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걷이가 끝난 무렵의 들판은 한갓지면서도 아늑함을 선사한다. 신룡성당(주임 : 서동완 비오) 감문공소로 향하는 길은 노을빛에 물들어 유난히 아름답다. 공소라고는 하지만 본당설립과 함께 본당관할 2구역으로 편입된 감문공소에는 50-60명의 신자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고, 신학생 복음화과정으로 파견나온 대구가톨릭대학교 오용진(스테파노) 신학생이 공소에 거주하며 공소를 지키고 가꿔가고 있다.
신자들 스스로 전교하여 기반을 이룬 감문공소는 성베네딕도회 나현승(스테파노) 신부가 김천황금성당 주임으로 사목하던 1970년에 완공된 공소로, 현재는 감문면, 개령면, 어모면 일부, 김천시 일부를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신룡본당이 설립되면서부터는 온전히 공소라는 개념보다는 본당에 속한 하나의 구역으로 바뀌었다. 그도 그럴 것이 2000년 11월 설립된 신룡성당은 신룡공소, 감문공소, 개령공소 세 개의 공소가 합쳐 이루어진 본당으로, 본당 관할구역을 전체 세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사목하고 있다. 1구역은 신룡 인근지역, 2구역은 감문공소 일대, 마지막 3구역은 개령공소 인근지역을 포함한다. 따라서 감문, 개령공소의 경우, 공소의 성격을 지니면서 본당의 구역에 속하는 독특한 경우인 셈이다.
주일미사 역시 두 곳 공소의 차량운행 봉사자들이 감문공소 신자들과 개령공소 신자들을 태워 본당으로 가서 미사참례를 하고 있다. 서호근(필립보) 형제는 “평일미사를 매주 수·금요일 저녁 7시 30분에 감문공소와 개령공소에서 하는 것은 공소 노후화를 막고 관리하고자 하는 이유도 있지만, 사라져가는 공소에 대한 아쉬움과 공소를 지키고 싶은 어르신들의 마음이 크게 작용한 까닭.”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감문공소, 개령공소에 저녁미사가 있는 날이면 본당 신자들도 두 곳의 공소를 찾아가서 미사에 참석하는데, 본당과 공소를 오가며 미사에 참례하는 그들만의 색다른 기쁨도 있다고 한다.
미사가 끝나고 공소신자들과 함께 한 다과회 자리에서 만난 전제술(레몬시오) 전임 회장. 전 회장은 40여 년 넘는 세월을 평신도 전교사로 교회를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해 왔다. 스스로도 “하느님으로부터 전교의 은총을 받은 것 같다.”고 고백하는 전제술 전임회장은 “공소에 사람들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을 모아 교리를 가르치고 마을마다 다니며 전교를 할 때는 아주 신이 나고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컸었지.”라며 번창하던 공소시절을 떠올리며 막걸리 한 잔을 맛있게 들이켰다.
2구역 감문공소 이은희(세레나) 구역장은 “감문공소 구역 안에도 세 개의 반이 있고, 전체 신자 수는 120명 정도지만 현재는 50-60명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며 “공소가 본당 2구역으로 편입되면서부터 본당 일에도 적극 협조하면서 공소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2구역 감문공소에서는 현재 남녀 혼성 레지오마리애 두 팀이 지속적으로 주회를 해오고 있다.
공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지켜 온 어르신들은 초창기 공소시절의 향수를 쉬이 잊지 못하고 추억하는 애틋함이 마음 깊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 신자들의 마음을 잘 알기에 서동완 주임신부는 “공소의 이점들을 살리고 또 연세 드신 분들이 많이 계시기에 앞으로도 계속 공소의 명맥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특히 본당이 들어서면서도 공소가 없어지지 않고 또 공소의 기능을 갖고도 서로 잘 융화되고 있기에 더 좋은 본당 소공동체의 모습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세 개 공소 신자들이 땀 흘려 이룬 하나의 본당이기에 본당과 공소에 대한 열성과 애착이 누구보다 크다.”고 설명해 주었다.
미사 때 반주를 맡은 전제옥(클레멘스) 형제는 “지난 9월에 주임신부님이 새로 오신 뒤로는 복음을 읽고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고 말하며 “미사 때마다 기도와 복음말씀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시는 신부님 덕분에 복음말씀을 실천에 옮기며 살려고 애쓰고 있다.”고 했다. 서동완 주임신부는 “부모들이 먼저 기도하고 복음을 읽을 때 자녀들도 따라온다.”고 말하며 “세상은 점점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려 하고 있고 사람들은 봉사도, 희생도 안 하려 하는데, 그럴수록 먼저 기도하고 복음을 읽어야 새롭게 쇄신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몇 명의 신자들이 모여 전교함으로써 동네에 신자 촌이 형성되고 공소가 들어서는 기쁨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며 신앙생활을 이어온 그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연로한 어르신들은 세상을 떠나고 젊은이들은 도시로 옮겨가 더 이상 전입도 없는 농촌이지만, 그 바쁜 일상 안에서 따뜻한 마음을 지닌 그들은 오늘도 생명줄 같은 신앙을 꿋꿋이 지켜가고 있다. |
첫댓글 아쉽네요~~
공소의 명맥을 계속이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