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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GUE譯 로마서
2008-01-13 16:58:59
로마서(十字架의 福音) 번역(飜譯)상의 쟁점(爭點)들(1)과
무궤역주(譯註) 991004~991217
제일(第一). 3장 23절 (그리고 3장 10절)
ㅇ. 개역(改譯)성서(聖書) 번역문(飜譯文)
3장 23절 모든 사람이 죄(罪)를 범(犯)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榮光)에
이르지 못하더니
3장 10절 의인(義人)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기록한바)
ㅇ. 헬라어 (The Greek) 원문(原文)
3장 23절 παντεs γαρ ημαρτον και υστερου νται τηs δοξηs
του θεου
3장 10절 καθωs γεγραπται οτι ουκ εστιν δικαιοs ουδε ειs
ㅇ. 무궤 역주(譯註)
1. 3장 23절
γαρ(차별이 없는 의(義)에 대한 보충설명)
죄(罪)아래 있다고 율법(律法)에 의해 고발(告發)된 모든 사람들(유대인
에서 헬라인에 이르기까지)은 죄(罪)를 지었고 (율법으로도) 하나님의 영광
(榮光)을 얻지 못하더니
For all under the curse of the law sinned and have fallen
short of the glory of God.
註1) παντεs만을 떼어내서 모든 사람 모든 인류(人類)를 죄인(罪人)이라고
교리화(敎理化)한 기독교(基督敎)의 모든 가르침은 성서(聖書)의 가르침이
아니다. 로마서 전체(全體)를 하나의 복음(福音)으로 완벽(完璧)하게 연결
(連結)해주는 γαρ라는 이 접속사(接續詞)와 같이 παντεs를 해석(解釋)
해야한다.
전(全)문장을 쇠사슬처럼 연결(連結)해주는 이 고리 γαρ는 영어(英語)
에서는 접속사(接續詞) For로 번역(飜譯)되는데 그 의미(意味)는
Seeing that, Being that (앞에서 말한 사실이 존재하고 그 사실을
알고있다는 것을 전제(前提)로 하고), proof, explanation(앞 내용을
증명하거나 보충설명)한다는 것이다.
註2) ημαρτον και υστερουνται 율법(律法)에 의해 죄인(罪人)이라고
고발(告發)당한 이 모든 시람들은 죄(罪)를 범(犯)했고(부정과거시제)
그 결과(結果)로 현재(現在) 하나님의 영광(榮光)이 부족(不足)한 상태에
놓여있다는 내용(內容)속에는 죄인(罪人)들도 죄(罪)를 짓기 전(前)까지는
하나님의 영광(榮光)을 가지고 있었다는 의미(意味)가 포함(包含)되어 있다.
참조 ref.) 롬7장9절 전(前)에 법(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계속(繼續) 살아있었더니(미완료시제).
태어날 때부터 모든 인간은 죄인(罪人)이라는 교리(敎理)와 죄(罪)를 짓기
전(前)까지는 모든 인간(人間)이 하나님의 영광(榮光)을 가지고 있어 율법
(律法)에 의해 의인(義人)이라고 인정(認定)받는다는 이 성서(聖書)의
가르침을 비교(比較)해 보라.
2. 3장 10절
죄인(罪人)을 고발(告發)하는 다윗이 시편에 죄인(罪人)들을 고발 (告發)하여
놓은 아래와 같은 고소문(告訴文)과 같은 고발(告發)을 이미 한 것입니다.
‘ 죄인(罪人)으로 고발(告發)당한 자 중에는 의인(義人)이 단 한 명도
섞여있지 않습니다.’
as it is written : " None (who has been under the power of Sin)
is righteous. no, (of them) not one;
註1) καθωs는 영어의 as, just as의 의미(意味)를 가진 부사(副詞),
접속사(接續詞)이다.
따라서 3장 10절 이하(以下)의 구약성서(舊約聖書) 인용(引用)구절들은
이미 한 고발(9절의 προητιασαμεθα)과 꼭 같은 내용(內容)이다.
그러므로 9절 내용(內容)과 같은 의미(意味)로 10절도 해석(解釋)해야지
3장 10절만 따로 떼어내서 그 한 문장(文章)으로 복음(福音)의 진리(眞理)를
대신(代身)하는 데 큰 문제(問題)가 있다.
3. 3장 9절의 무궤 역(譯)
γαρ(모든 면에서 낫게 대우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충설명)
죄(罪)의 지배(支配)하에 있는 모든 이들(유대인으로부터 헬라인까지 -
당연히 우리 그리스도인 자신들도 포함한)을 우리 스스로
이미 (1-2장에서) 고발(告發)했습니다.
Then is what we shall say that we, real Jews, have any
better than the false Jews physically ? No, not at all : For I
already accused all men under the power of Sin.
제이(第二). 5장 12절
ㅇ. 현(現) 성경(聖經) 번역문(飜譯文)
5장 12절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罪)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罪)
로 말미암아 사망(死亡)이 왔나니 이와같이 모든 사람이 죄(罪)를
지었으므로 사망(死亡)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니라.
ㅇ. Greek 원문(原文)
Δια τουτο ωσπερ δι ενοs ανθρωπου η αμαρτια ειs τον κοσμον
εισηλθεν και δια τηs αμαρτιαs ο θανατοs και ουτωs
ανθρωπουs ο θαναθοs διηλθεν εφ ω παντεs ημαρτον.
ㅇ. 무궤 역주(譯註)
Δια τουτο(믿음의 율법=그리스도의 영(靈)을 가진 이들에게 죄(罪)사함,
의인(義人)으로 만드심, 하나님과 화목(和睦), 왕권(王權),심판(審判)에서의
구원(救援), 영광(榮光)얻을 소망(所望), 화목(和睦) 직분(職分) 이 모든
은혜(恩惠)를 주시기 위해) 한 사람(아담)으로 말미암아 죄(罪)가 이 지구
(地球)세계(世界)안으로 (단번에) 들어왔고 죄(罪)에 의해 사망(死亡)이
들어왔던 것처럼 그와 똑 같은 방법(方法)으로(아담에게 일어난 똑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께 불순종(不順從)하고 (믿음의 율법을 버리고 ) 죄
(罪)에게 순종(順從)한 (죄(罪)의 율법을 취한) 아담의 본(本)을 좇은 모든
사람에게 사망(死亡)이 들어왔습니다.= 믿음의 율법을 버리고 죄(罪)의
율법을 택(擇)한 아담을 본(本)받은 자들에게 사망(死亡)에 속(屬)한 모든
것이 주어지도록 허용(許容)하셨던 까닭은 믿음의 율법(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그리스도를 본(本)받은 자들에게 은혜(恩惠=생명)에 속한 모든 것을
주시려는 계획(計劃)을 세워놓으셨기 때문입니다.
In order that God gives us all these blessings He allowed
that ~so Death spread to those who sinned in imitation
of him(Adam).
註1) 아담 한사람이 모든 인류(人類)를 대표(代表)한 신분(身分)으로 죄
(罪)를 지었기 때문에 그의 후손(後孫)인 전(全) 인류(人類) 모든 사람이
죄(罪)를 지은 것이다라는 소위(所謂) 원죄교리(原罪敎理)를 가르치기
위해 인용(引用)하는 성서구절이다.
원문(原文)의 παντεs(=all)는 3장 23절에서나 그 밖의 다른 구절(句節)
에서처럼 따로 떼어내어 해석(解釋)하게 되면 로마서의 고리는 끊어지고
만다. εφ ω παντεs가 의미(意味)하는 바는 인류(人類)전체(全體)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아담의 본(本)을 받아 죄(罪)를 범(犯)하고 죄
(罪)를 섬기기로 택(擇)한 모든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해석(解釋)
되어져야한다. εφ(επι)는 전치사(前置詞)로 on, with, after(눅1:59)의
의미(意味)이고 ω는 관계대명사(關係代名詞)로 아담을 가리키는
ενοs ανθρωπου를 선행사(先行詞)로 한다고 본다.
註2) 개역본(改譯本)성서(聖書)번역(飜譯) 5장15절의 많은 사람, 18절의
많은 사람, 19절의 많은 사람은 παντεs가 모든 인류(人類)를 가리키는
것이 아님을 뒷받침 해준다.
註3) 12절 후반부(後半部)의 모든 사람에게 사망(死亡)이 이르렀다는
이 내용(內容)으로 사람은 다 죽는다는 현실(現實)의 경험(經驗)을 거꾸로
그 증거(證據)로 사용하여 사람들이 다 죽는 것을 보니까 모든 사람은
죄(罪)를 지은 것이 틀림없다고 소위(所謂) 원죄교리(原罪敎理)가 성서
(聖書)의 가르침이라고 주장(主張)하는 이가 있을 수 있는데,
성서(聖書)에는 죄(罪)를 짓지 않고도 죽임을 당한 수많은 의인(義人)들이
그리스도를 필두(筆頭)로 소개되어 있고 죽음을 보지 않고 지금도 생존
(生存)해 있는 에녹, 엘리야, 멜기세덱 등(等)이 있음을 교리(敎理)를
주장(主張)하기 위해 간과(看過)해서는 안 된다.
더욱 중요한 쟁점(爭點)은 복음(福音)이 문제(問題)삼는 인간(人間)은 육체
(肉體)로서의 인간이 아니고 영혼(靈魂)으로서의 인간이라는 점이다.
그리스도의 죽음 역시도 육체(肉體)의 죽음 안에 감추어진 성자(聖子)신분
(身分)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죽음이 복음(福音)의 기초(基礎)로써 가르쳐지고
있다. 그리고 로마서의 ο θαναθοs가 생명체(生命體)의 죽음이 아닌
기계화(機械化=선악과)된 상태(狀態)로의 변화(變化)를 가리키는 단어(單語)
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ο θαναθοs에 의해 부서진 생명체(生命體)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註4) 지구(地球)전체(全體)와 그리스도를 포함한 아담의 후손 전부(全部)의
육체(肉體)가 죄(罪)의 지배(支配)하에 들어가도록 허용(許容)하셨던
천(天)의 오묘(奧妙)한 섭리(攝理) 계획(計劃)은 Δια τουτο에 함축(含蓄)
되어 있는 천(天)의 최고(最高)의 영광(榮光)을 선물(膳物)로 주시기 위한
계획(計劃)이셨음이 드러나 있다.
註5) Δια τουτο에 함축(含蓄)된 의미(意味)는 죄인(罪人)이 하나님의
영광(榮光)을 회복할 수 있는 유일(唯一)의 길이 그리스도의 죽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義)를 얻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의인(義人=율법)이 천(天)의 장성
(長成)하신 분량(分量)=완전(完全)하심에 이르는 오직 한 길 역시
그리스도의 죽음에 나타난 이 의(義)를 얻는 길뿐이라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 해주는 구절(句節)은 롬10장 4절 그리스도는 율법(律法)의
마침 13장10절 사랑은 율법의 완성(完成)이니라 이다.
註6) 만일 아담의 자손(子孫)으로 태어난 것이 원죄(原罪)라면 그리스도
역시 죄(罪)있는 몸으로 태어나셨으므로 원죄(原罪)를 소유(所有)하신
것이 된다.(롬8장3절 죄(罪)있는 육신(肉身)안에...)
이런 견지(見地)에서 보면 죄(罪)의 지배(支配)아래 있다는 말과 죄(罪)를
행(行)했다는 말은 반드시 같은 말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罪)와 사망(死亡)의 지배(支配)아래 스스로
들어가셨지만 죄(罪)를 짓지 아니한 의인(義人)이셨다.(=기계로(사망으로)
행하지 아니하셨다.=선악과를 만들어 내지 아니하셨다.)
죄(罪)의 지배하(支配下)에 있는 육신(肉身)을 입고 태어난 아담의 자손
(子孫) 대부분(大部分)도 -그리고 자연(自然)만물(萬物)도- 무고(無故)한
즉 죄(罪)를 짓지 아니한 선량(善良)한 백성(百姓)으로 생(生)을 살다가
죽었다고 성서(聖書)는 가르친다.(롬8장) 흰옷 입은 허다(許多)한 무리들,
헤롯에 의해 학살(虐殺)된 아이들, 사가랴와 엘리사벳,
안나와 시므온 등등(等等).
제삼(第三). 3장 31절
ㅇ. 현(現)성경(聖經)번역문(飜譯文)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律法)을 폐(廢)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律法)을 굳게 세우느니라.
Do we then overthrow the law by this faith? By no means.
On the contrary we uphold the law.
ㅇ. Greek 원문(原文)
νομον ουν καταργουμεν δια τηs πιστεω s ; μεγενοιτο
αλλα νομον υστανομενεν
ㅇ. 무궤 역주(譯註)
ουν(믿음의 율법을 지킨 자를 의롭다고 선언(宣言)하신다는 이 사실 (事實)
을 근거(根據)로) 우리가 믿음(의 율법)을 행(行)함으로 (행위들의) 율법
(律法)을 폐기(廢棄)하려는 것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그 반대(反對)로 우리가 (행위들의) 율법을 더욱 확실(確實)하게 효력
(效力)을 발휘(發揮)하게 만듭니다.
(율법에 의해 의인(義人)이라고 판결(判決)받은 사람은 행위들의 율법을
지키는 자이므로 계명(誡命)의 율법(律法)을 완전(完全)하게 하는 자
(者)이고, 계명(誡命)의 율법에 의해 죄인(罪人)이라고 선고(宣告)받았으나
믿음의 율법을 (다시) 지키므로 하나님의 은혜(恩惠)에 의해 계명(誡命)을
지키는 자로 다시 창조(創造)된 자는 계명(誡命)에 의해 의인(義人)이라고
확인(確認)받음으로 행위(行爲)의 율법(律法)을 효력(效力)있는 법(法)이라
증명(證明)해 준다.)
註1) ① 그런즉(therefore, then)으로 번역(飜譯)된 ουν이란 접속사
(接續詞)를 무시(無視)하고 31절(節) 한 문장(文章)만 가지고 구원(救援)은
믿음으로 받지만 성화(聖化)는 십계율법(十誡律法)을 행(行)함으로
이루어진다는 현(現)기독교(基督敎)의 교리(敎理)를 옹호(擁護)하는 데
문제(問題)가 있다고 본다.
마태복음 5장 17절 ‘내가 율법(律法)이나 선지자(先知者)를 폐(廢)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完全)하게 하려 함이노라.’는 성경구절의 뜻 역시
31절과 같은 의미(意味)로 해석(解釋)되어야 복음(福音)의 내용(內容)이
모순(矛盾)되지 않는다.
② ουν이 함축(含蓄)하고 있는 내용(內容)은 앞 부분(部分)에 언급
(言及)한 천(天)은 결코 자신의 의(義)로우심을 잃으시면서 까지는 죄인
(罪人)을 의(義)롭게 만드실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반드시 십계명
(十誡命)에 비추어 볼 때 천(天)이 죄인(罪人)을 구원(救援)
하시는 방법(方法)이 옳아야만 했기에 천(天) 당신자신의 의(義)로움을
잃지 않으시면서 죄인(罪人)을 십계율법(十誡律法)에 의해 의인(義人)
이라고 판결(判決)받도록 고치는 유일(唯一)한 길은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十字架)의 죽음을 통(通)하는 길뿐이었다.(행4장12절 천하(天下)
인간(人間)에 구원(救援)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으시지만 다른 구원(救援)의 길을 마련하실 수도 없으시다.)
③ 십계명(十誡命) 이 행위(行爲)율법(律法)이 구원(救援)얻는 데
관계(關係)가 없다는 주장(主張)이 잘못되었음을 ②에서 확실(確實)히
알 수 있다. 십계율법(十誡律法)을 어기는 방법(方法)으로는 결코 천(天)이
죄인(罪人)을 구원(救援)하실 수도 죄인(罪人)이 구원(救援)받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성화(聖化)나 유업(遺業)은 십계명(十誡命)을 행(行)함으로써 얻는다는
주장(主張)-야고보서 2장24절,행15장29절 등을 근거로 하여- 에
대해 복음(福音)은 로마서 4장과 5장~8장까지의 변증(辨證)을 통해
십계율법(十誡律法)과 복음(福音)과의 관계(關係)를 명확(明確)히 해
줌으로써 교리(敎理)로써 가르쳐지고 있는 그 주장(主張)이 잘못된
가르침임을 증거(證據)해 준다. 특(特)히 4장에서는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後孫)이 받은 지구(地球)의 상속자(相續者)가 되는 이 축복(祝福)
=은혜(恩惠) 역시도 율법(律法)십계(十誡) 의(義)를 행(行)한 것과 상관
(相關)없이 믿음의 의(義)를 가진 자들에게 약속(約束)되어져 있음을 강
(强)하게 논증(論證)하고 있다.
5장(章)에서는 믿음으로 의(義)롭게 고침 받은 자들이 십계율법
(十誡律法)을 행(行)함으로 천(天)과 화목(和睦), 천(天)의 영광(榮光)으로
변화(變化)하라고 하지 않고 믿음을 키워감으로 은혜(恩惠)의 보좌(寶座)에
나아가서 성화(聖化)될 수 있음을 논증(論證)한다.
이로 보아 우리는 구원(救援)이나 성화(聖化)에 십계율법(十誡律法)이
결정적(決定的)인 역할(役割)을 하지 못함을 알 수 있고 단지 구원(救援)
성화(聖化)에 대한 표(表)나 인(印) 즉 신분증명서(身分證明書) 역할
(役割)을 하고있음에 불과함을 확인(確認)하게된다.(4장11절)
신분증(身分證)은 위조(僞造)될 수 있음을 기억(記憶)하라. 주민등록증
(住民登錄證)을 분실(紛失)하여도 대한민국(大韓民國) 국민(國民)임이
분명(分明)하면 신분증(身分證)의 유무(有無)에 관계(關係)없이 국민(國民)
이듯이 천국(天國)시민 신분증(身分證)이 십계(十誡)나 할례(割禮)라는
말이다. 거룩한 양심(良心)을 가진 자의 생애
(生涯)는 거룩한 행위(行爲)로 나타나지만 거룩한 육체(肉體)를 가졌다고
반드시 거룩한 행위(行爲)를 하는 자는 아니다. 거룩한 체 위장(僞裝)할
수가 있는 까닭이다. 신분증(身分證)을 위조(僞造)하듯이.
거룩한 행위(行爲)를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행(行)하지만 악마(惡魔)의
마음을 가진 무서운 외식자(外飾者)들이 종교(宗敎)지도자(指導者) 중에
있음을 성서(聖書)역사(歷史)는 보여준다.
註2) 믿음의 율법(律法)을 행(行)하느냐 행(行)하지 않느냐는 전(全)적으로
인간(人間)의 마음에 달려있다고 하겠다. 구원(救援)이나 유업(遺業),
성화(聖化)가 천(天)은혜(恩惠)의 선물(膳物)이라고 해서 인간(人間)쪽에서는
아무런 의무(義務)이행(移行)이나 자격(資格)요건(要件)이 요구(要求)되지
않는 것처럼 교리(敎理)로 가르치고 있는 데 내 복음(福音)에서는 인간
(人間)의 양심(良心) 믿음은 그 자신(自身)외에는 천(天)이나 마(魔)도
강제(强制)할 수 없는 영역(領域)이라 주장(主張)한다.
천(天)은 모든 인간(人間) 모든 죄인(罪人)을 사랑하시고 구원(救援)과
유업(遺業)을 주시고자 하시지만 믿음의 자격(資格)요건(要件)을 갖추는
것은 전(全)적으로 인간(人間)편의 의무(義務)사항(事項)이기 때문에
이 믿음의 시험(試驗)에 합격자(合格者)와 탈락자(脫落者)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천(天)은 편애(偏愛)가 없으신 공평(公平)한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라는
그 점(點)이 인간(人間)의 믿음이 전(全)적으로 그 자신(自身)에 의해
좌우(左右)되는 자유(自由)로운 존재(存在)라는 이 토대(土臺)와 맞물려
하나로 묶여져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인간(人間)의 양심(良心) 믿음은 인간의 영혼(靈魂), 육체(肉體)의
구원(救援)이나 성화(聖化)보다도 더 중요(重要)한 절대적(絶對的) 자존
(自存)적 존재(存在)임을 우리는 알게된다.
십계율법(十誡律法)의 준수(遵守) 순종(順從) 여부(與否)가 전(全)적으로
인간(人間)의 손에 달려있다고 해 온 율법주의(律法主義)종교(宗敎)의
주장이(主張) 이 점에서는 참고(參考)가 될 만하다고 여겨진다.
하나님의 은혜(恩惠)가 너무 지나치게 과장(誇張)되고 인간의 타락(墮落)이
인간 양심(良心)믿음 영역(領域)에 까지 미친다고 가르쳐온 교리(敎理)가
복음(福音)의 빛에 비취이면 거짓된 것으로 드러나지 않을 수 없다.
註3) 믿음 양심(良心)=천심(天心)의 존재(存在)와 가치(價値)에 대한 다양한
가르침과 평가(評價)가 있지만 여호와 천(天)께서 자격(資格)요건(要件)으로
요구(要求)하시는 것은 그리스도와 같은 질(質)의 믿음이다.
단지 지적(知的)이 동의(同意), 입술만의 고백(告白)인 믿음(ex.야고보서
2장19 귀신들의 믿음)은 가짜이다.
로마서 4장의 아브라함 믿음과 같은 믿음만이 천(天)의 시험(試驗)의 합격
(合格)조건(條件)이다.
cf)모세의 믿음(히브리서3장)과 비교(比較)하라.
註4) 천(天)은혜(恩惠)의 선물(膳物) 그리스도께만 구원(救援)이
전(全)적으로 달려있다는 말은 註1)(로마서3장)에 언급(言及)된 대로
구원(救援)이나 유업(遺業)의 복(福)을 주시는 천(天)이 공평(公平)한 의
(義)를 잃지 않으시면서 죄인(罪人)을 의인(義人)으로, 나아가 의인(義人)을
그리스도의 공동상속자(共同相續者)로 만드실 수 있는 유일(唯一)의 길을
천(天)께서만 마련하실 수 있다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의
죽으심이 반드시 천(天)께서 하셔야만 되는 (하지 않으면 천(天)의 공의(
公義)나 사랑, 십계(十誡)의 율법(律法)에 어긋나는) 그런 의무(義務)사항
(事項)이 아니라, 하지 않으셔도 되는 그런 일인데도 천(天)이 기꺼이 당신의
기쁨을 위해서 마련하신 선물(膳物)이요 계획(計劃)이라는 점(點)에서 구원
(救援)이나 영화(榮華)가 전(全)적으로 천(天)의 은혜(恩惠)에 달려있다고
하는 것이라 하겠다.
註5) 타고난 믿음과 영혼(靈魂)을 더럽히지 않고 십계율법(十誡律法)이나
성인(聖人)의 가르침대로 십계명(十誡命)을 계속 행(行)함으로 믿음과
거룩한 영혼(靈魂)을 가진 대부분(大部分)의 우주거민(宇宙居民)들이나
인간(人間)들은 그들의 선(善)한 행위(行爲)=십계(十誡)행위(行爲)대로
상(償)을 받게된다는 성서의 가르침을 복음(福音)의 내용(內容)속에서
빼버려서는 안 된다. (로마서 2장, 로마서13장, 히브리서 1장14절 인간권세
(權勢)와 천사(天使)들 중 천(天)의 장관(長官)들=minister,히브리서 3장
모세의 충성(忠誠))
죄(罪)에서의 구원(救援)과 144천(千) 그리스도의 신부(新婦)가
될 수 있는 길은 모세의 믿음과 율법(律法)행위(行爲)로 구성된 요건
(要件)보다 더욱 더 높은 차원(次元)인 오직 믿음으로만 처음부터 끝까지
이루어진 그 하나님의 의(義)를 자격(資格)으로 갖추어야 됨이 복음(福音)
에서 더 강조(强調)된 이유(理由)는 그 차원(次元)이 하나님의
온전하심=그리스도의 장성(長成)한 분량(分量)이기 때문이다.
(로마서 1장 17절 믿음의 의(義)를 가진 의인(義人)만 살아남을 것이다.)
제사(第四). 4장 12절 (4장 16절,4장 23절)
ㅇ. 개역(改譯)본문(本文)
4장 12절 또한 할례자(割禮者)의 조상(祖上)이 되었나니 곧 할례(割禮)
받은 자에게 뿐 아니라 우리 조상(祖上) 아브라함의 무할례 (無割禮)시
(時)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좇는 자들에게 도니라.
4장 16절 그러므로 후사(後嗣)가 되는 이 것이 은혜(恩惠)에 속(屬)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約束)을 그 모든 후손(後 孫)에게
굳게 하려하심이라. 율법(律法)에 속(屬)한 자에게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屬)한 자에게 도니~.
4장 23절 ~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우리도 위함이니~ .
ㅇ. Greek 원문(原文)
① 4장 12절 και πατερα περιτομηs τοιs ουκ εκ περιτομηs
μονον αλλα και τοιs στοικουσιν τοιs ιχυεσιν τηs εν
ακροβυστια πιστεωs του πατροs ημων Αβρααμ
② 4장 16절 δια τουτο εκ πιστεωs ινα κατα χαριν ειs το
ειναι βεβαιαν την επαγγελιαν παντι τω σπερματι, ου τω
εκ του νομου μονον αλλα και τω εκ πιστεs Αβρααμ.
③ 4장 23절 ουκ εγραφη, δε δι αυτον μονον οτι ελογισθη
αλλα και δι ημαs ~.
ㅇ. 무궤 역주(譯註)
① 4장 12절 또한 할례(割禮)=계명(誡命) 행(行)한 것을 의롭다는 판결
(判決)받을 근거(根據)로 주장(主張)하지 않고 우리 조상(祖上) 아브라함이
무할례자(無割禮者)의 신분(身分)에서 가진 믿음의 발자취를 좇는
자들에게는 할례자(割禮者)의 조상(祖上)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② 4장 16절 δια τουτο(율법이나 범죄(犯罪)로 땅을 기업으로 상속받을
자가 될 수 없는 까닭에) 약속(約束)된 유업(遺業)을 얻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믿음에 의지하는 자들 즉 오직 은혜(恩惠)를 따르는 자들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약속(約束)이 십계명(十誡命)의 율법
(律法)을 의(義)를 회복하는 근거(根據)로 내세우지 않고 오직 아브라함의
믿음의 발자취만을 좇는 그의 모든 후손(後孫)에게 효력(效力)을 발생(發生)
하게 되는 것입니다.
③ 4장 23절 이 기록(記錄)은 아브라함을 위해서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 오직 ~ 우리들을 위하여 기록되어진 것입니다.(cf.벧전 1장12절)
註1) ① ουκ ~ μονον αλλα και, ου ~ μονον αλλα και,
ουκ ~ μονον~ αλλα και가 영어의 not only~but also의
의미(意味)로 번역(飜譯)된다면 4장 12절의 내용(內容)으로 볼 때 믿
음과 율법행위(律法行爲)로 이루어진 자격요건(資格要件)을 함께
구비(具備)한 자만이 천(天)의 후사(後嗣)가 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은혜(恩惠)의 선물(膳物)로 구원(救援)이나
후사(後嗣)삼음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율법행위(律法行爲)를 한 대가
(代價)로 주셔야만 하는 것 즉 구원(救援)이나 후사(後嗣)삼는
이 의무(義務)를 이행(移行)하지 않으면 천(天)쪽에 의무(義務)불이행
(不履行)의 책임(責任)이 있게된다. 따라서 구원(救援)이나 후사(後嗣)삼는
이 것은 천(天)의 은혜(恩惠)가 아니라 천(天)의 의무(義務)가 되고 만다.
②관용어(慣用語)표현(表現)으로서가 아니라 원문(原文)에 배열(配列)된
단어(單語)의 순서(順序) 그대로 해석(解釋)하면 not~ , only but
(also)의 의미(意味) 즉 ~이 아니라 그 대신 오직 ~으로만의 뜻이
되게 된다.
23절에서 아브라함을 위한 기록(記錄)이 아니라고 해석(解釋)한 것은
성서(聖書)가 아브라함보다 훨씬 후세대(後世代)인 모세에 의해 기록
(記錄)되었다는 점을 상기(想起)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로마서 15장 4절에 성서(聖書)의 이전(以前) 말씀은 우리를 교훈(敎訓)
하시기 위한 목적(目的)으로 기록(記錄)된 것이지 그 사건(事件)에 등장
(登場)하는 인물(人物)을 위해 기록된 것이 아니라고 분명(分明)히 밝혀
놓으셨다.
③ not only ~ but also의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구절(句節)은
5장 3절, 5장 11절, 9장 10절(ου μονον δε, αλλα και)과
1장 32절, 9장 24절, 13장 5절(ου μονον ~ αλλα και)이다.
ου다음에 μονον이 반드시 붙어있어 ου와 μονον이 떨어져 있는
경우와 구별(區別)된다.
제오(第五) 4장 15절
ㅇ. 개역성경(改譯聖經) 본문(本文)
율법(律法)은 진노(震怒)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律法)이 없는 곳에는
범(犯)함도 없느니라.
ㅇ. Greek 원문(原文)
~ ο γαρ νομοs οργην κατεργαζεται. ου δε ουκ εστιν νομοs
ουδε παραβασιs .
ㅇ. 무궤 역주(譯註)
γαρ(약속, 믿음의 율법이 폐해진다는 사실의 보충설명)
계명(誡命)의 율법(律法)은 계명(誡命)을 어겼으나 믿음의 율법(律法)으로
의(義)를 회복(回復)하려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後孫)에게 하나님의
진노(震怒)를 선언하기때문입니다.(십계명(十誡命)의 율법(律法)으로 의
(義)를 회복(回復)하려는 자들에게 진노(震怒)를 선언(宣言)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리고 계명(誡命)의 율법(律法)이 효력(效力)이 없는 곳에 범죄
(犯罪)는 더더구나 소용(所用)될 리 없습니다.
Where the law is of no use, transgression is ineffective
all the more.
註1) 땅을 유업(遺業)으로 받을 상속자(相續者)=하나님의 후사(後嗣)가 될
수 있는 자격(資格)은 율법(律法) 십계(十誡)를 행(行)하는 것(선행) 또는
폭력(暴力) 사기(詐欺) 등(等)의
범죄(犯罪)로 얻을 수 없다고 해석(解釋)되어야 γαρ로 앞 문장(文章)과
연결(連結)된 이 구절(句節)이 올바로 이해(理解)된다. 그렇지 않으면 개역
(改譯)본문(本文)처럼 앞뒤 문맥(文脈)과는 전혀 상관(相關)없는 번역
(飜譯)이 나오게 된다.
'법률(法律)없으면 범죄(犯罪)없다'는 죄형법정주의(罪刑法定主義)의 형법
(刑法)이론(理論)이 난데없이 등장(登場)한 것이다.
註2) ① 이 문장(文章)은 14절의 가정(假定)- 만일 십계율법의 의를 가진 자
만이 후사가 되는 자격이 있다면- 이 사실(事實)이라면 믿음의 의(義)는
자격요건(資格要件)으로서는 쓸모가 없게되고 아브라함과 그 후사(後嗣)중에
율법(律法)의 의(義)를 가지지 못한 자는 자연 후사(後嗣)되는 이 시험
(試驗)에서 불합격(不合格)처리(處理)되고 만다는 의미(意味)의 내용
(內容)이다. 구원(救援)은 믿음으로 즉 의(義)를 회복(回復)하는 것은
믿음으로 되지만 후사(後嗣)가 되는 이 것은 선행(善行) 즉 십계(十誡)를
행해야만 된다는 그럴싸한 교리(敎理)에 대한 강(强)한 반박(反駁)으로
믿음의 의(義)만이 십계율법(十誡律法)의 의(義)를 선물(膳物)로 받을 요건
(要件)이 될 뿐 아니라 후사(後嗣)가 되는 이 복(福)을 받을 필수(必須)요건
(要件)이란 점을 분명(分明)히 하는 구절(句節)이다.
② 피조물(被造物=유체(幽體)인 영혼(靈魂)이나 육체)이 선행(善行)=
십계율법(十誡律法)을 행(行)할 수 있는 것은 피조물 자체에 그 능력
(能力)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를 지은 천(天)께 있다는 이 진리(眞理)를
유대인 지도자(指導者)들은 부정(否定)하고 그들 자신(自身)의 육체
(肉體)에 율법(律法)을 행(行)할 능력(能力)이 있다고 가르치고,
자기들이 행(行)하고 가지고 있다는 이 십계율법(十誡律法)의 의(義)를
고집(固執)하고 하나님의 의(義)에 순종(順從)하기를 거부(拒否)했다고
10장 3절에 다시 확증(確證)하고 있다.
③ 로마서 8장 7절에 육체(肉體)를 신(神=절대자=창조자)으로 섬기는 영혼
(靈魂)은 하나님의 십계율법(十誡律法)에 복종(服從)하지 않는데 그 까닭은
그 영혼(靈魂)이 이미 복종(服從)할 능력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증거
(證據)하고 있는 것에 비추어보면 율법행위(律法行爲) 선행(善行)을 후사
(後嗣)되는 자격요건(資格要件)으로 고집(固執)하는 자들이 결코 십계율법
(十誡律法)을 지키는 자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십계(十誡)가 천(天)이 만드신 거룩한 육체(肉體)=피조물(被造物)인 것은
분명(分明)하지만 십계(十誡)를 천(天)의 위치(位置)에 놓고
섬기게되면 결코 십계(十誡)가 요구(要求)하는 선행(善行)을 행(行)할
수가 없게된다.
로마서 7장(章)에서 율법(律法)을 남편(男便)으로 섬기기로 택한 자(者)들이
오히려 그 율법(律法) 때문에 죄(罪)=사단악마에게 속임을 당해 종으로
팔리게되고 그런 그를 남편(男便)인 십계(十誡)는 결코 사망(死亡)에서 그를
구(救)해줄 수 있는 능력(能力)이 없다고 강(强)하게 논증(論證)하고 있는
것이다. (참조 고전 15장 53절)
④ 그러므로 율법십계(律法十誡)의 의(義)가 하나님의 선물(膳物)인 것이
분명(分明)하고 믿음의 의(義)를 증거(證據)해주며(롬3장 21절) 구원(救援)
받은 자나 후사(後嗣)가 입고 있는 흰옷인 것은 분명(分明)하지만 선행
(善行)=율법(律法)자체는 결코 구원(救援)받는 자격요건(資格要件)이나
후사(後嗣)의 자격(資格)을 얻는 요건(要件)이 될 수 없다고 하겠다.
피조물(被造物) 즉 영혼(幽體)이나 육체(肉體)는 설령 천(天)의 육체(肉體)와
같이 거룩한 육체(肉體)라 할지라도 결코 영원(永遠)히 조물주(造物主)로
변화(變化)할 수는 없다.(요한복음 3장 6절 육(肉)으로 난 것은 영원히
육(肉)이요~) 따라서 신(神)으로 숭배(崇拜)해서는 안 된다.
(고전 1장 29절; 이는 아무(어떤) 육체라도 하나님(창조주)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심이라.)
⑤ 하나님을 섬기는 두 부류(部類), 아벨의 부류(部類)와 가인과 같은
신자(信者)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가인의 제사(祭祀)가 바로 십계율법(十誡律法)의 의(義)를 제사(祭祀) 즉
하나님께 자격요건(資格要件)으로 제시(提示)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천(天)의 거절(拒絶)-가인의 분노) 가인의 제사(祭祀)를
받지 않으셨다는 말은 가인을 후사(後嗣)가 되는 시험(試驗)에서 불합격
(不合格)처리(處理)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ref.) 로마서 1장 21절의 해석
⑥ 부모(父母)=조상(祖上)을 섬기는 문제(問題)와 천(天)을 숭배(崇拜)
하는 문제(問題)
산 부모(父母)나 죽은 부모(父母)를 공경(恭敬)하는 것은 제5계명(誡命)의
요구(要求)이다.
부모(父母)로서 공경(恭敬)하는 정도를 넘어 그 육체(肉體)를 신(神)=
천(天)으로 숭배(崇拜)하고 제사(祭祀)하게되면 우상숭배(偶像崇拜)=
인간숭배(人間崇拜)가 된다.
천(天)께 신령(神靈)과 진정(眞情)으로 제사(祭祀)하지 않고 단지 육체
(肉體)상의 부모(父母)로만 천(天)을 공경(恭敬)하는 것도 천(天)의 요구
(要求)하는 후사(後嗣)되는 자격(資格)수준(水準)에는 미달(未達)이라
하겠다.
⑦ 믿음의 의(義) 즉 그리스도의 의(義)는 육체(肉體)의 의(義)가 아니다.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육체(肉體)=시체(屍體)가 구원
(救援)하고 후사(後嗣)가 되게 하는 능력(能力)이 있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영(靈)이 십자가(十字架)상(上)에서 가장 완벽(完璧)하게
드러나신 까닭에 그의 죽음 그의 피가 중요한 것이다.
그리스도를 육체(肉體)로 알았으나 주(主)는 영(靈)이시다.
사람 역시 육(肉)과 영(靈)을 다 가진 존재(存在)이고. (고후3장17절,
고전6장 17절, 고후5장 16절, 고전2장 11절)
믿음은 육(肉)의 영역(領域)이 아닌 영(靈)의 영역(領域)에 속(屬)하는
활동(活動)이자 존재(存在)이다.
믿음이라 표현(表現)된 성구(聖句)가 육(肉)에 속(屬)한 능력(能力)으로
쓰여질 때도 있음으로 주의(注意)해 해석(解釋)해야한다. 마치 마음이 육체
(肉體)의 한 기관(器官)인 심장(心臟)을 지칭(指稱)할 때가 있듯이 말이다.
심(心)은 신(身)의 주인(主人)이라 할 때의 마음(心)은 영(靈)에 속(屬)한
존재(存在)이다.
유대교나 율법주의자(律法主義者)들의 가장 주된 교리(敎理)중 하나는
인간(人間)이 물질(육체)로만 이루어졌다는 즉 인간(人間)이 영(靈)적 존재
(存在)임을 인정(認定)하지 않는 점(點)이다. 따라서 마음이나 영(靈), 믿음
역시 그들에게는 호흡(呼吸)이나 염통 도덕(道德)품성(品性)에 불과
(不過)한 것이 되고 만다.
유물론(唯物論) 공산주의(共産主義)의 뿌리가 유대종교임을 유념하라.
양심(良心)의 명령(命令)이 부모(父母)나 통치자(統治者)들의 명령(命令)
보다 중요한 이유(理由)는 양심(良心)은 천(天)=창조자(創造者)=조물주
(造物主)=절대자(絶對者)=자존자(自存者)의 영역(領域)에 속(屬)한 존재
(存在)이지만 양심(良心)을 거스르는 부모(父母)나 통치자(統治者)들은
육(肉)에 속(屬)한 존재(存在)에 불과(不過)하기 때문이다.
천명(天命)인 양심(良心)에 어긋나는 명령(命令)을 부모(父母)나 통치자
(統治者)가 할 때 그들을 순종(順從)하기 위해 천(天)을 불순종(不順從)하는
것은 결코 제5계명의 부모(父母)를 공경(恭敬)하는 것이 되지 못한다.
그 결과(結果)는 반드시 그 부모(父母)나 통치자(統治者)를 욕(辱)되게
하기 때문이다.
⑧ 율법십계(律法十誡)를 가진 자와 십계율법(十誡律法)을 행(行)한 자.
가진 자(아는 자=배운 자)가 의인(義人)이 아니요 행(行)한 자가
의인(義人)이다.(로마서 2장 13절, 8장 7절)
그리스도의 지상(地上)생애(生涯)는 율법(律法)을 가진 유대인으로서
율법(律法)을 행(行)하신 생애(生涯)였다.
⑨ 선물(膳物)=율법(律法)을 주신 자보다 율법(律法)=선물(膳物)을 더
사랑한 유대인.
율법(律法)을 지키는(또는 가지고 있는) 피조물(被造物)이 신(神)=천(天)=
창조주(創造主)라고 사기(詐欺)치고 유혹(誘惑)하며 율법(律法)을 집행
(執行)한다고 핍박(逼迫)하고 죽인다.
제육(第六) 1장 17절
ㅇ. 개역본(改譯本)
복음(福音)에는 하나님의 의(義)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義人)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ㅇ. Greek 원문(原文)
δικαισυνη γαρ θεου εν αυτω αποκαλυττεται εκ πιστεωs ειs
πιστιν καθωs γεγραπται ο δε δικαιοs εκ πιστεωs ζησεται
ㅇ. 무궤 역주(譯註)
γαρ(믿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救援)하신다는 내용 보충설명)
그 복음(福音) 안에는 믿음으로만 이루어진 하나님의 의(義)가 밝히 드러나
있습니다. 하박국 서(書)에는 감추어져 있던 그 의(義)에 대하여 ‘오직
믿음을 가진 의인(義人)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기록(記錄)하고 있습니다.
For in it the righteousness of God is revealed from faith to
faith ; as it is written, "He who has the righteousness
of faith (romans chapter4 verse13) shall live."
註1) 십계율법(十誡律法)과 선지자(先知者)들의 예언(豫言)속에 감추어져
있던 하나님의 믿음(3장 33절)이 십자가(十字架)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가운데 분명히 나타난 바 되었고 이 예수 믿음과 같은 믿음의 자격(資格)을
갖춘 이들만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마지막 날의 심판(審判)에서 구원
(救援)을 얻고 살아남을 것이다는 로마서에서 확증(確證)되어진
복음(福音)의 핵심(核心)내용이다.
① ο δε δικαιοs εκ πιστεωs를 4장 13절의 δικαισυνηs πιστεωs
(=the righteousness of faith) 믿음의 의(義)를 가진 자들이라 번역
(飜譯)하면 뜻이 훨씬 명확(明確)해진다.
② εκ πιστεωs ειs πιστιν는 from faith to faith 즉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으로만 이루어진 이란 뜻으로 해석(解釋), 하나님의 의(義)를 수식
(修飾)하는 형용사구로 보았다. 같은 의미(意味)의 표현(表現)으로 3장
3절에 την πιστιν του θεου(faith of God)라는 어구(語句)가 있다.
하나님의 믿음이란 표현(表現)으로 성서(聖書)에 번역(飜譯)된 적이 없지만
계시록(啓示錄) 14장 12절 the faith of Jesus(예수 믿음)이란 표현과
같이 원문(原文)그대로 번역(飜譯)해야 한다고 본다.
하나님의 믿음=천심(天心)
제칠(第七). 1장 18절
ㅇ. 개역본(改譯本)
하나님의 진노(震怒)가 불의(不義)로 진리(眞理)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
(敬虔)치 않음과 불의(不義)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ㅇ. Greek 원문(原文)
Αποκαλυπτεται γαρ οργη θεου απ ουρανου επι πασαν
ασεβειαν και αδικιαν ανθρωπων των την αληθειαν
εν αδικια κατεχοντων
ㅇ. 무궤 역주(譯註)
γαρ(믿음을 가진 의인(義人)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한 내용 보충설명)
하늘로부터 내리는 하나님의 진노(震怒)가 불의(不義)로 진리(眞理)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불경건(不敬虔)하고 불의(不義)한 행위(行爲)위에
임(臨)한다는 사실도 (이 복음 안에) 공개(公開)되어져 있다는 의미
(意味)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For the rejection of God in heaven is revealed
in this Gospel.
註) 믿음의 의(義)를 가진 의인(義人)만 살아남을 것이라는 말씀에는
믿음의 의(義)를 가지지 아니하고 오히려 불의(不義)로 진리(眞理)를 막는
사람들은 죽을 것이라는 내용(內容)이 포함(包含)되어져 있다는
뜻으로 풀었다.
① 하나님의 진노(震怒)
a. οργη θεου가 하나님의 심판(審判)이라는 차원(次元)을 넘어 천벌
(天罰)이라고 이해(理解)되고 그 위에 가르쳐지는 지옥(地獄)불이나
노아 홍수(洪水)심판, 소돔 고모라 유황(硫黃)불 형벌(刑罰),애굽의 10가지
재앙(災殃), 예루살렘의 멸망(滅亡)이 하나님에 의해 내려진 것이라는
교리(敎理)가 복음진리(福音眞理)에 합치(合致)되는 내용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b. 1장 24절 26절 28절에 gave up(내버려두셨다), 11장 1절에
rejected(버리셨다), 11장 15절에rejection(거절하심), 11장 21절
did not spare(아끼지 않으셨다)의 모든 표현(表現)들이 하나님의 진노
(震怒) 심판(審判)을 묘사(描寫)하는 것이라면 여기에는 형벌(刑罰)
하셨다는 내용이 전혀 포함(包含)되어 있지 않다.
c. 11장 32절에는 명백(明白)하게 하나님의 심판(審判)이 죄인(罪人)이라고
선고(宣告)받은 모든 이들에게 죽음의 형벌(刑罰)을 내리시기 위한 목적
(目的)에서가 아니고 자비(慈悲)=구원(救援)을 베풀기 위한 목적(目的)에
의해 행(行)해진다고 증거(證據)하고 있다. 마치 의사(醫師)의 진단(診斷)이
병자(病者)를 살리기 위함인 것과 같다. (죽음의 형벌(刑罰)은 마(魔)가
내리는 것임. 롬 7장 13절 고전15장 53절)
d. οργη를 거절하심의 뜻으로 번역(飜譯)한다면 천(天)의 후사(後嗣)자격
(資格)이 없다는 불합격(不合格)판정(判定)을 내리는 것이라는 내용(內容)이
명백히 드러난다.
② a. 광야(曠野)의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거절(拒絶)하고 다른 신(神)을 섬겨
여호와의 보호(保護)를 떠날 때 재앙(災殃)을 당하는 사건(事件)들, 요셉
다니엘 욥 등(等)이 당하는 형벌(刑罰)들이 하늘의 하나님에 의해 내려지는
것이 아니었다는 결정적(決定的) 증거(證據)는 십자가(十字架)의 형벌
(刑罰)을 받으신 그리스도에게 사망(死亡)을 가(加)한 것은 로마서에
죄(罪)로 표현(表現)된 여호와의 이름을 도용(盜用)한 악마(惡魔)였다는
사실(事實)이다.(로마서 7장 11절-13절)
로마서 7장에서 율법(律法)정의(正義)라는 미명(美名)하에 범죄(犯罪)한
자들에게 사망(死亡)의 형벌(刑罰)을 가(加)하고 하나님이나 율법(律法)이
형벌(刑罰)을 내렸다고 누명(陋名)씌우는 마(魔)=죄(罪)의 참모습을
극명(克明)하게 그려내고 있다.
b.오늘날에는 은혜(恩惠), 사랑이라는 미명(美名)하에 계속 죄(罪)를 짓도록
부추기고 천(天)을 범죄(犯罪)를 사주(使嗾)하는 두목(頭目)으로
오해(誤解)하게 만들고 있다.
③형벌(刑罰)을 당하는 이스라엘이나 욥. 다니엘. 파라오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성서(聖書)의 저자들까지 하나님이 형벌(刑罰) 재앙(災殃)을 내리신
줄로 굳게 믿고 있었으나 실상(實狀)은 욥기에 그려진 하늘의 광경
(光景)에서 볼 수 있듯이 욥 등(等)에게 형벌(刑罰)을 내린 존재(存在)는 -
그것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마(魔)=사탄이었다.
노아 홍수, 소돔 고모라의 멸망 , 애굽의 10재앙(災殃) 등(等) 이 잔혹(殘酷)
하기 그지없는 대학살(大虐殺)은 사단이 저지른 우주(宇宙)역사(歷史)의
걸작(傑作)이요 앞으로 일어날 계시록(啓示錄)에 그려지는 칠재앙
(七災殃)의 사건(事件) 역시 그 사건(事件)의 주동자(主動者)는 사탄임이
분명(分明)하다.
대학살(大虐殺)을 저지르고 그리스도인을 방화범(放火犯)으로 몰아댄
네로와 같이 하나님께 온갖 누명(陋名)을 뒤집어 씌웠던 것이다.
마귀(魔鬼)는 거짓의 아비(요한복음 8장 44절)
④죄(罪)=사단을 섬기기로 결심(決心)하고 진리(眞理)를 막는 이들을
안타깝게 바라볼 수밖에 없으셨던 하나님, 그들 죄인(罪人)의 양심(良心)을
강제(强制)하지 않고 죄(罪)로부터 자유(自由)하고자 할 때 구원(救援)받을
수 있도록 마련해놓으신 십자가(十字架)의 그리스도라는 비장(秘藏)의
계획(計劃)을 세우시고 실행(實行)하신 하나님, 죄인(罪人)을 위해 원수
(怨讐)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희생(犧牲)을 아끼지 않으셨던 하나님이
어찌 무고(無故)한 양민(良民)들 어린이들 백성(百姓)들까지 모두 학살
(虐殺)하는 분이 될 수 있겠는가?
온갖 비난(非難) 누명(陋名) 오명(汚名)을 뒤집어쓰시고도 오래 참으시는
천(天)의 자비(慈悲)를 로마서 2장4절- 3장25절에 증거(證據)하고 있다.
⑤ 성서(聖書) 전체(全體)가 대상으로 하고 있는 부류(部類)는 지구(地球)의
통치자(統治者)들인 144천과 666(216천)으로 묘사되는 여인(女人)의 후손
(後孫)과 뱀의 후손(後孫)들이다.
대부분의 백성들(99.99%에 해당)이 그 와중(渦中)에 희생(犧牲)당한 것
같지만(마치 헤롯에 의해 학살당한 베들레헴의 아기들과 같이 그리고
로마서 8장 20절-22절의 고통 당하는 피조물들과 같이) 그리스도의 고난
(苦難)에 동참(同參)한 자에게 주어지는 마땅한 영광(榮光)으로
보상(報償)받을 것이다.
⑥ 하나님의 심판(審判),진노(震怒),공의(公義),악(惡)을 미워하신다는
표현(表現)들은 악(惡)을 행(行)한 자들을 벌(罰)하신다는 뜻이 아니요
영원히 단 한번도 단 하나의 악(惡)도 하나님께서는 행하시지 않으신다는
중요한 가르침, 죄인(罪人)을 사랑하시되 악(惡)을 행하시거나 불공평
(不公平)하게는 죄인(罪人)을 도우실 수 없으신 분이라는 증거
(證據)에 대한 것이다.
⑦ 하나님의 심판(審判)공의(公義)는 죄인(罪人)을 결코 의인(義人)이라
하지 않고 , 의인(義人)을 결코 죄인(罪人)으로 판단(判斷)진단(診斷)하지
않으신다는 표현(表現)들이다.
죄(罪)의 병(病)이 든 죄인(罪人)들에게 그들의 병(病)든 실상(實狀)을
그대로 보여주는 명의(名醫)의 진단(診斷)을 천(天)의 심판(審判)으로
보아도 좋겠다.
치료(治療)만큼이나 중요(重要)한 것이 진단(診斷)인데 의인(義人)을
죄인(罪人)이라 하고 죄인(罪人)을 의인(義人)이라고 하는 종교(宗敎)의
교리(敎理)처럼 무서운 것이 없음을 생각할 때 천(天)의 십계(十誡) 정죄
(定罪)의 율법(律法)(고후3장 6절)의 심판(審判)직분(職分)의 중요(重要)
함을 알 수 있다. 이 점(點)에서도 복음(福音)안에는 십계율법
(十誡律法)이 포함(包含)되어 있음을 즉 3장 31절의 ‘복음(福音)이 율법
(律法)을 굳게 지지(支持)해준다는 그 사실(事實)을 알 수 있다.
⑧ a.중생(重生) 부활(復活) 거듭남의 차원(次元)에 이른 자들이
144천(千)이요 그리스도의 공동상속자(共同相續者)들 교회(敎會)
그리스도의 신부(新婦)들이다. 하나님께 아주 바친 자들은 반드시
죽일지니라.(레위기 27장 29절)의 말씀대로 죽음을 맛본 자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히는 죽음에 동참(同參)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復活) 중생(重生)한 이들이 바로 믿음의 의(義)를 자격(資格)으로 갖춘
천(天)의 후사(後嗣)되는 시험(試驗)에 합격(合格)한 자들이다.
b. 마귀(魔鬼)의 자식 뱀의 후손(後孫)들로 묘사(描寫)된 자들 역시 세상
(世上)의 통치권(統治權)을 얻기 위해 그들의 양심(良心)을 스스로 버렸던
이들임도 아울러 기억하자. 그들 역시 죽음의 성인식(成人式)을 거친 것이다.
양심(良心)에 화인(火印)을 맞아 마귀(魔鬼)의 형상(形象)을 지닌
자라는 표시를 가지고 다니는 이들이다.
사탄과 함께 그리스도와 그의 신부(新婦)를 십자가(十字架)에 못박는
살인(殺人)의식(儀式)에 동참(同參)하고 그래서 사단의 모습으로 다시
거듭난 자들로 사단의 시험(試驗)에 자격(資格)을 갖춰
합격(合格)한 자들이다.
그러니 이 두 무리에 든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운 것이요
이들이 전(全)인류(人類)의 0.0001%도 차지하지 않음은 뻔한 것이다.
99.99%의 천사(天使)=우주거민(宇宙居民)나 인류(人類)는 그들 믿음=
양심(良心)의 성숙(成熟)한 정도에 따라 한 나라 한 고을 등(等)을 다스리는
이로부터 어린아이 신분(身分)에 이르기까지 다양(多樣)하게 그들 자신의
분수(分數)에 맞는 영광(榮光)을 얻게 될 것이다.
c.하늘 천사(天使)=우주(宇宙)정부(政府)의 관리(官吏)들 중 ⅓이 반역
(叛逆)에 가담(加擔)한 사건(事件)
⑨ 십자가(十字架)를 강요(强要)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結果)를 초
래(招來)하게 될 수 있는가를 기독교사(基督敎史)는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고시(考試)에 불합격(不合格)한 것이 곧바로 죄인(罪人)이 된다는 의미
(意味)가 아니듯이 144천의 무리에 속(屬)하지 못하고 중생(重生)하지
못했다고 죄인(罪人)으로 멸망(滅亡)당하는 것이 아니다.
고시(考試)에 합격(合格)한 후 신세(身世)를 망(亡)치는 경우가 있듯이
하나님의 후사(後嗣)라고 큰소리치는 종교(宗敎)지도자(指導者)들이
마귀(魔鬼)의 후사(後嗣)로 판명(判明)되는 경우가 비일비재(非一非再)함을
잊지 말일이다.
⑩ 천(天)의 심판(審判)은 진리(眞理)를 막는 사람들에게만 그리고 그들의
모든 행위(行爲)가 아닌 불경건(不敬虔)하고 불의(不義)한 행위(行爲)에
대해서만 내려진다는 점(點)도 간과(看過)해서는 안 된다.
마치 의사(醫師)가 병자(病者)에게만 그것도 그 병자(病者)의 아픈 부위
(部位)에 대해서만 정확(正確)히 진단(診斷)하듯.
제팔(第八). 1장 19절
ㅇ. 개역본(改譯本)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이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ㅇ. Greek 원문(原文)
διοτι το γνωστον του θεου φανερον εστιν εν αυτοιs
ο θεοs γαρ αυτοιs εφανερωσεν
ㅇ. 무궤 역주(譯註)
διοτι(불의(不義)로 진리(眞理)를 막고있는 바로 그 사실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아는 지식(知識)(=진리)이 그들 안에 분명(分明)하게 존재
(存在)하고 있음도 알고있습니다.
γαρ(그들 안에 하나님의 진리가 있다는 내용 보충설명)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진리(眞理)를 명백(明白)하게 알리셨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 아는 지식(知識)을 가지고있고 불의(不義)로 진리(眞理)를 막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For it is plain that the truth is in them.
註1) ① 양심(良心)에 역사(役事)하고 있는 성령(聖靈)=천심(天心)의 권고
(勸告)하심을 명시(明示)하고 있는 성구(聖句)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양심(良心)의 가책(苛責)은 바로 하나님 영(靈)의 간절(懇切)한 호소,
음성(音聲)인 것이다. 악심(惡心)=마심(魔心)을 품고 양심(良心)의 소리를
잠재워야 악행(惡行)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범죄자(犯罪者)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② διοτι. γαρ 이 접속사(接續詞)들의 중요성(重要性)은 아무리 강조
(强調)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문맥(文脈)을 이어주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악(惡)한 이는 존재(存在)하지 않는다. 사단 악마(惡魔)도
타락(墮落)하기 전(前)에는 천사장(天使長)이었고 아담은 지구(地球)의
주인(主人)이었으며 유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弟子)였음을
상기(想起)해보라.
하나님을 부모(父母)로 그 선(善)한 형상(形象)성품(性稟)을 선천적
(先天的)으로 물려받은 천사(天使)=우주거민(宇宙居民)과 인간(人間)은
부모(父母)라는 문자(文字) 그대로의 의미(意味)대로 하나님을 뿌리로
(부모로)하여 태어난 자녀들인 것이다.
죄(罪)의 기원(基源), 악(惡)의 신비(神秘)에 대한 오래 해결(解決)되지
못한 의문(疑問)에 대한 답(答)이 풀리는 실마리가 여기에 있다.
천심(天心)에서 태어난 존재(存在)가 바로 인심(人心)이요 천신(天身)의
분신(分身)이 바로 우주거민(宇宙居民)과 사람의 몸이다.
(神心爾心知不二, 神身爾身知不異)(요한복음 4장 24 하나님은 영(靈)이시다.
고후3장17절 주(主)는 영(靈)이시니. 롬8장 9절 그리스도의 영(靈).
롬8장16절 우리의 영(靈). 고전2장11 사람의 영(靈).)
로마서 8장에 육신(肉身)을 신(神)=조물주(造物主)천(天)으로 섬기며
하나님보다 더 중(重)히 여기는 자(者)가 하나님과 원수(怨讐)된 자(者)라고
강(强)하게 변증(辨證)하고 있는 내용(內容)과 롬1장의 죄인(罪人)들에
대한 묘사(描寫)를 연계(連繫)해서 생각해보자. 천(天)께 물려받은 양심
(良心)과 육체(肉體)에 대한 그릇된=도치(倒置)된 평가(評價) 즉 천(天)의
마음(靈=神性)과 피조물(被造物)인 천(天)의 몸(身)의 영광(榮光)에 대해
뒤바꾸어 가치(價値)를 부여(賦與)한 데서부터 죄(罪)가 시작(始作)되었다고
당연(當然)한 결론(結論)을 내릴 수 있다.
재물(財物)과 하나님(天의肉體와 天의聖靈)을 겸(兼)하여 섬길 수 없다.
재물(財物)=몸(身)을 천(天)=良心보다 중(重)히 여기든지 천(天)을 재물
(財物)보다 중(重)히 여기든지 한다고 하시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나르시스와 같이 자기(自己)육체(肉體)의 아름다움(지혜, 능력, 영광)에
도취(陶醉)하여 천(天)께 물려받아 타고난 양심(良心)을 더럽혀 다시는
회복(恢復)할 수 없는 지경(地境)에
이른 자(者),즉 육체(肉體)로 변(變)해버린 마음을 가진 자(者)가 바로
악마(惡魔)사탄이라고 하겠다.(창세기6장3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육화(肉化)된 심(心) 즉 조물주(造物主)의 속성(屬性)은 모두 소멸(消滅)되고
피조물(被造物)의 속성(屬性)으로 변(變)해 버린 화인(火印)맞은 양심
(良心)-딤전 4장 2절-이 바로 로마서에 쓰여진 가장 중요(重要)한
단어(單語)중 하나인 죄(罪 αμαρτια)라 하겠다.
③ 이로 보아 죄(罪)란 행위(行爲)나 육체(肉體)일 수가 없다.
하나님의 의(義)가 십계율법(十誡律法)행위(行爲)가 아니듯이.
이 영(靈)=심(心)=자존자(自存者)=창조자(創造者)의 영역(領域)은 결코
강제(强制)될 수 없기 때문에 성화(聖化)되든 악화(惡化)되든 오직 양심
(良心) 스스로에게만 달려있다.
하나님이나 사단악마도 결코 피조물(被造物)을 다루듯이 억지로 위해
(危害)를 가(加)하거나 좋게 해줄 수가 없는 존재(存在) 즉 인간(人間)이나
천사(天使), 하나님의 신성(神性)(=絶對者=創造主)의 존재(存在)가 바로
이 양심(良心)이라 할 수 있다. 천(天)이 당신 자신의 몸을 희생(犧牲)
하시면서 까지 마(魔=罪)의 종으로 사로잡힌 자들을 구(救)하고자 하시는
이유(理由)가 비록 스스로 병(病)들었다 할지라도 인간(人間) 육체(肉體)
안에 있는 양심(良心)이 천(天)의 거룩한 몸보다 가치(價値)면에서 보면 더
소중(所重)하셨던 까닭이다.
여기서 우리는 천(天)의 총애(寵愛)를 받던 아들 루시페르 천사장(天使長)이
스스로의 양심(良心)을 더럽히는 과정(過程)에 발을 들여놓음으로 우주
(宇宙)의 대쟁투(大爭鬪)=반역(叛逆)의 역사(歷史))가 시작(始作)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타락(墮落)은 전(全)적으로 그 자신이 선택(選擇)한 결과(結果)였고
그것은 또한 그가 자유(自由)로운 존재(存在)였음의 증거(證據)이다.
따라서 천(天)이 죄(罪)=악마(惡魔)를 창조(創造)하셨느냐? 라는 의문
(疑問)의 제기(提起)는 그 자체(自體)가 어리석은 질문(質問)이라
할 수밖에 없다. 죄(罪)의 문제(問題)는 결코 창조주(創造主)와 피조물
(被造物)의 관계(關係)에서 논의(論議)될 성질(性質)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창조주(創造主)와 그의 분신(分身)인 창조주(創造主)사이의 문제
(問題)인 것이다.
가장 슬픈 현실(現實) 부모(父母) 자식(子息) 형제(兄弟)간의 최상권
(最上權)=대권(大權) 다툼이 하늘에서부터 시작(始作)되었고 그것은 가장
똑똑하고 영광(榮光)을 입었던 천심(天心)의 분신(分身)이었던 루시페르
천사(天使)의 마음이 병(病)듦으로 초래(招來)된 결과(結果)였다.
반역(叛逆)의 종말(終末)은 마(魔)와 그의 추종자(追從者)=216천(666)들의
자살(自殺)테러, 자멸(自滅)로 끝나는데 계시록(啓示錄)의 백보좌(白寶座)
심판(審判)은 이 마지막 광경(光景)에 대한 묘사(描寫)이다.
④ 자유의지(自由意志)와 선악과(善惡果)에 대한 명쾌(明快)한 설명(說明)이
이제 비로소 가능(可能)해진다. 왜 천(天)께서 선악과(善惡果)를 만들어
인간(人間)을 골탕먹이느냐는 기독교(基督敎)교리(敎理)의 토대(土臺)
위에서는 너무나 당연히 물을 수 있는 이 질문(質問)에 대한 대답(對答)은
천(天)이 결코 선악과(善惡果)=사망(死亡 θανατοs)을 만드시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결론(結論)부터 먼저 제시(提示)하자면 선악과(善惡果)란 가장 완벽
(完璧)한 기계(機械)=만능(萬能)기계(機械)라 할 수 있고 그것은 바로
사단의 몸 바로 악마사단의 최대(最大)의 걸작품(傑作品)이라는 것이다.
생명과(生命果)가 천(天)의 몸이요 만물(萬物)이 즐겨 따르는 천(天)의
최대(最大)의 걸작품(傑作品)이듯이.
마력(魔力)이 뿜어져 나오는 이 선악과(善惡果)를
우리시대의 컴퓨터와 인간(人間)육체(肉體)보다 수천 배의 능률(能率)로
일하는 기계(機械)를 결합
(結合)시킨 인조인간(人造人間 ex.안드로이드)과 같은 것이라 한다면
이해(理解)가 훨씬 쉬워진다.
피조물(被造物 天의 몸,天使의 몸, 人間의 몸을 포함한 자연)의 의지(意志)는
창조주(創造主)에 의해 만들어진 자유(自由)=프로그램화 된 자유(自由)이기
때문에 이들은 진정한 의미(意味)의 자유의지(自由意志)를 지닌
존재(存在)라 할 수 없다.
자유의지(自由意志)를 교리(敎理)의 토대(土臺)로 하는 율법주의
(律法主義)적 종교(宗敎)가 피조물(被造物)의 영역(領域)에 속(屬)하는
인간(人間)육체(肉體)에 그 자유(自由)를 부여(賦與)함으로 말미암아
인간(人間)육체(肉體)의 신격화(神格化)우상화(偶像化)가 가능(可能)
하게되었고 자기 의(義)를 내세우는 외식자(外飾者)들이 나올 수밖에
없게 되었다.
반면에 예정론(豫定論)을 토대(土臺)로 하는 은혜주의(恩惠主義)적
종교(宗敎)는 창조주(創造主)의 영역(領域)에 속(屬)하는 인간 양심
(良心)=성령(聖靈)의 자유의지(自由意志)까지를 박탈(剝奪)함으로
말미암아 맹목적(盲目的) 숭배자(崇拜者) 즉 결코 죄(罪)에서 벗어날 수도
없고 죄(罪)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 신자(信者)들로 만들어 내고야만다.
아담이 선악과(善惡果)를 따먹은 사건에 대한 이해(理解)를 새롭게 해보자.
선악과(善惡果)를 따먹은 행위(行爲)자체는 선악과
(善惡果)를 만든 주인공(主人公)인 사단악마를 생명과(生命果)를
당신자신의 대표작(代表作)으로 제시(提示)하신 천(天) 대신(代身)에
섬기기로 택(擇)한 아담의 마음에 비하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선악과(善惡果)를 따먹은 데 대한 자유(自由)와 책임(責任)은
아담의 육체(肉體)가 아니라 아담의 양심(良心)에 속(屬)한 것이라는
말이다. 마치 사람을 치어 죽인 차(車)가 아니라 그 차(車)를 몬
운전수(運轉手)가 잘못했듯이 말이다.
선악과(善惡果)의 치명적(致命的)해독(害毒)을 입은 아담의 육체(肉體)를
갖고 태어난(물려받은) 아담의 후손(後孫)들 가운데서 사고(事故)를 내지
않고 의(義)롭게 산 이들, 예수 그리스도가 그랬듯이 한번의 죄(罪)된
행위(行爲)도 하지 않았던 이들은 고장(故障)난 자동차(自動車)를 조심
(操心)스럽게 몰고서 목적지(目的地)까지 사고(事故)없이 무사히 도착
(倒着)한 이에 비교(比較)될 수 있다.
선악과(善惡果)의 해독(害毒)을 몸 안에 가지고서 태어났지만 그리스도를
따랐던 이들에게 선악과(善惡果)란 오히려 하나님의 장성(長成)한
수준(水準), 그리스도의 공동(共同)후사(後嗣)가 되는 자격(資格)을 얻을
수 있는 자극제(刺戟劑)가 되었다고 어떤 의미(意味)에서는 평가(評價)할
수 있겠다.
인간(人間)을 육체(肉體)로만 보고 그 육체(肉體)에 자유의지(自由意志)를
부여(賦與)한 율법주의(律法主義)적 종교(宗敎)와 인간(人間)의 양심(良心)
에서 자유의지(自由意志)를 박탈(剝奪)한 은혜주의(恩惠主義)적 종교
(宗敎)의 기묘(奇妙)한 결합(結合)으로 태어난 종교(宗敎)가 이제 등장
(登場)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항(對抗)하는 천(天)과 마(魔)와 인(人)과 그 관계(關係)에
대한 바른 이해(理解)를 가진, 천의(天義)와 천은(天恩)의 결합(結合)에서
태어난 14만 4천명의 그리스도의 신부(新婦)가 또한 등장(登場)하여
우주(宇宙)대쟁투(大爭鬪)의 마지막 무대(舞臺)의 극(劇)을
펼치게 되리라.
⑤ 계시록(啓示錄) 22장2절에 열두 가지 종류(種類)의 과일을 맺히는
생명(生命)나무가 보이는데 각기 다른 맛을 내는 열두 제자의 스승
그리스도(=天의 몸=영생의 몸)의 상징(象徵)이라고 해도 좋으리라.
동화(童話)에 나오는 열두 종류(種類)의 과자(菓子)=인공식품(人工食品)을
맺는 나무는 당연히 마(魔)의 작품(作品)=악마(惡魔)의 몸에 비유된다
하겠다. 적(敵)그리스도라는 표현(表現)이 성서(聖書)에 있듯이 마(魔)의
제자(弟子) 역시 열두 사도(使徒)를 모방(模倣)한 자들임에 틀림없으리라.
⑥ 로마서에 영생(永生)에 반대(反對)되는 표현(表現)으로 사망(死亡)이
나오는데 이 사망(死亡)이 바로 에덴동산 선악과(善惡果)의 또 다른
이름이라 하겠다. 고전15장 36절에 ‘맨 나중에 멸망(滅亡)받을 원수
(怨讐)는 사망(死亡)이니라’고 말씀해 놓으셨으니 신천지(新天地)에는
사망과(死亡果) 곧 선악과(善惡果)가 없을 것이 분명(分明)하니
이는 천(天)의 작품(作品)이 아닌 까닭이다.
⑦ 생명과(生命果)=영생과(永生果)=중생과(重生果)=불사약(不死藥)=
불로초(不老草)=부활과(復活果)=재생과(再生果)라는 이름은 살리는
명령(命令) 즉 중생(重生)한 십계율법(十誡律法)으로 이루어진 과일을
뜻한다.
생명(生命)은 선악(善惡)의 짬뽕(善50%惡50%)과는 다른 선(善)도 아니고
악(惡)도 아닌=선(善)이자 동시(同時)에 악(惡)인 가능성(可能性)=
선악(善惡)을 초월(超越)한 태극(太極)과 같은 물질(物質), 개체(個體)이자
전체(全體)인 유기체(有機體)원기(元氣) 이다. (고후5장17절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갈3장28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하나이니라.)
제구(第九). 1장 21절
ㅇ. 개역본(改譯本)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榮華)롭게도 아니하며 감사(感謝)치도
아니하고
ㅇ. Greek 원문(原文)
διοτι γνοντεs τον θεον ουχ ωs θεον εδοξασεν
η ηυχαριστησαν.
ㅇ. 무궤 역주(譯註)
διοτι(하나님을 몰랐다고 변명할 거리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진리를) 인정(認定)하고 하나님께 영광(榮光)을 돌리고
감사(感謝)했으나 하나님께 합당(合當)한 예배(禮拜)가 아니었습니다.
For they did not pay God God's due. although they honored
God and gave thanks to God.(but it is Cain's offering)
註) 가인의 제사(祭祀), 그리스도를 십자가(十字架)에 못박아 죽인
종교(宗敎)지도자(指導者)들의 예배(禮拜).
로마서 13장 7절 1장 23절 참조.(하나님께만 합당한 몫. 하나님을
금송아지의 영광을 가진 분으로 섬긴 광야의 이스라엘)
第十. 1장 27절
ㅇ. 개역본(改譯本)
남자(男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行)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相當)한 보응(報應)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ㅇ. Greek 원문(原文)
αρσενεs εν αρσεσιν την ασχημοσυνην κατεργαζομενοι
και αντιμισθιαν ην εδει τηs πλανηs αυτων εν εαυτοιs
απολαμβανοντεs
ㅇ. 무궤 역주(譯註)
남자(男子)끼리 ~ 수치(羞恥)스럽기 그지없는 남색(男色)행위(行爲)를
하고 성도착(性倒錯)적 행위(行爲)를 해준 대가(代價)를 서로
주고받고 있습니다.
One man committing shameless acts and the other
receiving the due wages for his shameless service
by themselves.
註) 남색(男色)행위(行爲)로 인(因)해 에이즈와 같은 성병(性病)에
걸림으로 그 행위(行爲)에 대한 대가(代價)를 치렀다는 뜻이 아니라
αντιμισθιαν(반대급부) 서비스에 대(對)한 대가(代價)를 받았다는
뜻이다. 현실(現實)에서도 남창(男娼)을 상대(相對)로 성행위(性行爲)를
하고 화대(花代)를 지불(支佛)하고 있음을 상기(想起)해보라.
第十一. 1장 32절
ㅇ. 개역본(改譯本)
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行)하는 자(者)는 사형(死刑)에 해당(該當)하다고
하나님의 정(定)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行)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行)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ㅇ. Greek 원문(原文)
Οιτινεs το δικαιωμα του θεου επιγνωντεs οτι οι τα τοιουτα
πρασσοντεs αξιοι θανατου εισιν ου μονον αυτα ποιουσιν
αλλα και συνευδοκουσιν τοιs πρασσουσιν.
ㅇ. 무궤 역주(譯註)
진리(眞理)를 불의(不義)로 막고있는 자들은 이러한 불경건(不敬虔)하고
불의(不義)를 행(行)하는 자들이 사망(死亡)에 속(屬)하는 행위(行爲)들을
하는 자들이라는 하나님의 의(義)로운 율법(律法)을 의식(意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자신이 사망(死亡)에 속(屬)한 일들을 행(行)할 뿐
아니라 또한 불의(不義)를 행(行)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율법(律法)을
가지고 심판(審判)하기를 즐기고 있습니다.(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적용, 심판하고 있습니다.)
Though they know God's decree that those who do such
things have the evidence in them that they belong to
the Death , they not only do them but also with God's decree
judge those who practice them.
註) συνευδοκουσιν 다음에 το δικαιωμα του θεου επιγνωντεs
οτι οι τα τοιουτα πρασσοντεs αξιοι θανατου εισιν이 생략(省略)
되어있다고 보고 해석(解釋)해야 2장 1절과 문맥(文脈)이 자연(自然)
스럽게 연결(連結)된다.
第十二. 2장1절
ㅇ. 개역본(改譯本)
그러므로 남을 판단(判斷)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判斷)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定罪)함이니 판단(判斷)
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行)함이니라.
ㅇ. Greek 원문(原文)
Διο αναπολογητοs ει, ω ανθρωπε, παs ο κρινων εν ω γαρ
κρινειs τον ετερον σεαυτον κατακρινειs
ㅇ. 무궤 역주(譯註)
Διο(율법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면서 율법으로 범법자를 심판하는 까닭에)
율법(律法)을 범(犯)하면서 율법(律法)으로 심판(審判)하는 모든 사람이여!
당신은 당신의 범법(犯法)행위에 대해 변명(辨明)할 수 없습니다.
γαρ(변명할 수 없다는 내용 보충설명) 남을 심판(審判)하는 그 율법
(律法)으로 당신이 자신을 거꾸로 심판(審判)하기 때문입니다.
~ whoever judges others , for when you judge another
you condemn yourself by it to pass judgement upon him.
註)①남을 판단(判斷)하는 사람은 모두가 범죄자(犯罪者)로 오해(誤解)받을
수도 있게 해석(解釋)될 수 있는 성구(聖句)이다. 원문(原文)을 정확(正確)
하게 이해(理解)하게 되면 율법(律法)을 어기면서 바로 그 율법(律法)을
가지고 남을 판단(判斷)정죄(定罪)하는 자들에게 한 말씀인 것을 알 수 있다.
로마서 2장 37절 13장 1-7절에 율법(律法)을 행(行)한 이들에게 범죄자
(犯罪者)들을 판단(判斷)심판(審判) 다스리는 권한(權限)을 주셨다고
기록(記錄)되어있다.
② 십계율법(十誡律法)을 맡은 모세가 담당(擔當)한 정죄(定罪)의
직분(職分)(고후 3장9절, 히브리서3장5절)과 천사(天使)들의 봉사(奉仕)
(히브리서1장14절)와 하늘의 정사(政事)와 권세(權勢)들의 보좌(寶座)
(에베소서5장10절) 그리고 부모형(父母兄)의 친권(親權)이 바로 율법십계
(律法十誡)의 권세(權勢)들에 속(屬)하고, 루스벨이 율법(律法)을 맡은
하늘 정부(政府)의 수장(首長)중 하나였다가 이 말씀처럼 자기 자신은
율법(律法)의 면책특권(免責特權)=최상권(最上權)을 가지고 있으니
십계(十誡)를 마음대로 어겨도 죄(罪)가 되지 않지만 다른 이들은
이 하나님의 율법(律法)으로 자신에 의해 심판(審判)형벌(刑罰)을
받아야한다는 입장(立場)을 취(取)함으로 타락(墮落)의 길로 들어섰던
것이다.
통치(統治)행위 운운(云云)하며 잔혹(殘酷)한 범죄(犯罪)를 저질렀던 현대
(現代)의 독재자(獨裁者)들이 누구를 본(本)받았는가를 알 수 있다.
복음진리(福音眞理)는 하나님이실지라도 율법(律法)에 의해 판단(判斷)받아
흠(欠)이 없어야만 심판(審判)할 자격(資格), 구원(救援)할 자격(資格)을
갖추게 된다고 강(强)하게 주장(主張)하고 있다. (로마서 3장 4절-6절,
3장 25절-26절)
③ 산상보훈(山上寶訓)중의 7장 1절-5절 말씀 역시 이 성구(聖句)와 같은
의미(意味)로 해석(解釋)되어야 한다고 본다.
④ 로마서 2장 13절의 율법(律法)을 가진 자들, 아는 자들이 아닌 율법
(律法)을 행(行)하는 자를 천(天)은 의인(義人)으로 인정(認定)하신다는
진리(眞理)에 의해 기독교(基督敎) 교리(敎理)는 심판(審判)받게 될 것이다.
마태복음 7장 21절의 예수님의 말씀처럼.
第十三. 2장 14절~15절
ㅇ. 개역본(改譯本)
율법(律法)없는 이방인(異邦人)이 본성(本性)=천성(天性)으로 율법
(律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律法)이 없어도 자기(自己)가
자기(自己)에게 율법(律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良心)이 증거
(證據)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訟事)하며 혹은 변명(辨明)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律法)의 행위(行爲)를 나타내느니라.
ㅇ.Greek 원문(原文)
Οταν γαρ εθνη τα μη νομον εχοντα φυσει τα του νομου
ποιωσιν αυτοι νομον μη εχοντεs εαυτοιs εισιν νομοs .
οιτινεs ενδεικνυνται το εργον του νομου γραπτον εν ταιs
καρδιαs αυτων συμμαρτυρουσηs αυτων τηs συνειδησεωs
και μεταξυ αλληλων των λωγισμων κατηγορουντων
η απολογουμενων.
ㅇ. 무궤 역주(譯註)
본성(本性)적으로는 기록(記錄)된 돌비의 율법(律法)을 가지지 못한
이방인(異邦人)들이 율법(律法)에 적혀있는 행위(行爲)를 할 때에는
언제든지 똑같은 이방인(異邦人)이지만 영혼(靈魂)속에 율법(律法)의 행위
(行爲)가 기록되어있음을 드러낸 사람들이-모본(模本)이 됨으로- 그들
이방인에게 율법(律法)이 됩니다.
그리고 이방(異邦)민족(民族)에 속한 자
(者)들의 양심(良心)도 스스로를 -의인(義人) 또는 죄인(罪人)이라고-
변호(辯護)하든지 고발(告發)하든지 하여 선(善)을 행(行)한 이방인
(異邦人)들과 함께 증거(證據)할 것입니다.
When Gentiles~ do by nature what the law requires, among
them those who show that what the law requires is written
on their hearts are a law to themselves while their
conscience also bears witness for their
conflicting thoughts accusing or perhaps excusing them.
註1)본성(本性)=천성(天性)이 선(善)하느냐 악(惡)하느냐는 동서양의 종교
(宗敎),철학(哲學)의 논쟁(論爭)에 대해 성서(聖書)는 인간(人間)이 선천적
(先天的)으로 율법(律法)에 일치하는 흠(欠)없는 영혼(靈魂)으로 태어났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방인(異邦人)이 율법(律法)을 행(行)할 능력(能力)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율법(律法)을 행(行)할 수 있겠는가?
모든 인간(人間)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罪人)이라는 기독교(基督敎)의
교리(敎理)가 천(天)의 구속(救贖)진리(眞理)와 완전(完全)히 반대(反對)
되는 마(魔)의 교리(敎理)임이 판명(判明)되는 성구(聖句)이다.
그리스도 탄생(誕生)이전(以前)의 옛 조상(祖上)들에게만 이 구절(句節)이
적용(適用)된다고 하는 가르침 역시 천(天)의 공평성(公平性)에 전적(全的)
으로 배치되는 억설(臆說)임이 분명(分明)하다.
이방(異邦)여인(女人) 사르밧 과부(寡婦)나 나아만, 고넬료 등(等)을 의인
(義人)으로 인정(認定)하셨던 기록(記錄)들을 상기(想起)하라.
오늘날 역시 종교(宗敎), 의식(儀式), 단체(團體)와는 상관(相關)없이 살고
무신론자(無神論者) 혹(或)은 이방인(異邦人) 취급(取扱)을 받는
이들 가운데 백부장과 같이 현대(現代) 이스라엘이라는 기독교인(基督敎人)
보다 훨씬 큰 믿음을 가진 이들이 존재(存在)하고 있다고 이 구절(句節)은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들이 그리스도 복음(福音)의 차원(次元)에
이른 이들 즉 세상(世上)의 후사(後嗣)들은 아니지만.
註2) οιτινεs 는 관계대명사(關係代名詞) who, whoever에 해당하는
접속사(接續詞)이다. 당연히 그 선행사(先行詞)는 αυτοι νομον μη
εχοντεs 즉 똑같이 문자(文字)로 기록(記錄)된 십계율법(十誡律法)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율법(律法)을 행(行)하며 살고있는 이방인
(異邦人)들이 된다.
동서양(東西洋)의 성인(聖人) 현인(賢人)들의 삶과 가르침, 가까이 있는
형제(兄弟) 이웃의 생애(生涯)가 이방인(異邦人) 신분(身分)의 죄인(罪人)
에게는 율법(律法)이 된다는 의미(意味)이다.
성인(聖人)의 모본(模本)은 율법(律法)보다 더 깨끗한 거울이 되어
이방인(異邦人) 자신(自身)을 비춰볼 수 있게 해준다.
註3) ‘양심(良心)은 타고난(先天的) 존재(存在)이다.’는 것을 확실(確實)히
밝혀주는 구절(句節)이다.
천(天)과 마(魔) 천사(天使) 귀신(鬼神) 선인(善人) 악인(惡人)이
피조물(被造物ex.짐승들)과 다른 점(點)은 바로 이 양심(良心)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성(神性)=창조성(創造性)=자존자(自存者)의 존재(存在)이기에 모든 인류
(人類)는 천(天)의 분신(分身)들=자녀(子女)들이라 불리울 수가 있는
것이고 천자(天子)의 자격(資格) 즉 천(天)의 완전(完全)하신 수준(水準)에
이를 가능성(可能性)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이요
이 자격시험(資格試驗)에 합격(合格)한 하나님의 아들딸들이 천(天)의 정부
(政府)=우주정부(宇宙政府)의 공동통치자(共同統治者)가 되는 것이다.
第十四. 2장 29절 下
ㅇ. 개역본(改譯本)
~ 그 칭찬(稱讚)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 니라.
ㅇ. Greek 원문(原文)
ου ο επαινοs ουκ εξ ανθρωπων αλλ’ εκ του θεου
ㅇ. 무궤 역주(譯註)
속이 유대인인가 , 영혼(靈魂)이 할례(割禮)를 받았는가의 인정(認定)은
사람으로부터가 아니고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집니다.
~the praise that he is a real Jew is not from men
but from God.
註) ① 이 구절(句節)의 중요성(重要性)은 다음 3장 1절에 언급(言及)된
유대인이 육체적(肉體的)이스라엘人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요
참유대인=참할례자(割禮者) 즉 시험(試驗)에 합격(合格)하여 자격(資格)을
하나님께 인정(認定)받고 그 신분증(身分證)으로 영혼(靈魂)에 할례(割禮)의
표(表)를 가진=중생(重生)한 144천(千)의 지구(地球)의 상속자(相續者)들을
가리키고 있다는 점에 있다.
② ου는 관계대명사(關係代名詞) 소유격(所有格)이다. επαινοs는
praise. approval의 뜻이니
하나님께서 참유대인이라고 인(印)친 사람들에 관(關)한 언급(言及)이다.
③ 우주(宇宙) 최후(最後)의 결전(決戰)(참조: 계시록(啓示錄)의 칠재앙
(七災殃))이 지구(地球)상에서 벌어질 때 아벨의 때부터 계시록(啓示錄)의
7재앙(災殃) 시대(時代)까지 각 시대(時代)에 합격(合格)한 천(天)의 인
(印)을 받은 144천(千)이 한 무리가 되어 그리스도의
증인(證人)이 될 것이다.
第十五. 3장 3절
ㅇ. 개역본(改譯本)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廢)하겠느뇨?
ㅇ. Greek 원문(原文)
Τι γαρ ει ηπιστησαν τινεs μη η απιστια αυτων την πιστιν
του θεου καταργησει;
ㅇ. 무궤 역주(譯註)
γαρ(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비밀에 대한 보충설명)
우리가 주장(主張)하려는 바가 무엇입니까? 표면적(表面的)유대인들이
우리가 전(傳)하는 그 하나님의 믿음(=비밀의 믿음=하나님의 약속)을
폐(廢)할 수 있겠습니까?
For what shall we say them? Because outward Jews
did not believe ~ .
註) ① Τι γαρ 다음에 ερουμεν이(mean, intend, declare, assert)
생략(省略)되었다고 본다.
τινεs(someone)는 불특정(不特定)의 어떤 사람들이 아니라 γαρ가 앞의
내용(內容)들과 연결(連結)해 주는 접속사(接續詞)이므로 유대인이라
자칭(自稱)하고 육체(肉體)의 할례(割禮)의 표(表)를 갖고있지만
복음(福音)의 믿음은 가지고있지 않은 표면적(表面的)유대인을 받는 대명사
(代名詞)로 보았다.
② 성서(聖書)에 기록(記錄)된 사건(事件)들은 진짜와 가짜, 참과 거짓
사이에 벌어지는 싸움이라 할 수 있다.
참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 참하나님과 거짓 하나님, 참신자(信者)와 거짓
신자(信者), 다이아몬드와 인조(人造)다이아몬드, 양(羊)과 흰 염소를
범인(凡人)은 구별(區別)하기가 거의 불가능(不可能)하고 보석(寶石)감정인
(鑑定人)조차도 철저히 속을 때가 있다 한다.
생명과(生命果)의 위조품(僞造品)이 바로 선악과(善惡果)인데 선악과
(善惡果)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아서 더 보암직하고 더 먹음직하고 더
탐스럽다고 성서(聖書)는 기록(記錄)하고 있다.
참유대인과 표면적(表面的)유대인은 하얀 양(羊)과 검은 염소와 같이
범인(凡人)이 쉽게 구별(區別)할 수 있는 그런 차이(差異)가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보통(普通) 양(羊)하면 하얗고 염소는 까만 색의 짐승이라
간주(看做)하고 그리스도께서 양(羊)과 염소를 갈라내시겠다는 말씀을
쉽게 받아들이지만 하얀 염소는 양(羊)과 구별(區別)하기가 쉽지 않다.
쉽게 구별(區別)이 된다면 그리스도께서 구태여 갈라내실 필요가 없다.
③ 참그리스도와 적(敵)그리스도를 구별(區別)하는 단 하나의 가장 확실(
確實)한 사건(事件)이 바로 십자가(十字架)의 사건(事件)이다.
십자가(十字架)에 못박는 천(天)과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힘 당하는 천(天)
이 양자(兩者)사이에서 진위(眞僞)를 범인(凡人)도 쉽게 구별(區別)할
수 있다. 참그리스도가 바알세불 즉 마왕(魔王)이란 이름으로 비난
(非難)받고, 십자가(十字架) 형벌(刑罰)을 가(加)하는
적(敵)그리스도가 천자(天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第十六. 3장 5절~9절
ㅇ. 개역본(改譯本)
그러나 우리 불의(不義)가 하나님의 의(義)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하리요?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震怒)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不義)하시냐?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世上)을 심판(審判)하리요.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豊盛)하여 그의 영광
(榮光)이 되었으면 어찌 나도 죄인(罪人)처럼 심판(審判)을 받으리요.
또는 그러면 선(善)을 이루기 위하여 악(惡)을 행(行)치 않겠느냐(어떤
이들이 이렇게 우리를 비방(誹謗)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 저희가 정죄(定罪)받는 것이 옳으니라.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罪)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宣言)하였느니라.
ㅇ. Greek 원문(原文)
ει δε η αδικια ημων θεου δικαιοσυνην συνιστησιν τι
ερουμεν ; μη αδικια ο θεοs ο επιφερων την οργην κατα
ανθρωπον λεγω; μη γενοιτο.
και μη καθωs βλασφημουμεθα και καθωs φασιν τινεs
ημαs λεγων οτι ποιησωμεν τι κακα ινα ελθη τα αγαθα;
επει πωs κρινει ο θεοs τον κοσμον; ει δε η αληθεια του θεου
εν τω εμω ψευσμτι επερισσευσεν ειs την δοξαν αυτου τι ετι
καγω ωs αμαρτωλοs κρινομαι; ων το κριμα ενδικον εστω.
τι ουν; προεχομεθα; ου παντωs .
προητισαμεθα γαρ Ιουδαιοs και Ελληναs πανταs
υφ αμαρτιαν ειναι.
ㅇ. 무궤 역주(譯註)
(우리가 전(傳)하는 복음의 내용-하나님이 죄인(罪人)을 사랑하신다는
그 약속의 말씀으로) 우리들의 불의(不義)는 (표면적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불의와는 달리) 하나님의 의(義)를 드러낼 목적(目的)으로 행(行)해진 것
이기 때문에 (당신을 위해 일한 우리에게 불의를 행했다고) 진노(震怒)의
심판(審判)을 내린다면 하나님이 불공평(不公平)한 분이 되지 않겠느냐?
(하나님을 위해 일한 대가로 상(償)-의(義)롭다 함-을 받는 것이 공평
(公平)하다는 논리(論理) 즉 하나님이 시킨 일을 잘한 유대인에게는
상(償)을 잘못한 이방민족에게는 벌(罰)을 내리는 것이 공평(公平)하다는
논리(論理))는 내용(內容)을 우리가 복음(福音)의 비밀(秘密)이라고 주장
(主張)=전파(傳播)하려고 합니까?
사람의 법(法)에 따라 말한다 해도 결코 그런 내용(內容)을 전파(傳播),
주장(主張)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의 신분이 아닌 사람의
탈을 쓰고서도 결코 그런 논리(論理)를 펼칠 수는 없다고
주장(主張)합니다.)
만일 그러한 논리(論理)가 진실(眞實)이라면(=하나님의 의(義)를 드러내기
위해 불의(不義)를 행한 우리는 심판(審判)하지 않고 상(償)을 주신다는
내용이 진실이라면) 하나님이 어떻게
세상(世上)=이방(異邦)민족을 심판(審判)할 수 가 있겠습니까?(하나님
자신이 불의(不義)를 행(行)하도록 사주(使嗾)한 결과(結果)가 됩니다.=
결과적(結果的)으로 하나님을 교사범(敎唆犯)으로 취급하게 됨)
γαρ(δε) 하나님의 진리(眞理)가 하나님께 영광(榮光)을 돌리기 위해 행
(行)한 나의 거짓에 의해 더욱 풍성(豊盛)하게 드러났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위해) 거짓을 행(行)한 내가 어떻게 (자기의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죄를 지은) 죄인(罪人)들처럼 심판(審判)을 받겠습니까?
그러니 오히려 상(償)을 받아야한다고 주장(主張)하고 그래서 어떤 이들
(자칭 유대인들)이 우리가 하나님의 선(善)하심들이 드러나도록 하기 위해
악(惡)한 일들을 행(行)하자고 가르친다고 모함(謀陷)하는 바와 같은 비방
(誹謗)을 우리가 받아 마땅합니까? 그러한 주장(主張) 가르침은 표면적
(表面的)유대인인 그들의 것이고 따라서 그 같은 비방(誹謗)도 그들이
받아 마땅합니다.
ουν(자칭(自稱)유대인의 이 같은 가르침은 비난받아야 한다는 전제
(前提)하에서) 참유대인인 우리가 전(傳)하는 복음(福音)의 내용(內容)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비밀(秘密)을 맡은 우리가 신분(身分)상으로
다른 이들(이방민족이나 표면적 유대인들)보다 뛰어난 면(面)이 있어서
죄(罪)를 지어도 심판(審判)받지 않는다고 주장(主張)하고 있습니까?
우리 역시도 외적(外的) 신분(身分)상으로는 그들보다 낫게 하나님께 인정
(認定)받는 점(點)이 결코 없습니다.
γαρ(결코 낫게 대우받지 않는다는 사실 보충설명)
죄(罪)의 지배하(支配下)에 있는 모든 이들 유대인으로부터 헬라인까지
(당연히 우리자신들도 포함한 모든 이들)를 우리 스스로 이미
(1~2장에서) 고발(告發)했습니다.
But what shall we say that God is unjust if he will inflict
wrath on us although our wickedness serves to show
the justice of God? Not at all.
I can't insist it as humanbeing.
if it is true how could God judge the world?
(But) For what shall we say (is) that even if through
my falsehood God's truth abounds to his glory , why am I
still being condemned as a sinner? And shall we
be slandered as false Jews charge us with saying that we
insist that 'let us do evil that good may come?
(By no means)
it is just that the condemnation is theirs.
Then is what we shall say that we, real Jews, have
any better than the false Jews physically?
No, not at all.
For I already(Romans chapter 1-2) accused all men
under the power of Sin.
註1) ① 개역성경(改譯聖經)중 가장 이해(理解)되지 않도록 번역(飜譯)된
성구(聖句)로 천(天)과 마(魔)의 주장(主張)이 첨예(尖銳)하게 대립(對立)
되고 있는 그런 부분(部分)이다.
② 3장 3절의 τινεs 가 여기 다시 등장(登場)한다. 가짜 유대인=자칭(自稱)
유대인의 복음(福音)-천(天)과 같은 최상권(最上權)자의 통치행위
(統治行爲)는 율법(律法)이 왈가왈부(曰可曰否)할 수 없는 면책특권
(免責特權)에 속(屬)한다는 사단의 맨 처음 주장(主張)과 같은 유대인은
면책특권(免責特權ex. 살인면허)을 가진 천(天)의 선민(選民)이라는
표면적(表面的) 유대인의 가르침이 여기 드러나 있다.
③ 그리고 사단과 그의 추종자(追從者)들이 그들 자신(自身)의 복음(福音)을
마치 천(天)과 참유대인들이 전파(傳播)하고 있는 그 복음(福音)인 것처럼
뒤집어씌우고 그 내용(內容)으로 천(天)과 천자(天子)들을 비방(誹謗)하는
모습을 알게 하는 문장(文章)이다.
④‘살인(殺人)도 하나님과 함께 하면 죄(罪)가 되지 않는다’는 가르침은
마왕(魔王)에게서 나온 것이다.
제비 다리를 부러뜨리고 치료(治療)하는 은혜(?)를 베푸는 놀부 심보는
천(天)의 심(心)이 아니다.
註2) ① 3장 9절은 원문(原文)을 해석(解釋)할 때에도 문법(文法)을 잘못
적용(適用)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즉 복음(福音)이 진짜에서 가짜로 바뀔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② γαρ는 앞 문장(文章)의 내용(內容)-우리 참유대인들도 결코 하나님께
특별 대우(待遇)받는 자가 아니라는-에 대한 더 폭(幅)넓은 이해(理解)를
위해 9절이 써졌다는 것을 알게 한다.
③ προητισαμεθα는 이미(προ앞에서) 고발(告發)했다는 뜻이니
로마서 1~2장에서 불의(不義)를 행(行)한 자들을 고발(告發)한 내용
(內容)을 가리킴이 분명(分明)하다.
④ πανταs υφ αμαρτιαν ειναι 이 문장(文章)의 번역(飜譯)은 로마서
복음(福音) 전체(全體)를 좌지우지(左之右之)할 만큼 중요(重要)하다.
영어(英語)로는 all men are under the power of Sin으로 우리말 성경
(聖經)과 같이 번역(飜譯)되어 있다.
ειναι는 Be동사(動詞)의 부정사형 to be인데 이 to 부정사를 서술적
(敍述的)용법(用法)으로 보면 현(現)기독교(基督敎)교리(敎理)에 토대
(土臺)를 제공(提供)해 주는 그 같은 해석(解釋)-모든 사람이 다 죄
(罪)아래 있다-이 나오게 된다. 그러나 이 ειναι를 문맥(文脈)에 맞게
πανταs (all)를 한정(限定)하는 형용사(形容詞)적 용법(用法)으로 보면
죄(罪)아래 있는 모든 사람들이라는 의미(意味)로 해석(解釋)된다.
‘모든 사람이 죄(罪)아래 있다’와 ‘죄(罪)아래 있는 사람’ 이 양자(兩者)의
의미(意味)는 천양지차(天壤之差)이다.
복음(福音)=그리스도의 율법(고전 9장21절, 마태복음16장 24절 19장29절
10장 34절~39절)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合當)하지 아니하다.’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왜곡(歪曲)
되게 해석(解釋)하는 기독교회(基督敎會)의 실상(實狀)에 가슴 치며 애통
(哀痛)하는 이들은 어디에 있는가?
부모(父母)나 자식(子息)의 몸뚱이를 자신의 양심(良心)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지극히 당연(當然)한 말씀으로 이 구절(句節)들을 풀어 줄
이들에게 복(福)있을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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