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라서 더 좋다
석현수
친구의 음악 발표회에 갔다. 우리 가곡을 들으면서 좋은 감상의 시간이 되시라 모셨는데, 순서를 마치고 보니 오히려 서툰 음악 때문에 여러분께 고통이나 드리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사회자가 너스레를 떨었다. 겸손한 매듭 말이 멋이 있어 음악회 분위기는 살아났고 청중들은 환호하며 앙코르encore를 연발 하였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발표자들은 아직 목이 트이지 않은 장끼 같아서 까칠한 소리로 목에서 소리를 빼는 수준이지만 아무도 그들의 실력을 문제 삼지 않았다. 왜냐하면 단상에 올라오는 모든 발표자가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이고, 노래는 단지 그들의 취미생활이니, 순수한 아마추어 동아리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발표회는 무료입장이고 거의 대부분, 출연자의 가족, 친지, 그리고 친구들이 관객이다. 모든 발표자들은 하얀 연미복에 빨간 나비넥타이를 매고 무대에 섰으니 하루 밤 관객을 위해 얼마나 공들인 모습인가. 음악회의 레퍼토리repertory 는 전부 생소한 노래들로 짜여있어 기성 성악가들을 흉내 내려야 낼 수 없는 것 들이었다. 아마추어의 순수함을 여과 없이 보여주려 했던 것 같다. 발표회는 어설픈 모양이 많았기에 더 좋았고, 오히려 곳곳에 숨겨둔 웃음보따리가 많아 어느 연주회 보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내가 속한 ‘화요수필’은 저명한 교수님 한분을 뫼시고, 도서관에서 글쓰기를 지도 받는 취미활동 모임이다. 화요일에 모인다하여 ‘화요수필 문학회’라고 부른다. 작품 합평도 받고 철 따라 문학기행도 하고 있다. 연말에는 친구의 음악 발표회처럼 그동안 닦은 기량을 한 곳에 모아 책으로 묶어 선을 보인다. 벌써 4번째의 창작집이다. 회원들은 상당히 주눅이 들고 쑥스러워 하였다. 왜냐 하면 여태껏 혼자 쓰고 읽던 것을 남들 앞에 내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쓴 글이 활자活字가 되어 나온다. 활자라는 말 뜻 그대로 글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자기 재능에 대한 미숙함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모두가 겸손하다. 친구가 음악회를 마친 다음날 ‘화요수필’ 제 4집이 나왔다.
글 솜씨야 물론 음악 발표회 때의 목청 튀이지 않는 수꿩 같은 노래 소리에 가깝지만, 깔끔한 연미복처럼 ‘화요수필’ 도 하얀 단장에 중앙에 금강초롱 서양화를 곁들였다. 표지그림은 수업에 나오는 화가 한분이 수고를 했다. 친구의 음악 발표회 관중이 가족에 한정된 것처럼 우리가 쓴 수필집의 독자는 모두 가까운 친구들뿐일 것이다.
책을 들고 도서관을 나오는 회원들에게 비록 박수 부대는 없었지만 노래 단원 못지않게 가슴이 뿌듯해 하며 집으로 갔다. 주위에서는 책을 내는 것에 대해 시선이 곱지 않은 사람도 있다. 부실한 책 때문에 책 쓰레기들이 늘어나고 독자들은 혼란스러워하며, 가뜩이나 수입에 의존하는 종이사정을 감안하면 자원 낭비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우리 ‘화요수필’은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공동으로 나누어 낸 적은 출판 경비로 우리는 큰 시험 무대를 가지는 셈이다. 지금 실력은 베스트셀러가 되어 전국을 강타할 가능성은 전혀 없으나, 나비의 작은 날개 짓으로도 언젠가는 태풍으로 커져 돌아올 훗날을 생각 한다. 서툰 몸부림을 치는 우리의 글 솜씨를 누가 나무랄 것인가?
백범의 처음 이름은 ‘김창수’ 이었지만 그가 감옥을 나온 후 김구金九라고 개명 하였다고 하며, 이름에서 아홉 구九자는 많은 의미를 갖는다고 백범은 설명하고 있다. 완전한 십十에 가까우나 꽉 차지 않은 숫자로서의 ‘구九’에 겸허의 심성적 표현을 담았다. 능력이 출중하여 꽉 찬 십十을 만들어 재앙을 부르느니 보다는 하나가 모자라게 사는 방법을 선택하는 백범 김구선생의 인품이 얼마나 멋있어 보이는가.
‘너무 완벽하려고 애쓰지 말라’는 이야기를 서로들 하곤 한다. 완벽하고자 하는 욕망은 누구나 가지고 살지 않겠는가. 그러나 우리가 너무 완벽하려다 보면 괜스레 이웃에게 불편을 주기도 하고 심지어 곁에 있는 가족 구성원들도 피곤하게 만드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애를 쓴다고 해서 완벽해 질 수만 있다면 간단한 수고야 아끼지 않겠지만, 사소한 실수들은 누구나 꽁무니에 달고서 살아가니 다소 모자라게 사는 것도 사람 사는 맛이다. 넘치는 것 보다는 약간 모자라게, 자기자리에 제대로 서 있는 사람이 아름답다. 아마추어는 아마추어다워야 한다. 이런 사람들이 오히려 서툰 프로보다 훨씬 돋보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