 --전달하려고 그를 사용했다고 말하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미 언급했듯이, 이 시대는 역사가들에게 종교 개혁기라고 불리웠습니다. 그건 정말 사실입니다.
마틴 루터는 선지자가 아니라 개혁자였기 때문에 그래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역사책은 그를 선지자라고 부르는 걸 압니다,
하지만 역사책이 항상 옳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 단어에 대한 광범위한 성서적 의미로 볼 때 하나님의 진정한 선지자로서의 자질이 마틴 루터에게서는 하나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게 그 까닭입니다. 그는 삶 속에 성령의 표명들을 여러 개 가진 훌륭한 교사였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찬양 드립니다. 그래서 그는 사도이며 선지자였던 사도 바울 같은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교회를 모든 진리에로 복귀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루터가 관련된 문제들을 처리하는 방식에 커다란 변화가 있음을 발견합니다.
처음 그는 무척 온유하고, 겁이 없고, 무척 참을성이 강하고,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계속 하나님을 의뢰했습니다. 그러나 거대한 숫자가 그의 깃발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순수하게 영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정치적 동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교황의 멍에를 끊고 싶어 했습니다.
그들은 로마에 돈을 보내는걸 싫어했습니다. 광신자들이 일어났습니다.
곧 루터는 교회가 기도와 설교와 행동을 통해서 주목될 표준을 세우는 것 말고 실상 교회의 영역 바깥에 있는
정치적인 문제와 결정들에 말려들었습니다. 이런 정치 문제들은 쌓여서 마침내 루터를 지주들과 농민들 사이에서 중개해야만 하는 지킬 수 없는 위치에 몰아세웠습니다. 그의 결정은 너무도 잘못되어서 소요가 일어나 수천 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의도는 좋았지만, 교회를 정치적 상황에 다시 휘말리게 놔두었기 때문에, 그는 회오리바람을 거두어 들여야 했습니다.
그런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마틴 루터를 사용하셨습니다.
그의 의도가 잘못된 것이었다고는 말하지 마십시오. 그의 판단이 빗나가게 되었다고 말하십시오.
진정 루터교인들이 그의 가르침으로 돌아가 이 은혜스러운 형제가 하나님을 섬긴 것처럼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면, 그 사람들은 분명히 위대하신 하나님과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칭찬거리와 찬양이 될 것입니다.
*사데 성은 고대 리디아의 수도였습니다.
그곳은 리디아 군주들의 손에서 페르시아인들에게로 다음에는 알렉산더대제에게로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은 안티오쿠스대제에게 점령당했습니다.
그리고 버가모 왕들이 통치하다가 로마인들이 정복했습니다.
티베리우스 시대에 그곳은 지진과 전염병으로 황폐해졌습니다.
오늘날 그곳은 무너진 돌 무더기만 산재해 있고 사람이 거주하지 않습니다.
이 도시는 한 때는 상업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플라이니는 모직 염색 기술이 여기에서 발명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모직 염색과 카페트 제조의 중심지였습니다.
그 지역에는 금은이 꽤 많았고 금전이 처음으로 거기에서 주조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노예 시장도 있었습니다.
이 도시의 종교는 씨빌리 여신을 불순하게 숭배하는 것이었습니다.
무너진 성전의 거대한 잔해는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은 버가모 시대에서 제가 모자(母子) 로 알려진 쎄미라미스와 니누스의 바벨론식 개념은 아시아에서는
씨빌리와 디오이우스가 되었다고 말씀드렸던 것을 상기하실 것입니다.
이 둘에게 있는 속성들은 그것들을 나란히 놓고 보면 정말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그는 태양신이었고 그녀는 달의 여신이었습니다.
그는 하늘의 주고 그녀는 하늘의 여왕이었습니다.
그는 선함과 진리를, 그녀는 부드러움과 자비를 계시하는 자였습니다.
그는 중보자이고 그녀는 여자 중보자였습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세계의 문을 열고 닫는 열쇠를 가지고 있었고,
그녀도 그와 비슷한 일을 하는 동일한 열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죽은 자들을 심판하는 자들이었으며, 그녀는 그의 옆에 서 있는 자였습니다.
그는 죽임을 당했다가 부활하여 하늘에 올라갔고, 그녀는 그 아들에 의해 몸이 거기로 옮겨졌습니다.
그런데 로마에서 이 신은 우리 주님의 직함을 받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로 그녀는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불리웠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모자 개념이 그토록 거대한 크기로 차지했던 다른 두 시대들에서 우리가 발견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보십시오, 바벨론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들 숭배가 어머니 숭배에 비해서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실제로 아들의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서 사데의 이교도적 숭배는 그 여자를 숭배하는 것이었음을 봅니다.
씨빌리와 디오이우스가 아니라 씨빌리 하나. 어머니가 실제로 아들의 자리를 대신했고,
신성의 좋은 점들을 부여받았습니다.
이 시대의 종교가 어디에서 나온 건지 이해하려면,
로마 교회가 마리아에게 붙여준 다양한 칭호들과 훌륭한 속성들을 알아보기만 하면 됩니다.
제가 이 씨빌리 숭배를 조사할 때 두 가지 사실이 제게 아주 강하게 부딪혔습니다.
하나는 그녀가 야누스처럼, 그녀에게 야누스와 똑같은 권세를 주는 열쇠(하늘과 땅과 비밀들을 여는 열쇠)를
하나 차고 있었다는 사실이고 경배자들은 몸에서 피가 솟아오를 정도로 자신에게 채찍질을 하였다는 사실인데, 그 일은 주님처럼 고통을 받고 있다고 느끼는 카톨릭 교인들이 오늘날 행하고 있는 일입니다.
이 시대가 실제로 번성하던 교황의 로마가 첫번째 분열되는 시대라는 사실입니다.
이 시대에 이제 마리아는 아이를 가지도록 택함을 입은 처녀로 하나님께 받은 은총을 제외하면 구원의 계획에
있어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며 마리아 숭배 사상을 강하게 부정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이들 개신교도들을 단호히 반대하며 마리아 숭배 교리를 강화하고 강조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때 루터는 믿음에 의해 의롭게 된다는 교리를 구체화 시켰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행위와 참회와 기도와 다른 비 성서적인 수단들을 더욱 고수했습니다.
그리고 노예였다가 해방된 그리스도인들이 아들을 영화롭게 하자, 로마 카톨릭은 마리아 신격화를 증가시켰고, 마침내 이십 세기는 (최고 지위에 있는 로마 신학자들을 반대하면서) 파이어스 교황이 실제로 마리아를 높혀서
부활했다고 하면서 영화롭게 하는 것을 보게까지 되었습니다.
그 교리는 정말로 아들이 어머니를 하늘로 데리고 올라간다는 바벨론식 교리입니다.
이 시대가 다른 시대들로 이어져 마침내 음녀와 음녀의 자녀들이 둘째 사망으로 죽임을 당하는 불못에서 종말을 맞을 때까지 갈 것입니다. 마리아 숭배는 곧 씨빌리 숭배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씨빌리는 이세벨이 여제사장으로 있으면서 그녀가 집행한 음란한 의식들로 이스라엘을 걸려 넘어지게 했던 아스다롯임을 알고 계셨습니까? 네, 그것이 성경에서 나오는 아스다롯입니다.
사데 즉 다섯째 교회 시대는 1520년에서 1750년까지 지속되었습니다. 그 시대는 보통 종교 개혁 시대라고 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