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랑마을기자단 신윤희
중랑마을人이란, 중랑구에서 다년간 활동해온 마을활동가분들을 발굴하고 그들의 마을활동기를 기록하는 마을기록활동입니다.
이번 중랑마을인에서는 소식지 특집 기획으로 중랑의 오래된 노포와 갓 시작한 신포를 찾아가보았습니다. 앞으로도 중랑마을에서 만날 다양한 사람들을 기대해주세요. |
2021년 8월 20일 금요일 오후 5시, 약속한 시간에 면목동의 국수공장을 들어서니 제면소 안주인 이분님 할머니께서 가게를 지키고 계셨다. 아침 일찍 국수를 만들면 오후2시쯤 일이 끝나는데 이광희 할아버지는 피곤함에 일찍 잠이 드셨다고 하신다. 어쩔 수 없이 이분임 할머니와 노포 인터뷰를 했다.
Q. 제면소 이야기 전에 두 분은 어떻게 만나셨는지 들려주세요.
우리는 둘 다 경상북도 상주군에 살았어요. 같은 경상북도라도 거리가 꽤 되는지라 그 당시에는 산을 막 넘어 댕겼어요. 스물두 살에 선을 봤는데 선보고 석 달 만에 결혼했어요. 결혼해서 나는 거기서 1년 시댁에서 살고 저 양반은 돈 번다고 먼저 서울로 올라왔어요. 1년 있다가 날 데리고 올라왔는데 시골에서 올라오니까 연탄 가는 거를 잘 못 보겠더라고 그래서 아주 고생을 했어요. 시골은 나무 장작으로 불 때다가 연탄을 사용했는데 꺼지면 주인집 할머니가 불을 붙여 주고 그랬죠. 지금 여기는 1988년에 왔어요. 특별한 해 여서 안 잊어버려요. 다섯 식구가 바로 여기서 (인터뷰 한 가게) 살았어요.
Q 제면소는 언제, 어떤 계기로 시작하시게 되신 거예요?
우리 양반(이광희 님) 여러 가지 일을 했어요. 피혁도 하고 미싱도 하고. 잘 했는데 공장이 문을 닫더라고. 그래 가지고 저 아래 시장으로 이사를 왔지 우리가. 애들은 셋인데 가게방에서 쌀가게 하면서 이렇게 살았어. 방 하나로. 그러다 저기 위에 이 국수 가게가 있다고 복덕방에서 소개를 하더라고. 저 밑에서 하던 쌀가게를 여기로 이사 와서는 국수 하면서 쌀가게도 했어요. 그런데 그 땐 집마다 시골에서 쌀을 갔다가 먹기도 하고 옆집에도 팔고 하니까 쌀가게가 안 돼요. 그래서 쌀가게는 접고 국수만 만들어 가지고 팔았죠. 처음에는 어려웠어요. 잘 안 되고. 절반은 사람이 하고 또 절반은 저 기계가 하는데 아침 6시쯤 하면 오후에 말려서 팔수 있게 잘라놔요. (보통 몇 시쯤 끝나나요?) 그거는 날씨에 달려 있어요. 비가 오고 그러면 하루 종일 안 마를 때가 있고. 요새는 한나절이면(오후1~2시쯤) 다 말라요. 날이 좋아서. 바람 불고 햇살 쨍쨍하니깐. 이게 다 오늘 나온 거예요. 근데 내일부터 장마가 온다고 그래서 전부 넣어가지고 비닐에 싸놨어요.
Q. 제면소 하시면서 힘들었던 때가 있으셨나요?
비가 오면 그때 힘들어. 말도 못하게 힘들었어. 갑자기 소나기가 오면 우리 둘이서 빨리 들여 놔야 하는데 그게 힘들어서 그때는 진짜 안 하고 싶어. 국수는 비 맞으면 안 되거든. 날씨를 잘 봐도 소낙비가 각 중에 오는 수도 있어요. 그럴 때가 힘들지. (장마 땐 어떻게 하세요?) 그땐 아예 안 빼지. 국숫집은 비 오는 날은 쉬는 날이에요.
Q. 반대로 제일 행복하셨을 할 때가 언제셨나요?
행복할 때는 애들이 이제 결혼하고 손주들보고 할 때죠. 다 잘 살고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 몸만 안 아프면 걱정이 없는데 힘이 많이 없어서 그게 그래. 할아버지도 이제 쉬어도 되는데 그냥 놀기가 뭐 해서 해오던 일이라 하는데 요새는 밀가루 한 포대를 못 드는 게 힘이 그만큼 없죠. 이제 팔십 초반인데 평생 무리해서 무릎이 그리 아프대요. 그래도 했는데 전에는 국수 가게가 그리 잘 안 됐어요. 근데 그거 뭐야, 한 3년 됐나? KBS 동네한바퀴에 나온 뒤로는 손님이 막 오는 거요. 그날 저녁에 전화통 불난다 소리 하더니 진짜 그랬어요. 정신 하나도 없더라고. 그래가지고는 일 년 팔 걸 다 팔아버리고 그랬어요. 내가 작년 7월에 장마로 열흘 동안 비가 왔을 때 말고는 하루도 안 쉬고 그래 일하다가 병이 나서 한동안 못했어요. 지금은 이제 괜찮고. 이제는 더 빼라 해도 못하겠어요. 할아버지도 다리가 아프고. 그래도 손님 많이 오니깐 좋더라고.
Q. 혹시 기억에 남는 손님은 있으세요?
어떤 사람은 여기가 방송에 나가니까 와서는 “아이고 할아버지” 하면서 할아버지를 방송을 봤는데 너무 안 됐다고 막 우시면서 우릴 걱정해주더라니깐. 할아버지가 그때 방송에서 이거(제면소) 물려줄 사람이 없다고 눈물을 좀 흘렸나 봐. 나는 우리 할아버지 우는 지도 몰랐어요. 그걸 보고 안 됐어 했나봐. 어떤 사람은 그날 방송에 우리 하고 같이 나온 가게가 있었어요. 소머리 국밥인가 했는데 그 집에 가서 사 먹고 여 오면서 그거 사 가지고 왔어요. 너무 고맙더라고요.
2019년 6월 KBS 김영철의 동네한바퀴에서 면목동 국수공장으로 이광희, 이분임 두분의 제면소가 나왔었다. 그 이후 많은 손님들이 국수공장을 찾았다고 한다.
Q. 두분이 제면소를 안하시면 이곳은 문을 닫는 건가요?
이게 옛날 기계라 이걸 누구한테 물려 줄 수도 없어요. 하려면 새 기계로 해야 되지. 이런 걸로는 우리 애들도 못하고.......애들도 대학 나와 가지고 좋은 직장이 있는데 이걸 하라고 하겠어요? 하루 잘 보내야 10만 원도 못 버는데. 옛날에는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어렵지. 우리는 아무 기술도 없고 시골에서 배운 것도 없고. 그래서 했지. 근데 이런 제면소가 사실은 거의 없어 가지고 젊은 사람이 이렇게 차려놓고 잘 하면 좋을 듯한데....... 이 국수가 공장에서 나오는 거 하고 국수를 말리는 방식이 달라서 맛이 달라. 요즘은 자연 바람으로 안 마르고 열로 말려요. 우리는 다 자연 바람으로 말리거든. 공장은 겨울에도 하고 여름에도 하고 그렇잖아요. 우린 그래 못 해. 조금만 잘못하면 다 부서지고. 근데 자연 바람으로 말린 거는 삶으면 탱탱하고 그리고 잘 안 퍼져. 손으로 직접 반죽도 하고 자연으로 말리다 보니깐 더 질긴 것 같아요. 또 밀가루도 1등품 쓰고.
Q. 두 분도 국수 자주 드세요?
우리는 지금도 점심때는 국수 먹어요. 우리 애들도 어릴 때 많이 먹었어요. 직접 다 만들어가지고 먹으면서 테스트를 했으니깐. 뭐 먹기 싫은 날은 안 먹고 밥 먹고 했지만 그래도 밥보다 국수가 좋대요. 할아버지가 잘하셨어. 그래서 지금 보면 내 이거를 잘했다 싶어요. 이 나이에 지금 누가 돈 버는 사람이 있어요? 쉽지 않아요.
Q. 여기 제면소 이름이 있나요? 간판을 본 적이 없어요.
이름 없어요. 여긴 입소문으로 퍼져가지고 찾아와요. 여기 앞에 국수 널어 놓으면 예뻐요. 사람들이 사진을 많이 찍어요. 그래서 찾아오나보더라고. 다닥다닥 붙여놓고 바람 불면 물결이 막 쳐요. 국수 물결이. 내가 봐도 예쁘다니깐. 근데 요새는 듬성듬성 내려놔서 별로 안 이쁘지. 중면 국수는 숫자가 많이 나오니까 듬성듬성하고 가는 소면이 좀 더 많이 하고. (면 굵기는 기계에서 하나요?) 예. 기계에서 조정을 하는데 칼이 있어요. 기계에서 칼을 조정해가지고 우동까지 해요.
Q. 면목동으로 오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피혁 공장에 저 양반이 당기다가 공장 문을 닫으니까 뭘 해 먹을까 했는데 저 양반 아는 사람이 이 면목동에다가 쌀가게를 냈대요. 그런데 그게 안 되니까 저희보고 “형님이 인수 받아서 하시오” 하는데 우리는 장사를 못하던 사람인데도 그거를 했어요. 거기서 쌀가게가 또 잘 안 돼 가지고 더 조그마한 데로 여길 사서 왔어요. 여기서 한 삼 년 하면서 요 앞에 옛날 집인데 그거를 샀어요. 여기서는 이제 일만 하고 저녁에는 저쪽으로 가죠. 이제는 30년이 넘었으니깐 여기가 내 고향 같아. 서울 와서 이사 많이 댕기다가 여 와서는 내 집이라고 이렇게 사니까 이사도 안 가고 그게 제일 좋죠.
Q. 면목동 이런 건 참 좋더라 이런 게 좀 있으신가요.
여기는요. 복지가 잘 돼요. 요새 혼자 사는 할머니들 할아버지들 많잖아요. 여기 복지회관이 있는데 거기서 점심이랑 운동하는 기구들도 많이 갖다 놔서 좋아요. 작년에는 할아버지가 혼자 가게 다 하고 국수 작업하는 건 내가 안 도와줬어요. 아파서. 국수 뺄 때만 도와주고 자르는 건 안 도와주고 혼자 다 했거든요.
Q. 사가정에 이제 시작하는 베이커리 가게가 있어요. 혹시 신포 가게에 노포의 경험담이나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한마디 해 주세요.
처음서부터는 돈 벌라고 해도 안 벌려요. 자꾸 하다 보면 손맛도 더 좋아지고 또 머리도 쓰고 이렇게 하다보면 빵도 더 잘 만들잖아요. 그래 꾸준히 하면 사람들이 그리로 가게 돼요. 둘이 그렇게 한참 하다 보면 될 거요. 딴 사람 쓰고 이러면 안 돼. 지금은 인건비가 비싸고 월세도 빠듯 할테니. 좀 바쁘더라도 뭐 바쁘면 좋고 돈 벌 때는 바쁘면 좋잖아요. 우리 양반은 엄청 구두쇠였어요. 돈을 안 써요. 한 푼 들어오면 한 푼 모으고. 그 모으는 재미로 살아. 뭐 쓸 때야 쓰겠지만은 낭비를 안 하고 모으니 좋은날도 오더라고요. 거 가게도 잘 됐으면 좋겠어.
이분임 할머니는 신포 가게에 대해 자세히 물으셨다. 어디서 하는지, 누가 하는지 물으셔서 설명을 해주며 신포의 제과를 선물하자니 무척 고마워 하셨다. 노포의 국수도 신포에 선물을 했다. 아마 신포도 이분임 할머님과 같은 반응이었을 듯하다. 그러자니 면목동의 신포와 노포가 직접 만난 것은 아니지만 서로 연결되는 기분이 들었다.
첫댓글 기자님이 두분의 인생이야기를 들어주시고 많은 이에게 전해주시는것 자체가 너무 아름다워요^^ 신포와 노포의 연결로까지... 멋집니다^^ 너랑나랑중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