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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번역의 현실, 남은 과제와 미래 전망
권대근
Ⅰ. 로그인
왜 한국은 세계적인 문학상을 수상하지 못했을까? 문학상 자체의 공정성 문제인가? 문학가의 수준 문제인가? 아니면 ‘한글’을 심사위원의 언어로 번역하지 못하는 번역가의 문제인가? 모든 문제들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기 마련이다.
한국문학이 영어권에 번역 소개된 역사는 1백 10년이 된다. 오랜 발아기와 60년대와 70년대의 출발기를 거쳐 이제는 발전기에 접어들어 있고, 머지않아 중흥기를 맞이하리라 본다. 올해초 국제펜한국본부는 한국번역원을 설립하였고, 에세이문예사는 한국문학세계화위원회를 구성하고 번역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회장 권남희)도 대표작영문번역선 발간을 기획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어권에 최초로 번역·소개된 작품집은 문헌상으로 보아 민담집인 『Korean tales』이며, 이는 1889년 Horace N. Allen에 의해 미국에서 출간되었다. 따라서 1889년은 한국문학의 해외 번역·소개의 원년인 동시에 영어권 번역의 원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는 구비문학으로서 이야기 모음집에 불과할 뿐 본격적인 번역·소개는 훨씬 이후의 일이다. 1922년에 James S. Gale)에 의해 김만중의 『구운몽』이 『The Cloud Dream of nine』이란 제목으로 번역·소개된 해를 기준한다. 많은 논자들도 본격적인 영어권 번역작품의 효시로 보고 있다. 따라서 본격적인 번역·소개의 시기를 영어권에서 보면 2019년 현재로 보아 약 100년에 달한다. 특히 한국문학의 해외 소개는 1980년 이후부터 ‘한국문학의 세계화’란 목표 아래 해당 기관과 여러 단체의 지원에 힘입어 차츰 본격화되면서 그동안 그나마 괄목할 만한 실적을 쌓아 왔다.
따라서 해외에서 출판된 자료만을 통해 번역 현황과 실태를 살펴보고, 우리나라 수필번역의 현황 자료 분석을 통해 문제점을 파악하고 나아가 앞으로의 과제와 전망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현황을 정확히 파악했을 때 미래의 방향 설정이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황과 실태는 앞으로 번역사업에 직접 참여하려는 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에 누구의 어떤 작품을 번역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조그마한 참고가 될 것이다.
Ⅱ. 문학번역의 현황과 문제점
한국문학의 영어권 번역·소개는 타 언어권에의 소개와 더불어 80년대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했고,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관련 기관이나 단체의 직접, 간접의 지원에 의해 획기적인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통계’에 의하면 연속 간행물의 번역분을 빼고 한국문학이 국내외를 막론하고 영어로 번역된 작품집 종 수는 총 247종이다. 장르혼합 8종, 현대시 89종, 고전시 24종, 현대시 혼합 9종, 현대소설 88종, 고전소설 6종, 고전·현대소설 혼합 1종, 현대희곡 2종, 고전희곡 2종, 고전수필 4종, 기타 14종으로 나와 있으며, 번역작품 총 수는 10,072편이다. 본고에서는 해외에서만 번역·출간된 현황파악을 위해 가장 최근의 조사자료인 곽효환의 논문 부록과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의 『한국문학 번역서지 목록』을 일차로 참고 자료로 삼았다. 참고로 본고의 통계는 1999년 10월 현재까지 자료다. 그 결과 한국문학이 영어권에 번역·출판된 단행본은 총 169종으로 파악되었다.
70년대에 12종에 불과하던 것이 80년대에는 76종으로 약 6배로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또 90년대에는 58종으로 나타난 데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 ‘한국 문학의 세계화’를 겨냥하면서 한국문예진흥원이 정책적으로 80년대에 20종과 90년대에 29종을 번역 및 출판지원을 했고,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서는 80년대에 한국 단편소설선 11종 번역과 희곡선 1종을 번역 지원했으며, 한국문학 진흥재단에서도 정부의 지원을 얻어 80년대에 12종과 90년대에 1종 번역을 지원한 결과다.
뿐만 아니라 비록 다른 지원 단체에 비하면 후발 지원 단체로 참여하긴 했지만 대산문화재단에서도 95년부터 4종의 번역 및 출판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를 볼 때 80년대와 90년대에 번역 총수가 134종인데 4곳의 지원단체에 의해 총 78종 번역이 지원에 의해 이루어진 것을 보아 자생적 번역은 56종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바꾸어 말해 번역 총수의 60%가 지원에 의한 결과며, 40%가 저자나 번역가들의 개인적인 노력의 결과로 나타나 있다. 그리고 위의 조사·분류에서 장르상의 균형을 보면 수필 번역이 거의 전무한 상태나 다름없다. 이런 점을 보아 앞으로 특히 현대수필의 번역이 있어야 하리라 본다.
외국에서의 한국 현대수필 번역작업은 전무하지만, 한국문학세계화위원회(권대근 위원장)이 주도적으로 수필번역사업을 펼쳐오고 있어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st [A Colletion of Pusan Poems and Essays] A Dream of a Sea Gull, 2nd [The Art of the Korean Classic Essay] 《갈매기의 꿈》, 3rd [The Collection of Korean Modern Essays in English] Birds Fly on the Their Left and Right Wings 《새는 좌우 날개로 난다》, 4th [The Yeong-Honam Essays, a Forest of the Prime of Life] 《장년의 숲》, 5th [Kim, Jong-hui's Collection of Essays] Will love come like a miracle?, 6th 한국현대수필대표영문번역선 [Anthology of the Best Essays Written by Korean Essayists] 《동방의 등불》, 등 6권의 현대수필번역선을 출간한 데 이어 2024년도에는 7th 한국대표수필가100인영문선 [The Collection of English Essays Written by 100 Korean Essayists] Morning Calm 《고요한 아침》을 발간하려 준비하고 있다. 또한 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장으로 재선된 권남희 회장도 수필번역에 관심을 가지고 대표수필의 번역을 기획하고 있다.
수필번역 뿐만 아니라 한국문학의 통시적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한국문학사 번역은 물론 공시적 특성을 파악할 수 있는 평론집의 번역도 있어야 하리라 본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현재 미국의 하버드대학, 코넬대학, 캘리포니아주립대학, 하와이대학, 남가주대학 등 7개 대학과 영국의 런던대학, 캐나다의 토론토대학 등이 한국문학 정규 강좌를 개설해 놓고 있음을 보아 정규과정의 교재로서건 또 교양적인 입문서가 되었건 한마디로 한국문학사나 개론서 그리고 평론집의 발간도 서두를 필요가 있다.
1. 자료분석에 나타난 과제와 전망
지금까지 우리는 번역현황과 실태를 다각도로 살펴보았고 자료분석을 통해 산발적으로 나타난 한국수필 번역의 현황도 알아보았다. 이제는 그런 문제점들을 종합·정리해 보면서 그 앞으로의 과제와 전망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첫째, 장르상의 문제점을 정리해 보면, 현대수필과 한국문학사나 한국문학 입문서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 따라서 수필의 경우라면 개인수필선은 차후 문제로 남겨 두더라도 적어도 현대수필선 2, 3종은 번역되어야 하리라 본다.
둘째, ‘연대별·국가별 출판현황’에서는 번역·소개가 너무 미국과 영국에 치우쳐 있다고 지적했다. 소개의 다변화를 위해 앞으로는 호주, 캐나다 지역은 물론 ‘90년대 들어와 처음 소개되기 시작한 아일랜드에도 적정 장르의 적정 종 수의 번역이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본다.
셋째, 국내기관이나 단체의 출판지원에 의한 출판을 하더라도 더 좋은 출판사를 섭외해 보아야 할 것이고, 설사 규모가 작은 출판사라 할지라도 전문성이 있고 홍보나 판매에 열의 있는 출판사를 찾아야 할 것이다.
넷째, 무엇보다도 앤솔로지 형태의 시선집 번역에서 이제는 완전히 탈피할 때다. 대신 개인 시(선)집이 더욱 많이 소개되어야 하리라 본다. 가령 종 수는 차치하고라도 개인 시(선)집이 나온 현존 시인이 15명이라는 사실은 매우 숫적으로 열세인 편이다. 더 나아가서는 전략적으로 소개의 가치가 있는 시인이라면 마치 서정주의 경우처럼 여러 종의 집중적 번역도 있어야 할 것이다.
다섯째, 소설선 번역이 의외로 개인 소설선집이나 장편 번역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편이다. 현재까지 번역된 소설선이 총 31종이고 개인 소설선과 장편 번역이 33종인 점이 이를 웅변해 주고 있다. 소설선이 현재로는 상대적으로 과부족이 없는 이상 앞으로는 개인 소설선집이나 장편 번역에 박차를 가해야 하리라 본다.
여섯째, 장르별 전문 번역가가 많이 나오는 것이 번역의 전문성을 제고하기 위해 가장 바람직스런 일이라 하겠다. 적어도 앞으로는 시의 호흡과 산문의 호흡이 서로 다르고 또 두 장르에 힘을 쏟다 보면 전문 이해도도 떨어지기 마련인 이상 반드시 장르별 전문 번역가가 많이 나와야 하리라 본다.
일곱째, 작가 전담 번역가도 필요할 것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주니찌로 타니자키의 작품을 집중 번역한 에드워드 싸이덴스티커와 오에 겐자브로를 집중 번역한 죤 네이턴의 예를 들면서 현대 일본소설이 해외에 번역·소개된 성취의 결과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볼 만하다. 물론 현재까지의 한국문학의 해외 번역에서 이와 같은 경우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가령 시 부문에서 Br. Anthony of Taize는 구상과 서정주 그리고 고은의 시에 지속적 관심을 보였고 또 David R. McCann이 서정주 시를 3종이나 번역한 예도 있다. 그러나 어느 시인, 어느 소설가 하면 상표 같은 ‘전담 번역가’가 이렇다 하게 떠오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보니 앞으로는 빛과 그림자 같은 ‘전담 번역가’가 많이 나와야 하리라 본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문학번역 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이 절박하다.다. 최근 들어 가장 이상적인 번역방법으로 내세워지는 것은 문학적 소양이 있으면서 해당 국어를 잘 구사하고(작가인 경우가 최상이지만) 한국문학을 번역하고자 하는 외국인과 그 한국문학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한국인이 팀을 이룬 번역팀의 구성이다.
국가 중심 번역 제도가 가장 왕성했던 시기의 이런 번역시스템의 현대적 적용에 대해서도 따져 봐야 하지 않을까? 이제 한국 문학번역의 세계화를 위해서 문학작품 번역지원사업, 전문번역가 양성사업에 이어 번역시스템 구축사업을 지원할 것을 제안하는 바이다. 아울러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전문번역가 양성사업에서 한국어 및 해당외국어에 대한 최고의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교육과정과 교육자료 등을 개발하는 일도 우선적으로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끝으로, 국가지원에서 주의할 점을 한 가지 든다면, 지원을 하되 너무 국가의 입장을 내세우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노이츠 국제문학상이나 노벨문학상처럼 국제적인 인정을 받는 문학상의 경우 수상작가의 삶 자체가 수상감이라는 평가를 듣기도 하는데 많은 경우 인권과 환경 등 세계적 가치를 위해 국가를 상대로 투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작품은 공공연하게 국가의 이름으로 지원하기 어렵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 저런 조건의 작품을 제외하고 나면 세계적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작품 지원 자체가 어렵게 된다.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문학번역지원은 세계적 수준이 되지 못하는 한국문학을 세계적 수준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 수준이 되는 한국문학을 모르는 세계 독자에게 한국문학이 세계적 수준임을 알리는 데 목표가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국가적 관점이 아닌 세계적 관점에서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을 희망해 본다.
III. 로그아웃
지금까지 필자는 해외에 번역·소개된 우리 문학작품의 자료목록을 토대로 번역현황과 과제, 전망을 해보았다. 여기서는 그 성과와 해외 반응도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한 마디로 아주 낮은 평가다. 사실 한국문학이 해외의 여러 언어권 중에서 영어권에 가장 많이 소개되었지만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그 반응이 미미한 편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그나마 1989년 The Seal Press사에서 나온 Fulton부처가 번역한 여성 3인 작가 소설선집 『Words of Farewell』과 영국 Kegan Paul사에서 1986년에 출판된 최양희 번역의 『Memoirs of a Korean Queen』이 판을 거듭했다 한다. 그리고 이문열의 장편 『The poet』이 1995년 런던의 Harvil Press에서 출판되자마자 TLS(타임즈 문예부록)에 긴 서평이 나고 다시 『London Review of Books』와 같은 유력지에 D. J. 엔라이트와 같은 이름 있는 문사의 서평을 통해 좋은 호응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전경자 역으로 M. E. Sharpe사에서 1993년에 나온 채만식의 『Peace Under Heaven』과 역시 같은 출판사와 같은 연도에 Bruce Fulton과 Marshall Pihl 공역으로 나온 단편선 『Land of Exile』 그리고 『Soho Press』에서 나온 안정효의 『White Badge』(1987)와 『Silver Stallion』(1989)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는 정도의 평가는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국문학의 번역사업은 여러 측면에서 많은 반성이 요청되고 있다. 번역가 문제, 작품 선정문제, 출판사 선정과 홍보문제, 장르균형문제 등은 개인이건 단체의 지원이건 간에 많은 심사숙고와 보다 체계적인 추진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앞에서 언급된 자료분석의 문제점이 속히 해결되어야 하겠고 또 수필번역 과제도 만족할 정도로 추진·이행되어야 하리라 본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욕심을 부려 본다면 노벨상을 겨냥한 수필가의 전략적 번역사업도 동시적으로 마땅히 수행되어야 하리라 본다. 후보감에 속할 만한 몇몇 작가에 대한 집중적 번역은 물론 예비 후보가 될 만한 차세대 작가들의 작품도 이제는 선별적으로 집중 소개가 이루어져야 하리라 본다. 무엇보다도 장르간 불균형을 해소하는 차원에서라도 수필번역에 많은 지원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원만 잘 된다면 수필가의 노벨상 수상, 기대해 봄직도 하다고 생각한다. 2천년대의 전략적 번역사업이라면 바로 이런 점이 아닐까.
경남 남해 출신
문학박사 평론가 문학번역가 수필가
한국PEN번역원 번역위원
사)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회장
한국문학세계화위원회 위원장
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이사
저서 <수필은 사기다>외 20권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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