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km. 2만 2천보. 6시간.
영천역 - 금호강변 - 금강산성 - 원점회귀.
한낮 햇빛은 뜨거웠으나
시원한 바람이 부는 그늘에선
춥다는 사람이 많았다.
나는 조금 더웠다.
참석자 : 느림보아님. 반야행님. 선향님. 지혜님. 복미쌤.
대감님. 마님. 운강님. 봄햇살님. 은조님.
미지님. 대덕화님. 푸른강님. 나를찾아님.
부산방 바람구두님. 한소
영천시장
금호강.
영천 시내를 가로지른다.
강을 사이에 두고 철도역과 시청이 반대편에 위치해 있다.
보현산(1100), 화산(800), 팔공산(1200) 등
화강암 관입 산지가 북서부를 감싸고 있고
동남부는 경주와 경산의 500~600대
낮은 구릉성 산지가 포위하고 있는 지형이다.
산지 안쪽으로는 남서부 경산 하양 방향으로
흐르는 금호강을 따라 넓은 충적평야가 발달해 있다.
그래서 출구가 하나뿐인 분지 형태를 이룬다.
농업 이외 다른 소득원이 없어 새로 유입되는 인구보다
출향 하는 사람 수가 훨씬 많았다.
대부분 인근 대구 경산 경주 울산 포항에 많이 산다.
바늘꽃.
이 꽃의 정확한 이름은 바늘꽃이 아니다.
분홍나비바늘꽃이 바른 이름이다.
공원에서 흔하게 보이는 이 원예종 바늘꽃은
원산지가 북미이고 '가우라'라는 이름으로 통한다.
꽃잎 모양이 춤추는 나비 모양 같다고 해서
분홍나비 바늘꽃으로 부른다.
꽃잎 아래 씨방이 가늘고 길게 자라며
이렇게 자란 열매 모습이 뜨개질에 사용하는
대바늘을 닮았다 하여 바늘꽃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꽃이 피기 전 돌돌 말린 꽃봉오리 모습이
바늘처럼 뾰족하고 길쭉하여서 바늘꽃이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우리나라 토종 야생화 분홍바늘꽃과
개화시기나 꽃모양이 다르다.
안희수 시인의 '바늘꽃'
소란을 떠나 / 한적한 곳을 좋아하네 //
하늘 높은 줄 모르고 / 바람에 옷깃 날리어도 / 휘어질 줄 모르는 곧은 자태 / 그 깐깐함은 청렴한 선비이네 //
살다 보면 빛 볼 날 있다고 / 모란도 작약도 다 진 후에야 / 그제사 제 모습 드러내며 / 아름다움은 양귀비에게 / 향기는 인동초에게 맡기네 //
모습은 바늘 같아도 / 성글성글한 마음 / 너그럽기 한량없고 / 화려한 멋과 호쾌한 풍채 / 당당하기 이를 데 없네 //
볼수록 닮고 싶은 기품 / 여백의 멋이여!”
우리나라에선 서양 봉선화로 흔히 부른다.
임파첸스(impatiens)는 '참을성이 없다'는 뜻의 라틴어.
영어 impatient 도 이 라틴어에서 유래하였다.
열매가 잘 익으면 살짝만 건드려도 폭발하는
특성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나라 봉선화와 같이
꽃이 지고 씨가 익으면 손으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톡 하고 터져 씨가 멀리 흩어진다.
칸나. Canna라는 이름은
영어 지팡이와 갈대(cane or reed)에서 유래하였다.
현재 칸나라고 불리는 것은
열대에 자생하는 원종에서 개량된 것으로
원예종이 100종 이상이다.
잎은 넓고 큰 타원형이다.
굵고 튼튼한 뿌리가 지탱해 주어
키가 2m 이상까지 자라기도 한다.
개화 기간이 길고 병해충과 공해에도 강하다.
가뭄에 잘 견디므로 관리가 쉽다.
그래서 도로나 공원, 철도 주변의
화단 식물로 많이 활용한다.
꽃은 6월부터 서리가 내릴 때까지
긴 꽃대에 꽃자루가 있는 여러 개의 꽃이
어긋나게 붙어서 밑에서부터 피기 시작하여
백색·홍색·적색·등황색·황색 꽃이 계속 핀다.
맨발 걷기 황톳길
행님들이 배낭에 가득 채워온
먹을거리를 수시로 풀어놓았다.
땅콩 3번. 포도 3번. 사과 3번. 오이 3번.
떡. 배. 젤리 사탕. 약과 등등 기억도 하기 힘든다.
덕분에
다이어트는 물 건너간 지 오래다.
걸어서 살 뺀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걷어치웠다.
퇴적암 단층지형이 발달한 하안.
높이가 적어도 30m는 넘었다.
진짜도 있지만 가짜 송덕비가 더 많다.
탐관오리로 악명을 떨치던 자들이 임기 중에
선정비 세우고 퇴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돈 주고 산 벼슬자리.
온갖 협잡질로 배 채우고 떠나면서
제 가슴에 스스로 훈장 다는 꼴이다.
지금 말로 '셀프 훈장'이다.
선정비에 이의 제기하면
"좋은 게 좋은 거지.
뭘 그리 팍팍하게 구느냐?
모양 빠지게 굴지마라.
체면 구겨진다."며 눈을 부라렸다.
가산산성에서 이런 셀프 선정비 많이 볼 수 있다.
무려 13개나 있다.
비문에 적힌 대로 청렴한 관리가 많았다면 칠곡이
전국에서 제일 살기 좋은 고을이 되었을 것이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그런 이야기 들어본 적 없다.
다른 곳에서 깽판 치던 놈이 칠곡에 부임해 오자말자
갑자기 개과천선할 리가 절대 없다.
다음은 실학자 정약용이 본 전정의 문란상이다.
"법전에 규정된 세금은 농토 1결에 대략 쌀 20말에 불과하다.
그러나 농민이 내는 것은 1년에 쌀 40말 이상이상이나 된다.
여기에 아전들이 여러 가지로 농간을 부려 30~40말을 더 거둔다.
이리하여 10년 전에는 대략 농토 1결에 100말을 내면 되었으나,
지금은 100말로는 어림도 없다." (경세유표)
조선 말 동학농민운동을 촉발시킨 조병갑.
매관매직과 가렴주구의 대명사. 면허 받은 흡혈귀 조병갑.
백성의 증오와 원성이 자자했던 이 놈도
아랫사람에게 자신의 공덕비를 세울 것을 강요했다.
지금 남아있는 선정비 비문은 다음과 같다.
'함안군수 조병갑은 유민을 편케 하고, 봉급을 털어 관청을 고치고,
세금을 감해주며 마음이 곧고 정사에 엄했기에
그 사심 없는 선정을 기리어 고종 24년(1887) 비를 세운다.'
금강산성 둘러보고 오는 길에 찾아간 카페가
이 절벽 더미 위에 있다.
금강산성은 나말여초 후삼국시대 혼란기에
영천 지역 호족 황보능장이 견훤에 대항하며
웅거 한 곳이다.
그는 후삼국 통일에 기여한 공로로 고려 왕건에게서
영천을 식읍(食邑)으로 받고 본관도 하사 받아
영천 황보 씨의 시조가 되었다.
황보능장의 묘는 현재 육군3사관학교 안에 있다.
영천 황보 씨(永川 皇甫氏)는
한국에 현존하는 복성(複姓, 두 글자로 된 성씨) 중
남궁 씨에 이어 두 번째로 많으며,
본관인 영천과 가까운 포항에 가장 많이 산다.
인구는 2015년 기준 1만 명 정도다.
선우 씨처럼 복성이어서
한자가 다른 황(黃)씨와 헷갈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이름이 '보'로 시작하는 황 씨나,
황보 씨에 외자 이름인 경우 더 그렇다.
계유정난 때 영의정으로 있다가 수양대군에게 참살된 황보 인도
성이 황보이고 이름이 인이지만
황보 씨가 아닌 황 씨로 종종 오해받는다.
팔각정 현판에 '황보능장 금강산성'이라 적혀있다.
이곳에서 점심.
황보 농장으로 잘못 읽고 개인 사유지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
이 팔각정에 서면
북쪽 청송 방향으로 보현산이
서쪽 대구 군위 방향으로 화산과 팔공산이
한눈에 보인다.
↓ 이 안내판을 보고
영천 황보 씨의 시조가 황보능장인 것을 처음 알았다.
뜻있는 향토 사학자의 노력으로
이 자리가 금강성으로 밝혀진 것은 2000년대 초반의 일이다.
영천향토사연구회 소속으로 활동하며
삼국시대 이전 부족국가 시기
영천 지역 '골벌국'의 실체를 연구한
경북대 사학과 강사 이재수 씨의 공로다.
그는 영천에서 교사 생활을 한 뒤 만학의 열정으로
경북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스쾃 운동 삼아 한소와 미지님.
반야행님이 꿀밤을 열심히 주웠다.
자호천, 고촌천, 의곡천의 물길이
이곳 영천 완산동 금강산성 아래에서 모여
금호강이 시작된다.
오른쪽은 강 쪽 수십 미터 절벽.
왼쪽은 쓰레기 매립장.
재활용쓰레기 분류장
금강산성 안쪽 저지대는 쓰레기 매립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문화유적지와 쓰레기 매립장. 그리고 생활체육 시설을
한 곳에 모아두었다. 애매하다.
카페 고니에서 기차 시간 기다리며 1시간 반을 보냈다.
바깥이 추웠던 회원들은 실내로 들어왔다.
4시 반 기차 시간에 맞춰 오후 3시 반에 카페를 나왔다.
가을 오후 햇살에 푹 빠져 걸었다.
햇살이 아직 따갑고 금방 몸이 더워져서
그늘을 찾았다.
오후 4시경 영천 금호강에서 더 놀 사람.
집으로 먼저 갈 사람이 구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