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 콘서트, 야구]
‘삐빅- 충전이 필요합니다’
“하 젠장, 오늘도야…”
회사 건물 안에 기계음이 울려 퍼진다.
‘김.사.우.님, 30% 미만 경고 대상입니다. 80% 이상 충전 후 출근 부탁드립니다.’
박.사.우.님, 50% 미만 주의 대상입니다. 80% 이상…’
‘이.사.우.님, 10% 미만…’
이게 다 번아웃, 토스트아웃이니 뭐니 하는 것들 때문이다. 인간이 일을 하는데 힘든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전에 없던 큰 일이 일어난 것 마냥 이곳 저곳에서 떠들더니, 결국 이상한 제도까지 생겨버렸다.
이름하여 [I’ll B 100] 프로젝트. 번아웃으로 인한 인력난이 극심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정부가 고안한 제도다. 인간의 Battery를 100으로 채워, 정상으로 I’ll be back 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건데. 이 기조에 따라, 기업들은 구체적인 [인간 배터리 충전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 이를 지원하는 정부의 예산안도 빠르게 통과했다. 벌써 대기업은 출퇴근길에 각종 인체 데이터를 수집하는 AI를 비치해, 사원증을 찍는 직원들의 배터리 수치를 체크했다. 경고가 누적되면 회사 출입이 제한돼, 강제 휴식을 취해야 했다. 다만 업무량은 그대로이기 때문에 충전하지 않으면 결국 손해보는 건 직원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프로젝트의 실험체 중 하나였다. 졸지에 퇴근길에 모두에게 컨디션을 강제 공개 당하는 삶이라니…
“이대리… 자리 빼고 싶어? 한결 같이 부진한 것도 재주야. 내가 봐줄라 했더니 도저히 안 되겠네. 내일까지 국내 경쟁사 싹 다 조사해서 보고해”
인식 공격을 밥 먹듯 하는 과장에게 실적 보고 후 대차게 깨진 날, 10% 미만이라 꾸짖는 기계음에 모두가 날 쳐다보기도 했다. 나의 처연함을 구경하는 관중들의 수치도 썩 좋진 않아서 그러려니 했지만... 기계 같은 삶이라 생각했는데, 내 한계까지 수치로 측정 당하며 충전을 강요당하니, 정말 기계가 된 것 같은 요즘이었다.
그나마 우리 회사는 유예기간을 두어 80%까지 충전해오면 출입이 가능한 시스템이었지만, 곧 정부 권고사항에 따라 100%까지 충전해야 하면 큰 일이었다. 사내에서는 충전할 시간조차 없는 사우들이 암암리에 배터리 대리 충전을 부탁하기 시작했다. 비교적 한가한 시즌에 있는 직원들이 콘서트며, 야구며 각종 취미생활을 야무지게 하면 배터리 수치가 월등히 회복되는데, 이 직원들에게 사원증을 맡기는 방식이었다. 아직 초기 단계라 허술한 AI가 1명이 사원증 2개를 달고 있는 건 문제 삼지 않은 덕분이었다.
대리 충전을 이용하는 직원들 중에는, 취미 생활을 해도 현실의 팍팍함 때문에 도저히 긍정적인 호르몬이 분비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수치를 올려보려 웃음을 지어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억지 웃음은 인체 데이터에 오히려 부정적인 요소로 기록됐다.
결국 [I’ll B 100]도 빛 좋은 개살구였다. 정부에서 개인의 힘듦에 이렇게까지 나서다니!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오히려 행복의 계층화는 더 심해졌다. 지치고 힘든 사람들이 출입금지를 면하기 위해, 살만한 사람들에게 돈을 주며 대리 충전을 부탁하게 되었고. 살만한 사람들은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더욱 풍요로워지게 되고, 지친 사람들은 이젠 주머니 사정마저 쪼그라들게 될 전망이었다.
아 참, 작은 회사들은 예산이 부족해 AI 대신 사람이 체크해, 분위기가 더 흉흉하다고 했다. “김 과장 얼굴 좋아 보이는데~ 통과!” “박 주임, 오늘도 표정이 영 별로구만, 경고야” 관리자의 기분을 살피며 그들과의 관계를 잘 유지해야 하니, 더욱 골치 아파진 상황이었다.
며칠 전, 우리 팀은 입을 모아 말했다. 그나마 맘껏 힘들어할 수 있었던 그때로 I’ll B 100 하고 싶다고.
첫댓글 재밌었다. 주목도가 높은 글인듯. 아일뷔백 뜻이나 설정이 좋았음,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프로젝트의 내용도 현실이 잘 반영된 에피소드여서 통찰력이 보였음. [가짜노동]을 다룬 기사, 직장인들이 눈치보느라 업무시간을 소요한다는 기사가 떠올랐음. 소설에 이게 비유적으로 가짜 노동 데이터 설정을 추가해보면? 관리자의 기분을 살펴야 한다는 것도. 프로젝트가 실패했다는 명확한 근거. 이걸 다루는 기사가 마지막에 나와도. 전체적인 에피소드는 잘 짜여진듯.
우리는 하루 2시간 반을 '가짜노동'에 허비하고 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22609570000246
스토리가 탄탄하고 설정이 돋보였다. 나의 생각이 잘 보여서 좋았다. 아일뷔백 언어유희 좋았음. 이해가 잘 안가는 부분은 = 충전을 어떻게 하는지 구체적인 설정을 도입부에 친절하게 설명되면 좋겠다. 공연을 보거나 휴식을 취하면 어떻게 충전이 되고 그게 수치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나오면 좋겠다. 키워드는 끼워맞춘 느낌이어서 더 밀착되면 좋겠다.
행복의 계층화도 좋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