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 아직도 부족 빌 3장 12절
믿음의 길은 쉬는 때가 없고 믿음의 짐은 벗을 날이 없다. 그리하여 나는 늙어 죽을 때까지 복음의 사신(使臣)이 되려하나 항상 부족의 감을 금치 못한다. 바울선생은 높은 사도이시고 처음으로 이방의 전도의 문을 열어놓고 하나님이 없는 흑암에 천국을 소개하여 하나님 앞에 조금도 부끄러울 것 없건 만은 그의 간증하는 말은 내가 임의 얻었다 함도 아니요 완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하였으니 높이 성공의 길에 오른 선생이 이렇게 간증하심은 참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되었다.
나는 금년에 병으로 성직을 사면하려 하였더니 교직들이 듣지 않고 기도할 수 있고 설교할 수 있는 한 우리를 떠나실 때까지 모시겠다 하여 심방도 그만두시고 가만히 계시라 한다. 나는 그 말이 너무 감격하여 금년에 또 파송을 받았다. 그러나 몹시도 쇠약 하여 한 시간 동안 계속 연속 설교가 난하고 또 선의후실(善意後失)하여 성서연구에 전력하지 못한다. 이렇게 부족하고 어찌 성역을 감당할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그보다도 자신의 회개이다. 한번은 비몽사몽간 평양에 여행하여 김찬희(金燦熙)목사를 만나 몹시 반가워하여 어느 시냇물 가에 가서 떡을 떼어 먹으며 교회 혹 세상일을 제론(提論)하다가 같이 다른 곳에 가서 소요하며 이곳에 정차장이 몇 리나 되는 가 하니 김 목사 말이 한 30리 외에 있다 한다. 나는 김 목사를 작별하고 길을 떠나 정차장을 향하고 오는 중이다. 오다가 어느 큰 건물로 들어갔는데 그 집에서 내려다보니 이 맑은 강수가 서쪽으로 흐르고 그 건물은 크기는 하나 다 완공한 집 아니요 모래로 담만 쌓았는데 무너질 염려가 불무하다. 같이 가던 어린아이가 있었는데 그 집을 나가야겠는데 자꾸 돌아가도 나갈 곳이 없다. 그리하여 나는 어린아이부터 구원하리라 하고 안어서 문 밖으로 넘겨주고 나는 나아갈려 해도 나아갈 수 없다. 무슨 까닭인지 아이는 내어 보내고 나는 나아갈 수 없어 심히 고민하여 여러분 나를 이 문밖으로 넘겨주시오 하니 어느 중년신사가 나를 들어 그 문에 넘겨주었다.
깨니 꿈이다. 이 꿈을 깨고 곧 엎디어 기도하였다. 나는 아직도 부족하여 천당 갈 준비가 없음을 확실히 깨닫고 근일에 성경을 검토하여 보기 시작하였다.
우리 숙자(淑子)는 나를 도와주노라고 고생을 많이 겪고 청진 가 있을 때 어항(魚缸)에 교회를 신설하고 일 년간 생활비가 없어 숙자가 남의 바느질도 하고 빨래도 하고 근근 생활하다 청진 본교회로 들어온 후에도 역시 생활이 없어 하도 고생이 심하니 하루는 숙자가 그만 서울로 올라가자 한다. 나는 이곳에 하나님의 사명을 가지고 와서 아직 성공하지 못하고 교회설립이 무릇 5처이나 3처만은 전도인을 두고 독립교회가 되어도 2처는 아직 불완전하니 조금 기다려 보자고 숙자의 고언(苦言)을 듣지 않았다.
그러다 청진항에 총소리가 들리고 공중에서 탄알 떨어져 교당 근처 집들이 다 타버렸다. 나는 숙자와 같이 포화를 피하여 가는 중 큰 고개를 넘다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을 뻔하여 그 숙자는 하나님을 부르며 통곡하되 아 산중에서 저 노인이 죽으면 어쩌나 하였다. 나는 다행히 죽지 않고 살아났다. 그뿐인가 나는 4-5개월간 큰 병으로 대소변을 받아 내고 병구원 하느라고 그 추운 일기에 큰 고생을 겪었다. 이런 고생을 겪은 숙자이니 나에게 아내가 아니라 은인이 아닌가.
그러나 나는 아직 마음에 온전한 회개가 없는 고로 종종의 괴로운 말을 숙자에게 준 적이 많다. 그것은 다른 까닭이 아니라 청진서 올라 올 때 어느 앞 못 보는 교매(교회자매敎會姊妹)가 손자 삼남매를 데리고 왔다. 그 내용은 그 노인의 아들이 죽고 과부 며느리가 다른 남자와 같이 살고 자식 삼남매를 앞 못 보는 시모에게 맡기었다. 이 노인은 손자 3남매를 데리고 도보로 서울을 왔다. 숙자가 그 노인의 정경을 불쌍히 여겨 6세 된 여아를 데리고 와서 집에서 기른다. 넉넉하여 기르는 것 아니라 인생이 가긍(可矜)하여 동정으로 기른다. 숙자는 이 아이에게 대하여 너무 고혹(苦酷)하게 취급하고 한 번도 칭찬이 없고 공갈과 구박이 심하다. 물론 미워서가 아니고 사람을 만들려고 함이나 너무 심하여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 번도 평화스러운 말이 없으니 이것은 교육이 아니고 야만적 교육이라. 나는 그 공갈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파 불쌍히 여기고 그렇게 공갈하지 말라고 목사 집에 날마다 온 종일 공갈한 소리가 쉬지 않으니 남이 부끄럽고 주 앞에 합당치 못하다고 숙자에게 권고하면 숙자는 듣지 않고 더욱 심하다.
그리하여 나는 괴로운 말을 숙자에게 한 적이 많았다. 권고가 지나서 감정이 되어 숙자의 마음을 괴롭게 한 것이 후회 되여 다시는 듣기 싫어하는 권고의 말이라도 하지 않으려고 결심하였다. 아직도 부족한 것이 이것이다.
그 뿐인가 나는 청진서 올라와 보니 교회가 두 파로 나누이고 가장 알력이 심하였다. 이것은 교역자들의 정의감이 없는 까닭이다. 예전에 친일 행위 하던 사람들이 다 고등교권(高等敎權)을 잡고 있으니 아직도 이에 아부하는 자가 일파가 되어 비아부자(非我富者)를 탄압하고 공격하여 마지않으니 가증한 일이다. 친일자자 아무리 교권을 잡고 있을지라도 거기 아부하는 것이 부끄러운 줄 모르니 교역자들의 정의감이 어디 있는가. 나는 자연 친일자의 행위를 공격하고 거기 아부자들을 또한 칭찬할 수 없다.
내가 강릉에 있을 때 직접 치욕을 보고 각축(角逐)을 당하였다. 너무도 그들의 비행이 많음으로 자연 좋은 말을 할 수 없는 고로 감정에 흐른 말이 있었는데 이것 까지도 나는 함구령을 내렸다. 나는 교역 40여년에 성경도 아노라고 설교도 하노라고 교회도 설립하노라고 세상 지식도 세상 경험도 불무하지만 그것 가지고 천국 가는 것 아닌 것은 확실히 깨닫고 나의 성행에 대하여도 고치지 못함이 많아 아직도 부족하다는 감이 많은 중 또 몽조(夢兆)가 있으니 이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몽조(夢兆)로 교훈하심이 분명한지라. 주여 아직도 부족하오니 완전케 만들어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